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겠지만, 만화대국인 일본에서는 여러 장르의 만화가 있다. 청춘연애물, 학원물, 스포츠, 추리, 공포, 성인물 등등.. 온갖 종류의 주제를 다룬 만화들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 고정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장르가 격투물이다. 이런 격투장르에는 스포츠 격투나 학원격투, 아니면 단순폭력물로 나눌 수 있다.
일본 이라는 나라자체가 근대까지 무술을 숭앙하던 나라인데다 세계적으로 일본 만큼 무술이 대중적으로 존중받고 인기있는 곳도 드물어서, 만화에서까지 즐겨 다루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고 많은 인기를 얻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만화잡지간에 인기경쟁이 치열한 일본 만화시장에서 확실하게 독자에게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연애물과 스포츠 격투물을 그리는 작가들이 많다. 그리고 많은 작가들이 그것을 좋아하든 안하든 만화에서 치고받는 격투장면을 그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만화가라면 누구나 치고받는 격투묘사에 대해 어느 정도 연구를 한다.
격투기 전문 만화가 아니더라도 격투가 큰 비중을 차지한 만화중에 우리나라에서도 대 히트를 기록한 드래곤볼이나 북두의 권, 로꾸데나시 블루스, 시티헌터, 베르세르크, 크라잉 프리맨 등을 보면 만화에서 격투란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알 수 있다.
일본문화에서 특징적인 한 부분이 매니아 문화인데, 작가들은 이런 매니아들을 만족시킬 만한 전문성과 대중적인 재미 두가지를 쫓아야 하는 고충이 따른다.
수십년 동안 만화대국에서 살아가면서 수십억권의 만화를 보고 자라나는 일본인들의 만화를 보는 눈은 까다롭다. 그래서 작가들은 자신들의 취미나 관심사를 살려 자신있는 분야의 만화에 승부를 거는 경향이 짙은데, 여기에 독자성과 전문성, 재미까지 갖추면 소위 말해서 대박이 터진다.
고등학교 농구부를 몇배나 불리고 우리나라에 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친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슬램덩크같은 만화처럼 말이다. 이노우에가 이전에 일본만화에서 그다지 다루지 않았던 농구만화를 전문적으로, 독자적으로 그려낸 최초의 작가라면, 격투물은 이전부터 오랜 역사와 독자층을 가진 만큼 전문 격투 만화가가 많이 있고, 지금도 끊임없이 신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즉 격투라는 것은 일본 만화계에 있어서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금맥과도 같은 것이다.
왼쪽 이타가키 케이슈케의 '격투맨 바키' 오른쪽 사루와타리 테쯔야의 '고교철권전 터프'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격투맨 바키'와 '고교철권전 터프' 는 오로지 격투만을 전문으로 다룬 만화 가운데 필자가 매니아와 일반 대중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내용의 질과 재미의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단연 최고봉이라 생각하는 만화들이다.
이 작품들은 격투만을 전문으로 그려내는 '이타기키 케이슈케'와 '사루와타리 테츠야'가 십년간 연재하고 있는 필생의 역작이며, 아직도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격투만화를 그리며 히트작을 내는 작가들은 많다. 그리고 이들 외에도 격투만화만을 전문으로 그리는 작가들도 많지만, 이 두 작품과 이 작품들을 그려낸 작가들에 관해 말하자면, 만화도 작가도 완전히 격투에 미쳤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 말고도 격투와 싸움에 몰입하고 집착하는 작가도 많지만, 이들만큼 재능있는 작가도 드문데다 이들만큼 격투를 완전히 파악하고 격투에 관한 자기철학도 뚜렷한데다 재미있고 독자적으로 그려내는 작가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들만큼 격투를 제대로 표현해낼 작가가 전무하다는 표현이 너무 경솔하다 싶기는 하다. '유도부'나 '산시로' '다덤벼'와 같은 만화를 그려낸 고바야시 마코토나 '겐지'의 후지와라 요시히데 같은 작가의 격투묘사의 필력은 이 두작가들에 못지 않은 카리스마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지와라 요시히데나 마코토 고바야시 같은 작가는 격투를 좋아하고 그것을 표현하는데 재능이 있긴 하지만, 이들에게서 격투와 무술에 관한 독자적인 식견이나 지식, 철학 같은 것은 발견하기 어렵다.
격투를 재미있고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으로 묘사하긴 하지만, 완전히 작가와 격투가 하나로 똘똘 뭉쳐져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
물론 이것은 필자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인데..
개인적인 얘기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가 되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만화와 그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이 두 작가 못지 않게 격투에 미쳐(물론 행동보다 머리속에서 더 미쳐있는 경향도 거의 비슷하다) 있어서, 어쩌면 이런 작가들을 가장 잘 이해해줄 타입이 필자 같은 타입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사루와타리 테츠야 vs 이타가키 케이슈케
사루와타리 테츠야
'고교철권전 터프'의 작가 사루와타리 테츠야는 워낙 히트작이 많은 작가인데다 작품도 해적판으로 드래곤볼, 북두의권과 비슷한 시기에 들어올 만큼 오래된 터라 그의 만화에 대한 첫 느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십 삼년전에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리키오(力王)' 가 내가 본 사루와타리의 첫 만화일 것이다.
그때 오백원짜리 해적판으로 나온 리키오의 제목이 '번개' 였는데 그 만화를 처음 본 순간부터 완전히 충격속에 빠져 들었던 기억이 남는다. 대패로 얼굴을 밀고 눈에 못이 박히고 자기 창자를 끄집어 내서 상대의 목을 조르는 둥의 잔인한 폭력묘사도 충격이었지만, 그 폭력과 싸움, 격투에 대한 치밀하고 집요한 묘사와 작품 전체에 흐르는 어둡고도 냉혹한 폭력성에 어린나이에 소름끼치도록 전율했었다. 그때까지는 그런 만화를 본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당시 함께 보던 드래곤볼과 북두신권을 밤새워 보며 날마다 쇼크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사루와타리의 데뷔작 '바다의 전사'
1958년 6월 25일 생인 사루와타리 테츠야는 고교중퇴후 무작정 상경한후 스무살 때부터 만화를 그린 작가이다. 만화가로서 재능과 실력이 특출난 탓에 소울, 독솔져, 더 하드, 리키오등이 대히트를 하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 데뷔작은 '바다의 전사'였는데 히트작을 보면 알다시피 처음부터 그가 전문 격투만화를 그린건 아니었고 총,칼등의 무기가 난무하는 권선징악적인 주제에다 다소 SF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그의 주 관심사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잔인무도한 폭력과 싸움을 얼마나 재미있게 표현해 낼 것인가였다. 그런 만화를 오랜세월 그려 오다가 본격적으로 정통 격투만화에 뛰어든 것이 93년 영점프에 연재하기 시작한 '고교철권전 터프'였다.
필자가 왜 '고교철권전 터프'를 정통 격투만화라 했냐면, 캐릭터나 등장인물부터 이야기 전개가 정통 격투만화의 전형적인 플롯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우선 주인공은 혈기왕성하고 정의감 넘치는 고교생인데다 선대부터 내려오는 가문의 비기인 무술을 수련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어떤 목표를 두고 강해지겠다는 신념아래, 라이벌들을 이기고 또 그들과 친해지도 하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라이벌과 싸우며 더욱더 강해진다는 이야기 구조이다. 사루와타리는 이런 정통격투만화의 플롯을 따라가면서 수십년간 그려오면서 묵혀온 자신만의 격투와 폭력의 모든 것을 풀어낸다.
정식 한국어판 만화의 뒷면에 보면 유명 이종격투가와 저자와의 인터뷰를 볼 수 있는데 이 만화를 좀더 리얼하게 그려내기 위해 많은 격투가를 만나고 한달에 두 번은 꼭 경기장을 찾아 직접 시합을 관전하는 열의를 보인다고 한다. 그런 노력의 보답인 듯 고교철권전 터프는 격투만화로써의 모든 것을 다 갖춘 교과서적인 격투만화라 할 만하다. 실제로 한국만화가중에서도 상당수가 이 만화에서 격투신이나 캐릭터를 모방하고 있기도 하다.
처음부터 가라데, 무에타이, 유도, 유술, 프로레슬링, 이종격투기등 현존하는 유명 프로격투기를 대변하는 독특한 캐릭터의 라이벌을 등장시켜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종합격투 기술'인 나다신영류의 계승자인 키보와 흥미진진한 대결을 벌이게 한다.
장면 하나 하나를 보면 얼마나 정열적이고 탐구하는 자세로 격투씬 장면을 메꾸어 나가는지 저자의 노력이 눈에 보일 듯 하다.
특히 이종격투계와 서브미션(Submission)에 대한 묘사는 이타가키보다 한수 위인 듯 판크라스, 슈토,프라이드,UFC, K-1을 망라하여 직접 취재하거나 친분이 있는 듯한 아사히 노보루,엔센 이노우에, 안토니오 이노키,호이스, 힉슨,마크 케어,피터 아츠등을 모델로 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격투를 벌이는데 그 치밀함과 마치 교본을 작성하는 듯이 파고드는 자세는 만화와 격투를 알고 있는 자라면 누구나 혀를 내두를 정도다.
특히 굳히기 공방전에 대한 묘사를 보면 골수 이종격투팬이 아니라면 제대로 그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할 만큼 깊이있고 (필자도 이종격투를 접하기 전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정교하여 아마도 전세계 만화가중에 그 만큼 열의와 정성을 가지고 서브미션 파이팅을 묘사하는 작가도 없으리라 생각하게 한다.
한마디로 그는 만화가로서 중국무술을 제외한(별로 관심이 없는 듯) 전세계 대부분의 유파의 무술과 격투의 모든 것 을 그림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이다.
반면, 이타가키 케이슈케는 사루와타리와 비슷한 연배로, 1957년 훗카이도에서 태어나 자란후 19세때 자위대로 입대해서 (공수부대 출신이라는 소문도..) 25세에 제대한 후에야 비로소 만화가로 입문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데뷔작은 가부키 배우를 전문으로 화장해 주는 가문의 계승자인 고교생이 화장기술로 의뢰자의 복수를 대신해 준다는 내용인데 국내에서도 해적판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그 만화에서도 간간히 독특하고 인상적인 격투씬을 선보였는데 (그때도 가라데 위주) 이후 1991년 주간 소년 챔피언에 그래플러 바키를 연재하며 대 히트를 치게 된다.
이타가키 케이슈케(우측하단)과 어시스턴트들
필자가 '그래플러 바키'를 처음 본 것은 94년도 어느 만화방이었는데, 당시에는 해적판으로 '격투왕 맹호'라고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제목은 촌스러웠지만 당시 자나깨나 무술에 관한 생각밖에 없어서 '격투'자가 붙어 있으면 무엇이든 눈에 불이 들어왔던터라 얼른 꺼내 들었다. 만화를 워낙 많이 본터라 당시에도 만화 보는 안목을 자부(?)하고 있었는데 표지의 주인공 근육의 묘사를 본 순간 이건 좀 뭔가 다르다는 감이 왔다.
보통 격투만화와는 캐릭터의 근육의 묘사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캐릭터의 근육의 선이 매직으로 그린 듯 명확했고, 마치 지방을 태울데로 태운 복서의 근육처럼 갈라진 근육에다 상대의 복부를 펀치로 히트하는 장면인 듯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뒤틀린 자세와 역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블락을 위해 오른뺨에 갖다댄 주먹. 거기다 제 2의 타격을 위해 약간 꺾어진 손목과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가운데 부분을 펼쳐 몇장면을 보았는데 극중 심신회의 관장인 우일석( 오롯치 돗포)가 돌려차기를 하는 장면에서 번개를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 이것이야 말로 진짜구나 '하는 느낌 이랄까.. 좀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그 그림을 보고 받은 충격은 다른 아직까지도 다른 어떤 격투만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어떤 만화에서도 그런 식으로 돌려차기와 펀치를 표현한 작가는 없었다. 천재적인 예술가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랄지..인물간의 비례도 맞지 않았고 구성도 지저분했지만, 그 그림에서 이타가키의 마치 '볼테면 봐라. 나만큼 격투를 그릴 수 있는 자는 없다!' 라는 오만한 자신감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돌려차기 할 때의 최대한 반동을 주기 위해 꺾여진 허리와 등의 묘사, 이것이야 말로 격투의 미학이라고 말하는 듯 살짝 들려진 왼발과 젖혀진 오른손 손가락..타격당하는 자의 얼굴 근육과 안구의 떨림과 무너지는 자세는, 도저히 격투에 미쳐서 자나깨나 그 생각만 하고 실제로 연습까지 하지 않고서는 그려낼 수 없는 경지였다. 적어도 그 만화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은 이타가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약간 들뜨고 과장된 전개였지만 나름대로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는데다, 무엇보다 내용이 재미가 있고 흥미진진했다. 필자는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게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라 보는데 이타가키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캐릭터 묘사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다른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로는 재미나 몰입도 면에서는 이타가키가 사루와타리를 압도한다고 느끼며 실제로도 두 만화가 있으면 이타가키의 만화부터 급히 보고 천천히 사루와타리의 만화를 보는 편이다.
격투맨 바키 와 고교철권전 터프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
만화의 내용으로 들어가 바키와 터프를 살펴보면 두 만화사이에 매우 많은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작가를 놓고 볼 때도 격투를 전문으로 그려온 두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며 나이도 57년 58년 생으로 비슷하다.
거기다 주인공을 보면, 격투맨 바키의 한마 바키와 고교철권전터프의 미야자와 키이치의 키가 최강의 격투가를 꿈꾸기에는 매우 왜소하다 (바키는 167센티, 키이치도 비슷하다). 이타가키 케이슈케의 또다른 격투만화 아랑전의 주인공이나 사루와타리의 여타 만화의 주인공들의 체격보다는 한참이나 작은 체격이다.
특이한 점은 처음부터 바키와 키보가 작은 게 아니라 비교적 보통 체격이었다가 권 수가 늘어 갈수록 점점 더 작아 져서 일류 실력을 갖춘 거구의 캐릭터와 싸울 때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져 보일 정도라는 것이다.
이타가키 그림에선 특유의 다이내믹하고 탁월한 속도감의 묘사로 그나마 바키의 왜소함이 커버가 되지만, 사루와타리의 정적인 액션 묘사에서는 키보의 체격이 좀더 컸으면 박력이 더 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나마 웃통을 벗고 근육을 들어내면 나은데 중국식의 옷을 입었을 때는 너무 야위어 보여 극중 최강자중 한명이며 안토니오 이노키를 모델로한 중요한 캐릭터인 아이언 키바와 싸울 때는 그 관절을 꺾을 때의 연약한 손목과 아이언 키바의 통나무 같은 손목과 비교가 되어 설득력과 몰입도가 떨어질 정도였다.
바키와 키보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외아들 인데다 어머니가 없고, 지독하게 파더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두 만화 사이의 중요한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또한 내용면에서는 완전히 극과 극을 달린다.
키보의 어머니는 그저 병으로 자연사 한 듯 하지만, 바키의 어머니는 아버지인 한마 유지로가 직접 척추를 부러뜨려 죽인다. 키보는 엄격하지만 자상하고 아들을 위해 희생을 마다않는 아버지의 강함을 동경하며, 그것을 뛰어넘고 나다신영류의 계승자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그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전부라면, 한마 바키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어디까지나 필자의 추측이다) 아버지보다 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키보와 마찬가지지만, 그 목적은 인정보다 어머니를 죽인데다 성격 파탄자인 아버지를 이기고 굴복시키는데 있다. 결과적으로 이 두 만화의 주인공들은 어쨌든 '지상최강'인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아버지보다 강해지기 위해 그 치열하고도 험난한 격투인생을 걷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신기하리만치 똑같은 설정이 하나 더 있는데, 최종 세계최강 격투 토너먼트에서 주인공의 가장 강적이자 라이벌이 자신과 피를 나눈 이복형제(바키),와 사촌 (키보) 이라는 점이다. 덧붙여 직접 몸으로 상대와 싸워 차례로 강적을 물리치며 성장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련하는 주인공에 비해 최대 라이벌들은 약물을 비롯한 인공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수련한 사이보그 적인 캐릭터라는 점이 똑같다.
이 두 만화의 최대 라이벌들은 인간이라 불릴 수 없을 만큼 인간을 뛰어넘는 강한 캐릭터인데 격투맨 바키의 잭 해머는 가공할 어퍼컷과 물어뜯기라는 비장의 기술을, 고교철권전 터프의 가르시아는 스치는 것만으로도 고막이 터지는 펀치와 킥, 본 콘트롤(Bone Control)이라는 황당한 기술을 선보인다.
권 수 40권에다 십년의 연재에 지친 탓인지 두 만화가는 세계최강을 결정하는 절정의 순간에 왠지 호흡을 놔 버린 듯한 느낌이다. 너무 강해져 버린 라이벌을 이기기 위한 설득력있는 전개가 궁색한 탓인지, 격투맨 바키에선 타격전 끝에 그저 기요틴 초크로 형을 기절 시키고 고교철권전 터프에선 굳히기 공방전 끝에 뜬금없이 중국 내가권 무술 비장의 기술이라는 침투경을 연상시키는 요상한 타격으로 형을 죽인다. 드라마틱한 면에선 고교철권전 터프가 더 인상적이지만 둘다 주인공과 라이벌의 대결에서 더 보여줄 것이 없다는 느낌이다.
하다못해 드래곤볼 처럼 초사이언으로 변신이라도 하면 그나마 설득력이 있겠지만 어쨌건 주인공은 승리하고 인기있는 드라마가 툭하면 연장방송하듯 연재를 더 해야 하는 압력탓인지, 아버지는 또 파워업해서 저만큼 멀리 가있다.
그동안 만화를 보아오면서 느꼈던 공통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도합 팔십권이 넘는 만화를 다시 다 볼 수는 없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두 작가에게 안토니오 이노키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점이다.
특히 극진 가라데와 일본 프로레스에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는 이타가키 케이슈케의 만화에서 오야마 마쓰다츠와 안토니오 이노키는 공격적인 두 격투무술의 상징인 듯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이타가키의 만화에서 오야마 마쓰다츠 관장은 애정과 존경의 대상인데 반해 안토니오 이노키에 대해서는 애증이 교차하는 복잡한 느낌이다.
타 유파와 격투가를 상대로 가라데와 프로레슬링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도전의 인생을 산 오야마와 이노키에 대한 이타가키의 동경은 같지만, 그 두 격투가들의 지향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오야마 마쓰다츠 총재에겐 존경을 안토니오 이노키에겐 애증을 함께 느끼는게 아닐까?
늙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대중앞에선 강하고 은근히 이노키의 실력과 쇼맨쉽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지만(실제로는 도저히 그럴 수 없겠지만, 피터 아츠와 다카노 하나를 모델로한 캐릭터를 이기는등) 한편으론 교활하고 음흉하게 그리며 특히 2부에서는 러시아의 사형수 시코르스키로 하여금 이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때려 부수는데 개인적인 감정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이타가키는 시코르시키로 하여금 '더러운 가면을 벗겨주지' 라는 대사와 함께 바벨과 덤벨로 무차별 구타, 게다가 소변까지 누며 이노키를 모델로한 캐릭터를 조롱한다.
반면 사루와타리가 이노키를 바라보는 눈은 애정과 동경뿐이다. 그는 이노키를 투혼 그 자체인 열혈 격투가의 모범으로 그려내고 있다. '고교철권전 터프'에선 더할나위 없이 강하고 냉정하며 죽음을 통해 주인공 키보에게 격투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 친구이자 길잡이 같은 존재다.
'바키'와 '터프'가 격투묘사에 있어서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만화인 만큼 세계 최강을 결정하는 대회에 실존하는 유명격투가들을 모델로한 캐릭터들을 다수 선보인다. 이 들 캐릭터들과 그들의 파이팅을 보면 작가의 격투관이나 생각을 약간은 읽을 수 있는데..특이하게도 두 작가에게 공통적으로 미움받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피터 아츠인데. 이타가키 쪽에게 더 미움을 받는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지하격투장 대회에선 피터의 몸도 근육도 기술도 엉성하게 그려내며 까불다가 안토니오 이노키의 박치기와 스프렉스에 당하는 꼴사나운 장면을 연출시키고, 2부에선 사형수 도일에게 '이해할 수 없군. 너 지금 누구한테 덤비는지 아는거야?' 라는 삼류 대사를 읊게 하다 손도 못 써보고 목이 잘린다.
사루와타리 쪽에선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드래곤볼의 천하제일 무도회에서 더러운 냄새로 크리링을 기절시키던 캐릭터와 유사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피터아츠를 바닥에 내동댕이 친다. 그리고 아츠로 하여금 읊게 하는 대사가 '너무 무서워. 엄마한테 돌아가고 싶어.' 다. 이쯤되면 20세기 최고의 킥복서 라는 사람을 너무 홀대하는게 아닌지 싶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무도가 답지 않은 피터 아츠라는 캐릭터를 좋아하지만 일본인인 이 두 작가에겐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또 하나 그들 작품에 흐르는 특정 유파에 대한 묘사를 보면. (필자가 바키는 전권을 대부분 소장하고 있지만 터프는 몇 권 없으므로, 바키 위주로 설명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앞서 말했듯이 이타가키의 만화에선 가라데, 특히 교쿠신 가라데와 일본 프로레슬링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재미있는 점은 이타가키 케이슈케 스스로 만화가가 되지 않았으면 복서가 되었을지 모른다고 했을 정도로 복싱을 좋아하는 모양인데, 어째 만화에선 찬밥 대접받는 격투에서 태권도와 무에타이와 함께 순위를 달린다.
바키가 유리 차코프스키와 대결에 앞서 샌드백을 팔굽으로 찢은후, 한 면 전체를 할애하며 '복싱은 꺾기, 조르기,관절기와 킥, 무릎, 팔꿈치가 없어 불완전한 격투기이다'라며 몸소 독자에게 저자의 격투관을 주장할 정도다. 거기다 바키의 아버지이자 지상 최강인 한마 유지로로 하여금 한 손으로 일본 복싱 챔프를 가지고 놀다 실신시키고 지하격투장 대회에선 일개 폭주족으로 하여금 마이크 타이슨을 농락 시킨다. 그 외에도 복싱에 대한 찬밥 대접은 곳곳에 드러나 있어 작가가 복서가 되려고 했다는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의 찬밥 무술은 태권도인데, 일본에서 가장 알려진 태권도가 ITF 인 까닭인 듯, 지하격투장 대회에선 한국 해병대 격투교관이 WTF가 아닌 ITF 태권도 도복으로 출전하는 오류를 범한다. '바키'만화 전체에서 태권도는 두 번 정도 출현 하는데 한마 유지로와 한마 바키로 하여금 모두 단발 뒤꿈치 찍기로 초살 시킨다는게 특이하다. 덧붙여 이타가키의 이 뒤꿈치 찍기에 대한 애호는 두드러질 정도라서 만화초반에는 한마 유지로와 바키 부자(父子)가 모두 이 뒤꿈치 찍기를 필살기(?)로 사용할 정도였다. 아마도 당시 故 앤디 훅의 전성기와 맞물려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바키에서 가장 찬밥대우를 받는 격투기는 아마도 무에타이와 무에타이를 하는 태국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무에타이의 최강의 챔피언으로 꼽히는 선수들을 모델로한 캐릭터들이 한마 유지로에게 한 손가락을 킥을 봉쇄당한 끝에 실신당한다든가.. 아니면 종이접히듯이 접히는 둥 하나같이 유치한 설정에서 모욕적으로 당하는게 동일하다. 그러나 만화전체에 숨어있는 무에타이식 기술에 대한 묘사를 보면 무에타이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시하라 신타로같이 골수 우익이라 (자위대 출신이라 하지 않은가) 태국인에 대한 혐오가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편견에 젖은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적이 여러번 있다.
이타가키 만화에서 격투기에 대한 애호와 폄하가 뚜렷한데 비해, 사루와타리는 모든 무술을 애정과 연구의 자세로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그가 다루는 모든 무술을 꼼꼼히 연구하고 호기심과 애정을 가지고 묘사하려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무술자체에 대한 주제넘는 평가나 폄하는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이타가키 케이슈케와 사루와타리 테츠야의 만화에서 보여지는 또 하나의 동일한 격투관은 중국무술에 대한 무지와 신비화이다. 세계의 유명 무술을 알고 그것들 대부분을 나름대로 적절하게 표현하지만 중국무술에 대해선 완전한 무지를 드러낸다. 그들이 중국무술에 대해 무지한 건지 아니면 그저 무관심 한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만화적인 재미를 위해 중국무술의 비밀주의와 신비주의를 빌려와 유용하게 써먹는 것은 동일하다.
사루와타리 테츠야의 경우를 보면 주인공의 격투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비 현실적인 필살기의 대부분은 중국무술의 신비한 비기에서 빌려온 것이다.
'리키오'에서 주인공 리키오에게 사자도 때려 눕히는 일격 필살의 권을 사사한 것도 화교의 중국인이고, '고교철권전 터프'에서 작가 스스로 완전한 격투기술의 총체라고 표현한 나다신영류도 그 뿌리를 중국무술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 묘사를 보면 중국무술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사루와타리 같이 격투기에 대한 연구와 열정이 대단한 작가가 중국무술에 대해 그런식으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 놀랍다. 사루와타리의 중국무술에 대한 묘사를 보면 그저 중학생이 이소룡 영화를 보고 '와~'하는 느낌으로 그저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리키오'나 '터프'에서 묘사된 기술은 중국무술에 존재하지도 않고 전혀 비슷하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터프'에서 유독 격투기술에 대한 묘사중 중국무술적인 비기 부분을 보면 캐릭터의 움직임이 살아있지 못하고 붕 떠있는 느낌이라 아쉽다.
사견이지만 역시 중국무술의 묘사는 후지와라 요시히데가 세계최고가 아닐까 싶다. 이런 모습은 이타가키도 마찬가지 인데, 지하격투장의 중요한 캐릭터인 레츠의 무술을 보면 확실히 이타가키가 그린 만큼 묘사에 있어서 캐릭터와 기술이 '찰싹' 달라붙어 있고 재미는 있는데 역시 가라데를 묘사하는 것만큼의 깊이와 박력이 없다. 레츠라는 중국무술의 달인이란 캐릭터는 마음에 드는데 사용하는 기술이란 '쿵후소년 용소야' 그 이상도 아니다. 특히 지하격투장 대회에서 올렉 탁타로프를 모델로한 삼보선수를 상대로 '전연화'인가 하는 기술을 묘사할 때 실소가 나올만큼 유치했다. 작가도 좀 쑥스러웠는지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그 기술을 볼 수 없었다.
이타가키와 사루와타리가 말하고자 하는 격투란?
원래 글재주가 없는데다 감상문이란 것에 알레르기 증상이 있는데다가, 명작중에 명작인 '바키'와 '터프'의 감상문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그저 잡담을 늘어 놓는데 지나지 않은 것 같다.
끝으로 이 두 만화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개인감상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그런데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작가들이 딱히 무언가를 무겁고 진지하게 말하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서 자기가 그동안 생각하고 느껴왔던 격투기를 미치도록 즐겁게 쓱쓱 그려냈을 뿐이 아닐까?
그래도 굳이 이 두 작가의 격투관을 엿 보려고 한다면, 그 힌트가 눈길에 점점이 찍힌 강아지 발자국처럼 만화속에 남겨져 있다.
그걸 한 장면으로 묘사한다면 이런게 아닐까?
보라. 이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격투와 폭력의 아름다움을..
바키 2부 를 보던 중 특히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평생 격투만화에 미쳐 살아온 사십대 중반의 중견작가 이타가키 케이슈케의 마음이 저리도록 아프게 전해져 오는 느낌을 받았다.
두드려 맞는 자의(안토니오 이노키) 펼쳐진 두손 (다른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맞 닿은 무릎과 지면에 놓여진 발과 발..휘두르는 주먹의 동선, 들려진 턱과 오만하게 내려깐 눈빛.. 마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면 너무 오바하는 것일지.
그림자체만을 놓고 볼 때 때리는 자도 맞는 자도 비현실적이지만 거기엔 뭔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이타기키식 격투의 미학이 모두 들어있다. 그것은 만화속에서 격투 장면을 목격한 경관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다.
"남자로서 싸움을 잘 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치고 받는 격투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그 싸움을 보고 알았습니다." (하나야마 카오루와 스펙과의 대결 편에서- 참고로 이 대결은 소름끼치도록 멋지다)
이것은 사루와타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격투의 아름다움을 너무나 그리고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다.
거기다 '격투맨 바키' 2부에선 이타가키는 갈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폭력속에 서 길길이 날뛴다. 몇몇 장면은 이런건 애들이 보면 안될텐데 느낄 정도로 지독히도 잔인하고 비 건전하다. 그래도 보는 나 스스로는 너무 즐거운건 왜일까?
우리 마음속에는 악을 응징하는 정의로운 격투의 대변자인 바키와 싸움과 폭력에 미친 악마적인 캐릭터 한마 유지로가 동시에 존재하는건 아닐까?
지하 격투대회에서 심신회 관장인 오롯치 돗포를 전투불능 상태로 만든 후 주최자나 관중에게 '더 이상 싸움은 무의미하다 패배를 인정하라. 이토록 잔인하게 싸울 필요가 있겠는가?'를 말하며 양해를 구하는 천사적인 캐릭터 야마나이 유우를 악마 그 자체인 한마 유지로는 시합장에 난입해 이렇게 만들어 버린다. (아래 그림)
그리고 머리카락을 잡고 집어 던지는데 머리가죽이 벗겨질 정도다. 솔직히 이 장면을 보고 쇼크를 먹었다. 장면의 잔인함은 별 것 아닌데 작가의 의도가 쇼킹했다.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바키가 아버지인 유지로에게 당장 나가라고 말하자, 유지로는 말한다.
"네 어설픈 사상의 결말은 저 야마나이 꼴이다. 인간의 육체를 파괴시키는 단순한 행위에 우정이 어쩌고 사랑이 어쩌고 웃기는 얘기다"
이에 바키는 다시 한번 묻는다.
"한번 묻고 싶었다. 한마 유지로가 생각하는 격투의 의미란 무엇인가?"
이에 유지로는 이렇게 말한다.
"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저 맛있는 요리를 맛보고 싶을 뿐."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이것이 아닐까?
'격투란 것이 어떤 것인가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저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진 투쟁과 파괴의 본능에 따르면 될 뿐.'
첫댓글 사진은 어떻게 퍼오질 못했네요; 출처는 랜덤으로 들어간 싸이월드입니다 ㅎ
글쓴 사람이 더 대단하군요....
바키보다는 터프가 낫던데 ...ㅋㅋ나다 영신류~
그래도 바키의 그림체가 더욱 다이나믹 하지 않나요~?? 제가 글쓴이와 생각이 비슷해서 인지 기냥 문장 하나하나가 쏙쏙 들어 오네요~!! 전문가 컬럼으로 옮겼으면...
이거 이번에 남제 중계하신분이 쓴글로 아는데요...북국곰님이라고...mas에 있어요..원본이...
엄청난 내공이다 ㄷㄷㄷ 이제야 봤네 이런 글을
공감은 하고 있지만 말로는 표현하기어려운 생각들을 글로 다 옮기셨네
속이 시원해질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