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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정씨 대종회(淸州鄭氏 大宗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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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節/風俗 스크랩 제례수상(祭禮隨想)
정재필 추천 0 조회 57 11.07.08 21:1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제례수상(祭禮隨想)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는 말도 많고 형식절차도 가지가지이다.

옛날에는 이 논란으로 조정정사(政事)가 어지러워졌고 학자와 선비들이 점잖지 못하게 파당을 지어 생사(生死)를 걸은 싸움질까지 하였을 정도이다. 그러나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는 우리나라 사례(四禮)의 모체라는 점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하리라.

가례(家禮)에는 조석상식에 불용주(不用酒)라 하였고 . 퇴계(退溪)선생은 「유(有)주(酒)여든 헌일작(獻一酌)이 가(可)라」하였고 「상식(上食)에 입곡(立哭)이요 무배(無拜)는 효자지어친(孝子之於親)에 매신창야이무배고(每晨唱爺而無拜故)로 불인이신사지고야(不忍以神事之故也)라」하였는데 단(但) 삭망(朔望)에는 보통상식과 달리해서 설전(設奠)을 하므로 헌일작(獻一酌)하고 재배하고 사신(辭神)에 재배한다. 상주가 장전(葬前)에는 헌작(獻酌)을 타인을 시켜 대전(代奠)하는 것은 장전불관세(葬前不 洗携)가 예유명문(禮有明文)이므로 불결한 것을 꺼려함이라 하였다(사계소언(沙溪所言)) 혼백(魂帛)은 비단으로 동심결(同心結)을 맺어서 장례(葬禮)전에 영혼이 의지할 곳을 만드는 것인데 하관후(下棺後)에는 광중(壙中)에 매안(埋安)하는 것이며, 송우암(宋尤庵)은 동심결(同心結)이 상고시대에 음남음부(淫男淫婦)가 정표(情表)하는 매듭이라 해서 천한 것이라 하여 폐지시키고 세포(細布)로 사통오달(四通五達)로 접도록 하였던 것이다. 가주(假主)는 밤나무로 신주(神主)를 만든다. 상고시대에는 시동(尸童)이라고 칠(七), 팔(八)세 된 어린이를 신위로 앉히고 제사를 지냈는데 나무로 만든 신주로 대신했고, 작금에 와서는 밤나무로 조주(造主)를 아니하고 백지(白紙)를 목주(木主)와 같이 접어서 글씨를 써서 신위(神位)로 모시는 것도 가주(假主)라 한다.

우(右)가 동(東)이니 동고(東高) 서비(西卑)라 해서 생전에는 남우녀좌(男右女左)로 설석(設席)이 되고, 사후(死後)에는 서고(西高) 동비(東卑)로 남좌(男左) 여우(女右)가 되니 그 이유는 일월출몰(日月出歿)이 이동위시고(以東爲始故)로 양계(陽界)에는 이동위수(以東爲首)하고 산수지세(山水之勢)는 서하동향고(西下東向故)로 음계(陰界)에는 이서위상(以西爲上)이다.

예문(禮文)에 조손(祖孫)이 부동장(不同杖)이라 하여 승중상(承重喪)에 증조(曾祖)가 생존하시면 무장(無杖)이요. 부상(父喪)에 조부(祖父)께서 생존하시면 유장(有杖)이지만 동도(同途)에서는 집장(執杖)하지 않는다.

제반(祭飯)을 통칭(通稱)「메」라고 하는데 이 말은 인도나라 말이다.

불교(佛敎)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불전(佛前)에 올린 밥을 메라 하였기 때문에 제사(祭祀)에 올리는 밥도 메라고 해서 공통어가 된것이며, 일본(日本)에서 밥을 메시라 하고 쌀을 고메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말이다. 종부(宗婦)가 만일 친가부모(親家父母)의 상복을 입었으면 제사 날에 임시로 옥색 옷을 입으라고 하였다.

고, 비위(考,妣位)를 각 단설(各 單設)로 해서 한 분만 제사하는 집도 있고 합설(合設)해서 내외를 함께 지내는 집도 있으나 단제(單祭)는 예지정(禮之正)이요, 합제(合祭)는 예지정(禮之情)이라 하였으니 단제(單祭)건 합제(合祭)건 모두 좋으나, 대다수(大多數)가 합제(合祭)하고 있다.

동유설(東儒說)에 「묘소(墓所)에 절사(節祀)는 불가(不可)하다」고 역설(力說)한 분들이 많은데 그 답변에 「안자사어제후(顔子使於諸候)라가 반국전묘이입(返國奠墓而入)이라」하였으며, 춘추전국시(春秋戰國時)에도 묘제(墓祭)가 있었고, 맹자(孟子)에 「동곽파간지제(東郭播間之祭)에 취포이귀(醉飽而歸)」라 하는 말이 있으니 육국시대(六國時代)에도 있었으며, 장양(張良)의 자손이 「어곡성(於穀城)에 병사황석(竝祀黃石)이라」하였으니 서한시(西漢時)에도 있었고 「한무제령제장(漢武帝令諸將)으로 사소우제분묘(賜小宇祭墳墓)라」하니 자고(自古)로 묘제(墓祭)가 있었던 일이다.

율곡(栗谷)은 말하기를 「분향(焚香)과 강신(降神)에 합해서 한번만 재배하고 참신(參神)에 재위자개재배무방(在位者皆再拜無妨)이라」하였다.

예문(禮文)에도 「재불분향(再不焚香)인즉 분향을 청신(請神)이니 강신시(降神時)에 한번만 하고 헌작시 마다 분향은 못쓴다. 」하였다.

예론자(禮論者)들이 「선참신(先參神) 후강신(後降神)」이니 「선강신(先降神) 후참신(後參神)」이니 하는 이론(理論)이 있으나, 행사시(行祀時)에 감실(龕室)에서 출주(出主)할 시(時)에 감실문(龕室門)을 열고 선재배(先再拜)한 후 출주(出主)하는 것을 선참신(先參神)이라 하는 것이지 그렇다 해서 참신(參神)재배가 없는 것은 아니라 하였다.

영정(影幀)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으나 가례증해(家禮增解)에 보면 「주자(朱子)도 어장자영정(於長子影幀)에 매치전(每致奠)에 불성설(不盛設)하였다」하는 문구(文句)가 있으니 영정(影幀)에도 치제무방(致祭無妨)하다. 우암(尤庵)은 「평소(平素) 소기지물(所嗜之物)은 불가전폐(不可全廢)니 삼년상내(三年喪內)에는 구육산채(拘肉山采)라도 용지무방(用之無妨)이라」하였다. 「제유부정(祭有不淨)」하니 초상이 났을 때 장전(葬前)이면 제사(祭祀)를 지내지 않고 (폐제(廢祭)). 아기를 낳을 때 (산고(産故))는 삼일(三日) 이내(以內)면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각거(各居)할 때는 상관이 없다.

명재(明齋)는 말하기를 시조제사(始祖祭祀)에는 사성(賜姓)관계로 성(姓)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사문((祀文) : (축문(祝文))에 초헌관(初獻官)의 성명을 쓰는 것이 가(可)하다고 하였다. 산신제(山神祭)는 반드시 제사철상(祭祀撤床)과 동시에 지내는 법이나 일강(一崗)에 누대묘소(累代墓所)가 있으면 각묘제사(各墓祭祀)를 마친 뒤에 최고위묘좌편(最高位墓左便)에 설석(設席)하고 지내라고 하였으며 묘사(墓祀)보다 먼저 산신제(山神祭)를 올리는 것은 망발(妄發)이라 하였다. 그러나 묘소거리(墓所距離)가 멀어서 다시 제물(祭物)을 갖추어 돌아가기가 어려운 곳은 원위(元位:(최고(最高)) 제사(祭祀)를 마친 직후에 올리는 것도 무방(無妨)할 것이다.

산신제(山神祭)에 선토재(先土齋)니 하는 논란이 있으므로 예문(禮文)을 이기(移記)하여 둔다.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에는 「사토지안주자대전집유사시제대부(祀土地按朱子大全集有四時祭大夫) 묘제제후토즉시제(墓祭祭后土則時祭) 제토지(祭土地) 역례지선야(亦禮之宣也) 금의제의어후(今擬祭儀於後)」라 하였고 사례(四禮)의 묘제의(墓祭儀)에는 「묘상매분여시제지(墓上每分如時祭之) 품갱설어육미면(品更設魚肉脚米麵) 식이제후토(食以祭后土)」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신제(山神祭)는 자기 조상의 영세(永世)를 의탁한 산신(山神)에게 감사를 드리는 동시에 또 앞으로의 수호도 부탁하는 의미가 있어서 옛부터 「선토제(先土祭) . 후토제(後土祭)」를 논란하였을 만큼 중요한 제사이다.

그러므로 원위산소(元位山所) 상부좌편(上部左便)에 터를 닦아 두는 것이 통례이며 그 행사(行祀)도 반드시 제주(祭主)가 올리도록 하고 다른 제관(祭官)에게 대행시켜서는 결례(缺禮)이며 또 제수도 몇 가지를 간략하게 진실함은 더욱 잘못이다.

예문(禮文)에도 「매분여시제지품갱설(每分如時祭之品更設)....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송동춘(宋同春)이 김사계(金沙溪)한테 후토제(后土祭)를 묘제(墓祭)전에 지내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니까 사계(沙溪)는 「나는 우리 선조세천(先祖歲薦)의 묘제(墓祭)에 정성을 다하고 있으니 묘제후(墓祭後)에 후토제(后土祭)를 지내는 것이 옳은 줄 믿으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가 그 곳에 계시니까 그렇소」라고 하였고. 또 손우(遜愚)는 말하기를 「옛부터 오사(五祀)의 예제(禮制)가 모두 그곳 신(神)에게 먼저 지내는데 어찌 후토제(后土祭)만 다를 수가 있으며. 그리고 우리 조선(祖先)을 보호하여 주고 있는 토신(土神)이니까 묘제(墓祭)에 앞서 후토제(后土祭)를 올려야 옳다」고 하였다.

이 두 가지 주장이 서로 상반되지만 후토제(后土祭)는 앞에서 묘제(墓祭)직후에 올리고 묘제(墓祭)때와 같은 제수를 쓰고 또 제주(祭主)가 직접 올리되 분향(분향(焚香)은 「않는다.」 「한다.」의 양설(兩說)이 예서(禮書)에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효행(孝行)문화 연구학회- 효행의 꽃 제사, 올바른 제례문화, 천도재,49재,제사관련정보 포털   (국번없이) ☏ 1688- 8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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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7.11 10:16

    첫댓글 잘 보고 대구중부산악회로 스크랩 하여 갑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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