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한국 국가대표팀과 우루과이 대표팀 간의 친선경기가 벌어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 경기가 시작되기 2시간 전, 신임 붉은악마 대의원장인 장석호씨를 만났다.
실제적으로 대의원장은 붉은악마의 회장이라고 볼 수 있다. 붉은악마 회장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던 기자는 장씨를 처음 봤을 때, 선뜻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일반 축구팬들과 같은 수수한 차림에 놀랐다.
인터뷰 장소는 그리 좋지 않았다. 공원이라지만 햇볕을 가릴 만한 마땅한 공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옆에서는 식사를 하고, 아이들이 경기를 기다리며 뛰어놀고 있어 분위기는 정말로 어수선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비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붉은악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실하게 제시하기도 하였고,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짚어내기도 했다. 붉은악마 신임 대의원장 장씨와의 인터뷰에서 기자는 붉은악마의 미래, 한국 축구의 문제점, 그리고, 한국 축구의 나아가야할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장씨는 현재 K리그 프로축구단 부산 아이콘스 서포터즈 회장이면서 웹 에이전시 대표이기도 하다.
붉은악마 대의원장 겸 부산 아이콘스 서포터즈 회장 장석호씨
- 현재 붉은악마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어제 있었던 붉은악마 대의원 총회에서 붉은악마 공식 대의원장으로 선출됐다. 공식적인 붉은악마 회장이 된 셈이다."
- 언제부터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었는가?
"1997년 3월부터 프로구단 서포터즈로 활동을 시작했다. 별다른 계기는 없었고, 축구가 좋아서 시작했다. 그때는 PC통신이 인기였는데 PC통신 동호회를 통해 당시 부산 연고 축구단이었던 부산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콘스)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축구를 사랑하니 당연히 연고지인 부산 축구단을 응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붉은악마 응원을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7년 브라질전부터였다. 그러나 부산에 살고 있어서 직접 응원은 하지 못했다. 창단 멤버라고 볼 수 있다. 직접 응원을 시작한 것은 1997년 11월 1일 월드컵 지역예선 한일전부터였다. 그때 한국이 0대2로 패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 지금까지 붉은악마는 축구문화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신임 대의원장으로써 부담되지는 않는가?
"우리는 축구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니다. 축구 발전을 위해 기여를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냥 평소에 하는데도 응원하고, 회원들끼리 서로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가면 된다고 본다. 축구문화까지 거창하게 이야기할 것은 없고, 열심히 응원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축구가 붉은악마보다 더 중요
- 프로축구단 서포터즈, 붉은악마 활동,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프로축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국가대표는 평소에 상시 운영되지 않는다. 성인축구는 프로리그에서 기량을 닦고, 경기력을 키운다. 그중 잘하는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모여 경기를 치르는 것이 진정한 국가대표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프로리그가 발전해야 자연적으로 국가대표의 실력도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프로리그가 국가대표에게 가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대표 이벤트에 따라 프로리그의 일정이 바뀌는 등 프로리그가 국가대표를 따라가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의 경우 선수들은 당연히 프로 소속팀에 의해 움직인다. 유럽리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국내 리그도 스케줄 등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프로리그가 재미있고, 더욱 가까이서 프로경기를 하다 보면, 국가대표까지 시너지 효과가 갈 것으로 본다."
▲ "붉은 옷을 입은 그대들이여 CU@K리그를 기억하는가"
ⓒ2003 임채우
- 항간에는 한국에는 프로축구는 없으며 'FC KOREA'만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어느 정도 축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느끼는 보통의 느낌일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국가대표 응원을 열심히 한다. 하지만, 프로리그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들의 국가대표에 대한 사랑은 깊다. 그렇기에 그것이 작년 월드컵의 성공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프로축구의 인기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한국축구의 문제점은?
- 올해 프로축구 평균관중이 경기당 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일단 경기력이 문제인 듯 보인다. 현시점에서 국내 프로축구가 그다지 재미없는 것은 사실이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보다는 파울이 난무하고, 수비축구와 이기기 위한 축구가 난무하고 있다. 국가대표에 비해 절대적으로 프로리그가 작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슈만 생긴다면, 다시 인기가 상승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내 프로팀 중 대전시티즌을 보자. 대전시티즌은 작년까지만 해도 해체위기에 놓였던 팀이었다. 그런, 지금은 성적뿐만 아니라 인기면에서도 최고를 누리고 있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지역연고제가 정착되어야 한다. 팬들과 선수들이 동질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부산 팀이라면, 부산출신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출신의 선수가 많이 나와야 지역에서의 인기가 상승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 위해서는 유소년 축구 시스템도 정착이 되어야 한다.
프로구단 측에서는 행정적인 면이 안 되어 있다고 한다. 학생축구에서 4강제도, 8강제도 때문에 유소년 시스템 발전이 어렵고 한다. 엘리트 육성위주의 체육 시스템이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지금도 구단에서는 충분히 유소년 축구를 발전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용인FC의 경우 프로팀은 아니지만 17세 이하 국가대표팀 중앙수비수 선수(정인환 선수)를 세리A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 8일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전에 모인 붉은 악마들
ⓒ2003 김성배
- 좋은 선수들의 해외진출, 심판 판정 시비가 주요한 이유라고 보는가?
"물론 팬 입장에선 좋은 선수를 많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유상철 선수가 일본에서 국내로 돌아와서 활약하는 것이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선수들의 해외진출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좋은 선수는 유럽 등 좋은 데로 나가면 좋은 거고 또 다른 선수가 나와서 좋은 활약을 펼친다면 그것으로 축구팬들은 만족할 것이다.
다만, 심판의 오심은 문제가 있다. 사실 어디를 가든지 심판의 오심 문제는 있다. 월드컵 때 최고의 심판들이 모였지만, 판정시비는 발생했었다. 문제는 오심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항의하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심판의 권위를 떨어뜨릴 뿐이다. 이런 모습이 지속되면, 팬들이 자칫 지겨워할 수 있고, 그만큼 인기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 혹, 프로구단이 모기업 홍보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문제가 있지는 않는가?
"프로야구 등 다른 스포츠에 비해 덜한 편이라고 본다. 대구FC, 대전시티즌 등 시민구단이 많이 생기면서 모기업을 가지고 있는 구단들도 많이 바뀌었다. 많은 축구단들은 모기업 홍보보다는 시민과 함께 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구단 독자적으로 이윤을 창출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산아이콘스의 경우도 독립 법인으로 구단을 바꾸고, 지금은 독자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문제는 그 구단이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부천SK 같은 경우 축구팀 운영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런 모습이 관중 감소의 원인을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관중 감소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경기가 재미없어지는 것, 선수들끼리 동업자 의식이 부족한 것 등이 문제인 듯 보인다. 혹자는 "축구는 전쟁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선수들끼리 리그를 살리기 위한 동업자 정신이 필요하다.
그래도 가장 큰 문제는 행정적인 문제라고 본다. 축구를 즐길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없다. 지금도 법적으로 구단이 축구경기장을 보유할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팬들을 위한 구장운영은 나오기 힘들다. 유소년 팀을 위한 제도적인 받침도 없다."
▲ 붉은 악마들의 태극기 섹션
ⓒ2003 임채우
한국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
- 프로축구 인기상승을 해결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제도적인 장치부터 바뀌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고, 지역 연고 정착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구단도 홍보를 위해 노력을 해주어야 한다."
- 서울에는 아직도 프로축구단이 없다. 프로축구 인기상승을 위해 서울구단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필요하다면, 어떠한 모습의 구단이 적당한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1000만 인구가 사는 서울에 프로팀이 없다는 것은 정말로 아이러니한 문제이다. 이렇기에 많은 서울 축구팬들이 성남, 부천, 수원, 안양 등의 축구팀의 팬인 경우가 많다. 서울에 2~3개 팀이 있어 더비매치(같은 도시가 연고지인 팀들끼리 맞붙는 경기)를 펼친다면, 프로축구 인기상승에 크게 도움이 될 듯 보인다.
프로야구 서울 팀들인 두산베어스와 LG트윈스를 보면, 서로 견제하며 프로야구 인기에 도움이 되는 듯 보인다. 외국에서 많이 벌어지는 더비매치를 보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서울 팀이 생긴다면, 시민구단이 생겨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축구가 가야 할 긍정적인 모습이 시민의 주인이 되는 구단이라고 생각한다."
▲ 많은 서울 시민들은 서울 프로축구 팀의 창단을 원하고 있다.
ⓒ2003 임채우
- 우리나라에는 FC대구가 있고, 대전시티즌도 시민구단을 모방하고 있다. 지금 현재 국내 프로리그를 볼 때 시민구단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필요하다. 유럽의 경우 시민의 주축이 되어서 만들어진 시민구단이 많고, 인기도 많다. 이탈리아 세리A의 유벤투스의 경우도 시민들끼리 우연한 기회에 의기투합하여 축구팀을 만든 것이 세계적인 축구클럽 탄생의 시작이었다.
당장 재정적인 면이나 여러 가지면 에서 시민구단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시민이 프로팀의 주인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시민구단이 기반을 잡기 위해서는 10~20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먼저 프로축구연맹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일본 J리그의 경우 시즌이 끝나면, 바로 다음 시즌 스케줄을 발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K리그의 경우에는 한 두 달 전이 되어서야 발표를 한다.
대한 축구협회는 프로축구 스케줄이 결정되면, 국가대표 경기를 그 스케줄에 맞추어야 한다. 올해 몇 차례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K리그가 국가대표 경기 때문에 스케줄을 조정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프로축구도 국가대표만큼이나 중요하다. 일정은 연맹이나 협회 차원에서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
▲ 국가대표 선수들이 경기 후 붉은 악마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03 김성배
붉은악마의 미래
- 앞으로 붉은악마를 어떻게 운영해나갈 것인가?
"이제는 예전의 붉은악마 체제가 아니라 붉은악마 연합 체제라고 볼 수 있다. 지역 붉은악마가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예전에는 중앙에서 이벤트를 준비하고, 붉은악마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각 지역 붉은악마가 지역에서 벌어지는 경기나 이벤트를 자발적으로 준비하게 된다.
이런 체제 안에서 모든 국민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붉은악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다 함께 꾸며가게 되길 바란다. 일반 국민이 붉은악마 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붉은악마가 일반 국민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노력하고 싶다."
첫댓글 동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