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연말특별새벽기도회 / 2023-12-26(화)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말씀 : 사무엘상 1:1-18
제목 : 동 터오는 하나님의 뜻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
아버지 감사합니다.
연말을 맞이해서 저희들이 이렇게 주의 전에 나아와 새벽을 깨우게 하시니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오늘부터 나흘 동안 함께 말씀 듣고 자 하는데, 주님 아버지의 뜻을 아버지의 음성을 우리 모두에게 들려 주시옵소서.
사모하는 우리의 심령 속에 성령님 역사하시고 임재하시고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들어가는 말 :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우리가 작년 연말특별새벽기도회 때에 사사기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기억나시지요?
그때, 사사기는 "진정한 왕은 누구신가"라고 하는 주제를 다루는 성경으로서
결론은 하나님 만이 하나님 만이 우리의 유일하신 진정한 왕이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믿는 우리에게 너무나 도 중요한 메세지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사기 시대의 이스라엘은 그 중요한 메세지를 지속적으로 저버리고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살기를 거부했습니다. 사사들을 통해서 수없이 반복적인 경고의 메세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왕으로 삼고 세상적이고 사탄적인 삶을 이어갔지요.
그 비극적인 상황을 우리는 사사기 말미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사건을 통해서 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실은 비극적으로 끝난 그 사사기에 이어서 등장하는 성경이 바로 사무엘상입니다.
사사기가 "진정한 왕은 누구신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사무엘상은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고 계신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왜 사울은 버리고 어린 목동에 지나지 않았던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인간 왕을 통해 바라신 뜻은 무엇이었을까?
이번 연말 특별 새벽기도회 기간 동안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함께 묻고 함께 듣게 되기를 원합니다.
2. 사무엘 시대의 배경
오늘 말씀에서 한나가 살던 당시 이스라엘은 사사기 때와 별반 다르지 않는 영적으로 혼돈과 무질서가 여전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제사장 엘리의 가문의 행적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얼마나 어두운 상태에 있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엘리는 한나가 신음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녀의 그 영적 상태를 분간하지 못하고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를 했습니다.
(13절)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했다"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권면하고 이끌어야 될 제사장이 매 절기 때마다 하나님의 집을 찾아 기도했던
한나의 상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술 취한 사람으로 몰아갔던 그 모습을 보면,
이 엘리가 영적으로 얼마나 둔감한 상태에 있었나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지요.
게다가 그의 아들들 역시 제사장들이었는데,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빼앗고 탈취하고,
제단에서 섬기던 여인들과 동침하는 등 최악의 영적 윤리적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2장 12절부터 17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 12절은 그들에 대해서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이게 말이 되나요? 제사장의 아들들이고, 자신들도 제사장들이었는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니, 이게 얼마나 넌센스입니까?
제사장 가문이 이 정도였으니, 이스라엘의 전반적인 영적 상태가 어떠했는지는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지요.
이때 사람들은 사사기 때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더 타락한 모습으로
자기 스스로 왕이 되어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3. 한나의 절박한 기도
하지만, 그 어두운 영적 상황에서도 진실과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한나입니다.
그녀는 주요 절기 때마다 실로에 있는 성막으로 나아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실로에 있던 성막은 가나안 정복 전쟁 후에 기업의 분배가 끝난 다음에 여호수아가 세운 성막이었어요.
여호수아 1장 8절에 기록이 돼 있는데, 그리고 이 성막은 실로라고 하는 지역에 고정된 성소로 세워진 것으로서
약 삼백 년 동안 사사 시대의 전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실로에 세워져 있던 이 성막은 여호와의 언약궤가 보관되었던 거룩한 곳이었고,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영적 장소였고, 사람들은 때마다 그래서 제사와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이곳을 찾았어요.
오늘 오늘 본문에는 그 성막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표현했는데, 한나는 '하나님의 집'에서 비통하게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무엇이 그리도 괴로웠는지 차마 입 밖으로 그 고통을 토설하지 못하고 입 술만 움직일 뿐이었지요.
그녀는 조용히 탄식하며 눈물로 기도한 겁니다.
한나는 왜 이렇게 제사장이 보기에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하나님의 집에서 울고 있는 것이었을까?
4. 울음의 표면적 원인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토록 힘들게 한 것이었을까?
마치 복음서에 나오는 세리의 기도처럼,
그녀는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면서 그저 눈물만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녀가 이렇게 울었던 이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1차적으로 아이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당시 여성의 불임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오늘 한국에서는 정말 안타깝게도 일부러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부부들이 많지만,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임신과 출산은 하나님의 큰 복으로 여겨졌고, 여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한나가 겪고 있었던 불임은 그녀에게는 심각한 기도제목이 아닐 수 없었지요.
일찍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도 같은 이유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야곱의 아내 라헬도 마찬가지였지요.
구약 시대의 여인에게 있어서 이 불임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고,
기도를 통해 해결해야만 했던 최우선의 과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나는 그 정도가 더 심했던지, 하나님께 차마 말로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고 힘든 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각자 말하기 힘든 고난을 가지고 살아갈 때가 있지요.
그런데, 때로 고난은 생각해 보면 우리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고난이 없는 사람은 기도를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이 없어요. 역설적이지만, 대체로 고난이 있는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또, 고난이 조금 있는 사람은 조금 기도하고 고난이 많은 사람들은 많이 기도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고난은 어떤 목사님이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일지도 모르겠다"고 했어요.
한나처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마음의 고통을 겪으면서 기도하고 있는 분들이 이 자리에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말로 표현하기 힘들면 한나처럼 가슴으로 영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가 되면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한나가 겪은 고통의 표면적인 원인은 불임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한나에게는 원수와도 같은 경쟁자였던 브닌나가 있었습니다.
당시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한 남자를 남편으로 두고 두 아내가 본의 아니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한 아내는 자녀를 잘 낳고, 다른 아내는 불임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잘 낳는 아내가 불임인 아내를 조롱하고 괴롭혀요. 한나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는 예상이 되고도 남지요.
브닌나 - 저는 처음에 '브닌나' 그러니까 이름 자체가 남을 분나게 만들어서 브닌나라고 했나, 분이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본문 6절과 7절에 보니까, 브닌나는 한나가 임신을 못하니까 그녀를 멸시하고 괴롭혔다고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 브닌나는 몇 년 동안 이렇게 한나를 괴롭히고 격분시켰어요.
한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또 한 사람이 있었지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 사라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나요? 아예 하갈과 그 아들을 광야로 내쫓아 버렸어요.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 찾기 힘든 광야로 내쫓아 버렸지요, 그것은 살인행위나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그는 사라가 주인이었고 하갈이 여종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나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어요.
동등한 위치에 있었던 브닌나를 향해 한나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그저 참는 것밖에 없었지요.
사람이 마음의 고통을 풀지 못하고 쌓기만 하면, 결국 쌓이는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결국 병이 들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나의 남편이 한나의 마음을 알고 위로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위로도 한나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남편의 말 (8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 이 말에 한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아요.
요즘 말로, 1도 위로가 안됐다는 거지요.
임신 못해서 괴로워하는 아내에게 열 아들 운운하는 남편이 오히려 한심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요.
간혹, 우리는 사람의 위로가 아무 소용이 없는 이런 상황에 놓일 때가 있어요.
옆에서 아무리 많은 좋은 말을 해 줘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때도 있지요.
여러분, 그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주님 밖에 없어요..
한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에 가서 울었던 거예요.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하려고 해도 하염없이 눈물만 나올 뿐 조목조목 논리있게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10절에 보면 급기야 한나는 통곡에 이르지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그녀의 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목 놓아 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5. 한나의 서원과 그 서원에 담긴 뜻
이제 여기서부터 우리가 주목해야 될 내용이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나의 슬픔과 통곡이 불임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브닌나와의 관계에서 오는 괴로움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맞아요.. 맞습니다.
그런데, 한나의 기도가 의외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한나는 자녀를 달라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내 그 기도의 내용이 바뀌고 있어요.
분명히 자녀를 달라는 기도는 맞아요. 그런데 기도의 내용이 바뀌는데, 서원기도로 바뀝니다. 그 서원기도가 심상치 않아요.
(11절)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 한나는 단지 자녀를 달라고 기도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님께 그 자녀를 바치겠노라고 서원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 서원기도, 참 중요하지요.. 많은 성도들이 적지 않게 서원기도를 합니다.
어떤 부모님들은 만일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면 그 자녀를 하나님의 종으로 드리겠다고 서원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신학교 가 보면 부모가 서원해서 온 분들이 많아요.
또 어떤 이는 사업이 잘 되게 도와주시면, 남은 인생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서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면, 평생 봉사하고 살겠다고 서원하기도 하고,
특별히 우리는 고3 때, 수능을 앞두고 이런 서원기도를 참 많이 하지요.
"하나님께서 이번이 꼭 좋은 성적을 주셔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제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기도 많이 합니다. 그렇게 기도해 놓고서는 싹 다 잊어버리지만...
그런데, 이렇게 개중에는 너무나도 간절한 나머지 지키지도 못할 섣부른 서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또 어떤 이들은 사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잘못된 서원을 해서 딸을 잃어버린 입다처럼 잘못된 서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나의 서원은 달랐어요.
그녀의 서원은 섣부른 서원이 아니었어요, 또 잘못된 서원도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서원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진심어린 서원이었어요.
한나의 서원은 다음과 같지요.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녀의 표현을 보면, "평생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겠다"(나실인 서원을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아들을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고 있는 거예요.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그 당시의 문화와 풍습을 알 필요가 있어요.
당시 가나안 지역에서는 세속적이고 문란한 의미를 담은 헤어스타일이 유행했다고 그래요.
그게 뭐냐면, 단발머리.. 오늘 단발머리 했다고 그게 나쁘단 얘기가 아닙니다.
그 당시, 그 당시에 가나안 지역에서 이게 단발머리는 대표적인 가나안의 풍습이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가나안의 대표적인 작물이 포도였지요. 그 영향으로 포도주 문화가 음주문화가 아주 발달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목문화였는데, 사사 시대 이후에
이제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농경문화에 급속히 젖어들기 시작했고,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가나안 스타일의 단발머리를 하고 포도주에 취해서 하나님을 잊어가고 있었어요. 이게 문제였던 거지요.
이스라엘의 다음세대가 영적으로 매우 암울한 세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라고 하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한나가 "만일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면 그를 나실인으로 바치겠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은
결코 자식에 대한 욕심이나 질투에서 비롯된 서원이 아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지요.
한나의 서원은 당시 가나안의 세속적 문화에 대한 단호한 거부이며,
자신의 아들을 영적 지도자로 길러서 하나님의 백성을 가나안으로부터 구원하고자 하는 거룩한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문화를 살펴보면, 한나의 서원이 보통 서원이 아니었다 하는 겁니다.
그녀의 서원은 결코 불임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서원한 것이 아니었어요.
브닌나와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욕망으로 서원한 것이 아니었다는
아이 못 낳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싫고 두려워서 서원기도를 한 것이 아니었어요.
한나는 지금 본인과 본인의 자녀는 세상의 문화를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결단하고 있는 거예요.
세상의 문화와 맘몬의 세력에 대항해서
"아이를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아이로 나실인으로 길러서 거룩한 영적전쟁에서 하나님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지금 이 기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쉬운 결심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포도주가 물처럼 유행하는 문화 속에서 포도주를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요.
다들 단발머리를 하고 유행을 쫓아 사는 세상에서 아이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겠다는 엄마의 결심,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가 동네에서 받을 눈총과 따돌림이 뻔히 예상되는데...
삼손을 기억하시지요? 사사 시대의 대표적인 나실인이었던 삼손,
삼손의 부모 역시 아들을 나실인으로 길렀어요. 하지만, 삼손은 나실인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지요.
도리어 그는 들릴라라고 하는 이방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서 머리카락이 밀려 망신과 치욕을 당합니다.
하지만,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그렇지 않았어요.
한나는 자신의 서원을 끝까지 지켜서 아들을 진정한 나실인으로 길러냈습니다.
한나의 서원기도는 진실되고 거룩한 결단이었고, 끝까지 그 서원을 지키는 영적 싸움이었어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나의 기도가 어떤 기도였는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 잘 들어 보세요.
※ 한나의 기도는 세상을 버리고 여호와만을 따르겠다는 결단의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는 세상문화에 물들어가는 민족의 영적 타락을 바라보며 애통하고 통곡하는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는 세상을 향해 담대히 영적 전쟁을 선포하고 하나님 편에 서는 거룩한 전투적 기도였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에서 성공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거룩한 신앙인의 결단이요 기도였습니다.
6. 한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 = 사무엘
그렇다면, 이후의 한나의 기도는 어떻게 됐나요?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한나가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크게 응답하셨어요.
한나의 서원기도는 두 가지였지요.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다], [그 아들을 나실인으로 키우겠다..]
그 서원을 다 지키지요. 약속한 대로 철저히 다 지켰어요.
먼저, 하나님께 아들을 온전히 드리겠다고 서원한 대로
그녀는 아이가 젖을 떼자 마자 그 어린 것을 하나님의 집으로 데려가서 엘리 제사장에게 맡깁니다.
(27-28절)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 서원을 지켰습니다.
이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요. 세상의 어느 엄마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그것도 이제 막 젖을 뗀 아기를 낯선 성전에 놔두고 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나는 서원한 대로 아이를 하나님께 드렸어요.
엄마의 마음을 누르고 하나님의 여종으로서 서원한 것을 지킨 것입니다.
그 어린 아이 사무엘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엄마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이후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선지자요, 사사요, 제사장으로 성장하게 되지요.
그 다음에 나실인으로 키우겠다는 서원, 마찬가지지요. 한나는 그 서원도 신실하게 지켰어요.
그녀는 사무엘의 어린 시절 내내 그를 온전히 하나님 곁에 머물게 함으로써 세상의 문화로부터 철저하게 단절시켰어요.
가나안의 단발머리와 포도주 문화는 사무엘이 온전한 나실인이 되는데에 어떤 방해물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나실인으로 성장한 사무엘은 엄마의 소망대로 이제 민족의 지도자가 돼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으로 회복시켰지요.
뿐만 아니라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왕정국가가 되는 과정에도 깊이 관여해서
첫번째 왕 사울과 두번째 왕 다윗 모두에게 기름 부어 왕이 되게 했어요.
무엇보다 사무엘은 다윗 왕조의 태동을 도움으로써
이후 다윗의 피를 통해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도록 연결하는 그 중요한 사명을 감당했던 겁니다.
결국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메시아가 오시는 그 길을 준비한 것,
이 모든 위대한 일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하나의 서원기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 한나는 자기가 서원하며 기도한대로 행했고,
※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셨고,
인류 구원을 위한 메세아 사역의 서곡이 그렇게 사무엘상 1장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7. 모든 게 하나님의 섭리와 뜻 가운데 이루어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는 사무엘과 관련된 이 모든 위대한 일들이 한 작은 여인의 헌신의 기도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오늘 우리가 이 새벽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실로 우리의 연약한 기도도 하나님께서 들어서 사용하시고, 들어주시고,
그 기도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위대한 역사를 이렇게 이루어 가신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잊어서는 안되는 사실이 또 하나 있어요.
여러분, 정말로 한나가 기도했기 때문에, 한나의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그거 맞아요. 그래서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 것 맞아요..
그런데, 그 뒤에 보면 더 놀라운 배경이 있어요. 배후가 있어요.
사실은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가운데 이미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주관하시고 역사하셨고, 그 일의 도구로 한나의 기도가 사용된 거예요.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일을 주관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었어요. 하나님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본문 1장 5-6절을 읽어 보면, [하나님의 주도적인 개입이 이미 있었구나] 하는 걸 볼 수 있어요.
(5-6절)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아멘!
※ 이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한나의 불임과 한나의 기도, 그 기도에 대한 응답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불임이 불행한 것이고, 경쟁자에게 멸시 받는 이유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 모든 고난의 과정은 하나님의 큰 그림의 일부분이었던 것이었지요.
한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그림 가운데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분명히 깨달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우리가 믿음 안에 거하는 한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 있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현재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일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이 될 수 있고 도구가 될 수 있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한나의 불임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 고통 때문에 그녀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울부짖어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기도를 통해 사무엘이라고 하는 엄청난 응답을 받게 되었고,
사무엘을 통해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져서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가 세상에 오게 됩니다.
이 일은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섭리가,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던 것이지요.
8. 나가는 말 : 거룩한 기도의 용사가 되자
사랑하는 주안의 성도 여러분, 요즘 우리의 기도는 어떤가요?
여러분, 우리도 한나처럼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며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나요?
우리의 기도는 너무 나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 기도에 머물고 있지는 않나요?
물론 그런 기도 중요해요.
하지만, 갈등과 다툼으로 얼룩져가고 있는 우리 민족과 다윗의 장막이 무너져내리고 있는 한국교회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한나의 기도가 지금 이 땅에 절실히 필요하다 하는 걸 깨닫게 됩니다.
세속적인 문화에 찌들어가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
맘몬의 위력에 눌려서 그리스도인이 기쁨과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은 아닌가요?
영적 나실인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오늘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입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로 그렇구나...
오늘 우리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를 바라볼 때,
사무엘과 같은 영적 나실인이 정말 필요하다, 영적 지도자가 정말 필요하구나...
그러므로 이 새벽에, 민족과 한국교회를 위해서 한나처럼 탄식하며 기도합시다.
우리 주안교회와 주안의 성도들이 영적 나실인이 되어서 거룩한 삶, 선교적 삶을 살도록 우리 영혼을 깨웁시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의 영적 나실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 다음세대에 사무엘과 같은 영적 나실인이 나오길 기도합시다.
진정 바라기는, 우리 주안의 교회학교의 모든 다음세대가 세상문화와 사탄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영적 나실인으로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우리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하신 왕 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민족과 교회를 위해서 영적 나실인이 저와 여러분이 먼저 되어야 되고,
우리의 다음세대가 사무엘과 같은 영적 나실인 되어서 나라와 민족을 구할 수 있어야 돼요.
정말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 시간 우리 같이 기도할 텐데,
1. 우리 나라와 민족이 모든 갈등과 다툼을 멀리 하고 서로 화평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삶을 살도록
2.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거룩한 나실인으로서의 역할을 회복할 수 있도록
3. 우리 주안교회가 무너져내린 한국교회의 다윗의 장막을 회복하는데 쓰임 받는 교회가 되도록
4. 우리의 다음세대가 영적 나실인으로 성장하여 한국교회와 우리 민족을 살리는데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