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한 이별식 / 유안진
가벼운 발길로 몇 걸음 옮기다가 돌아서더니
나른한 음성으로 한다는 말이
다달이 한두 번씩은 어렵겠지만
라디오 FM에서 가끔은 맘에 드는 음악을 들어보게 되듯이
마음 내킬 때는 서로가 마땅한 때를 골라
바람도 쐬듯 그렇게 바람소리 같더라도
사소한 소식이라도
아름 아름으로라도 건네 주고 건네 받자고
자질구레한 부탁이라고 윙크까지 곁들이고는
차에 올라타더니 다시 내다보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고쳐서는 혹시
타다 남은 심지에
파란 불꽃 다시 켜질지 모르지 않느냔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궂은비만 내리는 하늘에다 무슨 고함이라도 내지르고 싶었다.
이별의 목록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였다. "포스트모던한 이별"이라는 항목을
추가하였다. 포스트모던한 이별이 있다면 모던한 이별도 있을 것이므로 두 개의
항목을 새로 추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제목은 "포스트모던한 이별식"이지만 "포스트모던한 이별"과 "모던한 이별", 두
가지 이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끝 행〔둘째 연〕이 모던한 이별에 관한 것이
고, 나머지 첫째 연 전부가 포스트모던한 이별에 관한 것이다.
모던한 이별은 "헤어지는 것은 헤어지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이별이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을 절대적인 이별이다. 비장한 이별이다. "하늘에" "무슨 고함이
라도" "지르고 싶"은 이별이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궂은비만 내"린다고 한 것은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고 한 것이다.
포스트모던한 이별은 헤어지는 것이 헤어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인식하는
이별이다. 다시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별이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경
우의 비장한 이별이 아니다. "타다 남은 심지에/파란 불꽃 다시 켜질지 모르지
않느냐"고 말하는 이별이다.
구체적으로 밝히면, 시적 주체의 이별이 모던한 이별이다. 이 세상에 단 한 번
밖에 없는 이별이다. 무거운 이별이다. 시적 주체를 떠나는 자의 이별이 포스트
모던한 이별이다. 그의 이별은 "차에 올라타"는 이별이다. 그러므로 차를 타고
다시 올 수도 있는 이별이다. 이 세상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이별이 아니다. 이별
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
─박 찬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