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간증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증명 보다는 ‘나는 이렇게 경험 했어요.’하고 주관적으로 고백하는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별별 황당무계한 내용이 많다. 당사자로서는 은혜가 철철
흘러 넘칠 수 있지만 듣는 사람을 상상 속의 우주행성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릴 수 있는 내용도 허다 하다.
그 중의 한 예가 미녀
테러범 김현희의 간증이었다.
그녀는 자기를 한국에 보내어
북한의 만행을 낱낱이 폭로하게 하기 위해서 KAL기가 폭파되고 자기는 살아 남았다고 간증을 하고 다녔다. 하나님이 KAL기가 폭파될 때는 가만히 계시다가 KAL기가 폭파된 다음에야 유독 김현희만 역사를 했다니 아니? 무슨
분의 하나님이 김현희를 구원하기 위해서 1백 15명의 목숨을
시신조차 찾을 수 없도록 풍비박산을 시켰다는 말인가?
안기부 연출, 김연희 출연으로 보이는 코미디로 밖에는 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 진짜 간증거리가
있다.
1569년 추운 겨울, 네덜란드의
재세례파 소속 젊은 교인인 더크 월렘스가 관리에게 쫓기고 있었다. 잡힐 경우 화형 아니면 수장이 예고되어
있었다. 목숨을 걸고 도망을 치고 있는데 눈 앞에 얇게 언 빙판이 펼쳐졌다. 피할 길이 없어 빙판 위를 그대로 달렸는데, 다행히 얼음은 깨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쫓던 관리가 빙판을 건너는 순간 '우지끈' 하고 얼음이 깨졌고, 추격자는 물에 빠졌다.
봉숭아 교회의 신앙 수준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 물이 갈라지고, 애급 군사들이 건널 때 물이 다시 합쳐져서 몰살 됐잖아. 이번에도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킨 거야. 할렐루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결론은
그렇게 유치하지 않다.
도망자는 순식간에 발걸음을 180도 돌려서 관리를 물에서 끄집어 올렸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에 빠지지 않고서 목숨을 건진 관리는 회개하고 재세례파를 믿었어야 스토리가 제대로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불행히도 관리는 도망자를 체포해서 불에 태워 죽였다.
이 사건은 1569년에 일어났다. 그로부터 약
440년 뒤인 2006년에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1985년도에 만들어졌던 위트니스라는 영화가 있었다.그 영화의 무대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고 현대에도 옛날 방식을 그대로 고집해서 말을 타고 다니는 아미쉬 공동체라는
곳이다.
2006년 10월 2일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랭커스터(Lancaster,
Pennsylvania)의 니켈 마인즈(Nickel Mines)에 있는 아미쉬 학교에서
총격사건이 벌어져 온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다.
아미쉬 마을 인근에 살면서
주로 아미쉬 낙농가를 대상으로 우유를 수거해 온 트럭운전사가 아미쉬 원룸스쿨(One-Room School)에
들어가 10명의 어린 아미쉬 소녀들에게 총격을 가한 뒤 범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총상을 입은
열 명의 아미쉬 소녀 중 다섯 명은 절명하였고, 나머지 다섯 명은 평생 동안 큰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치명적인 장애와 마음에 상처를 안았다.
사건 발생 직후 전 세계
매스컴은 아름답고 조용한 아미쉬 마을 현장으로 몰려들었고, 보도의 포커스는 자연스럽게 다음 3 가지에 모아졌다. 그리고 그에 관하여 쏟아지는 보도에 세상 사람들은
경악, 또 경악하였다.
첫째, 폭력과 범죄가 없다는 공동체, 최후의 안전지대로 인식 되어진 아미쉬
공동체 마을에서 어떻게 그러한 총격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가?
둘째, 아미쉬 학교를 범행 장소로, 어린 아미쉬 소녀들을 범행대상으로 삼은
이유와 동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끔찍한 사고를 당한 유족을 비롯한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며 대처하는가?
“Shoot me first!(나를 먼저 쏘세요!)”
이성을 잃고 날뛰는 범인이
겨누는 총구 앞에서 나이 어린 동생들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아미쉬 소녀 Marian
Fisher 가 범인에게 던진 침착하고도 애절한 이 한 마디의 절규, 호소.
‘Forgiveness(용서)’
사고가 터진 바로 그 날
해가 저물기도 전에 아미쉬 유족과 공동체 대표가 내비친 범인에 대한 용서와 범인 가족에 대한 위로.
범인의 장례식에 참석한
희생자 유족과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 답지하는 성금을 범인의 유가족에게 먼저 할애해 달라고 하는 배려, 범인의 부인과 어린 세 자녀를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며 위로의 시간을 갖은 아미쉬 사람들의 즉각적이고도 조건
없는 용서와 관용!
그로부터 정확하게 1년의 세월이 흘러 1주년을 맞아 희생된 어린 소녀들의 영혼을 달래고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차원에서 추도행사가 있을 법도 하였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관할 소방서 등 니켈 마인즈
마을 주변 사람들 또한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그 어떠한 추모행사를 갖지 않기로 하였다.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이
바깥 세상에 보인 유일한 이벤트는 새로 개교한 아미쉬 학교 (New Hope School)의 교사와
학생들의 이름으로 감사인사를 전한 것 뿐이었다. 사고 발생 직후 사건현장의 수습과 희생자의 치료에 헌신적으로
노력해 준 관계기관과 병원의료진 그리고 위로와 격려를 보내준 모든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는 간단한 인사 성명이 전부였다.
그리고 때 맞추어 몰려들
보도진들로부터 어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미쉬 학교가 이틀간 임시휴교를 하였다.
세인들로 하여금 할 말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아미쉬는 세계 기독교역사에서 가장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 자기들이 믿는 신앙을 지켜온 재세례파의 일종이다.
아미쉬는 각자의 집에는
성경책이 없고 일상에서 성경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성경은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마차에 실어
놓고 예배 보는 날 사용한 후 또 마차에 보관한다.
그들이 성경공부를 장려하지
않는 이유는 성경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 인해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겸허한 자세를 흩트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간단하고 명쾌한 것인데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지 않으면서 그것을 변명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의적인 해석에 매달리는 것 보다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검소하고 순종적이며 겸손한 생활을 강조한다. 그들은 기독교인의 자세로
‘순종’과 ‘겸손’ 그리고 ‘간소함’을 강조하며, 이것들을 실천하는 것을 그들 공동체의 덕목으로 삼고 있다. 그들에게
종교적인 삶이란 성경책을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소박하고 검소하며 감사하며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 교회에는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을 적극 강조하고 또 성경 많이 읽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이 쓰여진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전후 문맥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은 영양가 없는 마치 끼니 마다 Fast Food으로 식사를 하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