⁴ᴷ [영화 ‘영웅본색’ MV] 장국영 - 당년정 (한글가사/해석) (youtube.com)
안녕하십니까, 부산대학교 단대 풍물패 연합 30期 수상모 조인혁입니다.
삶이 힘들 때..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될 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것처럼 좌절하기 쉬운 상황이 닥칠 때면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문구가 있죠.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나온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만큼은 오늘의 태양이 뜨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결국 이 날이 오는군요.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날.
네 저 오늘 입대합니다!
가기 전 짧은 발버둥입니다만 그간의 추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2021년 3월, 고된 수험생활을 마치고 한강 이남 최고(最高)의 종합대학이자 최고(最古)의 국립대학 민족효원 부산대학교에 입학한 저는 동아리를 찾아보던 중 풍물패 쇳물을 접하게 됐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초중학교 시절부터 사물놀이(영남농악)를 했었던 저는 장구가 주 악기였기에 장구를 계속 쳐보려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상모라는 것이 있는 겁니다. 신기하기도 했고 솔직히 좀 멋있잖아요. ㅋㅋ 폼 나고 이러는 건 무조건 도전해봐야 하는 저의 성(性)에 상모는 제격에 맞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 유행이 심한 터라 새내기 입학하자마자 정부에서 사적 모임 5인 이상 인원 제한을 하였습니다. 때문에 현기였던 20학번과 새내기 21학번은 같은 동아리이긴 하나 동일한 잽이가 아닌 이상 쉽사리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뒷풀이 역시 당연지사, 전체판은 꿈도 못 꿀 일이었죠. 여름전수를 가기 전까지는 매 일정이 잽이끼리 만나 무한으로 즐기는 상모 연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악기체험 때는 잘만 돌아가던 외상이 어째서인지 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한 발 반의 피지가 되게 무겁게나 느껴졌습니다. 여름전수를 가게 되면 외상을 뚫을 수 있다는 선배들의 조언에 저는 일순간의 망설임 없이 경주行 여름전수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해당 전수는 코로나로 인해 사전전수 없이 전무후무하게 사상 최소 인원(13명)으로 6박 7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때문에 마당밟이, 품앗이사토오방진굿, 가세치기와 미지기 등 새로운 판 진도 외우기에 급급했던 저는 전수 발표회 전날까지도 외상에 대한 감을 좀처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3시 정도 되었을까요, 상모신님을 울부짖으며 실력을 갈망하던 저와 재규 형에게 사부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사부님이 말씀하사 내가 너희를 살피노니 상모신은 당신의 이름이시노라.. 사부님 손가락을 가리켜 상모를 돌려라 하심에 그대들 상모가 돌아가며 사부님 손짓하여 앞으로 걸으라 하심에 그대들 발이 자유로와 걷게 되며 뒤로 가라 하심에 그대들 감탄을 금치 못하도다..
그렇게 저는 겨울전수도 가게 되었습니다.
여름에 하도 고생한지라 겨울에는 비교적 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사전전수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활동하는 새내기들은 학생회관에서 사전전수를 하지만 당시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 학생회관 대관 자체가 윤허되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평소 연습도 사설 연습실을 빌려 십시일반하였죠. 사전전수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부산문화재단 산하 감만창의문화촌에서 비교적 저렴한(?) 값으로 대관할 수 있어 그곳에서 사전전수를 일주일간 진행했습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곳이 부산대와 많이 멀었다는 점일까요. 사전전수 집합이 13시까지였다면, 최소한 11시에는 장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발해야 겨우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겨울전수 때 인상에 남는 일이 몇 개 있는데요, 살림 10학번 한범 햄이 오셔서 새벽연습 지도해주셨을 때입니다. 새벽 2시? 조금 넘었을 때인데 상모잽이들은 한범햄이 틀어놓은 80bpm 메트로놈과 하나둘셋넷 구령에 맞춰 양상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점점 지쳐가지만 선배들이 계속 돌리고 있으니까 안 돌릴 수도 없고.. 그러는 와중에 하나둘셋넷 구령은 잘 들리고.. 그냥 무작정 허벅지를 불태웠습니다. 연습이 끝나고 다들 하나둘셋넷 박자가 진짜 느려서 힘들다는 얘기를 했는데 한범햄은 정작 초반에만 구령을 하고 이후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분명 저랑 지운이 형은 그 소리를 들었는데 말이죠.... 정말 상모신님께서 속삭이신 걸까요. 진실은 아직도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때 연습 끝나고 밤하늘을 안주삼아 먹은 라면과 술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 가지 더 있는데, 전발 끝나고 마니또 선물 공개할 때 누군가가 고량주를 마니또한테 선물로 줬습니다. 제가 그 고량주를 보고는 저거 가져가는 사람은 오늘 고량주 원샷하기!! 이랬는데 그게 제가 걸려버린.. 곧바로 사부님께 가서 한 잔 드리고 이야기하면서 얼떨결에 잘 넘어갔었네요.
2학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인원제한이 풀리면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새삼스레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항상 감사하며 즐거운 삶을 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신학기의 설렘 속 동아리 모집공연과 처음으로 받아보는 새내기들, 어느덧 동아리의 미래를 같이 그려나가는 동기들.. 본격적인 캠퍼스 라이프가 시작되었던 시기입니다. 저는 비록 한문학과 성년제와 겹쳐 미처 참가하지 못했던 대동제를 비롯하여 광명사 행사, 금샘단오축제, 단풍련 옛님맞이, 소리결 북춤백인무, 무엇보다 제가 아 기다리 고 기다리던 MT까지 정말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가장 좋았던 건 더 이상 사설업체 대관을 하지 않고 학생회관을 이용하면 된다는 점과 언제든지 전체판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죠..ㅎ)
특히 가장 좋았던 행사는 뭐니뭐니해도 절에서 불러주는 부처님오신날 행사였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즐거운 것인지 알게 해주는 판이었거든요. 사찰에 들어가니 불교 예법도 잘 몰라 아무래도 조금 조심스럽고 불상을 보자니 경외감이 들어 되게 가슴 떨리는 것도 잠시, 신자 분들께서 박수를 치시며 저희를 있는 힘껏 반겨 주셨습니다. 힘들텐데 열심히 한다고 건네 주시는 수육 한 점과 막걸리 한 잔.. 이건 영탁도 한 수 접고 갈 정도입니다. 계속 되는 식폭행과 들뜬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정말 오랜만에 아무 걱정없이 실컷 웃었습니다. 중간에 동민이 형이랑 지운이 형이 놀러와서 진짜 논다는 것이 어떤 건지 몸소 보여줬는데 동민이 형이 즐거울 때 나오는 하회탈웃음과 양손에 쥔 막걸리 병은 아직까지도 눈에 선합니다. ㅋㅋ
부산대의 영원한 형제 경북대와 함께 했던 청포도 여름전수 역시 기억에 남습니다. 대학생활 하면서 타대생과의 교류도 해보고 싶었던 저에게는 정말 뜻밖의 찬스였습니다. 부푼 마음을 가지고 참여했던 전수입니다. 특히나 청송 여름전수는 제가 2학년 수장을 달고 간 첫 전수라 저보다 경력도 많은 경북대 분들을 감히 가르쳐야 하는 일이 발생해서 꽤나 노심초사했었는데 경북대 분들이 많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저 역시 많이 성장하고 이 경험을 토대로 나중에 들어오는 새내기들을 가르치는 방향성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인상에 남는 점은 같은 사부님에게서 달성다사농악 사사(師事)하는데 상모 사사 아님.. 각기 다른 분위기가 있고 맛깔이 있어 되게 신기했네요. 그리고 이때부터 제가 지운이 형으로부터 자반진리교 3대 교주를 계승하여 본격적으로 포교 활동을 시작했는데 기적과도 같은 일화가 있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비가 와서 야외 연습을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신도(?)분들과 함께 자반신님께 저희의 정성을 기도드렸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자반신님께서 감응하시어 머지 않아 곧 비가 그쳐 다행스럽게도 야외 연습을 속행할 수 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간증할 수 있는 영상이 있으니 댓글 달아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자반신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쇠잽이들이 아이스티 얼려서 마셨는데 힐끔힐끔 마셨습니다. 역시 남의 것 뺏어 먹는게 제일 꿀맛입니다..^^ 저는 본 전수로 경북대 풍물패 분들과 인연이 되어 나중에는 경북대 여름전수도 함께 하였습니다.
학교 앞 전발도 역시 이 시기 처음하게 되었습니다. 단풍련이 전수 기간 동안 갈고 닦은 실력과 하나된 마음을 학우들과 마을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자리인 만큼 전수 발표회만큼이나 열정을 가지고 임했던 빛나는 순간이었네요. 넉터에서 산책하던 가족, NC에서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손님, 약속을 나가는 교직원, 그리고 효원인들까지.. 불특정 다수에게 우리가 즐기는 모습은 그들로 하여금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학창시절을 되돌아 보게 하는 추억의 씨앗이 되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제가 정식 수장 인준을 받게 됩니다.
사실 여름전수 가기 전에 지운이 형, 효진이 누나, 민경이 누나랑 김해뒷고기에서 밥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단풍련 수상모 계보에 대해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점차 상모에 대한 애정이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단풍련 수상모도 함께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단풍련 상모를 이끌던 선배들 이름 위에 내 이름이 박히다니. 그토록 설레하던 순간을 목도하니 감격스러웠습니다. 이 순간만을 위해 3학년을 결심했기 때문이죠. 수장색띠를 받은 이후로는 정말 열정을 쏟아부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제가 봐온 선배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기에 과연 내가 선배들과 이름을 나란히 할 만한 재목이 되는지에 대해 깊은 고뇌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은 스스로를 심하게 자책하기도 했네요. 때문에 저는 공식적인 자기소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수상모' 조인혁이 아니라 '상모잽이' 조인혁이라고 항상 소개하였습니다.
요새 특히나 23학번 친구들이 다방면에서 선배들을 닮으려고 하고 그것을 따라가려다 보니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동아리에서 선배가 되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일 겁니다. 혹시나 이 글을 그 친구들이 읽게 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마다가 똑같지 않고 제각각이기에 나는 풍물을 했던 것이라고 말이죠. 서로 똑같은 발림을 하고 똑같은 실력을 가진다니, 생각만 해도 재미없을 것 같나요? 저도 물론 수장색띠를 받았던 이 시절에는 그릇이 되는 것 같지 않아 무작정 연습하고 또 연습했습니다. 닮고 싶은 선배의 동작을 거울 앞에서 몇 시간이고 따라해 가며 투자했던 시간은 나만의 동작을 만들어 가는 데 좋은 밑거름으로써 작용했습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 환경이 다르기에 똑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각기 다르게 해석하는 법이죠. 마음가짐 하나 달라서는 동작 역시 달라지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보고 배울 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선배는 후배들에게 잘 가르쳐주어 배울 점이 있고, 또 다른 선배는 몸이 부드러워 참 여유롭게 잘 노는 재능이 탁월해 배울 점이 있고, 때로는 선배가 후배에게 활연관통(豁然貫通)하여 스스로 배우기도 합니다. 마음껏 고민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길은 여러분이 개척해 나가는 것이니까요. 영화 <쿵푸팬더>에서도 그토록 찾던 용의 문서에는 정작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채였습니다. 스스로 어떻게 나아가는지 생각하라는 것이 바로 용의 문서의 진정한 가치인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선배들의 발림, 태도, 행동 등은 참고서일 뿐 교과서는 아니라는 걸 가슴 속에 가지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연습하고 인내하며 고민하는 순간 자체가 이미 성장의 동력인 셈입니다. 이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상모잽이 조인혁은 어느덧 '수상모' 조인혁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겨울전수에 들어서며 본격적인 수장으로서의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3년차에 접어드니 챙길 것도 많아지고 회의(會議)도 점점 많아지긴 했지만 고3 이후로 이렇게 무언가에 열중해서 살아본 것은 이때인 것 같습니다.
전수는 악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참 많이 성장해가는 것 같습니다.
원래 저는 3학년 1학기까지만 하고 군에 가려 했습니다만, 만일 그랬더라면 입대하고 나서도 계속 후회를 했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맺은 역할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간다는 사실과 인준을 해줄 시점에 맞게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지 못했다는 점, 무엇보다 자기자신이 아쉬워서 계속 맴돌았을 것 같네요. 사부님과 선배들에게 상담을 했고, 부모님께서는 반대를 하셨지만 결국엔 제 인생 제가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했고 뜨거웠습니다. 나중의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될 만큼 우리 인생은 아직 많이 젊고 1~2년 신나게 즐기다 가도 전혀 늦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할 거 다 하고 가는게 후련하기도 하고요. "후회도 하지 마라. 결과 따윈 아무도 모른다. 하나의 결단은 다음 결단을 위한 재료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라는 Erwin Smith의 격언이 있습니다. 때문에 3년 더 하고 가라는 선배의 말이 때로는 기쁘게도 느껴졌습니다. 내가 이만큼 챙김을 받고 있구나, 이 사람들이 나와 조금 더 함께 하고 싶구나 하고 말이죠. 덕분에 인준도 잘 주고 훌훌 털어버리고 가는 것 같아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가기 전 마지막으로 전수를 또 갔습니다. 이번에는 현기가 아니라 실무단으로요.
원래 생활주체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규따나 생따를 하면서 실무에 대해 알아간 뒤 훗날 주체를 하려고 했습니다만...
생주를 도저히 구하지 못했다는 마루들의 얘기를 듣고 동(動)했습니다. 이번 겨울전수는 애초부터 현기들 도와주려 간 전수였기에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랐습니다. 징잽이로 참여를 했었는데, 사실 생활주체라는 특성상 제가 징에 대해 배운 건 많이 없습니다. 개인놀이랑 팔굽혀펴기 정도? 하지만 매우 즐거웠습니다. 밥을 먹고 활력을 찾는 현기들을 보면 참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이때까지 현기 활동을 하면서 선배들에게 받았던 도움을 조금씩이나마 이제 내가 돌려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입대를 일주일 남짓 앞둔 지난 4월 8일 월요일, 저의 입대를 기념하는 입대판(with 군주)이 학생회관 아라에서 진행됐습니다. 자그마치 28명이나 되는 분들께서 와주셔서 정말 가슴 뭉클했던 순간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얼굴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많이 와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참 인복이 많은 인생인 듯합니다.
저의 대학생활은 단풍련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제게 큰 추억들을 남겨주었습니다. 저 혼자만으로는 절대 만들어 갈 수 없었던 멋진 시간을 함께 보내주신 선후배님과 동기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남기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정말 오늘의 태양이 떠버렸네요. 갖추지 못한 글입니다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우리 영해를 지키러 진해로 떠납니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여러분 모두 몸조리 잘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나는 가장 강하고 멋진 해군 수병이 되겠다! 必勝!
추신) 배경음악을 당년정으로 해놓은 이유는 머리 깎던 이발소에서 이 노래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https://cafe.daum.net/0185299804
안 늦은거 같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몫까지 너무 고생했다
다치지말고 잘 수료해라
몸 조심히 다녀오시오
기다릴게☺️
꽃신 신을 것이다!!!
글재밌네 건강하게 다녀오쇼
잘 다녀오시게나 인혁선생
빡빡이 사진이 누락됐네요 ㅠㅠ 어딨죠?
건강하게 갔다온나~ 절풍은 없다, 오직 휴풍만 있을뿐.. 전역하고 또 신나게 같이 놀아봅세
그동안 고생했다 다치지 말고 더위 먹지 말고! 안전하게 다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