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몸도 마음도 지친데다가 입맛까지 잃었다면 이제는 그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야 할 때다. 먹거리 풍부한 계절, 가을이 왔기 때문이다.^^ 가을하면 역시 전어를 빼 놓을 수 없다.
전어는 청어과에 속하는 생선으로 비교적 작은 크기의 기름진 맛을 지니고 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올 만큼 고소한 향을 풍기는 전어구이는 먼 동네 어귀에서부터 입맛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고, 아작아작 뼈와 함께 씹히는 탱탱한 전어회는 그 질감만으로도 입이 즐거워진다. 게다가 갖은 양념에 무쳐먹는 전어무침은 제아무리 맛있다는 가자미무침, 서대회무침 총 동원해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고소하고 진하다.
가을의 제 맛을 만끽할 그 첫 번째 주자 <전어> 이제부터 전어의 맛을 제대로 즐겨보자.
가을 대표 맛선수, 살아 있는 전어
전어는 워낙 성질이 급해 하루만 지나도 발라당~ 뒤집어져 죽어 버린다.ㅡㅡ;; 살아 있는 동안의 전어는 무척이나 분주하다. 뭘 그리 할 일이 많은지 연신 왔다갔다.... ^^ 이런 전어를 두고 성질 급하다는 이유를 대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살던 바다가 아니라 죽어 버린다는 일견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전어는 반드시 살아 있을 때 먹는 게 맛있다는 얘길 하고 싶다. 게다가 회나 무침은 살아 있는 걸 확인하고 먹어야 뒤탈이 없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생이 아니더라도 보관만 잘 하면 된다고 하는데 글쎄.. --;)
살이 있을 때 먹어야 제맛! 전어회
전어는 워낙 크기가 작고 살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비늘과 내장만 제거한 뒤 뼈째 썰어 먹어야 고소한 맛을 최대한 느낄 수 있다. 전어 회 뜨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최대한 물기와 맞닿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살이 물러지지 않고, 은은한 기름향이 온전히 유지된다. 또한 전어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핏물 제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워낙 기름향이 강하기 때문에 미묘한 피비린내도 거슬리게 된다.
전어 회는 초고추장보다는 된장이 더 잘 어울린다. 고소한 향이 구수한 된장과 만났으니 이 보다 더 환상적인 게 어디 있을까… 상추에 깻잎 한 장 얹고 그 위에 풋고추와 마늘 그리고 된장을 턱~ 올려 한 입 가득 밀어 넣고 우거적우거적 씹는 전어회의 맛! 죽음이다.^--^ 머릿속 공명으로 울리는 빠작빠작~ 뼈 으스러지는 소리도 경쾌하지만 입 속에서 요동치는 전어의 기름진 살맛이 몸서리 쳐지도록 짜릿하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바로 그 전어 구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했다는 그 전어 구이다.^^ 가장 이상적인 구이는 연탄불에 구워 먹는 것이지만 도회지에서 연탄불에 구워 나오는 전어를 구경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살짝 칼집을 내어 곱게도 구워 냈다. 엿 문헌에 따르면 전어 머리에는 깨가 서말이라 했다. 얼마나 고소했으면 그런 기록까지 있을까? 그러니 전어구이는 머리까지 통째로 먹어야 한다. 구운 전어의 살맛은 소보로 같다. 부드럽고 입자 고운 소보로… 여리디여린 살이 입속에 들어가면 씹을 틈도 없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전어는 잔가시가 많지만 워낙 연하기 때문에 그냥 씹어 먹어도 된다. 마치 피라미를 구워 먹듯 전어구이는 참 흥미롭다.
득량만 갯마을의 전어 무침
지금까지 먹어 봤던 그 어느 무침보다 최고로 훌륭하다. 매콤한 간과 아삭한 미나리, 무엇보다 썰기를 제대로 썰어 씹는 맛이 일품인 전어 회. 그 어우러짐이 예술이다. 전어를 세로로 통째로 썰어 뼈와 함께 씹는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입 속에서 뽀드득뽀드득 씹는 게 즐겁다. 감탄에 겨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전어 무침이 이런 맛이었다니 지금까지 먹었던 전어무침은 그럼 뭐였단 말인가...ㅡㅡ;;
전어가 미나리와 양파, 오이를 만났을 때, 전어무침
상추에 싸 먹는 이도 있지만 전어무침의 각 재료들이 워낙 개성이 강해 굳이 상추와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비록 언양 미나리는 아니지만 향이 강한 미나리와 달콤 알싸한 양파, 물기를 한껏 머금은 오이, 이 모두를 입에 넣고 씹는 맛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참치회덮밥은 명함도 못 내밀 전어회 비빔밥
나를 또 한 번 뒤집어지게 만든 장본인. 전어회덮밥. 정확히 말하자면 전어회무침 비빔밥이다. 속초 회국수집에서도 이와 비슷한 걸 먹어 본 일이 있다. 가자미무침으로.. 그 맛도 훌륭했지만 전어회 비빔밥은 깊고 묵직한 맛으로 일단 한 발 앞선다.
밥과 생생한 전어회, 신선한 야채, 그리고 환상의 초고추장.. 더 이상 표현할 말이 없다. 게다가 고소한 참기름까지 더해지니 참치회덮밥 정도는 명함도 못 내민다.
올해 내가 맛 본 음식 몇 가지를 베스트로 꼽으라 하면 반드시 전어회 비빔밥도 들어가리라. 베스트 원은 태평초인데 언제 기회가 되면 다뤄 보기로 한다.
고슬한 밥과 뒤엉켜 있어도 도도한 전어회
고슬한 밥과 뒤엉켜 있어도 저 도도한 전어회를 좀 보라. 싱싱하다 못해 광채까지 풍기는 푸른빛 등 .. 아직도 기운이 남아 있을 듯한 살점... 입 속을 맴도는 전어의 찰지고 탱탱한 느낌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ㅡㅡ;;
가을이 너무도 고맙다. 풍요로운 과일과 맛난 재료들.. 그 것으로 가장 이상적인 음식을 만들어 내는 우리 인간들.. 그 맛으로 나는 가을의 행복을 만끽한다. 해마다 돌아오는 가을이지만 2005년의 가을은 더욱 새롭게만 느껴진다.
제 시기에 맞는 음식이 가장 맛있다. 지금이 바로 전어철이다. 수족관 달린 동네 포장마차, 시내 잡어횟집, 대형횟집, 이제는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집에서 가까운 곳 어디라도 좋다. 전어 한 접시에 우리의 가을을 느껴보자.
마침 서해 남해 지역에 전어 축제가 열린다. 여행이라도 계획하였다면 이 참에 먼 길 나서도 좋을 듯싶다.
첫댓글 어때요~ 군침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