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중 &남부 관광지역
* 메콩델타의 중심도시, 미토(My Tho)
메콩(Me Khong)강은 티벳고원에서 발원하여 미얀마, 라오스, 태국 국경선을 이루다 캄보디아를 지나 베트남을 통해 남중국해로 장장 4,350km를 흐른다. 메콩델타(삼각주)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호치민시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정도를 가야한다. 메콩델타의 입구에 위치한 미토시는 비옥한 토양을 기반으로 생산되는 풍족한 농작물과 메콩강의 싱싱한 수산물로 유명하다.
미토시 자체에는 그다지 볼거리가 없다. 미토시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메콩강의 크루즈여행을 위해서 미토를 찾는다. 메콩의 크루즈는 미토의 선착장에서 뱃길로 45분 거리의 타이손섬을 일주하는 코스로 대자연미가 충만한 정글 속으로 관광객들을 이끌어 여행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타이손 섬은 망고나 파파야 같은 열대과일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타이손 섬으로 가는 도중의 울창한 양쪽 강변과 메콩강의 웅대한 흐름을 체험하면서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타이손 섬 일주는 한 시간 정도 걸리며 과실나무 숲이 있어 한 두개 정도 따먹는 재미있는 경험도 해볼 수 있다. 빈짱 사원이나 코코넛 사탕 공장 견학 등의 코스는 수로를 따라가면서 대자연의 풍광을 즐기는 멋진 여정이 된다.
호치민시에서 단체 여행으로 예약하면 호치민시에서 미토시까지의 교통비를 포함하여 일인당 US$7이면 된다.
* 붕따우(Vung Tau)
붕따우시는 호치민시에서 남쪽으로 125km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변도시로 프랑스의 식민지배 시절부터 호치민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식민당국의 관리들을 위한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붕따우는 해변휴양지와 더불어 Large Mountain(Nui Lon)과 Small Mountain(Nui Nho)의 흥미로운 산책코스 그리고 몇 개의 유명한 사원들 때문에 현재 호치민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한국군과 미군의 주월사령부 휴양소가 위치했었다. 또한 이곳은 베트남 동남해안의 석유개발에 유리한 거점지역으로 각국의 석유회사들이 모여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석유개발공사도 이에 참여하고 있다. 붕타우는 크게 두 지역으로 구분된다. 응우옌 반 티에우(Nguyen Van Thieu) 전 대통령의 별장을 중심으로 호텔과 도로가 있는 곳을 구 붕따우(Front Beach), 커다란 예수상이 서있는 산을 지나 붕타우에서 가장 긴 해변이 펼쳐 있는 지역을 신 붕따우(Back Beach)라고 부른다.
신 붕따우에 펼쳐진 투이반 해변은 붕따우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해변이다. 해변주위에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그늘을 제공해주며 식당, 방갈로, 파라솔 등과 잘 어울려 남국의 정취를 맘껏 즐길 수 있다. 해변은 모래가 부드럽고 수심이 낮은 바다가 넓게 뻗어 있어 해수욕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붕따우는 가장 더울 때의 기온이 31∼32℃,가장 추울 때가 24∼25℃로 사계절 내내 해수욕이 가능한 도시로 새파란 하늘에 화염수(火炎樹)의 붉은 꽃이 선명하게 비치는 매력적인 도시다. 게다가 호치민에서 가까우므로 주말이 되면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이외에도 붕따우는 야시장으로 유명하다.
- 티에우별장 : 구 붕따우 언덕에 자리잡은 이 별장은 원래 1920년에 프랑스총독의 별장으로 세워졌으나 나중에는 월남의 티에우 대통령이 별장으로 사용하였다. 월남전 패망 당시 티에우는 이곳에서 머물다가 해외로 탈출했다고 한다. 건물은 프랑스풍이며 1층은 박물관으로 17세기경 침몰선에서 건진 많은 골동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2층은 티에우대통령의 거실로 사용되던 곳으로 매우 소박한 모습이다. 이곳은 Front Beach의 북쪽 끝 언덕에 부켄벨리아와 자스민에 둘러싸여 2층 창문에 서있으면 여름별장답게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며 붕타우 시내의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가 있다.
-거인예수상 : 거인예수상은 베트남 최남단인 바이두아 해변 Nho Mountain 에 위치해 있으며, 커다란 팔을 양옆으로 뻗은 모습으로 우람하게 서있습니다. 높이 30미터의 이 예수상은 1974년에 Nho Mountain 북쪽 끝에 세워졌으며 동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판티엣(Phan Thiet)
베트남 중남부해안의 빈투언성(BINH THUAN)에 위치한 판티엣은, 호지민으로부터 북동쪽에 있다. 베트남의 유명한 물고기로 만든 간장인 늑맘의 고장이라서 해변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생선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호지민이 청년시절 교사생활을 했던 유명한 덕탄 중고교가 있고, 유명한 무이네해변, 무이네사막은 베트남의 명물이 다. 베트남에서 사막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판티엣은 인도차이나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자숲 해변으로 유명하다. 현재 이곳은 Dune and Ocean 이라는 골프코스가 해변을 따라 조성되어 골프 매니아들을 유혹하고 있고 또한 Suoi Hong이라는 사막의강 주변 경관은 매시마다 변화하고 있어 많은 현지 관광객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아름다운 야자숲이 위치한 Hon Rom 지역은 리조트가 잘 발달 되어 있으며 이 지역은 16세기 까지는 참파라는 참족의 나라가 있던 곳이라 힌두교식 참파 탑이 곳곳에 산재하여 또 다른 관광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이곳은 베트남 대도시에서 근무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이기 때문에 베트남 연휴 중에는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을 구할 수가 없다.
- 화이트샌둔 : 강한 바람과 모래 딴 세상에 온 것 같다
- 레드샌둔, 모래언덕 : 모래썰매도 탈 수 있는 곳이고 특히 일출을 보기 좋은 곳이다.
- 선녀의 시냇물 : 무이네시내에 위치하며, 신을 벗고 맨발로 계곡을 따라 걸어간다. 1km쯤 된다.
* 냐짱(Nha Trang)
호치민에서 북동쪽으로 약 450km에 위치한 냐짱은 남중국해 연안에 펼쳐진 어업과 휴양의 도시이며, 고대 참 왕국의 유적이 많아 관광도시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이곳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야전사령부와 십자성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인연이 깊은 도시이기도 하다. 새하얀 모래사장이 6km나 이어지고 푸른 야자수 나무가 많아 수영하는 사람들이나 산책하는 사람들이 햇볕을 피할 수 있다. 바다에는 작은 섬이 몇 개 떠있고 파랗게 빛나는 바닷속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빠져 들것 같다. 야자나무 그늘 밑에는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있고 일광욕을 하는 외국인과 아침저녁으로 해수욕이나 낚시를 하러오는 이 지방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냐짱은 또 이 지방 최대의 어항을 가지고 있는데, 카이 강 하류에 있는 항구에는 파란색과 빨간색을 한 어선이 수백 척이나 모여 있다. 물론 신선한 해산물도 매력적이다. 대하와 바다제비, 비둘기를 재료로 하여 만든 명물 '이엔보우카우 요리'는 꼭 시식해 보는 것이 좋다.
연평균 27℃ 정도로 평균 강우량은 2,066mm이다. 1월에서 2월까지는 시원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3월부터 더워지기 시작한다. 7∼8월에는 습기가 82%이며, 폭풍우가 잦다. 11월부터 12월까지는 우기이다. 쯔엉썬(Truong Son)산맥의 영향으로 남부지방과 다른 기후를 보인다. 중부라고 해도 남쪽은 비가 많은 편이고 북쪽은 비가 적은편이다. 8월-1월까지의 우기에는 비가 많으며 8,9월에는 태풍이 온다. 5월-8월에는 비가 적은 혹서가 계속된다.
이곳의 주요 볼거리는 참파 왕국의 유적, 포 나가르 탑, 바오다이 황제 별장을 비롯한 많은 역사적 유물들이다. 현지인의 일상을 체험하고 싶다면 담 시장으로 가보는 것도 좋다.
- 포 나가르 탑(Thap Po Nagar)
냐짱의 북쪽을 흐르는 꼬이(Coi)강 언덕에는 7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조성된 참파왕국의 사원인 포 나가르(Po Nagar)가 위치하고 있다. 현존하는 참파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포 나가르(Po Nagar)’란 10개의 팔을 가진 여신을 말한다. 포 나가르 사원 입구 오른쪽에는 명상전의 10개 팔각벽돌기둥이 현대 조각작품과 같은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참파왕국의 건축물은 사암을 잘라서 조성한 앙코르왓트와 같은 웅장함은 없으나 대지를 의미하는 흙에 파괴와 생명을 상징하는 불을 가한 흙벽돌로 지어졌다는 것 자체에 카다란 종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원래 7내지 8개의 탑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되나 현재는 4개만 남아 있다. 각 탑사원 내부는 주실과 복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복도의 폭이 좁고 협소한 공간에 향을 지속적으로 피운 관계로 그을음이 건물 내부에 끼어 있다. 탑사원 상층부에는 사암으로 조각된 인도신화와 힌두교의 신들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으며, 탑사원 뒤편에 자리한 비석에 한자와 참파어로 비문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탑사원 안에는 포 나가르 여신을 믿는 많은 숭배자들이 방문하여 참배하고 있다.
- 바오다이 별장
1923년에 지은 응우옌(Nguyen) 왕조 최후의 황제 바오다이의 별장이다. 프랑스 식민통치시대의 콜로니얼양식의 건물로 다소 낡기는 했지만 고전적이며 우아한 건축미를 자랑한다.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높직한 언덕위에 있으며 현재는 바오다이 호텔로 상용되고 있다.
- 담 시장
거대한 원 모양의 건물 외관이 인상적인 시장이다. 건물 주변에 노점들이 많고 안에는 작은 인공 호수도 있다. 가전제품, 완구, 의류, 식료품 등 모든 일상 용품을 판매한다.
- 롱썬사(Chua Long Son)
스님들이 거주하는 이 절은 19세기 말에 세워졌고 세월이 흐르면서 몇 차례 개축되었다. 베트남 사찰의 본전에 모셔진 부처는 아미타불과 관음보살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현세적이고 구복적인 면모를 알 수가 있다. 롱선사의 본전은 현대적인 모습의 불상과 벽화로 깔끔하게 장식되어 있다. 본전 뒤로 152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작은 동산 위에 20m의 부처상이 냐짱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부처상의 기단부 정면에는 1963년 응오 딘 지엠(Ngo Dinh Diem) 정권의 불교 탄압정책에 항의하기위해 분신자살한 틱 꽝 득(Thich Quang Duc) 스님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틱 꽝 득 스님과 같이 분신한 여승들의 모습도 부처상의 기단부를 돌아가면 조각되어 있다. 원래 이 절은 틱 꽝 득 스님과 같이 분신한 여승들이 지냈던 곳으로 이들을 기리기 위해 부처상을 조성한 것이다.
- 알렉산더 예르신(Alexander Yersin)박물관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외국인의 한 사람인 예르신 박사는 1891년 냐짱에 온 이래 1943년 운명할 때까지 50년이 넘는 기간을 베트남의 의학, 질병퇴치, 자연과학 발전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그는 스위스 출신 프랑스인으로 유명한 파스퇴르 박사의 제자다. 1895년 냐짱에 파스퇴르 연구소를 설립했고 1902년에는 하노이에 의과대학을 설립하여 베트남 현대 의학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또한 그는 4년 동안 중부고원지방을 여행하고 여행기를 집필하였고, 달 랏(Da Lat)을 발견하여 개발하도록 건의함으로써 프랑스 식민 당국에 의해 달랏이 1912년부터 하계 휴양지로 개발되게 된다. 박물관에는 예르신 박사가 사용하던 침대, 책, 현미경, 실험 도구, 일상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베트남 문공부에서는 예르신 박사의 훌륭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1년도에 예르신 박사의 묘, 파스퇴르연구소, 뚜엔(Tuyen)사 등을 역사 유적지로 지정하였다.
- Hon Mien, Hon Tre 섬
배를 타고 섬을 일주하며 낚시를 즐길수 있으며, 특히 물이 맑아 바다 스포츠에 적격이며, 해안으로부터 30m 지점(어른 키 정도 깊이)에서는 산호초 구경도 가능하다. 미니 비치는 가족끼리 수영을 즐길 수 있으며, 풍광이 아름다운 해변에서 식사도 가능하다.
* 달랏(Da Lat)
달랏은 호치민시에서 북서쪽으로 308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고산도시이다. 해발 1,400~1,500m에 있는 고원도시 달랏은 도시주변에 펼쳐진 언덕위의 소나무 숲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매우 상쾌하며 피서지답게 연평균 기온은 18℃~23℃ 정도이다. 이곳은 1897년 알렉산더 예르신(Alexander Yersin)박사에 의해 발견되어 1912년부터 프랑스 식민당국에 의해 빠른 속도로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주택지로는 프랑스 식민지시대에 개발되었기 때문에 기복이 많은 언덕 위에 프랑스풍 건축의 빌라가 많이 있다. 봄에는 시내의 수언흐엉(Xuan Huong, 春香)호수 주변에 조성된 장미와 자스민 꽃밭이 젊은 연인들의 사랑을 나누기에 최적의 장소가 되고 있다. 조용한 호수 표면으로는 소나무 숲이 비치고 수언흐엉 호수 주위에는 삐거덕 삐거덕 소리를 내는 작은 마차도 운행되고 있다. 달랏은 이곳 원주민인 Lat부족의 말로 "Lat 부족의 강"이라는 뜻이다. 이곳의 주요산업은 시원한 기후를 이용한 관광이며 산간 소수부족들은 고랭지 농업, 차, 대나무 공예, 땔감 등으로 생계를 영위해가고 있다.
- 수언흐엉(Ho Xuan Huong) 호수
달랏 중앙에 광대하게(둘레 약 5km) 펼쳐진 호수로 1919년 건설된 댐에 의해 형성되었다. 보트와 모터보트로 크루즈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있으며, 호수주변에 나있는 낭만적인 길로 말을 빌려 탈 수도 있다. 그리고 호수 북쪽에는 1922년에 조성되어 베트남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골프장이 위치하고 있다.
- 프렌(Thac Prenn) 폭포
달랏에서 남쪽으로 10㎞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폭포 뒤로 보도가 나 있어 물보라를 맞으면서 폭포 뒤쪽을 지나가보는 것이 즐거움의 하나이며, 주위에는 공원, 식당과 선물코너도 있다.
* 후에(Hue)
1802~1945년 동안 응우옌(Nguyen, 阮)왕조의 도읍지였던 후에는 베트남에서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며, 많은 유적지와 유물을 간직한 고도이다. 2~15세기 무렵까지 베트남 중부에서 남부에 걸쳐 해상 무역으로 번성했던 참파왕국이 멸망하자, 이 지역에서는 내란과 세력 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다. 중부의 요충지였던 후에는 각 세력이 거점으로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했다. 그러던 중 15세기에 후에를 중심으로 남부를 장악한 세력이 응우옌(Nguyen) 가문이다. 1802년에는 응우옌 푹 안(Nguyen Phuc Anh, 후의 지아롱제)이 프랑스의 협력을 얻어 응우옌 왕조를 건국한다. 1804년 국호를 베트남(월남)으로 정하고 그 후 왕조는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국정개입을 받으면서도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역대 황제들의 정책과 일생은 모두 제 각각으로 지금도 남아 있는 각 황제의 왕릉이나 사원에는 각각의 개성이 반영되어 있다. 어느 황제 시대의 건축물인지 염두에 두고 돌아본다면 더욱 흥미진진한 유적관광이 될 것이다. 후에시내 중앙에 유유히 흐르는 흐엉강(Song Huong : 향수의 강)을 중심으로 북쪽은 왕궁을 중심으로 한 구시가지와 남쪽은 레러이(Le Loi)거리를 중심으로 한 신시가지로 조성되어 있다.
멀리 후에의 외성에 들어서게 되면 웅장한 국기게양대와 시간을 잊은 채 잠들어 있는 대포들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내성인 완조(阮朝)왕궁을 만나게 된다. 왕궁문을 지나면서 태화전(太和殿)이라 불리는 궁궐을 만난다. 중국의 자금성을 모방한 흔적을 쉽게 볼 수 있으나 규모는 그에 비할 수는 없게 작다. 태화전 뒤쪽은 월남전 당시 폭격으로 인해 아직 복구가 되지 않는 상태이다.
응오몬(왕궁문)은 성벽의 동서남북에 있는 4개의 문 중 남쪽 문으로 관광객들은 이 문으로 입장한다. 태양이 정상에 오는 남문을 정문으로 삼는 중국관습을 따라 이 문이 궁전의 정문이 되었다. 2대 민망(Minh Mang) 황제 시대에 창건되었고 12대 카이딘(Khai Dinh) 황제 때에 재건되었다. 3개의 입구 중 중앙 문은 황제가 외출할 때만 사용하였다. 문 위에 있는 중국식의 누각에 오를 수 있는데 여기서는 남쪽의 플래그타워와 북쪽의 왕궁 전체가 모두 내려다보인다. 1945년 마지막 황제가 된 바오다이(Bao Dai)는 이곳에서 왕조의 종말을 고했다.
태화전은 중국 북경의 자금성을 모방한 궁전으로 응오몬 정면에 있다. 1803년 초대황제 지아롱제 때 창건하였다. 여기서는 황제의 즉위식이나 국빈환영식 등이 거행되었고 대청마루 중앙의 대좌 위에는 황제가 앉았던 금박의 옥좌가 놓여 있다. 태화전 앞에는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 걸쳐 있는 금수교는 황제만이 건널 수 있는 다리였다.
현인각은 태화전 왼쪽에 있는 응우옌 왕조의 원찰이다. 앞뜰에 고, 인, 장, 영, 의, 순, 선, 우, 현이라고 쓰인 9개의 청동 세발솥이 놓여 있다. 이들 세발솥은 왕조의 정통성과 부동성을 상징하며 각각 19세기에 왕위를 지켰던 황제들을 기려 주조하였다. 높이 2m, 무게 2t인데 그 중에 중앙에 있는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솥이 초대 황제 지아롱제의 것이다. 내부에는 각 황제의 위패가 안치되어있다.
후에의 교외로 나가면 각기 특색 있는 황제의 묘들을 관광할 수 있다. 여러 황제의 묘가 있으나 가장 아름답고 특징적인 묘는 민망황제(1820-1841), 뜨득황제(1848-1883), 카이딘황제(1916-1925)의 묘일 것이다. 그리고 사원으로는 흐엉 강변에 있는 티엔무(Thien Mu) 사가 가장 유명하다. 티엔무사에서 보트를 빌려서 서쪽으로 내려가면서 여러 황제의 묘를 살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민망(Minh Mang) 황제의 묘는 가장 장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느낄 수 있듯이 자연경관과 건물, 조각들이 어우러져서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이 펼쳐진다. 다이홍(Dai Hong)문을 들어서면 입구를 지키는 기마상, 코끼리상, 신하들의 상이 보인다. 쭝민(Trung Minh) 호수를 둘레로 민망왕의 무덤에 이르는 길까지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의 조화의 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특히 숭은전(崇恩殿)에서 명루(明樓)를 바라보는 경치는 일품이다.
뜨득(Tu Duc)황제는 응우옌 왕조를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지도자이다. 그는 4,000여편의 시와 600편의 산문을 남길 정도로 문학에 심취했고 철학과 동양역사에 해박한 전문가였으나 통치자로서 그는 실패하였다. 서구 외세의 압력에 흔들렸고 자식이 없었으므로 온갖 사치를 즐겼으나 슬픈 왕이었다. 뜨덕황제의 묘는 이런 그의 생애를 반영해 주듯이 시적이고 자유로우면서 어딘가 모르는 애수가 담겨 있는 듯하다. 내부 구조 역시 다른 묘들과는 다르게 비대칭 구조로 되어 있다. 묘의 입구에 들어설 때는 규모가 상당히 작을 것이라고 느껴지는데 좀 더 들어가면 르우키엠(Luu Kiem)호수가 나타나고 반대편에 호아키엠(Hoa Khiem)궁이 나타난다. 그리고 조금 더 호수를 따라 들어가면 궁 뒤편에 감춰진 듯 한 뜨덕황제의 묘가 나타난다. 처음 느낌과는 달리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에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카이딘황제의 묘는 20C초 베트남 건축 예술의 대표라 불리고 있다. 11년간 걸쳐 만들어진 이 묘는 베트남과 유럽문화가 혼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입구에서 느껴지는 유럽고딕양식의 건축풍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입구에서 36계단을 올라 중앙에 이르면 공덕비와 무덤을 지키는 문무관, 기마, 코끼리상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티엔딘(Thien Dinh)궁에 들어서면 그 벽화의 화려함과 섬세함에 놀라게 된다. 벽과 제단이 모두 도자기와 유리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고 천장은 용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매우 화려하고 황홀한 모습이다.
티엔무(Thien Mu)사원은 흐엉강을 따라 서쪽으로 4Km 떨어진 강변에 위치해 있다. 흐엉강을 끼고 아름다운 7층 팔각석탑이 우아하게 서 있는데 그 뒤로는 정자와 사원이 있다. 특히 정자에는 그 소리가 후에 시내에까지 들린다는 큰 종이 있다.
* 다낭(Da Nang)
큰 강과 항구를 끼고 베트남의 중부에 위치한 600년의 역사를 지닌 다낭은 베트남 남북을 이어주는 교두보일 뿐만 아니라 베트남 중부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참 문화와 건축양식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다낭의 참박물관과 미썬 유적지, 그리고 참파 성채를 둘러볼 수 있다.
인구 약 80만으로 최대의 상업 도시인 다낭은 송차 반도로 둘러싸인 천연항구가 있어서, 옛날부터 동서 무역의 중계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베트남에서 중요한 국제 무역항이다. 또 2~ 15세기에 걸쳐 과시했던 참족의 나라인 참파왕국의 왕도가 현재의 시가지 근교인 짜키에우(Tra Kieu)에 있었던 때도 있어, 주변에는 미썬(My Son) 등 참파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다낭은 연평균 27℃ 정도로 평균 강우량은 2,066mm이다. 1월에서 2월까지는 시원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3월부터 더워지기 시작한다. 7∼8월에는 습기가 82%이며,폭풍우가 잦다. 11월부터 12월까지는 우기이다.
- 참 조각 박물관
이 박물관은 Bach Dang 거리의 남쪽 끝에 위치하며, 세계 최대의 참 유적 박물관이다. 참 박물관은 고대 참문화가 세운 탑 건축물을 그대로 본따 1915년에 완공된 것이며 이 박물관에는 고대 참 문화를 대표하는 5~7세기경의 석제 조각품과 토기 등 약 300여점의 걸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참문화는 10세기를 중심으로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10세기 이전에는 주로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바다를 통해 전래된 감상적인 표현이 우세하고, 10세기에서 14세기까지는 참파 왕국이 쇠퇴하고 크메르의 영향을 받은 형식적인 표현에 치우치게 되었다. 참 문화는 한마디로 인도의 영향을 받은 힌두교적 요소를 주로 하고 불교적 요소가 약간 가미된 모습을 하고 있다.
사암을 이용해서 조각한 각종 제단과 힌두교의 신인 시바(구원과 파괴의 신), 브라마(창조의 신), 비슈누(보호의 신)등의 상, 그리고 시바를 상징하는 남근상, 그밖의 여러 조각품들이 참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 마블 마운틴(대리석 산)
이곳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약 10km, 호이안(Hoi An)에서는 한국군이 건설한 도로인 따이한 도로를 따라 19km 북쪽에 위치한 5개로 된 대리석산이다. 이산들의 이름은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 즉, 물(Thuy Son), 나무(Moc Son), 불(Hoa Son), 쇠(Kim Son), 땅(Tho Son)에서 따왔다. 가장 큰 산인 Thuy Son에는 석회암의 용식으로 인한 거대한 동굴들이 있는데 불교나 힌두교의 성지로서 신성시되고 있다. 이 천연동굴은 베트남 전쟁 당시 주로 베트콩들의 은신처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미군은 이곳에 베트콩이 주둔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공격을 강행, 동굴에 몇 개의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 동굴 안에는 조그만 암자가 지어져 있으며 벽면을 손으로 두드리면 큰소리가 난다. 이 마블 마운틴은 전체가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신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관광객들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 미썬(My Son) 유적지
다시 다낭에서 서쪽으로 60km 쯤 나가면 5~12세기의 참 왕국 수도를 볼 수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들은 이 고도가 위치한 미썬계곡을 "미썬 성소" 또는 "왕조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그곳에 별다른 고도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음은 물론이며 왕궁이나 사찰, 탑 따위가 자리 잡은 흔적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이 고도 일대에 아직까지 발굴된 흔적이 전혀 없이 매우 귀중한 유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후에나 다낭에서 관광객들은 서쪽으로 뚫린 그 유명한 호치민 통로를 구경할 수 있다.
미썬 유적지는 4세기부터 6세기까지의 참파왕국의 성역으로 70여 개 이상의 건축 잔해를 가진 거대한 종교 유적지이다. 미썬에는 또한 독특하고 복잡한 붉은 벽돌무늬의 사원들과 탑들이 많이 있는데, 참파 건축양식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을 왕의 신성함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탑들에서 엿볼 수 있다. 미썬의 참 건축물은 다낭을 대표하는 주요 문화재이기도 하다. 미썬은 현재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다낭 까오다이(Cao Dai) 사원
다낭시내에는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큰 까오다이 사원이 하이퐁(Haiphong)거리 35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까오다이교의 본부는 떠이닌(Tay Nin)성에 있다. 현재 2백 만 명 이상의 신도가 있으며, 다낭과 꽝남지역의 신도수는 약 5만 여명, 다낭에만 약 2만 여명 정도로 추정된다. 카오다이교는 1926년 응오 번 쩌에우(Ngo Van Chieu)에 의해서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교리를 종합하여 만든 종교이다. 까오다이 사원 정면 왼쪽 문으로는 여자만, 오른쪽 문으로는 남자만 드나들며, 실내에서는 반듯이 신발을 벗어야 한다. 까오다이교에서 신성시하는 ‘신성한 눈’ 이 본당 안 정면에 그려져 있고,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마호메트, 노자, 예수, 석가, 공자의 상이 모셔져 있다. 또한 본당 안에는 “모든 종교는 하나의 원리이다.”라는 글귀도 새겨져 있다.
- 기타
오행산 근처에는 남북으로 7킬로의 길이를 가진 낭만적이 해변이 펼쳐져 있다. 흔히들 차이나 비치(China Beach)라고 부르고 있으나, 베트남에서의 공식적인 명칭은 논느억 비치(Non Nuoc Beach)이다. 해안가에는 토산품 가게나 카페가 많고 비치파라솔도 빌려준다.
1992년에서 국제서핑대회가 개최되기도 했으며, 해변에서 수영을 즐기기에는 매년 5월에서 7월 사이가 제격이다. 최근에는 논 느억 비치 북단에 베트남에서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푸라마(Furama) 리조트 다낭’이 들어서 있다.
* 호이안(Hoi An)
호이안은 베트남의 중부 다낭에서 남동쪽으로 30km 떨어진 15∼19세기의 조그만 항구도시다. 15세기 이후 동중국해의 해상 무역중개지로 크게 융성했던 이곳에는 일본, 중국, 베트남, 프랑스, 포르투갈 상인들이 세운 다양한 건축들이 남아 있다. 17세기 말에는 약 6000명의 중국인, 1000명의 일본인이 베트남인과 함께 밀착되어 살면서 여러 문화가 공생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원래 호이안은 북쪽의 베트남인이 남하하기 이전, 참파라고 불리는 참족의 땅이었다. 일찍이 참파인들은 해상 무역항로를 통해 인도의 힌두교를 들여와 매우 수준 높은 문명의 꽃을 피웠고 호이안은 동쪽의 중국, 서쪽 인도의 중간에서 교역을 담당했던 매우 중요한 전략요충지였다.
그 당시 쓰인 중국과 인근 국가들의 역사서적에는 이곳을 파이포(Faifo) 혹은 카이포라고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이곳 호이안이 15세기경 베트남에 의해 정복된 이후에도 많은 서양의 상선이 도착하면서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16세기경 포르투갈 상인들이 선교사와 함께 들어오면서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응우옌 왕조가 외국 세력을 봉쇄하는 쇄국정책을 쓰게 됨에 따라 이곳 경제는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인근에 있는 다낭이 크게 커지자 19세기 말부터 이곳은 성장을 멈춘 도시가 되어 오늘날까지 고대의 모습을 간직하게 됨으로써 동남아시아에서도 아주 독특한 중세 도시구조와 목조 건축물들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다.
호이안 역사지구는 그리 크기 않기 때문에 반나절이면 걸어서 두루 감상할 수 있다. 호이안 관광의 출발점은 쩐푸(Tran Phu) 거리의 서쪽에 있는 래원교라고 불리는 다리이다. 이 조그만 다리를 건너 쩐푸 거리로 들어서면 옛날 일본인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응우옌 타이 혹 거리에도 오래된 목조 건물이 남아 있어 당시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현재 호이안에는 목조로 된 고가구와 화교가 세운 복건회관(福建會館) 등의 844개의 역사적인 중국식 건물들이 있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는 동남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중요한 중세 무역항구라는 역사적 가치, 그리고 일본 중국 베트남 등의 다양한 목조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희귀성을 들어 1999년 호이안 역사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현재 유산 등재가 된 곳은 투본강 북쪽 강안을 따라 형성된 중세 촌락지역으로 이곳에는 사원, 고택, 묘당, 민가, 회당 등 1000여 점 이상의 고대 건축물이 밀집되어 있고 강가를 따라 형성된 마을뿐 아니라 강 자체도 보존지역으로 묶어 자연환경에 대한 절대 보존정책을 함께 실시하고 있다.
- 내원교(일본교)
1593년 일본인들이 세웠다는 목조지붕이 있는 다리이다. 호이안이 번성을 누릴 때 이 다리를 경계로 일보인 거리와 중국인 거리가 형성되었다. 지붕을 가진 칼 모양의 이 다리는 괴물 ‘Cu'를 퇴치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Cu’는 꼬리로 지진을 일으키는데 머리는 인도에, 몸통은 호이안에, 꼬리는 일본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괴물이다. 이 괴물의 몸통 부분에 다리를 세우고 다리 안에는 괴물의 힘을 누르기 위해 도교의 신인 ‘북제’를 모신 작은 절을 만들었다. 이 절에는 ‘북제’의 동상이 모셔져 있는데 정식 명칭은 ‘북방진무제’이다. 다리 양쪽 끝에 원숭이와 개의 상이 배치되어 있다.
- 광조회관(廣肇會館)
1786년에 지은 광동성 출신자들을 위한 집화소이다. 앞마당에는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힘찬 모습의 조각이 입장객을 맞이하고 있다. 정문 오른편으로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맺는 장면과 외편으로 관우가 유비의 두 부인을 수레에 모시고 가는 장면이 화려한 채색으로 부조되어 있다. 원래는 공자를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고 후에는 불교사원이 되어 불상도 모셨었다고 한다. 지금은 ‘징한궁(澄漢宮)’이란 현판을 가진 본전에 자비의 여신인 ‘천후성모’와 부귀의 신인 ‘재백성군’을 모시고 있다.
- 복건회관(福建會館)
향우회관 성격으로 지어졌으나 후에 어부들의 보호신이며 바다의 여신인 ‘천후성모’를 모시기 위해 헌납되었다. 호이안에 대규모로 등장한 최초의 중국인 집단은 복건성 출신들이었다. 정문을 지나면 ‘금산사’라는 현판이 걸린 삼관문이 나오고, 이문이 지나면 ‘정성단결’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국땅에서 단합하며 살아가는 화교들의 끈기와 생명력이 담겨 있는 문구다. 이 회관은 1697년에 건립되었으며 중앙에 ‘천후성모’상을 모셨는데 이는 실제로 복건성에서 가져온 돌로 조각된 것이다. 좌측에는 서른여섯 명의 장군상이, 우측에는 세 명의 삼심할머니 상이 배치되어 있다.
- 해남회관(海南會館)
Em득(Tu Duc)황제 시대에 해적으로 오인되어 죽음을 당한 해남성에서 온 108명의 상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1883년에 세워졌다. 중앙과 좌우 제단에는 당시 희생당했던 사람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조주회관(潮州會館)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는 복파(Phuc Ba)장군을 모신 곳이다. 1845년까지는 이 회관이 없었고 그 뒤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파장군 상 좌우에 부귀와 행복을 관장하는 신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건축자재를 모두 중국에서 가져 왔다는 점이고, 내부는 나무 조각과 타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 중화회관(中華會館)
호이안 중국상인 거주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천후성모’를 모시기 위해 1741년에 건립되었으며, 원래 명칭은 ‘당회관(唐會館)’이었다. 중국 화교의 학교로도 사용되기도 했고, 1855년과 1928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이 회관은 공자와 신해혁명 지도자 손문을 기리고 있으며, 아울러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한 13명의 모습을 그린 벽화도 볼 수 있다.
- 쩐(Tran, 陳)가 사당
1802년 중국인의 후손인 응우옌(Nguyen) 왕조의 관리가 지었다. 선조에게 참배를 올리는 곳과 주거지로 분리된 건물은 베트남, 중국, 일본의 건축 양식을 섞어 지었다. 특히 내부 장식은 일본의 영향이 짙게 남아있다. 아담한 정문을 들어서면 좁고 긴 정원이 있고 그 뒤로 기와집이 서있다. 집안 내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조상을 모신 공간이 중심이고 다른 공간은 가족들의 생활 및 손님용 거처로 사용된다. 조상을 모신 방에 쩐 뚜 냑(Tran Tu Nhac)의 초상화가 걸려있으며, 이 방은 3개의 문을 가지고 있는데 좌측은 남자, 우측은 여자가 사용하며, 중앙 문은 구정이나 축제 때만 사용된다고 한다.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유품도 전시되어있다.
첫댓글 여기도 좋은 정보. 하루 습득하기에는 너무 많은 정보 ㅎㅎㅎ
유익한정보 감사합니다...^^
수시로 보면 좋을것 같네요..
너무나도 상ㅅ한 정보 감사합니다,저도 못가본데가 많아서 유익한 정보가 될것 같네요
넘길다 패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감솨합니당~~
달랏에서 저도 옥수수도 사먹어보고 고구마도 사먹어보았는데 거의 우리것과 같다고 보면됩니다. 소나무도 우리와 꼭 같고 감나무 배추 등 대부분이 같다고 봐도 됩니다. 폭포도 볼거리죠,. 케이블카도 타볼만합니다. 랑비앙 산에도 올라보고....
현지사정을 이해못하니까 봐도 무 ㅓㄴ지 잘 들어오지가 않네요 자주와서 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고맙습니다.
믾은 정보를 언넝 모아야 하는데... 이번 25일 출발합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