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달마구사론 제12권/3. 분별세품 ⑤-3
어떠한 이유에서 보살은 발원(發願)하고서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정진 수행하여야 비로소 불과(佛果)를 기약할 수 있는 것인가?
어찌 오랜 세월 수행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 무상(無上)의 보리(菩提)는 참으로 얻기 어려워 많은 원행(願行)에 의하지 않고서는 획득 성취할 수 없으니, 보살은 요컨대 3무수겁을 거치면서 복덕과 지혜의 크나큰 자량(資糧)이 되는 6바라밀다(波羅蜜多)와 수많은 백천의 고행을 닦아 비로소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증득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코 마땅히 오랜 세월 동안 원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방편으로도 역시 열반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인데, 어찌하여 보리를 증득하기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많은 고행을 닦는 것인가?23)
일체의 유정에게 이익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였다. 그래서 그 같은 보리를 구하고자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하면 내가 크나큰 감당의 능력[大堪能]을 갖추고서 괴로움의 폭류(瀑流)로부터 모든 함식(含識,유정)을 구제할 것인가'하는 원을 일으켰던 것으로, 그렇기 때문에 열반의 도를 버리고 무상의 보리를 구하게 된 것이다.
다른 유정을 구제하면 자기에게 어떠한 이익이 있는 것인가?
보살은 유정을 구제함으로써 자신의 비심(悲心)을 성취하니, 그래서 다른 이를 구제하는 것으로써 바로 자신의 이익을 삼는 것이다.
보살에게 이와 같은 사정이 있다는 것을 누가 믿을 것인가?
자신의 윤택함만을 생각하고 크나큰 자비(慈悲)가 없는 이와 같은 유정에게 이 같은 사실은 믿기가 어렵겠지만, 자신의 윤택함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으며 크나큰 자비를 갖는 이와 같은 유정에게 이 같은 사실은 믿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예컨대 남을 가엾이 여기지 않는 마음을 오래 익힌 자는 비록 자기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을지라도 즐거이 남에게 손해를 끼치니, 이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살은 자비의 마음을 오래 익혀 비록 자기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을지라도 다른 이의 이익에 즐거워하니, 이 어찌 믿지 않을 것인가? 또한 예컨대 어떤 유정이 자주 익혀온 힘으로 말미암아 무아(無我)의 행(行)에 대해 그것이 유위(有爲)임을 알지 못하고 '나[我]이고 나의 것[我所]이다'라고 집착하여 애착을 낳고, 이것을 원인으로 삼아 온갖 괴로움을 달게 받는다는 것은 지자(智者)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살은 자주 익혀온 힘으로 말미암아 자아의 애착을 버리고 다른 이를 연민하는 마음을 북돋우어 이것을 원인으로 삼아 온갖 괴로움을 달게 받으니, 이 어찌 믿지 않을 것인가?
또한 종성(種姓)이 다름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뜻과 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즉 다른 이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삼고, 다른 이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았지만, 자신의 괴로움이나 즐거움은 자신의 괴롭고 즐거운 일로 여기지 않았으니, 이는 다른 이를 이익되게 하는 것과는 다른 별도의 자신의 이익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뜻에 근거하여 어떤 게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사(下士)는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
항상 자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며
중사(中士)는 다만 괴로움의 소멸만을 희구할 뿐
즐거움은 희구하지 않으니, 괴로움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상사(上士)는 항상 자신은 괴로워도
다른 이의 안락과 아울러 다른 이의
괴로움의 영원한 소멸을 부지런히 추구하니
다른 이의 괴로움을 자신의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겁(劫)의 양적 차별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그렇다면 모든 부처님과 독각(獨覺)이 세간에 출현하는 것은 겁이 증가할 때인가, 겁이 감소하는 상태에서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8만 세에서 감소하여 백 세에 이를 때
모든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출현하지만
독각은 증가나 감소에 관계없이 출현하며
인각유(麟角喩) 독각은 백 겁 후에 출현한다.
減八萬至百 諸佛現世間
獨覺增減時 麟角喩百劫
논하여 말하겠다. 이 주(즉 남섬부주)의 인간들 수명이 8만 세에서 점차 감소하여 마침내 수명이 최대 백 세에 이르게 되는 그 중간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출현하신다.24)
어떠한 연유에서 수명이 증가하는 상태에서는 부처님께서 출현하는 일이 없는 것인가?
이 때는 유정의 즐거움이 증가하여 [세상에 대한] 싫어함[厭]을 가르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25)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백 세 이하로 감소할 때에도 부처님께서 출현하는 일이 없는 것인가?
5탁(濁)이 지극히 증대하여 교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5탁이라 말한 것은 첫 번째는 수탁(壽濁)이며, 두 번째는 겁탁(劫濁)이며, 세 번째는 번뇌탁(煩惱濁)이며, 네 번째는 견탁(見濁)이며, 다섯 번째는 유정탁(有情濁)이다.26) 즉 겁이 감소하여 장차 그 종말에 이르게 되면 목숨 등이 천박하여 찌꺼기의 더러움[滓穢, ki a, 분비물]과 같아지기 때문에 '탁(ka aya)'이라 일컬은 것이다.
여기서 앞의 두 가지 탁에 의해 순서대로 수명과 자구(資具, 생활의 도구)가 쇠퇴 손상되며, 다음의 두 가지 탁으로 말미암아 선품(善品)이 쇠퇴 손상되니, 욕락과 스스로의 고행에 탐닉하기 때문이다. 혹은 순서대로 재가(在家)와 출가(出家)의 선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탁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쇠퇴 손상시키니, 이를테면 자신의 신체의 크기나 색·힘, 기억[念], 지혜, 부지런함과 용기, 그리고 무병(無病)을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각(獨覺)은 겁이 증가하거나 감소함에 관계없이 출현한다. 모든 독각에는 두 종류의 구별이 있으니, 첫째는 부행(部行)이며, 둘째는 인각유(麟角喩)이다. 부행독각이란 일찍이 성문(聲聞)이었던 자가 뛰어난 과보를 획득하였을 때를 말하는 것으로, 달리 독승(獨勝)이라고도 이름한다.27)
그러나 유여사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그들은 본래 이생(異生)이었지만 일찍이 성문의 순결택분(順決擇分)을 닦았으며, 지금 스스로 도를 증득하였기에 '독승'이라고 하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본사(本事) 중에 설하고 있는 바에 따른 것이다.28) 즉 어떤 한 산중에 5백 명의 외도선인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고행을 닦고 있었다. 그 때 한 마리의 원숭이가 있어 일찍이 독각과 서로 가까이 살면서 그의 위의(威儀)를 보았었는데, 그 후 이리 저리 유행(遊行)하다가 외도선인들의 처소에 이르러 일찍이 보았던 독각의 위의를 나타내었다. 그러자 모든 선인들이 그것을 보고 모두 공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낳아 잠깐 사이[須臾]에 모두 독각의 보리를 증득하였다고 하였다. 만약 일찍이 [성문의] 성인이었다면 마땅히 고행을 닦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인각유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홀로 머무는 이[獨居]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 종류의 독각 중에서 인각유독각은 요컨대 백 대겁 동안 보리의 자량을 닦은 연후에야 비로소 인각유독각을 성취한다.29) 나아가 독각이라고 말한 것은, 현재의 소의신[現身] 중에서 지극한 가르침[至敎]을 받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도를 깨달아, 스스로는 능히 조복(調伏)하였지만 다른 이를 조복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일컬은 것이다.]
어떠한 연유에서 독각은 다른 이를 조복시키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는 능히 정법을 연설할 수 없는 이도 아닐 뿐더러 그 역시 무애해(無碍解 : 法·義·詞·辯의 4무애해)를 획득하였기 때문에, 또한 과거세에 들었던 제불(諸佛)이 널리 펴신 성교(聖敎)의 이치를 능히 기억하기 때문에 [그는 능히 다른 이를 조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 자비심이 없다고도 설할 수 없을 것이니, 유정을 포섭하기 위해 신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때는] 정법을 향수할 만한 근기가 없다고도 설할 수 없을 것이니, 그 때의 유정들도 역시 세간 이욕(離欲)의 대치도를 능히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같은 이치가 있을지라도 그는 숙습(宿習)으로 말미암아 즐거이 하고자 하는 일[欣樂勝解]이 적을 뿐더러 설하려고 하는 희망도 없기 때문에, 또한 [그 때의] 유정들은 심오한 법을 향수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생사의] 흐름을 따른 지 이미 오래되어 그 흐름을 거스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또한 대중들을 섭수(攝受)하는 것(즉 지도하는 것)을 회피하기 때문에 다른 이를 위해 정법을 널리 설하지 않는 것이니, 시끄럽게 떠들어 잡란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전륜왕(轉輪王)이 세간에 출현하는 것은 언제이고, 그 종류는 몇 가지이며, 몇이서 함께 출현하는 것인가? 또한 그들은 어떠한 위엄과 어떠한 상호[相]를 갖추고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전륜왕은 [인간의 수명이] 8만 세 이상일 때 출현하니
금륜(金輪)·은륜(銀輪)·동륜(銅輪)·철륜(鐵輪)의 왕이
한 주(洲)·두 주·세 주·네 주를 반대의 순서로 다스리며
홀로 출현하는 것은 부처님과도 같다.
輪王八萬上 金銀銅鐵輪
一二三四洲 逆次獨如佛
[그들은] 다른 이에 의해 모셔지고, 스스로 나아가 항복받으며
위덕을 과시하고, 진(陣)을 펼쳐 승리하지만 남을 해치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상호는 바르고 명료하고 원만하지 않으니
그래서 부처님과 동등하지 않은 것이다.
他迎自往伏 諍陣勝無害
相不正明圓 故與佛非等
논하여 말하겠다. 이 주(洲 : 남섬부주)의 사람들 수명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때로부터 8만 세에 이르는 동안 전륜왕은 생겨나게 되는데, 8만세 이하로 감소할 때이면 유정의 부귀·향락이 손상되고 수명이 감소하며, 온갖 악이 점차 치성하여 대인(大人)을 받아드릴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때는 전륜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왕은 바퀴[輪]가 굴러 그것이 인도하는 대로 일체의 유정을 위엄으로써 항복받기 때문에 '전륜왕(轉輪王, cakravartin-raja)'이라고 이름하였다.
{시설족론} 중에서는 그것에 네 종류가 있다고 설하고 있으니, 금·은·동·철의 바퀴에 따른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서대로 최승의 왕이고, 상품·중품·하품의 왕이며, 또한 반대의 순서대로 능히 한 주(洲)를, 두 주를, 세 주를, 네 주를 다스리는 왕이다. 즉 철륜왕은 한 주의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며, 동륜왕은 두 주의 세계를, 은륜왕은 세 주의 세계를, 그리고 금륜왕은 4대주의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라고 한다.30)
그런데 계경에서는 뛰어난 왕, 즉 금륜왕에 대해서만 설하고 있다. 그래서 계경에서도 이와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왕이 찰제리(刹帝利 : K atriya,사성계급 중 통치계급) 종족으로 태어나 관정의 지위[灑頂位, 즉 灌頂의식을 거친 왕위]를 이어 받고자 보름날(15일, 즉 포살일) 재계(齋戒)를 받을 때이면 머리과 몸을 깨끗이 씻고서 수승한 재계를 받게 되는데, 이 때 높은 누대의 전각에 오르면 신하와 관리들이 그를 보필하여 좌우로 늘어서고, 동방에서는 홀연히 금륜의 보배가 나타난다. 그 바퀴는 천개의 바퀴살을 갖고 있으며, 속의 바퀴통과 밖의 바퀴 테를 모두 갖추어 모든 상이 원만하고 청정하여 참으로 교묘한 장인[巧匠]이 만든 것과 같다. 만약 이것이 미묘한 광명을 발하며 왕의 처소로 와 감응하면, 이 왕은 필시 금륜을 굴릴 왕인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전륜왕의 경우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31)
그리고 전륜왕은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두 왕이 함께 생겨나는 일이 없다. 그래서 계경에서도 이같이 설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곳에서도, 어떠한 상태에서도 동시에 두 명의 여래·응공·정등각이 세간에 출현하는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니, 어떠한 곳에서도 어떠한 상태에서도 오로지 한 분의 여래만이 세간에 출현한다. 여래에 대해 설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륜왕 역시 그러하다."32)
여기서 마땅히 살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니, '오로지 한 분'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의 삼천세계에 근거하여 그렇다는 말인가, [시방의] 일체의 [삼천]세계에 근거하여 그렇다는 말인가?
어떤 이는 설하기를, "다른 세계에는 결정코 부처님께서 태어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33)
그 까닭이 무엇인가?
박가범(薄伽梵)의 공능에 장애(한계)가 있을 리 없으니, 오직 한 분의 세존만으로도 널리 시방세계를 능히 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중의 어느 한 곳이라도 한 부처님에게 그곳을 교화할 능력이 없다고 한다면 그 밖의 다른 곳도 역시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세존께서 사리자(舍利子)에게 "어떤 이가 그대를 찾아와 '범지(梵志) 사문(沙門)으로서 지금의 교답마(喬答摩, Gautama)와 동등한 평등하고도 무상(無上)한 깨달음을 획득한 자가 있는가?' 하고 물으면 그대는 그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고 말하였을 때, 사리자는 세존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어 말하였던 것이다. "저는 그의 물음에 대해 마땅히 이와 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지금의 범지 사문으로서 우리 세존과 동등한 무상의 보리를 획득한 자는 아무도 없다. 왜냐 하면 나는 세존으로부터 어떠한 곳에서도, 어떠한 상태에서도 동시에 두 명의 여래·응공·정등각이 세간에 출현하는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니, 어떠한 곳에서도 어떠한 상태에서도 오로지 한 분의 여래만이 [세간에 출현한다]는 말씀을 직접 듣고 직접 받아 지녔기 때문이다'라고."34)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범왕경(梵王經)}에서 "나는 지금 이 삼천대천의 온갖 세계 중에서만 자재로이 전생(轉生)할 수 있다"고 설하였겠는가?35)
거기에는 은밀한 뜻이 있다.
은밀한 뜻이란 무엇인가?
즉 만약 세존께서 가행(加行)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오로지 이 삼천 대천세계만을 능히 관찰하였겠지만, 그러나 만약 어느 때 세존께서 가행을 발기하였다면 가이없는 무변(無邊)의 세계는 모두 불안(佛眼)의 경계가 되니, 천이통(天耳通) 등도 이러한 예에 따라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부파(대중부 등)의 논사는 말하기를, "다른 세계에도 역시 별도의 부처님이 존재하여 세간에 출현한다"고 하였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많은 보살들이 있어 지금 현재 다 같이 보리의 자량(資糧, 즉 6바라밀다)을 수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 세계[一界] 한 시[一時]에 다수의 부처[多佛]는 없다 할지라도 다수의 세계[多界]에 다수의 부처가 있다고 하면 무슨 이치로 능히 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가이없는 무변의 세계 중에는 가이없는 무변의 부처님이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오로지 한 분의 부처님만이 출현하신다면, 설혹 일겁의 시절 동안 머물러 계신다 할지라도 한 세계의 불사(佛事)를 두루 다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인간과 같은 수명으로 어떻게 가이없는 무변의 세계를 능히 이익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온갖 유정들은 가이없는 무변의 세계에 머물고 있을 뿐더러 [살아가는] 시절과 처소와 근기의 차별 또한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응당 마땅히 이러한 유정들의 종류를 두루 관찰하시고서, 이와 같은 시절과 처소에서도 마땅히 그들이 세존을 볼 수 있도록 그들 근기에 따라 신통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였으니, 그의 과실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자에게는 생겨나지 않게 하고, 온갖 유정에게 이미 생겨났으면 능히 끊게 하며, 그의 공덕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자에게는 생겨날 수 있게 하고, 온갖 유정에게 이미 생겨났으면 능히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분의 부처님만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이 같은 일들을 단박에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결정코 동시에 다수의 부처님이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그들(즉 유부 비바사사)이 인용한 '어떠한 곳에서도, 어떠한 상태에서도 동시에 두 분의 여래가 세간에 출현하는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는 따위의 경문에 대해서도 마땅히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니, 이 같은 말은 한 세계[一界]에서 그렇다는 말인가, 다수의 세계[多界]에서 그렇다는 말인가? 만약 다수의 세계에서 그렇다고 한다면 전륜왕도 역시 다른 세계 중에서도 [한 명 이상]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함께 생겨나는 것을 부정한다고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전륜왕이 다른 세계에 따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어떻게 다른 세계에서의 부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는가?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시는 것은 길상(吉祥)의 복을 갖추었기 때문으로,36) 다수의 세계에 다수의 부처님이 있다고 한들 무슨 과실이 있어 이를 부정할 것인가? 즉 다수의 세계 중에 온갖 부처가 함께 나타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량의 유정들을 능히 요익(饒益)하여 증상의 생(生)이나 결정적으로 수승한 도(道)를 획득하게 하는 것이다.37)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째서 한 세계 중에 두 분의 여래가 동시에 출현하는 일은 없는 것인가?
필요없기 때문이니, 이를테면 한 세계 중에서는 한 분의 부처님만으로도 능히 일체 중생을 요익하게 하는데 충분한 것이다. 또한 원력(願力)을 일으켰기 때문이니, 이를테면 모든 여래는 보살일 적에 먼저 다음과 같은 서원을 일으켰던 것이다. "원컨대 나는 당래 구원처가 없고[無救] 의지처가 없는[無依] 어두운 세계에 머물면서 등정각을 성취하여 일체의 유정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함으로써 구원처가 되고 의지처가 되며 밝은 눈이 되어 그들을 인도하리라" 또한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니, 이를테면 한 세계에 오로지 한 분의 여래만이 존재하여야 깊이 공경하고 존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속하게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니, 이를테면 [유정들이] '일체지(一切智)의 존자는 만나기가 매우 어려우니, 그가 세운 교법을 마땅히 신속하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 분께서] 반열반에 들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가시게 되면 우리는 구원처가 없고 의지처가 없게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한 세계 중에 두 분의 부처님이 출현하시는 일은 없는 것이다.38)
이와 같이 앞에서 설한 네 종류의 전륜왕은 위엄으로써 모든 곳을 평정하지만 여기에도 역시 차별이 있다. 즉 금륜왕(金輪王)의 경우 모든 작은 나라의 왕들이 각기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모셔가니, 그들은 이와 같이 청하여 말한다. "저희들의 국토는 넓고 풍요로우며 안은(安隱)하고 부유하여 즐겁기 그지없는 곳으로, 온갖 종류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오로지 원하건대 천존(天尊)께서 친히 교칙만 내려 주신다면 저희들은 모두 천존의 신하[翼從]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은륜왕(銀輪王)이라면 스스로 그들의 땅으로 가 자신의 위엄을 가까이서 보여 주니, 그 때 그들은 비로소 항복하여 신하가 된다. 만약 동륜왕(銅輪王)이라면 그들의 나라에 이르러 위엄을 선양하고 덕을 과시하니, 그 때 그들은 비로소 그를 뛰어난 왕으로 추대한다. 만약 철륜왕(鐵輪王)이라면 역시 그들의 나라로 가 위세를 과시하고 진을 펼치는 것만으로 승리하여 [나라를] 평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일체의 전륜왕은 모두 다 남을 해치는 일이 없으며, 그들을 항복시켜 승리를 얻었을지라도 각기 그들의 처소에서 편안히 살게 하고, 10선업도(善業道)를 닦도록 권유하고 교화한다. 그래서 전륜왕은 죽으면 결정코 하늘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경에서는 설하기를, "전륜왕이 세간에 출현할 경우, 7보(寶)를 갖고 세간에 출현한다"고 하였다.39) 그러한 일곱 가지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첫째는 바퀴 보배[輪寶]이며, 둘째는 코끼리 보배[象寶]이며, 셋째는 말 보배[馬寶]이며, 넷째는 구슬 보배[珠寶]이며 다섯 째는 여인 보배[女寶]이며, 여섯째는 주장신(主藏臣)의 보배이며, 일곱째는 주병신(主兵臣)의 보배이다.40)
코끼리 등의 다섯 가지 보배는 유정수에 포섭되는데, 어떻게 다른 이의 업이 다른 유정을 낳을 수 있는 것인가?41)
다른 유정이 다른 이의 업에 의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찍이 서로에게 소속되는 업을 지었기 때문에 둘 중에 만약 어느 하나가 자신의 업을 받아 태어나게 되면 다른 하나도 역시 동시에 자신의 업에 편승하여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설한 바대로 모든 전륜왕은 7보를 갖지만 다른 왕과의 차이는 오로지 그것만이 아니다. 서른두 가지의 대사(大士 : 부처님을 말함)의 상호(相好)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차이가 있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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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단순히 열반만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성문(聲聞) 연각(緣覺)처럼 적은 방편의 수행으로도 충분할 것인데, 어찌하여 3무수겁의 대겁 동안 수행한 것인가?
24) 예컨대 과거7불 중 비바시불(毘婆尸佛)은 인간의 수명이 8만 4천 세 때, 시기불(尸棄佛)과 비사부불(毘舍浮佛)은 7만 세 때, 구루손불(拘屢孫佛)은 6만 세 때,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은 4만 세 때, 가섭불(迦葉佛)은 2만 세 때 출현하였고, 당래 석가불은 백 세 때 출현하였다.
25) 혹은 많은 이들이 묘행(妙行)을 행하기 때문이며, 적은 이들만이 방생·악귀·지옥의 3도(途)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26) 즉 유정의 수명의 양이 감소하여 점차 종말(즉 괴겁)을 맞이하려고 할 때에는 대개 모든 방면에서 세간이 더럽고 부패하여 부처님의 교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명이 지극히 짧아지고(수명탁), 도병(刀兵)·질역(疾疫)·기근(饑饉)의 3재가 일어나 시대가 흐려지고(겁탁), 번뇌와 사견이 치성하며(번뇌·견탁), 유정 또한 신체가 왜소하고 무기력해진다(유정탁).
27) 독각(獨覺, pratyeka buddha, 緣覺 또는 ?支佛)이란 다른 이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은 이를 말하는데, 다른 이의 가르침을 떠나 홀로 뛰어난 과보를 증득하였기 때문에 '독승'이라고도 함. 부행(部行, vargacara)이라 함은 성문으로서 제3과(불환과)까지를 얻고 그 후 스스로 뛰어난 제4과의 과보를 증득한 이를 말한다. 즉 여러 사람이 한 곳에서 공동적으로 수행[衆類相共]하였기에 '부행'이라고 이름하였다. 이에 대해 인각유(麟角喩)란 기린의 두 뿔이 결코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홀로 머물며 깨달음을 증득하였기 때문에 '인각유'라고 이름하였다.
28) 본사(itivrttaka, 혹은 如是語)란 12분교(分敎)의 하나로, 이를테면 이와 같이 전해오는 옛 이야기를 말한다. 다음의 이야기는 {현우경(賢愚經)} 권제13 [우파국제품](대정장4, p. 443하); {대비바사론} 권제46(한글대장경119, p. 503)에 나온다.
29) 그러나 부행독각은 시간의 정해진 한도가 없기 때문에 백 대겁보다 적은 시간동안 자량의 인(因)을 닦을지라도 독각을 성취할 수 있다.
30) 철륜왕은 남섬부주만을 다스리는 왕이고, 동륜왕은 남섬부주와 동승신주를, 은륜왕은 여기에 서우화주를, 금륜왕은 4대주 전부를 다스리는 왕이다.
31) {장아함경} 권제18 [전륜왕품](대정장1, p. 119하); {중아함경} 권제15 [전륜왕경](동, p. 521중); {잡아함경} 권제27 제722경(동2, p. 194상) 등에 전륜왕에 관한 기사가 전하고 있다.
32) {중아함경} 권제47 {다계경(多界經)}(대정장1, p. 723중).
33) 즉 '오직 한 분이다고 한 말은 시방의 일체세계에 근거한 말이다'는 뜻, 이 논설은 다음에 논설되는 유여사 즉 대중부(혹은 경부)의 다계다불설(多界多佛說)을 비판한 것으로, 유부에서는 두 부처님이 출현할 경우 부처님의 덕이 양분되어 원만하지 않게 되며, 시방의 세계를 모두 교화할 수 없기 때문에 삼천 대천의 '시방계일불설(十方界一佛說)을 주장한다. 그러나 경량부에 따르면, 부처님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한 무수한 세계의 중생은 때와 장소, 근기에 한량없는 차별이 있어 이들을 동시에 구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다수의 세계에 다수의 부처님이 출현한다.
34) {장아함경} 권제47 {자환희경(自歡喜經)}(대정장1, p. 79상); {중아함경} 권제47 {다계경(多界經)}(동, p. 723)참조.
35) 여기서 {범왕경}은 {중아함경} 권제19 {범천제불경(梵天諸佛經)}. 즉 이 경문은 바로 부처님께서는 오로지 이 삼천 대천세계에서만 생겨날 수 있으며, 다른 삼천 대천세간에서는 그렇지 못함을 설한 것으로, 따라서 부처님에게는 한계[?]가 있지 않느냐 하는 뜻.
36) 즉 부처는 길상의 복덕(pu ya)을 소의로 하여 세간에 출현한다는 말이다.
37) '증상(增上)의 생(生)'이란 선취(善趣) 즉 인취와 천취를 말하며, '결정적으로 수승한 도'란 3승의 무루도를 말한다.
38) 이처럼 본론에서는 다계다불설(多界多佛說)로 논의를 끊맺고 있어 논주 세친의 성향을 알게 한다. 이에 대해 신(新) 유부의 논사 중현(衆賢)은 '다른 세계에서 자유자재한 교화의 능력을 갖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대비(大悲)를 결여하였기 때문인가, 지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인가? 만약 대비를 결여하였기 때문이라면, 경에서 "여래의 자비심은 일체의 세계를 두루 덮을 만하다"고 설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만약 지혜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면, "부처님의 지혜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 이염(爾焰 : jneya, 所知 즉 알려질 대상)은 아무것도 없다"고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부처님의 지혜나 자비심이 일체의 세계에 두루 존재하여 한계도 없고 결여됨도 없다면, 그의 법 또한 두루 편재하여 능히 일체의 유정을 제도할 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니, 가이없는 무변의 세계에 대해 여래는 모두 부사의한 힘을 갖고 있어 능히 두루 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논설하고 있다.(『현정론』 권제17, 앞의 책, p. 470).
39) {중아함경} 권제11 {칠보경}(대정장1, p. 493상); {증일아함경} 권제33(동2, p. 731중); {잡아함경} 권제27 제721경(동p.194상) 등을 참조.
40) 칭우에 의하면 주장신(主藏臣, grihapati)은 창고(kosa)를 감독하는 자이며, 주병신(主兵臣, pari ayaka)은 군대(bala)를 감독하는 자이다.
41) 즉 바퀴와 구슬(마니주)을 제외한 다섯 가지는 유정수인데, 그것이 만약 전륜왕의 이숙과라고 한다면 자작자수(自作自受)가 아니라 타작타수(他作他受)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난문. 즉 그 때 코끼리 등은 누구의 이숙과인가?
42) 대사의 32상에 대해서는 {대비바사론} 권제177(한글대장경125, p. 33-37)을 참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