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육군소장
[장태완씨] "선후배가 이렇게 만나다니…" 위로의 말
# 부친사망-아들자살 대목선 울먹이기도 #
[장태완전 수경사령관은 4일 열린 12.12와 5.18사건 1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 특유의 탁
음 섞인 목소리로 바로 뒤 피고인석에 앉은 당 시 신군부 인사들을 공격했다.
장씨는 특히 쿠데타의 와중에서 반대편에 선 군인으로서의 「고뇌」 를 털어놓기도 했고, 진
압에 실패한 뒤 부친이 사망하고 아들이 자살했다 는 대목에서는 울먹이기도 했다.
장씨는 이날 공판에서 경복궁에 포격명령을 내렸으나 포병단장이 거부했느냐는 김상희 부장
검사의 신문에 크고 빠른 목소리로 『육군 지휘 체계에서 상관명령에 어떻게 버르장머리 없
이 거부합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죠』라고 대답, 조용하던 방청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장씨는 육본측과 신군부측 누가 반란군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신문에 신군부가 반란군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댔다. 장씨는 『사전에 모의를해 서 대통령의 재가 없이 참모총장을 연행했
고, 지휘관들이 비상발령이 내 려진 상황에서 위수지역을 이탈했으며, 대통령을 강제 연금했
으니 이게 반란이 아니고 뭡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이다 재판장으로부터 주의를 받기 도 했
다.
이어 김 검사가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병력을 지휘하는 바람에 대 통령이 2명 탄생했다는
말이 있는데, 맨정신으로 지휘했습니까』고 짖궂게 묻자 장씨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5.16을 영관때 맞아 양쪽의 영욕이 갈라지는 것을 지켜봤는데 전 들 죽음이 두렵지 않겠습
니까. 당시 저는 수경사령관의 책임이 목숨보 다 무거웠습니다. 생명을 걸고 책임을 수행하
는데 미치지 않고서는 전 쟁을 하지 못합니다. 반란군이 볼 때 너무하니까 미쳤다고 한 것이
지 저 는 냉철했습니다.』.
방청석도 미칠 수밖에 없었다는 말에 약간의 웃음소리가 새나왔을 뿐 조용해졌다.
장씨는 신문 말미에 김 검사가 『80년 2월 석방된 뒤 울분의 세월을 보내다가 부친이 사망하
고 아들이 자살하는 등 불행한 일을 당했죠』라고 묻자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그런 일이 있었죠』라 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김 검사는 「12.12사건에 대한
평가」를 주문 했다. 장씨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이나 말을 잊지 않았다. 어깨가 들썩 였다.
잠시 후 그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제가 신장이 안좋습니다. 미안 합니다』라는 말로 답변
을 대신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바로 뒤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전두환 노태우 씨등 에게 16년만에 처음으
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함께 30년간 군복을 입고 생활한 선후배 사이인데 이렇게 법정에 피고인과 증인으로 서게
돼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위로의 말 한마디하 지 못해 죄송합니다.』 장씨의 증언이계속되
는 동안 법대 위쪽만 응시하던 전씨와 노씨 등 피고인들도 이 대목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
다.]
*장태완 장군!
그는 12.12 군사반란 당시 진압군측의 대표적인 지휘관이었다.
그러기에 12.12 군사반란자들의 산물이었던 5.6共시절은 그에게는 암흑기와도 같은 시절이었
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오직 그날의 일들을 역사앞에 증언하기 위하여 사내대장부로서 참아 죽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니 그 누가 그의 고통을 알겠는가?
더욱이 그는 12.12 로 말미암아 자신의 평생과업이던 군복을 불명예스럽게 벗어야 했고 더
큰 시련을 당시 서울대를 다니고 있던 자신의 아들이 역적의 자식으로 낙인 찍히는 고통끝
에 자살하고 부친은 장장군의 반란군에 의한 체포소식에 화병으로 숨을 거두었는 일이다.
이런 개인적인 아픔이 있기에 위의 한 신문 기사처럼 한때 군을 호령하던 2성장군도 눈시울
을 붉힐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는 12.12 당시 가장 소신을 가지고 진압작전에 임하였던 인물이었고 남들은 다 양측의 추
이를 보아 가면서 자신의 몸을 보존하는 데에 급급하였지만 투철한 군인정신과 사명감으로
끝까지 자신이 맡은 임무에 충실하였고 그러려고 노력하였다.
반란이 성공이 거의 확실시 되자 모두들 자신의 안위만 보존하면 된다는 식의 체념을 했지
만 마지막 남은 자신의 지휘하 수도경비사령부 병력100여명을 이끌고 목숨을 건 최후 진압작
전을 감행하려 했던 그의 모습은 분명 자신의 안위보다는 국가의 헌정을 지키려는 참군인의
본연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지난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직업,가족,명예도 모두 잃어버린 역적
의 인물로서 낙인찍혔던 그에게 오늘날의 12.12군사반란의 역사적 심판은 과연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
개인적으로 깊이 머리 숙여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와 위로할 따름이다.
출처/이행호의 12.12군사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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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공화국 인물시리즈 2 장태완소장
가가멜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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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15 00:2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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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노재현같은 자가 국방장관을 해서 그지경이 된겁니다.사태 파악도 못한놈이 정총장의 고견이나 무시하고 요런 느자구 없는자가 역사를 뒤로가게 한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