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우배창언'이란 말이 있습니다.
禹拜昌言
중국 하나라의 우(禹)왕은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며 받아들였다는 말입니다. 중국 최초의 역사서
로서 3경의 하나인<서경(書經)>의 '대우모(大禹謀)' 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싱그러운 5월!
벌써 칙칙하던 나무들 빛깔도 연두빛 새싹으로 서둘러 단장을 마치고
이 오월의 하늘 가득한 햇빛을 받아들이느라 모두 함성을 지를 듯해 보이는 계절입니다.
좋은 계절에 좋은 말 한 마디가 없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지난 번 강의를 준비하며 읽던 유중교 선생의 <성재집>에서 마음에 드는 좋은 말이
하나 머리에 떠오릅니다.
사실 책을 읽다가도 문득 어느 대목에서는 아!~, 이분이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색다른 감동으로 유달리 눈에 띄는 말을 발견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요.
<성재집>은 처음 출간은 친족인 손아래 항와 유중악이라는 제자가 일일이 편집한 <연보>를
붙여서 만든 스승의 문집이기도 하였답니다. 그 연보를 보면 일단 꼼꼼하지만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편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 제자 가운데서도
그만큼 성재선생의 미더움을 주고받았기 때문이겠지요. 나중에 습재 이소응 선생이
만주땅에서 두번 째 간행을 하기도 하지만, 이 판은 일단 연활자를 쓴 편집으로 첫 판보다는
예스런 느낌이 덜하지요.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첫 판을 기준으로 삼았지요.
그 15권의 <왕복잡고>라는 편지글들 중에 제자인 항와선생한테 보낸 편지들이 들어 있습니다.
항와선생은 중암 김평묵 선생한테 47통, 성재선생한테 49통이나 되는 편지를 보낸 것이
<항와집>에 실려 있지요.
성재선생이 가정서사에서 1884년 5월에 항와선생한테 보낸 <백현에게[與伯賢]>란 편지입니다.
백현(伯賢)은 항와의 자입니다. 당시 항와는 선생보다 늦게 가평의 옥계를 떠나 예전에 살던
방호(芳湖:방하리,남이섬)에 가 있었고, 마침 4월에는 유배간 중암선생을 뵈러 전라도 지도로
먼길을 떠나 있었습니다. 항와의 연보에는 돌아온 때가 자세히 안 나오지만 다녀오며 남긴
시들 가운데 <환가(還家)>란 시의 첫구가 "운맥이가타맥환(耘麥離家打麥還:보리김매기할 때
집을 떠나 보리타작할 때 돌아왔네)"라 하였으니 아마 이 편지는 6월초에나 읽게 되었을
겁니다. 보리타작은 '보리망종'이란 말처럼 6월초부터 장마전인 7월초면 끝나니까요.
이 편지는 성재선생이 가정리에서 항와를 필요로 하니 와서 공부 좀 더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을 하려고 쓰신 글로, 그 뒤끝에 성재선생이 봐두었던 좋은 말을 하나 소개하면서
몇 마디 덧붙이는 말을 더 적어서 보낸 것이지요.
지금 소개하려는 말도 이 뒷부분입니다.
고전번역원의 표점된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소개합니다.
"'두루 모든 유학자들이 도에 깊이 나아가기를 감히 바랄 수는 없어도, 단지 보존하는 것이 바르고, 선악을 분별하고 염치를 아는 이러한 사람들이 많으면 또한 반드시 점점 좋아질 것이다.'
○ 이는 이천(伊川) 선생의 말인데, 말뜻이 극히 좋으니 아침저녁으로 읽으면 또 다른 맛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뜻을 같이 하는 여러 군자들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또한 이와 같다. 대개 본령이 바르고 향배가 밝으며, 붙잡아 실천하는 것이 깨끗하면 이것이 바로 유학자이고 세속의 흐름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며, 바로 군자이고 소인이 아니다. 사람 노릇을 하여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조금 쉴 자리가 된다. 이로부터 구불구불 위를 향해 나아가면 그 이르는 곳의 얕고 깊음은 사람의 재주의 높고 낮음에 따르지만 저절로 이르는 곳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진실로 감히 스스로 선을 그을 수도 없으며, 또한 감히 기필(期必)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세상은 어지럽고 도는 어두우며 사람의 마음은 편벽되고 어긋나는 이러한 때를 당해서는 단지 이 세 가지 말을 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백 배로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이에 반대되는 구덩이로 떨어져서 성현들에게 버림받는 사람이 되기 쉬우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러분께서는 마땅히 저마다 벽에 써두고 바라보며 반성함이 마땅하다.[大凡儒者未敢望深造於道。且只得所存正。分別善惡識廉恥。如此等人多。亦須漸好。○ 此伊川先生語。語意極好。朝夕諷誦而有餘味。今日所望於同志諸君子者。正亦如此。盖本領正。向背明。操履潔。卽是儒者。不是流俗。卽是君子。不是小人。做人到此。方是少歇處。自此邐迤向上去。其所造之淺深。隨其人才智高下。自有所至。固不敢自畫。亦不敢取必也。然當此世亂道晦。人心僻違之日。只此三言。其做得到。亦自未易。非百倍露精神。容易墜墮於反此之科。而爲聖賢之所棄矣。可不懼哉。諸君宜各書壁而觀省焉。]"
성재선생이 정이(程이:이천선생)의 문집을 보다가 이 말을 보고 항와한테 전해주며 벽에 써서 두고
두고 곱씹어 생각해보라고 한 것이지요. 어떤가요?
'심조(深造:깊이 들어감)'란 말을 썼네요! <맹자> 이루 하편에 나오는 말이지요. 깊이 들어감은 자득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지요. 자득함이 있어야 스스로 즐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유학자는 아니지만, '심조'의 지혜는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혜로운 시민들이 모여 우리 지역의 역사문화를 생각하는 춘천역사문화연구회에 대해서도
성재선생의 이 말씀은 여전히 유익한 교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댓글 세속의 흐름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며 바로 군자이고 소인이 아니다. 사람 노릇을 하여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쉴자리가 된다. 참 좋은 말인데 지금의 세상에선 지켜나가기 어려운 일이네요..
늙어서 후회하지 않을 행위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죽어도 죽지 못 하고 죽음조차 추도 되지 못하는 이건희 회장의 삶을 보면 사람이 따라야 할길이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