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연두입니다.
오늘은 꿈터 들살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 가을 들살이는 꿈터 아이들에게도, 부모님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무척이나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무려 꿈터 전원이 함께 떠난 다함께 들살이! 아마 꿈터 최초의 도전이 아닐까 싶은데요.
함께 떠난 들살이는 2박뿐이었지만 그 전부터 긴 준비과정이 있었고 다녀와서 마무리 발표까지.
아주 긴 시간 꿈터가 함께 한 잊지못할 소중한 기억들입니다.
규모가 큰 역대급 들살이였던만큼 인원도 많고, 활동도 많고, 준비과정도 많고, 당연히 사진도 많은,
모든 게 많은 들살이였지만...! 넘치지 않게 아이들 마음에 딱 맞게 담긴 들살이라고 자부합니다ㅎㅎ
내용이 많은만큼 한 편에 다 못 담고 나눠서 후기를 올리려고 합니다.
긴 이야기지만 그만큼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귀한 배움의 시간, 모두들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광주들살이는 월요일 아침, 화정옥빛공원에서 모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대절버스를 타고 광주까지 이동하기로 했는데 40명 아이들에 교사들의 짐까지 더하니 그 짐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게다가 저희가 짐을 좀, 아니 ‘꽤 많이’ 담아서 다니잖아요?^^
기사님이 도와주셔서 6학년부터 순서대로 차곡차곡 짐을 쌓고 아이들 모두 무사히 버스 탑승했습니다.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약 5시간 가량 달리고 달린 끝에 무사히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은 떠들고, 자고, 음악 듣고, 나중에는 온 몸으로 지루함을 표현했지만 그만큼 광주가 멀리 있다는 걸 체감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첫 목적지는 <국립518민주묘지> 였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점심도시락을 먼저 먹고, 다같이 모여 참배과정과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묘지의 입구 ‘민주의문’을 향해 걸어들어갔습니다.
꿈터는 미리 단체참배를 예약했는데요.
참배를 신청하면 해설사 선생님들이 나와서 줄을 맞춰 행진을 준비해주시고 518민중항쟁추모탑까지 걸어가는 동안 ‘임을 위한 행진곡’을 틀어주십니다.
그리고 안내에 따라 분향까지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며 추모탑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많은 감정과 생각이 들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진지한 표정으로 줄 맞춰서 천천히 한 발 한 발 걸어가나갔습니다.
묵념을 하고, 학생대표(7학년 정선우, 조하진) 두 명의 친구가 대표로 분향을 하며 참배를 마무리했습니다.
참배에 이어서 해설사 선생님을 따라 묘지를 둘러보며 그 묘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6,7학년과 8,9학년으로 나눠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가족이 한 날 한 시에 계엄군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이야기, 수레에 실려 구 망월동 묘역에 버려진 수많은 시신들의 이야기,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해 빈 묘로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들어도 들어도 가슴 아프고 참혹해서 차마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을 해주셨습니다.
묘지에 묻힌 한 분 한 분 모두에게 저마다의 사연이 있음을,
불과 몇 십 년 전에 벌어진 이야기임을 묵묵히 듣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깝고 서글픈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도 저마다의 깊이와 무게감으로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묘지를 둘러본 이후 추모관으로 자리를 옮겨 전시까지 보고 다시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일정에 맞추다 보니 여유롭게 곳곳을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광주 첫 일정으로 무척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아쉽지만 국립518민주묘지를 뒤로 한 채, 다시 버스를 타고 금남로로 향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제 무거운 짐을 메고 다닐 시간이 되었습니다...^^
짐을 다 찾은 후 옛 전남도청 광장을 지나 전일빌딩245를 향해 걸었습니다.
옛 전남도청은 518민주화운동의 최후항쟁지이자 주요 사적지임에도 불구하고 전남도청 소재지가 무안으로 옮겨지면서 철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광주시민과 민주화운동 열사, 유족분들이 뜻을 모아 옛 전남도청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투쟁했고 그 결과 최근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바로 며칠 전, 10월 30일에 ‘옛 전남도청 복원사업 착공식’이 열리고, 어제 그 첫 삽을 떴다고 합니다.
2019년 복원 계획이 발표되고 무려 4년 만에 이뤄진 기념비적인 일입니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고 하니 전남도청이 복원되는 그 날, 아이들과 다시 한 번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
전남도청과 그 옆에 있는 상무관, 광장 앞에 있는 시계탑, 그리고 광장에서 바로 보이는 맞은편 전일빌딩245까지.
아이들과 하나하나 이야기를 나누고 살피며 걸어갔습니다.
- 상무관은 오월 그 당시에 시신들을 수습하던 체육관으로 <소년이 온다>에서 ‘동호’가 시신을 수습하며 일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 시계탑은 오월 이후 “시계탑은 모든 것을 보았다”는 오월 고발기사를 본 신군부 세력이 분노해서 강제로 철거하고 버려버린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된 소중한 시계탑인데요. 지금은 5시 18분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려주는 탑이기도 합니다.
이 시계탑 이야기를 해줄 때 아이들은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무슨 그런 유치한 행동을 하냐고, 그게 진짜냐고 어이없어 했죠.
중학생 아이들도 어이없어 하는 그런 일을 정부와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했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 맞은편에 바로 보이는 전일빌딩245 건물 벽면에는 주황색 동그라미 표시가 눈에 띄었는데요.
오월 당시 헬기 사격에 의해 총탄이 박힌 자리들을 표시해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 표시를 바라보며 진짜 총탄이 박혔다며, 놀라워했습니다.
함께 광장을 둘러본 후 드디어 2번째 목적지인 전일빌딩245로 들어갔습니다.
전일빌딩은 원래 전남일보(이후 광주일보로 명칭 변경) 건물이었다가 오월 당시에 헬기 사격으로 총탄이 박힌 건물입니다.
당시 주변에 전일빌딩보다 높은 건물이 없는데 위에서 아래로 쏜 방향의 탄흔이 남아있어 헬기사격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건물이기도 합니다.
빈 건물로 버려져있다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지으면서 주차장 부지로 쓰기 위해 광주광역시가 매각한 건물인데 건축물검사 과정에서 총알이 박힌 게 발견되었습니다.
처음 발견한 총알이 총 245발. 그래서 전일빌딩245라는 이름이 붙었고, 도로명주소도 245번을 받았습니다.
이후 조사과정에서 더 많은 총알이 발견되었으나 상징적인 이름으로 여전히 245를 쓰고 있습니다.
아이들 모두 그 역사적인 장소에 들어가서 해설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실제 총알이 박힌 기둥을 보기도 하고 헬기사격의 진실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해설 말미에 해설사 선생님이 들려주신 본인의 경험담인데요.
광주 출신이신 해설사 선생님은 오월 당시 민주화운동에 함께 참여한 열사이기도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전남도청에서 시민군을 위해 밥을 짓고 도청일을 도우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후의 날을 앞둔 5월 26일 밤.
새벽이면 계엄군이 도청까지 진입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고 당시 시민군을 이끌던 대표가 도청 안에 남아있던 여성분들을 한곳으로 불러모았다고 합니다.
곧 계엄군이 들어오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당시 그 말을 듣고 다들 총을 가르쳐달라며, 남겠다고 했지만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결국 여성열사들의 귀가가 결정되었고 귀갓길을 도와줄 대학생 시민군 2명이 함께 동행했다고 하셨습니다.
칠흑같은 밤, 도청을 빠져나가는 동안 여기저기 늘어진 시신을 피해서 걷는 것이 더 무서웠다고, 도청 근처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한참을 헤맸다고,
그러다 어느 한 교회에서 그분들을 받아줘서 그날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호위해주었던 시민군 2명이 다시 도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다들 가면 죽을 거라고 말렸지만 끝내 길을 나섰다고,
그들이 교회 바깥으로 나가고 얼마 안 되어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그렇게 악몽같은 27일 새벽 끝없는 총성이 울렸다고 합니다.
아침이 밝자 도청에서 일을 도운 사람들은 자수하라는 방송이 울려퍼졌고 교회에서도 쫓겨나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습니다.
해설사 선생님은 당시 기지를 발휘해 신분증을 비롯한 소지품을 전부 두고 나왔고 어린 학생과 손을 잡고 불안에 떨며 걷다가 계엄군과 마주쳤다고 합니다.
병원 간호사라며 신분을 속였고 신분증도 없어 확인할 길이 없자 계엄군은 둘을 보내줬다고 합니다.
그렇게 살아돌아온 선생님은 나중에 그 날 밤 귀갓길을 도왔던 시민군 2명이 도청으로 돌아가는 길에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이야기를 해설사 선생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꿋꿋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아마 평생을 그 날의 기억을 곱씹으며 몇번이고 다시 말하고 떠올리고 정리했던 이야기였겠죠.
그저 몇 줄의 글로 옮기는 저도 몸에 소름이 돋을만큼 강렬한데...
그 고통을 반복하면서도 아이들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건 진실을 기억하길 바라는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아이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으며 이따금 탄식하기도 했는데요.
글이나 전시물로 읽어내는 그 날의 이야기보다 광주에서 직접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중했던 전일빌딩245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드디어 모둠별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고양, 자유, 학교, 꿈터 총 4개 모둠으로 나눠져서 들살이 전부터 많은 준비작업을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첫째 날 모둠활동 코스 짜기!!
직접 책과 인터넷을 뒤지며 518민주화운동 사적지를 찾고 코스를 짜며 활동을 준비했는데요.
고양, 자유, 꿈터 모둠은 상무지구 일대에서 비슷한 코스로 움직였고 학교 모둠은 금남로와 북구 일대를 누비며 가장 많은 코스를 돌아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왔는지 사진으로 살펴보시죠~
<힘찬과 함께한 고양 모둠>
*505보안부대 옛터 : 오월 당시 계엄군의 실질적 지휘부대 역할을 했던 505보안부대가 있던 곳으로 시민군을 체포해 지하에 감금하고 고문수사가 이루어졌던 곳.
역사적 장소를 현재 518역사공원으로 조성해서 젊은 세대에게 역사를 알리고 시민들 모두가 가깝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냄.
<연두와 함께한 자유모둠>
*상무대 옛터 : 오월 당시 시민군을 체포하고 재판했던 상무대 군사법정과 영창 등이 있던 곳으로 당시 건물을 활용해 군사재판과 수사가 이루어졌던 진실을 알리는 역사교육을 진행하고 518자유공원으로 새롭게 조성하였음.
*국군광주병원 터 : 오월 당시 상무대로 연행되었던 시민군 중 부상자들을 치료, 감시, 심문을 동시에 하던 곳으로 현재 사적지 보존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며 주변 부지에 국립트라우마센터(국가폭력 치유센터, 둘째 날 꿈터가 함께 방문한 곳으로 향후 이전 예정) 건설 중임.
<딸기와 함께한 꿈터 모둠>
<하루와 함께한 학교 모둠>
첫째 날부터 아이들이 4시간 넘게 짐을 메고 다니느라 많이 힘들어했는데 그래도 열심히 보고 서로를 챙기며 무사히 마무리한 시간이었습니다.
낮에 헤어졌는데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고 꿈터가 다시 모일 수 있었습니다.
저와 딸기가 장을 보러 나간 사이 아이들은 씻고 캠핑장 마당에 모였는데요.
모둠별로 어디를 다녀왔는지 짧게 소개해주고 바빴던 첫째 날을 마무리하며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닫기까지 마치고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각자 방에서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ㅎㅎ
이렇게 쉼없이 움직였던 바쁘고 또 바빴던 첫 날 저녁이 저물어갔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모여서 광주까지 한참 버스를 타고 달리고, 광주에서도 국립518민주묘지, 옛 전남도청, 전일빌딩245, 한참을 돌아다닌 모둠활동까지.
들살이 첫째 날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아이들은 1일차부터 근육통을 얻었으나.... 그래도 그만큼 많은 걸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둘째 날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이렇게 길게 열심히 썼는데 이제 첫째 날이라니....ㅎ)
둘째 날은 꿈터 모두가 함께 오월어머니집과 광주트라우마센터를 방문한 날이자 달밤의 공동체놀이를 즐긴 날이기도 합니다.
울고 웃었던 둘째 날의 이야기도 조만간 가져오겠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교과통합, 학년통합으로
더 진해지고 돈독해지는 아이들의 관계와 배움.
교사로는 동지들과 함께 하자! 가자! 했던 것이 실현되는 그 기쁨.
아이들도 교사들도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
쌤들의 함께 하자! 가자!
넘 멋지네요♡
함께 했던 일정을 마무리하고 8학년 아이들과 해남으로 떠나던 새벽에, 하루만 더 함께 다니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었어요. 통합 들살이는 이틀이었지만 1학기부터 이어졌던 배움의 시간, 함께 선물을 준비하고 5.18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광주 거리를 걸어다니며 배움의 현장을 확인했던 순간들, 돌아와서 들살이를 돌아보며 활동을 마무리하던 날, 모두 기억에 남아요. 광주에서 만난 해설사 선생님들의 떨리는 목소리도 생생하게 남아있고. 아이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추모의 걸음을 옮기 때에 제 몸이 떨리기도 했고. 선우와 하진이가 대표로 분향을 하던 모습. 행방불명자 묘역과 윤상원, 박기순 열사의 묘역 앞에서 영혼결혼식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의 모습. 아이들에게 깊은 배움으로 오래 남기를 바래봅니다. 기획하는 단계부터 들살이를 기록하는 것까지 특별히 고생 많았던 연두께 정말 감사드려요. 함께 준비한 딸기, 힘찬 고마워요. 최대한 많은 곳을 밟아보려고 열심히 걸어준 학교모둠 친구들, 모든 꿈터 친구들 고마워요. 다음 글에 올라올 두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광주의 딸 연두의 글로 읽으니 함께 다닌듯 마음의 동요가 더 이는것 같아요~^^
하지않았던것애 대한 두려움이었을지… 꿈터 모두 다 같이 가는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었다고 들었는데… 다녀와서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데요…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책에서 글로 샘들의 이야기로 듣고 또 직접 가서 느끼기까지…
샘들 덕분에 아이들이 많은걸 얻고 생각했을꺼 같아요~ 감사감사
글로만 보아도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아이들에게 귀한 시간이었겠네요.
긴 여운을 간직하기 위해 이제 정독하며 읽었지만, 여전히,...가슴이 설레기도 하고...그때의 아픔과 기억을 공유할수 있는것으로도 감사햇던 들살이 였습니다.
말로만, 기사로만, 책으로만 접했던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발로 밟으며...그 숨결과 손길을 걷었던 시간들을 잊지 않겟습니다.
아이들 가슴에도 아주 작은 씨앗이 되어 순결하고 고결했던 시간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연두감사해요..함께 간 꿈터 쌤들, 꿈터 아이들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