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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의 산중산담 山中山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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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 기맥, 지맥 기타 스크랩 대간 13-1구간 : 윤지미산구간 - 잎세달 4월 초입의 기운을 진달레가 얘기하다
초보산꾼 추천 0 조회 65 17.04.03 22: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대간 13-1구간 : 윤지미산구간 - 개머리재에서 화령재까지   

 

 

언제 정유(17년) 잎새달 4월 하루 흙날

누구랑 : 거인산악회 대간 17기 산우님들         

어딜 :  개머리재 ~ 지기재 ~ 신의터재 ~ 장자봉 ~ 윤지미산 ~ 화령재

                     (대간 18.0 km)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초보산꾼 사진 산행기는 http://blog.daum.net/kmhcshh/3592  에 있습니다

 

 

봄의 오는 소리로 겨우내 잠들어 있던 생명들이 앞 다퉈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 위한 몸부림 3월을 지나면

물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잎을 돋운다는 잎새달 4월은 그래서 청명淸明이 있고 곡우穀雨가 있는 달이다

전국이 꽃 누리 세상이 되어 모든 사람들의 눈을 들로 산으로 모이게 하는 이면에는 농부들의 바쁜 숨소리도 있다

일 년 농사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시기가 바로 춘분을 지나서 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꽃 세상은 남 얘기이다

겨우내 움츠려 들었던 산객들에게도 봄은 또 다른 출발을 알리는 중요한 시기.. 봄 내음을 대간길에서 음미하면? 

 

 

백두대간 개머리재에서 화령재까지 (참조용)

 

이번 구간도 국수봉을 넘어 시작된 중화지구를 이어가는 구간으로 백한산을 끝으로 더욱 고도를 낮추고

큰못안마을이 있어 부르게 된 소정(召井)재 또는 개머리재를 시작으로 도적들이 많아 부르게 된 지기재를 지나면

뒷산에 흑연광산이 있어 검은(금은)마을을 지나 임진왜란 때 김준신 의병의 혼이 살아 있는 신의터재를 넘고

장자봉과 무지개산 윤지미산으로... 낮으면 낮은데로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민초들에게 삶의 현장을 주고 

500m 정도인 윤지미산이 최고봉일 정도로 더욱 낮춰진 대간길에는 또 어떤 사연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개머리재 도착 - 전 구간 날머리

개머리재(소정재) : 상주 모서면 대포리에서 소정리 경계

개’가 정확한 뜻은 모르나 지금도 쓰이고 있는 ‘개’는 ‘물 가’를 뜻하고, ‘가, 가새’는 ‘가장자리’를 뜻한다. 여기서는 ‘포(浦)’의 뜻.

‘머리’는 일반어사(一般語辭) ‘머리(頭)’가 평야지대에 산기슭이나 봉우리가 툭 튀어 나온 지형의 지명 즉 ‘모롱이’인 것이다.

자료 : 상주시 홈피 우리마을소개

 

약간 늦어진 대간길... 바로 산행이 시작되고...

 

산세가 개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개머리재라 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소정재

또 중요 자료에서는 소나무 정자가 있어 소정리라 하였다고 하는데 한자도 틀릴 뿐아니라

소정리 자연마을 중에 큰 규모의 연못 앞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큰못안마을 있는 것을 보면

마을에 정자가 아니라 연못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한표를 던지고 싶다.

그래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물이 있으니 소정리에 신선이 살만한 선유동 마을까지 있는 것을 보면...

믿거나 말거나...  어디까지나 초보산꾼 생각

 

바로 산속으로 진입하며 본격적인 구간이 시작된다

 

첫봉을 지나 임도를 만났다 바로 다시 산속으로

 

지기재 직전 편상이 있는 선유동 마을 북쪽에 있는 안심산 갈립봉(429m) 갈림길에서 좌틀

 

우측으로 꺽이는 지점 정면으로 담 구간 봉화산에서 갈라지는 팔음지맥의 팔음산으로 추정되는 큰 산이 육안으로 보인다

 

우측으로 해서 내려오면 마루금은 우측으로 계속 이어지지만 사유지라 잠시 우회하여 지기재로 하산

 

이제 지기재가 보이고 앞에 금은동 마을 뒷산인 마루금에 살짝 비켜나 있는 은왕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적들이 많아 통행하는 민초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던 곳으로 賊起재라 불렀으나 사투리로 지기재라 하고

지기재도 중화지구의 다른 재처럼 고도감을 느낄 수 없는 동네 앞길이지만

엄연한 동과 서가 확연히 가려지는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다.

 

지기재 (旨起峙) 260m    석산리 지기재동과 대포리를 잇는 고개

석산리의 지기재동 동남쪽에 있는 고개.《지+기(고개)+재(고개)=지기 재. ‘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지 못하겠다.

다만 백두대간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꼭대기’라는 뜻으로 ‘지(旨)’를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한편, 『삼국사기』에 나오는 옛 지명과 오늘날의 지명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

지(支)→성(城) : 궐지(闕支)→궐성(闕城)<경남 산청군 단성면> · 기(己)→성(城) : 열기(悅己)→열성(悅城)<충남 청양군 정산면>

즉, 끝소리로 오는 ‘-기, -지’는 모두 ‘성(城)’과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 지’가 ‘재’였다는 증거다.

신라 경덕왕 16년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바꿀 때 ‘재’의 뜻이 들어간 지명은 거의 모두 ‘성(城)’ 자가 들어간 이름으로 바꾸었다

자료 : 상주시 홈피 우리마을소개

 

계속 마루금은 우측으로 이어지지만 접근이 쉽지 않다. 예전에는 대나무 밭으로 해서 올랐던 기억이 있는데...

금은 마을길따라 계속 이어간다. 어차피 지기재부터 계속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금은마을은 앞에 보이는 산에 흑연광산이 있었기에 항상 온 동네가 온통 시커멓 해서 검은 마을이라고 했는데

마을이름이 좀 거시기해서 이왕이면 다홍치마 듣기 좋은 금은마을로 바꾸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 길을 세 번 째 걷고 있는데 몇 년 전 대간 때 구제역의 여파로 생때같은 소들이 묻히는 아픔이 있던 곳이다

그런데 금은마을이 속해 있는 모서면의 牟(소울음소리 모) 한자를 쓰고 있어 지명에서 받는 섬뜩함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전국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언제 또 소로 옮겨질지...

그 땐 정말 마음이 무거웠는데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 또 다시 세상 참으로 무심타..  

 

금은마을이 보이면서 뒷산인 은왕봉에 임진왜란 때 수 십 명이 피난을 했다는 큰 굴이 있었다는 데...

 

충북과 경북의 도계를 이루며 김천시와 영동군의 경계를 따르던 백두대간이

국수봉을 넘어 상주 속살로 들어 오면서 갑자기 산줄기가 백두대간에서 가장 낮은 지역 중화지구

지리산부터 시작된 백두대간이 적어도 군계역할은 했었는데 중화지구에서는 면계역할조차 힘들다

상주의 모동,모서면지역(머현)과 화북,화서,화동,화남지역(령현) 이 두 지역을 합쳐 생긴 이름인데 

경북땅이 백두대간 서쪽 충북땅으로 깊숙히 침범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당겨보면 혹시? 여기에 있을까? 마루금에서 비켜나 있어 담 기회로 미루고...

 

워낙 산줄기가 낮다보니 천연의 국경역할을 하지 못한 관계로 역사적으로도 자고나면 국경이 바뀌었는데

특히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마지막 국경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백두대간에서 중화지구는 아무리 낮아도 엄연한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에

대간을 따라 도계를 정해야 하는데 산경표의 기본원리인 산자분수령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탓에

지금까지도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고 물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은 마을 앞에서 산속으로...

 

비록 중화지구는 아니지만 속리산 문장대에서 늘재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넘어 상주가 침범하면서

근래 문장대 용화온천 개발을 둘러싼 충북과 경북의 싸움은 분수령을 지키지 않은 도경계선에 원인이 있다

용화는 경상도 땅인데 대간을 넘어온 탓에 물은 서쪽 한강으로 흘러 충북땅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돈은 경상도에서 벌고 수질오염은 충북의 몫이고...

담 구간 형제봉에서 문장대까지 도계를 이루다 다시 늘재를 넘어 청화산에 가서야 도계가 복원된다

 

이제 정상적으로 마루금에 접속한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남원의 팔랑치 일대가 백두대간의 동쪽에 있는데도 전라도 땅이고

삼봉산 구간에서 만났던 전북 무주와 경남 거창을 있는 소사고개에서도 무주 방향으로 마루금이 벗어나 있어

웃지 못할 생활의 불편함과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내땅에서 열심히 일해서 세금은 경상도에 내야하고.. 버스도 경계까지만 운행하고...

 

지도상 슬랩구간을 오르면

 

은왕봉 갈림길 - 마루금은 우측으로...은왕봉은 담 기회로...

 

은왕봉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다보면 다시 좌측으로 이어가는 마루금이 보인다

 

좌측으로 전망이 트이면서 오늘 계속 좌측에서 동행해 준 선교리 원통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좌측으로 꺽이는 신의터재 전위봉에서 담아 본 좌측 원통산과 우측으로 가야할 장자봉

 

신의터재에서 식후경

신의터재(신의현)임진왜란 이전 "신의현"

임진왜란 때 김준신이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뒤 물리치고  장렬하게 전사한 사실이 있은 후부터 신의 터재로 불리웠다고 한다.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 정책으로 상주시 내서면 어산리에서 이름을 따서 어산재였다가 96년 신의터재로 바뀌었다고 한다

 

신의터재에는 신와 장목상 선생의 치산 공적비도 세워져 있다 - 뒷면에 내용이 있다

 

어찌 됐든 치산치수治山治水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니... 참으로 반갑기는 한데...

이명박 정부가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밀어 붙였던 4대강 사업도 치수인가ㅋㅋ  

4대강으로 흘러들어간 돈 때문에 정부지원사업도 돈이 없어 지원이 중단되는 바람에 애를 먹었던 기억... 

다시 4대강 보가 새로운 환경재앙으로 서서히 다가오면서 이 공적비 하나가 새롭게 보인다

 

신의터재의 유래가 된 김준신 의병의 유적비가 남겨져 있다

 

 

잠시 후 윤지미산 아래 판곡저수지 아래 낙화담에도 김준신 의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신의터재에서 식후경 후 다시 출발 잠시 후 좌측으로 원통산과 멀리 윤지미산 그리고 오늘의 날머리 화령(화살표)을 담아 본다

 

소삼각점도 지나고

 

지도에 나와 있는 안부를 지나고

 

장자봉을 향해 올라가는데 우측 장자골 방향으로 돌들이 기차바위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장자봉 아래  돌적골 마을은 돌이 많이 쌓여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정표를 넘어가는데 우측으로 장자봉이 보이고 좌측으로 무지개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장자봉 직전 좌측으로 전망이 열리면서 멀리 윤지미산을 담아 본다

 

판곡저수지위(윤지미산 아래)馬輪(말구리)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윤지미산 산세가 여기 멀리서 보니

지형이 몹시 가팔라서 말이 굴러떨어졌다는 고개 밑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과 어울린다는 생각...

그런데 자세히 보면 말이 수레(輪)를 끌고 가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어릴 때 소몰이 생각을 잠시...

그런데 저 산에 올랐다 내려올 일이 장난이 아닐것 같다. 말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구 굴러 떨어질 것 같다...

 

장자봉 갈림길에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잠시 우측으로 해서 장자봉을 들러본다

장자長者봉  330m 

백두대간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장자봉은 상주시 화동면 어산리의 마을로 장자(부자)가 살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또 상주시 홈피에 들어가 보면 임진왜란 때에 왜군의 북진을 알리기 위해 봉화대에 불을 지피는 장작을 이 마을에 쌓아 둔 사유로

장작 마을로 부르다가 장자발로 되었다고도 한다. 

《잔(小)+자(山)+발(山)=잔 자 발→장자 발. ‘작은 산골짜기’의 뜻이다.》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까지.

 

장자봉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長者는 큰 부자의 높임말이고, 점잖고 너그러운 사람  곧 덕망이 뛰어나고 노성한 사람을 말하고

불교에서는 덕행이 뛰어나고 나이가 지긋한 사람을 높여 일컫는 말이다

20세기 전반기 한국말의 보고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박경리 作 토지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이놈아! 밤에는 잠 안 자고 머했더노. 사대육신 멀쩡한 놈이, 세 끼 밥만 축내고 니가 무신 장자 새끼라고 ..."

 

장자봉에 오르니 어산리 방향으로 조망이 열린다

 

그런데 한자를 子로 쓰면 우리가 잘 아는 부모에게서 처음 태어난 아들 맏아들(큰아들)을 일컫는 말이다.

한자 長은 우두머리를 칭하기도 한다

족장[族長]은 한 부족[族]의 우두머리[長]이고, 군장[君長]은 정치적인 지도자란 뜻을 품고 있는

집단의 우두머리[[長]를 나타내므로 임금을 칭하기도 하고 원시부족사회의 우두머리를 칭한다고 한다

 

성황당터 흔적도 보이고

 

무지개산 갈림길

 

삼각점이 있는 무지개산

무지개산 433.7m (441.4m)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살짝 비켜있는 육산으로 이름은 정상 남쪽 골짜기의 무지개 폭포에서 유래했다.

선녀들이 내려 올 때는 이 폭포에서 무지개가 생겨 하늘로 뻗치면 그 무지개를 타고 선녀가 내려온다고 한다.

아름다운 무지개 폭포가 있고, 주변에는 낙화담,철새도래지,판곡저수지 등이 있다

 

닥터 블루베리 갈림길 - 무지개산 전 부터 비가 오락가락... 이왕 올거면 많이 좀 내리지... 지금 곧 가뭄이 심각할 것 같은데...

 

잠시 후 만나게 될 좌측 윤지미산과 숭덕지맥에서 큰 산 우측 노음산(725.4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조망된다

 

그런데 신의터재에서 봤던 김준신의병 전설이 놓아 있는 낙화담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조망이 허락치 않는다

 

숭덕지맥 갈림길...좌측이 마루금이고 우측으로 잠시 숭덕지맥 분기봉에 들려 본다

 

숭덕지맥길에는 누군가 나무로 길이 없슴 표시를 해 놓았다. 대간길에서는 소중한 표시이지만 숭덕지맥 하시는 산객에게는 소중한 길이다

438봉   **  숭덕지맥(崇德枝脈)   갈림봉

이안천과 병성천의 분수령으로 하여 영강에서 생을 다하는  49.9 km의 산줄기로 영강은 흘러 낙동강에서 합수하게 된다

 

 

역시 대간길은 만만치 않다. 오늘의 최고봉 답게 몇구비 굴곡을 주어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하라 얘기하고... 물안개까지 축하하면서..

 

그것도 비가 내렸다고... 물안개속의 판곡 저수지와 그 아래 더 내려가면 낙화담까지... 선교리 낙화담은 꼭  한번 찾아 보시지요

 

오늘의 최고봉 윤지미산

윤지미산 :   청원상주고속도로가 지나 가는 곳

예로부터 소머리산으로 불리어 왔다는 자료 밖에 특별한 유래는 알 수가 없다

판곡저수지위에 馬輪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노루골밭에서 윤지미산을 보면 말이 수레를 끄는 형태와 비슷하다. 

"輪支美山"  支는 고개라는 백재어이고 美는 산이라는 의미이니,  믿거나 말거나 그럴 듯하게 들리는 이야기 들이다.

 

윤지미산에서 담아 본 속리산 방향

 

윤지미산에서 내림길도 말이 떨어질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날만큼 가파르고... 비까지 덤으로 내려...

마을 이름하나도 허투로 하지 않는 선조들의 예지에 실감하고 실감하고... 윤지미산을 되돌아 본다

 

잠시 포장된 수렛길도 만나고

 

화령재 내림길도 만만치 않고... 끝났다고 생각하면 다시 나타나는 소삼각점 봉을 지나고

 

당진영덕(청주상주) 고속도로 터널 위를 통과하면

 

오늘의 날머리 화령이다

화령化寧 : 경북 상주시 화서면 상곡리

고려조(高麗朝) 성내(城內)에서 가장 큰 상가(商街)로 번화(繁華)하였던 곳이라하여 화령장(華令場)이라 불릴만큼 중요한 곳이다 보니

무사들이 살았다는 무동, 현감이 살았다는 항현, 관곡을 보관했던 창고 있었던 창안 등의 지명이 지금도 당시 그데로 남아 있다

뒤에  화령장(化寧場)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행정구역상 화서면이라 부르지만 지금도 화령초,중,고등학교가 남아 있는 이유이다.

 

화령시장으로 이동 뒤풀이로 거인산악회 17기 대간팀과의 첫 대간길을 마감한다

 

첫 만남에 이런 풍성한 대접까지... 감사합니다.

 

 

 

수많은 생명 꽃들이 일제히 세상 밖으로 피어나는 계절 4월은

봄비가 겨우내 잠든 뿌리를 깨워 만물의 움을 세상 밖으로 틔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엘리어트라는 영국시인이 쓴 황무지(荒蕪地)라는 싯구절에서

죽은 땅 황무지에서 아름다운 라일락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며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표현했다

황무지에 싹을 틔우는 새생명의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잔인할 수 밖에 없는 심정 

우리에게도 4월은 제주4.3항쟁, 4.19등의 역사적 사실들에

죽을 死의 의미까지 더해 나름대로 잔인한 달이지만

 

물오를 대로 올라 나무마다 풍성한 잎을 돋우는 달 4월 초입에 만난

대간 길 삼백三白의 고장 상주尙州市의 땅 중화지구 구간에서의

초보산꾼과 거인 산악회 대간 17기 팀과의 첫 만남

 

 

옛말에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는데 초보산꾼이 자주 쓰는 단어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만남과 헤어짐이 이루어지는 사회라는 울타리는

우리가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융화되어 함께 한다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제잘난 맛에 잘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인생이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각해보면

결국 허접하기 이를데 없는 삶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나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허접하기 이를데 없는 삶을 살아가는 중에도

만났다 또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면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고 질길 것 같던 인연도

해어지고 나면 어느새 또 다른 질긴 인연이 옆에 다가와 있고

그래서 시절인연이란 말이 나왔나 보다

 

시절은 우리가 잡는다고 잡아지는 것이 아닌 만큼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시절인연을 소중히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

서로 사랑할 시간도 많지 않은데

소중한 인연을 소흘히 하기에는 하루가 아깝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랜만에 함께한 홍장천대장님과 대간길.. 

소중한 시절인연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이렇게 찾아 왔기에

초보산꾼의 얼굴이 보이는 한

서로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거인산악회 17기 대간팀 산우님들 오늘 하루도 수고했습니다.

볼 만한 것도 없는데 날씨까지 도와 주지 않고...

오늘 하루 산행을 마치고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 온 것도

산우님들이 초면부터 오랜친구처럼 대해주신 분위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담 구간에 뵙겠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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