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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의 비밀
김광한
"우리는 흙에서 왔던 이 육신을 다시 흙으로 돌아가도록 땅에 묻습니다. 그러나 죽은이들 가운데 첫째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님께서 우리의 비천한 육신을 변화시키시어 당신의 빛나는 육신과 흡사하게 만드실 것이므로 이 교우를 그리스도님께 맡겨 드립니다. 그리스도님께서 친히 당신 평화 속에 받아들이셨습니다. 반드시 부활시켜 주실것입니디·."
사제의 하관(下棺) 기도가 끝나자, 관은 한 평 크기의 구덩이에 들어갔다. 새흙이 비치는 걸로 보아 고인이 죽고 나서 바로 판 구덩이 같았다. 그 구덩이 바로 옆에 오래 전에 죽은 고인의 부인의 관이 들어왔다. 옻칠을 두껍게 발라서인지 하나도 부식이되질 않아부인의 관은 그대로 있었다.
관이 내려지자 친족들과 지인들이 국화꽃 한 송이씩을 관 위에던졌다.
"망자여, 편안히 쉬일지어다. "
국화꽃은 좁은 구덩이, 관 위를 덮었다. 묘지 주위는 고인과 가깝게 지냈던 수백 명의 조문객들이 우산을 들고 생전의 고인을 추억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가을비는 장례 미사가 끝나고 나서도 그칠 줄 물랐다. 장례 미사를 집전한 미카엘 신부는 이 비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 하관이 끝나자 다시 간단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요, 산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다. "
시편의 음송이 끝나자 관 위에 상주를 비롯한 친족들이 한삽 두삽 흙을 퍼 던졌다.
이로써 74년 동안 이 땅에 호흡하며 살던 한 사람 조덕송 바오로 노인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가 살면서 모아 놓았던 백 억이 넘는 재산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 돼 버렸고,호화로운 저택의 문 앞에 달린 그의 문패는 다른 이의 이름으로 바꿔지게 되었고, 호적과 주민등록에서 삭제돼 점차 잊혀져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그의 제사 때 직계 자손들에 의해 지방이나 붙게 되었다.
조금 전 장례 미사 때 미카엘 신부는 죽은 조덕송 씨의 생전의 업적을 침이 마르도록 말했었다. 신부의 추도사를 들은 조객들은 시종 숙연한 표정이었으며, 넓은 성당을 가득 메운 조객들로 보아신부의 말대로 그가 평생 동안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산 것이 확인이 된 셈이다.
"조객 여러분, 조 바오로 대인(大人)께서는 참으로 아까운.사람이었습니다. 74년 동안 한 번도 그르침 없이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온 평신도 성인(聖人)이셨습니다. 재산이 남들보다 많았지만 오만하지 않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재산을 나눠 주었으며, 몇 년전 그분의 칠순 때는 그 돈을 경로당에 헌납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선행을 쌓았습니다. 아마도 조 대인은 선종셨어도 남들이 모두다 가는 연옥의 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천당으로 가셨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 저에게 무엇인가 꼭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그 이야기를 내일 아침에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 아야기가 무엇인지 알 순 없으나 아마도 우리 교회를 위해 많은 액수의 헌금을 하겠다는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
미카엘 신부는 고인이 죽기 전날 밤 고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아무래도 내 병이 심상치 않아 며칠 넘기지 못하겠다는 것과,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 그리고 독신으로 살아온 데 대한 외로움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고인은 이튿날 새벽 다섯 시에 일어서 기도를 마치고 숨을 거두었다. 미카엘 신부는 고인이 자기에게 꼭 하고 싶다는 말을,얼마 전 자신의 많은 재산을 좋은 일에 쓰겠다는 것과 연관시켜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는 고인이 그 말을 정확히 하고 돌아갔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생전의 고인의 행적으로 보아 재산헌납이 분명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죽자 재산헌납을 문서로 남긴 것도 아니고 그의 자녀들이 있는 한, 미카엘신부로서는 자녀들에게 뭐라고 말할 수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미카엘 신부는 평생의 사업으로 장애자 복지 회관 건립을 구상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그의 자손들이'아버지의 유지를 잘 받들어 주기만을 기대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든다는 것은 무망한 일이었다. 고인에게 아들이 셋 있었지만 살아 있었을 때도 재산 때문에 다툼이 있었고, 여느 부자집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신앙과는 달리 주색 잡기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고인의 좋은 생각은 물거품으로 끝날 것이 뻔했다.
미카엘 신부는 그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에게는 조 노인이 더 살아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더 많은 소외된 사람들이 덕을 보게되는데 그날 새벽에 죽게 될 줄이야, 그러나 삶과 죽음은 이 세상의 일이 아니지 않는가. 성당 안과 밖을 가득 메운 조객들은 공휴일도 아닌데 거의 반쯤이나 따라와 영구차를 비롯한 일반 버스가 다섯 대나 되었다.지역 경찰서장을 비롯한 시의원 국회의원 등 생전에 고인에게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마치 일국의 국무 총리나 장관이 죽었을 때처럼 조객으로 붐볐다. 그것
으로 보아 조 노인의 살았을 때의 행적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조객들을 잘 눈여겨 보면 대부분 그가 70여 년 동안 살아온 동네 이웃 사람들이었다.
천주교 신자로서 성당을 빌려 장례 미사를 보았지만,실상은 동네초상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장지까지 따라온 신부가 세 명이나 되는 것으로 보아, 그가 교회에 끼친 업적이 대단하다는 걸 한눈으로 볼 수가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대인(大人)을 불러가시다니.좀더 살아서 더욱 많은 일을 하셔야 했는데, 하늘이 그의 업적을 질투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조 대인의 유지를 받들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세상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
미카엘 신부는 조 노인을 조 대인(大人)으로 호칭을 최상급으로 높였다. 큰사람이란 뜻이다. 중국의 '삼국지'나 '수호지' 또는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족장이나 붙일 대인을 조 노인에게 붙인 것은, 그만큼 조 노인에게 생전에 은덕을 입었음이다. 조 노인은 본당 신부를 비롯해 수녀들에게 그가 시골에 갖고 있는 땅에서 수확한 쌀을일 년에 몇 가마씩 봉헌했고, 가끔씩 헌금 이외에 촌지(寸志)를 곁들여 주었다. 조 노인은 중풍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 년 열두 달 빠짐없이 새벽 미사에 참례해 독서를 해 왔고, 신앙을 갖지 않은 무지하고 돈많은 빌딩주 노인들에게 입교를 권했다. 인근 양로원과 고아원을 일 년에 몇 차례씩 방문.,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들을 위로해 줌은 물론, 장애자들에게 휠체어를 사주는 등인간적으로도 칭송받을 만했다. 누가 보아도 그는 돈 않이 갖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교만에 빠지지 않고,자신을 위해한 푼도 쓰지 않는 검소한 생활인이자 신앙인이었다.
조 노인이 묻힌 곳은 공원 묘지라기보다 공동 묘지나 디를 바없는 야산(野山) 중턱이었다. 여기에 그의 부모, 삼촌 등이 묻혔고,그의 일가들도 죽으면 이곳에 묻히게 돼 있었다. 대부분 죽은 사람이 천주교 신자여서인지 묘지 앞에 성모상을 세워 두고 있었다. 큰성모상, 작은 성모상 등 수없이 많은 성모상들이 묘지 전체를 채우고 있어서 마치 성모 군단을 방불케 했다. 어떤 것은 회칠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 볼성 사납게 된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유족의 재력을과시라도 하듯 대리석으로 크게 만든 것도 있었다. 죽은 사람을 성모님이 보호해 주시기라도 하듯,유족들은 고인들이 편안히 잠들고 있는 장소를 우리나라 성모님들을 파견해 보초병으로 내세우고 있는 뜻했다. 하관식이 끝나자 조객들은 뿔뿔이 식당으로 갔다. 남은 것은 미카엘 신부와 고인의 장남 조칠성 씨, 그리고 그의 둘째 아들과 몇 안되는 신자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슬퍼해야 할 장남 조칠성 씨의 얼굴에서는 전혀 슬픔의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고인의 죽음보다 큰재산을 물려받게 된다는 기쁨에서였을까,그의 번질번질하고 영양가높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버님은 더 살아야 할 분인데.
미카엘 신부가 큰아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었다.
"인명이 재천이라는데 주님이 부르시는 데야 어쩔 수 없죠."
큰아들은 남의 이야기하듯 했다.오히려 호상이라면서 즐거운 표정이었다.미카엘 신부가 아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운을 뗐다.
"그런데 아버님이 제게 말씀드리려고 한 게 궁금해요. 제가 알기에는 얼마간의 재산을 헌납하시겠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하며 슬쩍 큰아들의 표정을 살폈다.
"아닙니다. 아버님은‥‥‥‥
큰아들은 말미를 줄였다.
미카엘 신부는 큰아들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주기를 은근히 바랐었다. 그러나 큰아들 조씨는 미카엘 신부의 이런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산 아래 식당으로 내려갔다. 미카엘 신부는 큰아들의 행동이 조금 섭섭했다. 이럴 때쯤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큰아들에게 원가 한 마디 해 주었으면 싶은 심정이었다.
대부분의 사제들이 그러하듯 공동체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물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당의 총회장은시간이 많고 돈이 좀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미카엘 신부는 자신의사업을 위해서 돈 있는 신자들과 접촉을 해 왔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해서 마음이 풍족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돈 많은 자들 가운데 의외로 인색한 자들이 많아서, 이들은 돈 내는 장소에는 웬만하면 나타나질 않는다. 그러나 조 노인은 달랐다. 그의 죽음이 애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루만 더 살았더라도하는 아쉬움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카엘 신부는 조 노인의 묘지 앞에서 간단한 기도를 올렸다.
"주님, 세상을 떠난 조 바오로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조 바오로는 생전에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하였사오니, 지상에서 참된 신앙으로 신앙의 무리에 들었듯이 천당에서는 주님의 자비로 성인들의반열에 들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오후 들어 비가 그쳤다. 식당 쪽으로 내려가는 좁은 길은 아침부터 내린 비로 여간 질퍽거리지 않았다. 이때 저 아래쪽에서 묘지 쪽으로 올라오는 사람이 있었다. 차림새와 얼굴로 보아 중년이었고,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조객이라기엔 차림새가 너무 초라했다. 그렇다고 인부 같지도 않았다.
그 사람은 미카엘 신부 가까이 와 눈인사를 하고 잠시 고인의 묘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그리고 미카엘 신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소."
미카엘 신부는 사내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신자 같았으면 신부인 자기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이 당연할 텐데, 뜻도 없는 소리를 하는 점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내가 다시 말했다.
"신부 형제 ? "
"그렇습니다만, 친척 이신가요 ? "
"아니오, 그저 가난한 사람이오..가난한 사람과의 형제."
"가난한 사람과의 형제 ? "
·그렇게 부르오, 다들."
미카엘 신부가 사내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구렛나룻이 보기좋게 나 있었고 광대뼈가 조금 튀어나왔으나 천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눈빛에서 어떤 서기가 보였다. 그렇다고 배움이 들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치림새로 보아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했으나 어쩐지 함부로 대하기가 불편했다.
"신부 형제여."
사내가 말했다. 미카엘 신부는 자신에게 말하는 투로 보아 신자같지는 않다고 여겼다. 신자라면 신부님이라고 할 텐데, 형제란 호칭은 또 뭔가, 아무래도 기분 좋은 상대 같지는 않았다.
"선생은 뉘신가요? 신자십니까?"
"빈천한 사람이오. 그리스도의 꿈을 쫓는 작은 거지요."
"어떻게 여기까지 ? "
미카엘 신부가 물었다. 호칭 시비를 벌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신부 형제의 궁금한 것을 풀어 주기 위해서요."
"궁금한 것 ? "
"고인이 신부 형제에게 말하려는 의미요."
"선생이 그걸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소,"
"어떻게 ? "
"고인이 숨넘어가는 순간 그 뜻이 내게 전달되었소. 신부 형제에게 말하고 싶은 모든 것."
"그걸 정말 알고 있습니까?"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의 행동으로 보아 그냥 보아 넘길 인물 같진 않았다.
"고인이 이야기했소, 그 뜻이 내게 전달되었소, 그리스도를 통해서요,"
"그럼 선생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도 된단 말씀입니까?"
"언제 어디서든 안타까운 일이 있을 때는‥‥‥‥
"말씀해 주십시오. 고인의 마지막 말을‥‥‥‥
사내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말했다.
"고인은 신부 형제에게 총고백 성사를 보고 싶었던 거요. 일찍이
누구에게 고백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끄러웠던 과거를, 그리고 보속을 받고 싶었던 거요."
미카엘 신부는 사내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느꼈다.
미카엘 신부는 그제서야 자신의 현실적인 판단이 얼마나 빗나간 것인가를 알게 됐다.
사내의 이야기가 계속됐다.
"고인의 자선은 10년에 불과했소, 그 이전의 행적, 고인은 그걸 고백하려 했던 거요. 그 부끄러운 과거의 일들을‥‥‥‥
조덕송 씨가 살고 있는 태릉 일대는 일제 시대 큰 포도밭이었다.수만 평이 넘는 포도밭의 주인은 일본인 마쓰모도(松本)였다. 마쓰모도는 포도밭을 한국인에게 소작을 주었는데, 바로 조덕송 씨의 아버지 조철규 노인이 소작인 감독, 즉 소작인이면서 마름(소작인 감독) 노롯을 해 왔다. 같은 소작인이면서 주인에게 충성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같은 소작인에게 욕을 들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실제로 일본인 주인보다 마름이 더 소작인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다. 조철규 노인이 그랬다. 소작인들의 실수를 곧바로 마쓰모도에게 고해바쳤고, 그럼으로써 마쓰모도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패전이 되자 마쓰모도는 그 넓은 포도밭을 다 두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마쓰모도는 조철규 노인에게 다시 돌아을 때까지 이 포도밭을 잘 관리해 달라는 부탁을 하며 그에게 포도밭을 임시로 맡겼다. 그리고 자신의 딸 하나꼬(花子)를 그의 아들과 끈을 맺게 했다. 그러나 조씨의 아들 조덕송.씨는 하니꼬에게 임신을 시키고 그녀를 박절하게 버렸다. 그녀는 뒤늦게 임신을 한 채 출국을 했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특성상 마쓰모도는 다시 돌아을 수가 없게 됐고, 이 땅은 적산이 되어 조철규 노인에게 값씨게 돌아왔다. 조철규 노인은 일약 마름에서 지주가 됐고, 그의 아들 조덕송은 그때 나이 스무 살이었다. 조철규 노인은 재산복이 없었던지 그 이듬해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됐고, 자연 포도맡은 조덕송 씨가 물려받게 되었다.
배운 것이 변변치 못했던 조씨는 땅에서 생기는 소득을 주색 잡기에 썼다. 인근의 마을 처녀들은 물론 기생방을 출입하면서 방탕한 놀음에 몰두했다. 그의 조강지처 처는 남편의 주색 잡기에 지쳐 그녀의 나이 서른이 되던 해 집 근처에 있는 느티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다. 조씨는 그 후 여러 번 장가를 들었지만, 여자 행각과 태생적인 인색함 때문에 1년을 넘지 못한 채 모두 그의 곁을 떠났다.
조씨는 이때마다 약간의 돈을 주어서 내보냈는데, 그의 재산으로 보아 아주 적은 편이었다. 조씨는 나중에 있을 자기 자식들과의 분쟁 때문에 그녀들로부터 아이를 갖지 않았다. 계속되는 홀아비 생활은 쓸쓸했지만 돈이 그의 외로움을 지탱해 주었다.
돈만 있으면 여자는 어디에도 있었다. 술과 도박과 여자가 그의 생활의 전부였다. 그런데 한일 수교가 되자 까마득히 잊었던 마쓰모도의 딸 하나꼬가 그를 찾아왔다. 그녀는 중이나 입는 승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이 70년도였다. 그녀의 곁에는 당시 임신했던 씨앗이 태어나 벌써.스무 살 되는 딸도 있었다.
하나꼬는 아버지가 죽자 일본의 어느 절 주지의 양녀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가 죽자 주지가 되어 혼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조덕송 씨는 그녀를 피했다. 자신이 그녀에게 박절하게 대했던 죄책감도 있었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재산 분규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세 명이나 되는 부인 때문에 장성한 아이들로 인해 시달림을 받았었다.
하나꼬가 한국에 나온 것은 조씨가 생각하듯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딸의 혼사 문제 때문이다.
."아버지 없는 딸보다 아버지 있는 딸로 출가를 시키고 싶어서예요. 물론 어렵겠지만 허락해 주세요. 그렇다고 선생님의 호적에 입적시켜 달라는 것은 아니에요."
조씨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아이들이 알면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모르는 일로 해 두시오."
하나꼬가 슬픈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선생은 하늘이 부끄럽지 않으세요. 옛날 아버지의 정의를 보아서라도‥‥‥‥
"그건 이미 과거 이야기지 않소."
하나꼬는 조씨의 냉담한 얼굴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그 후 그녀는 한 번도 소식을 주지 않았다.
조씨는 이때의 일로 인해 두고두고 가슴 아파했다. 따지고 보면 조씨의 많은 재산은 하나꼬의 아버지 마쓰모도 씨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태릉 일대가 도시화되자 그의 땅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큰길이 들어선 양편에 그는 약간의 땅을 팔아 여러 개의 빌딩을 짓고 일약 졸부가 되었다.나이 60이 넘자 그는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그래서 종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했다. 성당에 나가 교리를 배워 뒤늦게 카톨릭에 입교를 했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차례씩 성당 사업에 돈을 희사하기도 했고,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을 돕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꼬나 그의 후처로 맞아들였다가 쫓아낸 여자들을 생각하면, 양심의 칼날이 그의 마음을 후비고 들어와 밤잠을 못 자는 일이 잦아졌다.
두통과 함께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났고, 어쩌다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다.
"야 이놈아! 돈이 그렇게 좋으냐 ! 이 수전노야! 성당에 백 번 나가면 그리스도가 용서할. 줄 아느냐 ! "
조씨는 쫓아낸 세 여자를 수소문했으나, 이미 그녀들은 세상을 떠나 있었다. 그는 몇 번씩 자신의 죄과를 신부에게 고백 성사라는 이름으로 고해하고 보속을 받으려 했으나 자신의 엄청난 파렴치가 발각당하는 것도 싫고 또 그 죄가 받아들여질지 망설여졌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죄과를 보상하는 의미에서 그는 자선을 베풀기로 했다.은퇴한 성직자를 돕기도 했고,나환자촌을 찾아가 그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세 아들은 아버지가 너무나 많은 돈을 쓴다고 반발했다.
"혼자 사시면서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쓰세요. 쓸 데만 쓰세요."
조씨는 자신의 세 아들이 일정한 직업도 없이 할 일없이 빈둥빈둥 노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자신의 전철을 밟을까봐서였다. 그의 아들들은 조씨가 마련해 준 빌딩에서 나오는 임대수입으로 카바레나 다니고 골프장이나 출입하면서 주색 잡기에 몰두했다. 돈이 떨어지면 자신에게 찾아와 노골적으로 불평을 털어놓고, 더나이 들기 전에 유산 상속을 하라고 협박을 했다.
"몸도 시원찮은데 이 기회에 유산 상속을 하세요, 섭섭하다고 생각지 마시고‥‥‥‥
조씨는 고심끝에 아들들의 이런 요구에 응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일생이 망가지게 된 원인이 돈 때문이었다고 생각들었다. 그래서 그는 죽기 5년 전에 재산 정리를 마쳤다. 자신에게 쓸 돈 1억 원을 내놓고 세 아들에게 골고루 분산시켜
놓으니 한결 마음이 가쁜해졌다. 그러나 그 1억 원이라는 돈이 쓰다보니 모자랐다. 여기저기서 손 벌리는 곳이 많았고, 그들에게 나눠 주다 보니 죽기 1년 전쯤에는 자신이 차고 있는 금반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금시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아들들을 찾아다니며 용돈을 요구했으나 핀잔만 받았을 뿐이었다.
"아니 노인네가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하세요. 경로당에 나가시면 소주값 정도는 드릴게요.그 나이에 마나님을 또 얻을려나.."하면서 노골적으로 인경을 모독했다.
아들들에게 푸대접을 받은 그는, 금반지와 그 외 돈이 될 만한 것을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려 썼다. 조씨에게 돈이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도구였다.
노인 학교와 노인 대학에 가 할머니들과 사귀기 위해서는 약간의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 노인은 아들 명의로 된 빌딩들을 보면서 자신의 행동이 어리석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죽기 전까지는 아들들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말라던 주위 노인들의 이야기가 실감되었다.
조 노인은 자신이 빈털털이가 아니란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본당신부에게도 여러 차례 용돈을 주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주위 사람들에게 빌린 것이었다. 그의 아들들은 평일에도 골프채를 들고 골프장을 출입했으며, 본처 이외에도 술집 여자들과 난잡한 관계를 가졌다. 마치 자신의 젊은 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다시 후회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점차 그의 고질병인 기관지 천식이 악화돼 가자, 자신의 여생이 얼마 지속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본당 신부에게 자신의 지난 날의 죄를 모두 고백, 보속을 받을 생각을 했다.
그러나 엄두가 나질 않았다. 본당 신부에게 말을 꺼내기가 우선 창피하기도 하려니와 두렵기조차 했다. 마치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간 살다 쫓아낸 여자가 집을 나갈때 병든 자신의 어머니 병원비를 위해 돈 몇푼 더달라는 말에 욕설을 퍼분 자신의 냉정함이 마음에 걸렸다. . 그가 죽기 몇 시간 전, 그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삼종 기도를 끝마치고 본당 신부에게 전화를 할까 망설였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다섯 시, 그날 본당 신부의 새벽 미사가 있다면 그때쯤 깨어 있겠지만 그날의 새벽 미사 집전은 보좌신부였다.
이때 기침이 나기 시작했고, 기침이 멈추지 않고 마침내 기도가 막혀 끝내 운명을 하고 만 것이다.
"신부 형제가 생각한 현실적인 판단이 조금 성급했던 것이오. 조노인은 자신의 죄과를 깊이 반성했소.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통회를 들어주었던 것이오. 조 노인은 여러 차례 일본의 하나꼬여인에게 속죄의 편지를 보냈소.그러나 안타탑게도 한 번의 답장도 받아 보질 못했던 것이오. 그는 그녀가 자기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몹시 괴로워했소."
미카엘 신부는 사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형제의 말이 설사 꾸며한 이야기라도 믿을 만한 것 같습니다. "
"나는 거것말을 하지 않소. 이상의 이야기는 내가 알아서 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그분의 전음이오."
"전음 ? "
"그렇소.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일이 있소, 하나꼬란 여자는 편지를 보내진 않았지만 이미 조 노인을 용서했던 것이오. 그래서 한국을 방문했던 것이오. 그러나 이미 보시다시피 그는 땅 속에 묻혀버렸소. .조 노인이 운이 나빴는지, 아니면 그분이 하나꼬와의 재회를 허락하시지 않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소."
미카엘 신부가 물었다.
"하나꼬가 한국에 왔다고요?"
"그렇소. 아주 가까운, 어쩌면 이 근처 어디에서 조 노인의 죽음앞에 애통하고 있을런지 모르겠소."
이때 승복 차림의 웬 할머니가 조 노인의 아직 축성되지 않은 무덤 앞으로 와 고개를 숙이고 염주를 돌리고 있었다.
사내가 말했다.
"바로 저 할머니가 하나꼬요,"
승복 차림의 할머니는 계속 일본말로 된 염불을 외고 있었다. 미카엘 신부는 마치 추리 소설 속의 현장에 와 있는 듯 현실감이 나질 않았다.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사내의 신분이었다. 사내의 얼굴은 어디서 본 듯도 하고,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계룡산에서 내려온 도사일까? 그러자 문득 생각나는 얼굴이 있었다. 왜소한 키에 다소 못생긴 동양인 같이 생긴 서양 사람, 눈빛이 푸르고 머리를 짧게 깎은 수도자. 성당 구석에 걸려 있는 한 장의 그림 속의 얼굴, 가난한 자의 친구, 스스로 빈천한 몸이 되어 춤을 추어 남을 즐겁게 했던 사람,프란치스코,바로 그가 아닌가. 그러나 그가 왜 ?
사내에게 물었다.
"프란치스코님이 아니신가요 ? "
사내가 대답했다.
"그건 내 몫이 아니오.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좋소. 그러나 가난한 자의 형제인 것만은 틀림없소, 신부 형제도 가난해지시오. 가난한 자가 하늘 나라를 차지한다고, 성서의 말씀은 거짓이 없소'
사내는 왼쪽 다리를 절름거리면서 산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그의 걸음걸이로 보아서 금방 넘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미카엘 신부는 마치 도깨비에게 홀린 듯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프란치스코님, 안녕히 가십시오 ! i'
하고 인사했다.
사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이 피어 있었다.
"꿈을 쫓는 작은 거지여, 안녕 ! "
약력
1944년 서울 용산 출생
중앙대 문과대 국문학과 69년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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