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국수를 참 즐긴다. 그것도 이른바 잔치국수를 말이다. 생김새며, 말씨, 차림새까지 경상도 촌 내음이 물씬 풍겨 자주 가는 양재시장 안 국수 집에서 오늘도 잔치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가름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고 시절 고향 앞들 논두렁에서 말아먹었던 그 잔치국수 – 이른바 논두렁 막 국시의 오리지날한 맛과는 비슷하긴 하지만 여전히 울 엄마 표 논두렁 막 국시 맛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른바 울 엄마 표 논두렁 막 국시의 조리 및 진행 과정의 전부는 이렇다.
우선 기계로 뺀 국시를 잘 삶아서 대나무 광주리에 차곡차곡 재우고, 며루치(=멸치)를 푹 삶은 국시 물을 찜통에 가득 담고, 꾸미(이건 표준말로 뭐라고 하는지, 고명?)로는 애호박을 삶아 잘게 썬 것, 달걀도 후라이로 납작하게 해서 엷게 길게 썬 것, 고기를 곱게, 마치 만두소처럼 만들어 한 그릇 가득 담고 그리고 손으로 비벼 뿌셔 넣을 바짝 구은 김도 준비하고, 또 묵은 간장에다 풋고추 송송 썰어 넣고 참깨를 솔솔 뿌린 양념 한 주전자 담아 리어카(손수레)에 실으면 일차 준비 완료였다.- 이때 고기소만을 몰래 한두 숟가락 훔쳐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요즈음 이른바 일등 급 한우 고기보다도 훨씬 맛있었다,ㅎㅎㅎ.
그럼 나의 임무는 동네 “왁삭으네” 집(정식 택호는 모른다. 당시 모두가 이렇게 불렀는데 이 집에서 또 다른 명품 상품은 손수 만드는 두부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이 두부를 나는 거의 매일 이른 아침마다 양푼이를 들고 가 사와야 했다.)에서 그때엔 엄청나게 큰 두 되짜리 주전자 두 개에다 막걸리를 사 자전거 핸들 양편에 하나씩을 걸고 조심스레 가져오는 일이다. 인심 좋은 “왁삭으네”는 늘 주전자에 철철 넘치게 막걸리를 담아 주는데, 이때의 또 다른 스릴은 “왁삭으네” 집 삽짝문(=대문)을 나서자마자 자전거로 실어 올 때 넘쳐날 분량만큼을 미리 주전자 꼭지를 빠는 것(?)이었다 – 그때에는 철저히 금지된 행위로 학생 입장 불가 영화 상영극장을 도둑처럼 드나드는 것 같은, ㅋㅋㅋ.
자, 이제 준비 완료. 자전거 뒤에다 리어카를 매달고 아주 느린 속도로 모내기가 한창인 앞들로 나가는 것이다. 물론 가다가 상천(단계천)다리 건너 아이스케이크 집에서 막걸리에 넣을 어름 몇 덩이 사고. 흙길에 울렁거리다가 찜통에 국시 물을 조금이라도 흘리기라도 하면 예외 없이 뒤따르는 엄마의 말씀, 조심하라 카이 - 그 당시 울 엄마는 읍내에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셨다, 흔히 말하는 "몸빼이"를 입으시고.
이제는 상상해보시라, 넓은 앞들, 논두렁에 앉자 말아 먹는 한 그릇의 막 국시의 맛을. 운좋아 이때 바람이라도 살랑살랑 불어온다면, 아유, 그 맛을 어디 도시에서 먹는 잔치국수에 비기랴. 늘 충분히 준비한 울 엄마표 논두렁 국시는 지나가는 이웃들에게까지도,
'어, 여기 와 한 그릇 하고 가게나' 였으니, 이렇게 여럿이 함께 하는 그것이 또한 맛을 더하곤 했었지. 오호라, 언제, 어디서 다시 그런 국시 맛을 볼 수 있으랴.
나른한 오후, 잔치국수 한 그릇에 문득 떠오르는 그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여 이를 그리워 하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