그분 손 안에서
원웅 노엘 전 마산 치명자의 모후 Re. 보좌서기
요즘 자기건강관리를 위해 너나없이 헬스장도 찾고, 여기저기 이름 난 둘레 길을 찾아 걷는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모두가 똑같이 걸을 수 있고, 똑같이 산을 오를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체력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아예 발걸음 자체를 떼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중간쯤에서, 어떤 사람은 힘이 들더라도 정상까지를 고집하는 이도 있습니다. 남보다 높이 오르려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나의 체질에 맞는 운동을 잘 선택하는 것이 건강에 더 좋지 않겠습니까?
철부지 어린 시절 엄마 손잡고 생각 없이 따라다녔던 성당, 그곳이 저에게는 좋은 놀이터였고, 그리하여 초등학교 2학년 겨울 성탄절을 맞아 세례를 받고 하느님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였지만 열심히 하는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게으르고 또래아이들을 잘 괴롭히는 심술궂은 아이였고, 지금도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속으로 웃음이 절로 난답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누가 묻는다 해도 저는 그것을 수수께끼로 남겨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귀한 자리
그렇게 유년시절을 지나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지만 오랜 시간 하느님과 떨어져 살면서 제가 40대 중반쯤에 어머니를 하느님 곁으로 보내드린 후, 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길을 찾다가 집에 가까운 성당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성당에 나가기로 마음을 다잡고 그렇게 하느님께 회개하고 돌아와 공동체 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2007년 늦가을 무렵 꾸리아 단장이 저를 찾아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연말에 레지아 활동계획 발표회가 있으니 함께 참석하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레지아 회계자리가 비어있으니 그 직책을 맡아 주면 어떨까?” 라고 권유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다 “그러죠”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뛰어든 간부직이 어언 12년(회계 6년, 보좌서기 6년) 이제 그 소임을 마치고 2019년 1월 평의회를 마지막으로 그동안 정들었던 교구청강당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광주 세나뚜스 비롯하여 전국 레지아 평의회 방문, 한국 레지오 마리애 교육관 방문, 제주 성지순례, 산청 성심원 교육 및 피정, 교구 내 본당 평의회 순방 등 성모님께서 저를 찾는 곳이면 언제어디든 달려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이름 있는 성지 명소는 거의 다 둘러볼 수 있었던 영광도 있었고요. 2015년 12월 제주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주년 감사미사 및 성모상 제막식 참석 등도 추억이며, 특히 2017년 12월 태국 파타야 순교자의 모후 꾸리아 방문 등 레지아 간부가 아니었으면 성모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을까 반문해 봅니다. 그 순간, 기뻤던 일들 모두가 이제는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맏배기도로 시작하는 하루
지나고 보니 12년은 그렇게 길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성경말씀에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다”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잠시 빛처럼 왔다가 지나가는 찰나에 제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짧은 고개를 넘고 나니 제 나이 벌써 환갑을 맞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낮은 산도 높게 보이고, 높은 산은 쳐다보지도 않으려 했던 저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1년 365일을 보살펴 주셨던 분은 하느님이었고 성모님이었습니다. 제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과 성모님을 만나는 것 그 시간이 제일 즐겁고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른 시간에 운동장에서, 또 어떤 사람은 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얘기하겠지만 저는 매일 이른 아침 맏배기도로 하느님을 만나고 성모님을 만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함께 지고 가는 십자가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 모두는 한국천주교회의 튼튼한 버팀목이자 반석이며 대들보와 같은 존재입니다. 레지오 단원은 늘 자신을 추스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개인성화를 위해서라도 기도와 활동 그리고 공부에 푹 빠져 재미를 느끼고 기쁨도 찾고 행복도 찾았으면 합니다. 가끔씩 레지아에서 교육과 피정을 주관하다보면 그 느낌의 울림이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은총을 받고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피정에 참여하는 형제자매님 중에는 가끔씩 휠체어를 타고 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몸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피정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또 교통이 불편한 단원을 위해 차량과 시간을 기꺼이 봉헌하면서까지 함께 참여해 주는 형제자매님을 보게 되면, 성모님의 사랑은 정말 대단하시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레지오 마리애 발전을 위해서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어떤 십자가가 주어지더라도 함께 지고 가는 자기희생과 봉사를 하는 평의회 간부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성모님 정신을 다시 일깨우고, 지금 이 시대에 레지오 단원 개개인 모두가 올바르게 받아들여 한국 레지오 마리애가 한층 더 성장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이 때문에, 몸이 불편해서, 교통이 불편해서 상급평의회에서 실시하는 교육과 피정에 불평과 불만의 목소리(므리바의 물)가 더 이상 나오질 않길 기대합니다. 세상을 향해 우리 선조들이 뿌려놓은 복음의 씨앗이 헛되지 않도록 다함께 진군해 나갑시다. 튼튼한 조직과 어떤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레지오 단원들의 굳센 의지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이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레지오 마리애 간부들이 있기에 한국 레지오 마리애가 지금의 어려운 상황들도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교회가 바라는 변화와 혁신에 흔들림 없이 한국 레지오 마리애가 그 중심에 서서 나아가길 바라며. 교구 평의회를 슬기롭게 잘 이끌어 주신 마산 레지아 강동주(세레자 요한) 단장님, 곽세옥(레미지오) 부단장님, 백광열(도미니코) 서기님, 김정혜(테클라) 회계님, 사무장 손점이(율리아나) 님과 레지오 단원 교육에 늘 노고가 많으신 교육위원님들, 그동안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함께했던 그 시간들을 가슴속에 오래오래 쌓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끄집어내어 보겠습니다. 하느님, 성모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