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8위 무역국, 세계 3대 농축산물 수출국, 1인당 GDP 4만598달러(2008년 기준). 유럽 북서부에 위치한 네덜란드의 현재 모습이다. 인구는 1600만명에 불과하지만 ‘상인(商人)의 나라’답게 세계 각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대한(對韓) 투자국 순위 2위다.
국토면적(4만1548㎢)이 한반도의 5분의 1에 불과한 네덜란드는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다. 네덜란드의 역사는 물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제방을 쌓아 새로운 땅을 만들었다. 북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에너지로 활용하기 위해 풍차도 개발했다. 연간 200일 이상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우울한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그들은 꽃을 심었다.
악조건을 역이용한 네덜란드人
네덜란드 풍차는 북해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동력으로 바꿔 땅을 개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악조건을 역이용하는 네덜란드 사람의 지혜를 상징한다. |
땅, 인구, 기후, 주변 환경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한 네덜란드는 어떻게 최강의 농업선진국이 됐을까. 해답을 구하기 위해 네덜란드 구석구석을 들여다봤다.
현지 도착 이튿날 스키폴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알스미어(Aalsmeer) 지역을 들렀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꽃 생산지다. 원래 관엽식물 생산지였지만 19세기 말부터 장미를 재배했고 지금은 다양한 꽃(折花ㆍ盆花)이 생산되고 있다. 이곳에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대 상용건물이 있다. 대지면적 100만㎡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화훼경매장 ‘플로라 홀랜드(Flora Holland)’가 그것이다.
플로라 홀랜드 정문에서 네덜란드 교민(僑民) 이병국(李秉國) 플라워가든 대표를 만났다. 1984년 네덜란드로 이민 온 이 대표는 줄곧 화훼분야에 종사했다. 그는 경매장에서 꽃을 구입해 미국으로 수출한다. 1800여 명의 교민 중 화훼업에 종사하는 교민은 이 대표가 유일하다. 그는 “네덜란드 화훼산업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 분야에서 살아남으려면 축적된 경험과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병국 대표와 함께 경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꽃 향기가 진동했다. 수많은 꽃 향기가 뒤섞여 묘한 향(香)을 만들어냈다. 경매장의 규모는 대단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실제 경매가 이뤄지는 현장을 참관했다. 500여 명의 경매사가 꽃과 전광판, 자신의 노트북을 번갈아 쳐다보며 좋은 꽃을 싼 가격에 구입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이병국 대표는 “이곳에서 거래되는 꽃의 종류가 대략 2000여 종이고 하루 거래액은 250여억 원에 달한다”고 했다.
농가들이 출자해 만든 세계 최대 화훼 경매장
네덜란드는 세계 최대 화훼 수출국이다. 큐켄호프 꽃공원에는 연간 90여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
플로라 홀랜드 측은 꽃의 신선도를 높이기 위해 경매장에서 스키폴공항까지 화훼 전용 지하철을 만들고 있다. 치열한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더욱 높이기 위한 조치다.
기자는 취재 도중 수십 명이 그룹을 이뤄 경매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사람들을 봤다. 동행한 이병국 대표에게 “꽃을 사러 온 사람들이냐”고 물었더니 “관광객”이라 했다. 관광객만 연간 수십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입장료가 1만원이 넘는다고 하니 연간 입장료 수입도 상당할 것 같았다.
이병국 대표는 “네덜란드 화훼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품질에 있다”고 했다.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경매가 이뤄지지 않은 꽃은 전량 폐기처분한다는 것이다. 기자가 꽃 폐기장을 둘러봤을 때 멀쩡한 꽃들이 분쇄기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병국 대표는 “사실 처분되는 꽃들 중에는 일반 시장에 내다팔아도 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네덜란드산(産)=세계 최고’라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팔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눈앞의 ‘적은 돈’보다 미래의 ‘큰 돈’을 바라보는 네덜란드 상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플로라 홀랜드의 화훼 경매장은 전국에 세 군데가 있다. 알스미어 경매장이 규모 면에서 가장 크다(전체 물량의 45% 차지). 로테르담 인근과 헤이그에도 경매장이 있다. 이병국 대표는 “과거 10개가 넘는 경매장이 있었는데 3년 전에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한 회사로 통합됐다”고 했다.
플로라 홀랜드는 화훼생산 농가들이 출자해 만들었다. 농가 주인들이 경매장의 사장과 물류ㆍ서비스ㆍ판매 부서의 주요 간부를 직접 뽑는다. 플로라 홀랜드 측은 조만간 중국에도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병국 대표는 네덜란드 꽃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먼저 수명이 길어요. 같은 장미라 하더라도 네덜란드 장미는 더 오래 살지요. 둘째, 같은 튤립이라 하더라도 네덜란드 튤립은 품종이 다양해요. 30여 곳의 화훼연구소와 꽃 생산 농가가 힘을 합쳐 꾸준히 품질개발을 합니다. 몇 년 전 검은색 튤립을 개발한 적이 있는데 판매에는 도움이 안 됐지만 원하는 색깔, 원하는 모양의 꽃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신선도 또한 큰 경쟁력입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과 유럽 최대항구인 로테르담 항구를 통해 최상의 꽃을 가장 빨리 수출하지요.”
6000여 개 유리온실 밀집된 웨스트랜드
네덜란드 교민 중 유일하게 화훼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병국 플라워가든 대표. |
“여기에 수십 종의 장미가 개발되고 있지만 이 중에서 한 가지만 성공해도 대성공입니다. 새로운 품종이 시장에서 인정을 받기가 그만큼 어렵지요. 한 품종을 개발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수십 번의 교접을 통해 한 품종이 나옵니다.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때는 수출대상국을 선정하고 그 나라 사람들의 선호도를 면밀히 파악한 후 개발에 들어가요. 유럽 사람들은 큰 꽃을 좋아하는 반면, 아프리카나 남미 사람들은 작은 꽃을 좋아합니다.”
새로운 꽃을 개발하면 가장 먼저 경매장에 선을 보인다고 한다. 경매사들의 반응을 보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경매사들은 생산 농가의 이름만 봐도 꽃의 품질을 가늠할 수 있다.
기자는 네덜란드 중부 서해안에 접해있는 ‘웨스트랜드’를 찾았다. 이 지역은 유리온실로 전 세계에 이름난 곳이다. ‘글라스 시티’로 불리는 이곳에는 6000여 개의 대형 유리온실이 밀집해 있다. 채소와 과일, 가정용 식물과 채소 등 다양한 농산물이 재배되고 있다.
장미생산 농장 ‘반 데어 아렌트(Van Der Arend)’를 들렀다. 화훼 생산 농가 중에서 상위권에 드는 곳이었다. 농장 안으로 들어가자 11㏊에 달하는 ‘장미 재배공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11㏊가 유리온실로 돼 있다는 걸 상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반 데어 아렌트’의 주인은 34세의 렘코(Remco) 씨였다. 2년 전에 아버지로부터 농장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렘코 씨는 홀란드대학 농대(農大)를 졸업한 후 이곳 농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에게 유리온실 설치 비용부터 물었다.
“10년 전 현재 규모로 늘렸는데 지금 돈으로 2500만 유로(한화 400여억 원)가 들었어요. 모든 시설이 자동화돼 있어 비용이 많이 들었죠. LPG로 발전기를 돌려 실내에 열과 빛을 공급합니다. 남는 에너지는 주변 농가에 팔아요.”
가족회사 형태로 운영되는 이 농장은 빨간색 장미와 흰색 장미 두 종류를 생산한다. 꽃은 토양을 보호하기 위해 땅에 직접 심지 않고 화분 형태로 재배됐다. 벌레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바이오 성분의 방충제가 곳곳에 설치돼 있고, 영양분은 작은 호스를 통해 공급됐다. 장미 한 송이를 키우기 위해 유리온실, 에너지 공급 발전기, 유기농 방충제, 고품질의 영양제 등이 총동원됐다. 관련 산업이 동시에 발전하고 있는 현장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농가는 정부 보조금을 너무 많이 받아 경쟁력 없어
렘코 씨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은 300여억 원이라고 한다. 이 농장은 연간 3000만 송이의 장미를 생산하는데 75%는 수출하고 25%는 국내시장에 내놓는다. 연말, 연초 꽃 소비량이 많을 때는 장미 한 송이의 가격이 3유로(한화 4800원)까지 치솟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장미는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8일 만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렘코 씨는 “빠른 유통시스템이 강점”이라고 했다.
렘코 사장은 “품질관리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쓴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상품에 흠이 생기면 상품가치가 크게 떨어져요. 장미 줄기를 크기에 따라 같이 묶어 주고 포장할 때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입니다. 경매장으로 갈 때도 마찬가지고요.”
렘코 사장은 품질을 높이기 위해 주변 농장 관계자들과 꾸준히 정보를 교환하고 수출 루트도 같이 개척한다고 했다.
네덜란드는 몇 년 전부터 아프리카의 케냐ㆍ에티오피아, 중남미의 에콰도르ㆍ콜롬비아ㆍ베네수엘라ㆍ코스타리카에 농지를 구입해 왔다. 네덜란드는 국민 1인당 해외 농지 확보 면적이 1만㎡에 달한다. 해외에서 키운 꽃을 네덜란드로 가져와 다시 해외로 수출한다. ‘네덜란드 꽃’이라는 브랜드는 그대로 이용하면서 생산비를 낮춰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렘코 사장에게 “네덜란드 젊은이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것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선호도는 떨어지고 있지만 생산 현장은 더욱 과학화돼 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경영전략에 대해 “농장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는 게 단기 목표”라고 했다.
네덜란드 화훼업계가 과거처럼 ‘큰 재미’를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웨스트랜드에서 화훼 수출업을 하는 폴 크라버캄프(Paul Klaverkamp) 씨는 “요즘 화훼 농가의 최대 관심사는 경비절감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새로운 유리온실을 도입하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동구권 출신 근로자를 채용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적자를 보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고 최근 웨스트랜드에 있는 농가 200여 곳이 부도를 맞아 매물로 나와 있다”고 했다.
네덜란드 화훼 농가가 예년처럼 많은 수익을 내는 건 아니지만 경쟁력이 세계 최고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네덜란드 꽃은 한국보다 싸다. 이병국 대표는 “네덜란드 꽃이 한국으로 대거 수입된다면 한국의 화훼 농가는 거의 다 쓰러질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의 말이다.
“서울 양재동 화훼공판장을 만들 때 저도 일조(一助)했습니다. 당시 농림부 관계자들이 이곳을 벤치마킹하러 왔을 때 많은 얘기를 나눴지요.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한국 화훼농가의 경쟁력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가장 큰 이유가 뭔지 아세요? 정부가 농가를 너무 많이 도와줘요. 그것도 ‘돈’이라는 직접적인 수단으로요. 그건 자생력을 잃는 지름길이죠. 이곳에 30년 가까이 살면서 네덜란드 정부가 농민에게 ‘돈’을 준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네덜란드 농민은 스스로 노력하고 함께 뭉쳐 시장을 개척해 나가요.”
최근 네덜란드 농업의 세 가지 흐름
장미 농장 ‘Van Der Arend’의 사장인 34세의 젊은 농부 렘코 씨. 유리온실 농장의 규모는 11ha다. |
네덜란드 농업의 근간은 농가(農家)다. 쌀농사 짓는 우리네 농부를 생각하면 큰 오산(誤算)이다. 네덜란드 농가는 회사형식을 갖춘 농기업이다. 네덜란드 농민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회사의 CEO다. 생산에서 판매, 유통, 수출전략까지 총괄하는 사장인 것이다. 주한(駐韓)네덜란드대사관에 근무하는 강호진 농무관의 말이다.
“네덜란드의 농업은 개념부터 달라요. 재배부터 가공, 판매, 유통을 포괄하는 농산업(農産業)입니다. 농업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농민입니다. 농민이 정책부터 생산, 판매까지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정부는 기반환경만 조성해 줍니다. 농민은 조합형태로 농가를 운영해요. 자유무역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는 네덜란드 농민은 이익이 있는 곳에 개발과 투자를 집중하지요.”
강호진 농무관의 말에 따르면, 최근 네덜란드 농업에 세 가지 큰 흐름이 있다고 한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농업 관련 조직을 통합하고, 조직을 기업화하며, 농업 현장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는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중간에 위치한 리세(Lisse)로 향했다. 이곳에는 연간 90여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큐켄호프(꽃공원)가 있다. 큐켄(keunken)은 부엌, 호프(hof)는 정원을 뜻한다고 한다. 과거 이곳을 소유했던 백작 부인이 연회를 위해 허브와 채소를 재배했던 것에서 유래됐다.
공원에는 네덜란드 전통 풍차가 있고 현대 조경방식으로 단장된 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28만㎡에 달하는 공원에는 매년 3월 말부터 5월 초까지 꽃축제가 열리는데 기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튤립과 히아신스, 수선화 등 수백만 종의 꽃이 공원 전체를 화려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큐켄호프는 네덜란드 화훼산업의 위상을 전 세계에 자랑하는 살아 있는 ‘현장’이었다.
큐켄호프에 설치된 풍차에 올랐다. 큐켄호프와 접해 있는 구근화초 농장의 규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히아신스와 튤립이 무지개색을 뽐내고 있었다.
“정부 개입하면 유럽시장 혼란에 빠져 결국 손해”
ABC 웨스트랜드는 네덜란드 최대 농산물집하장이다. 농산물 유통회사들이 이곳에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
하스터 씨의 설명에 따르면, 농장은 40년이 됐으며 부친 때부터 구근농장을 경영했다고 한다. 농장 면적은 250에이커(약 30만6000평)이며, 연간 2500만 개의 구근화초를 생산한다. 이 농장은 구근화초의 뿌리를 유럽을 비롯해 미국, 일본 등지에 수출한다. 하스터 씨는 “큐켄호프 인근에서 가장 큰 농장”이라고 했다. 하스터 씨의 말이다.
“구근화초는 땅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를 근절시키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5년에 한 번씩 재배 품종을 바꾸기도 합니다. 박테리아를 없애고 품종을 바꾸는 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요. 네덜란드만의 경쟁력이 여기에 있어요.”
하스터 씨는 최근 들어 제품 가격이 떨어져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올해 튤립 구근 1개 가격이 6센트 유로입니다. 3년 전에는 18센트 유로였지요. 생산량은 계속 늘어나는데 경기불황으로 소비가 급격히 줄고 있어요. 올 연말 큰 적자를 볼 것 같아요.”
그에게 “네덜란드 정부가 지원해 주는 건 없느냐”고 물었더니 “정부가 개입하면 유럽시장 전체가 혼란에 빠져 결국 더 큰 손해를 입게 된다”고 했다. 하스터 씨는 “시장 가격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며 “생산량을 줄이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하스터 씨의 사례처럼, 네덜란드 화훼업계에는 철저한 시장경제 논리가 작동되고 있었다.
하스터 씨의 농장에는 큐켄호프에 온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왔다. 꽃공원의 부속 시설로 생각하고 찾아온 이들이었다. 관광객들은 250에이커에 펼쳐진 무지개색 농장을 배경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일부 관광객은 농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작품사진까지 찍기도 했다. 올해 큰 손실이 예상되지만 하스터 씨는 이들을 막지 않았다. 그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언젠가 나의 고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진촬영을 막지 않는다”고 했다.
강호진 주한네덜란드 농무관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농업분야에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 붓는 한국이 농업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농업 보호주의 정책 때문입니다. 농업은 보호한다고 발전하는 게 아닙니다. 네덜란드가 좋은 사례죠. 네덜란드는 일찌감치 농업 시장을 열고 해외로 진출했습니다. 1800년대 후반 신대륙에서 값싼 곡물을 실은 배들이 유럽으로 들어왔어요. 그 무렵 대부분의 유럽국가는 시장 개방을 반대했지요. 하지만 네덜란드는 곡물시장을 열었어요. 네덜란드 농민은 저렴한 곡물을 축산사료로 썼어요. 소 사육량이 늘면서 값싼 우유와 치즈를 생산했고, 이를 다른 나라에 팔았습니다. 가격 경쟁력이 있었던 거죠. 네덜란드 사람들은 시장경제의 논리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어요.”
▣ 수치로 보는 네덜란드 면적 : 4만1548㎢(한반도의 5분의 1) 전체경지면적 : 190만㏊ 인구 : 1634만명(2006년 기준, 인구밀도 세계 5위) 농가 수 : 8만1000여 곳 1농가당 경지면적 : 23.2㏊ 1인당 GDP : 4만598달러(2008년 기준) 무역규모 : 세계 8위 무역국, 세계 3대 농축산물 수출국 |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된 네덜란드 農民
변동헌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 로테르담 지사장의 말이다.
“네덜란드는 농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여깁니다. 농산물의 생산에서부터 가공, 판매, 물류, 관련 기계산업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요. 정부의 역할이 많지 않아요. 방향만 제시할 뿐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직접적인 지원이 거의 없어요. 농민들의 수준 또한 아주 높아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돼 있습니다. 농민들의 협동력도 대단해요. 더 그리너리(The greenery)처럼 생산자들이 똘똘 뭉쳐 시장을 뚫고 있습니다.”
더 그리너리는 야채와 과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협동조합이다. 생산자와 판매자가 공동으로 조합을 설립해 수출까지 주도한다. 더 그리너리는 한국의 이마트와 같은 대형할인매장에 직접 농산물을 공급한다. 네덜란드 생산자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더 그리너리의 농산물 매출액은 네덜란드 전체의 45%를 차지한다. 최근 조합원 수는 줄고 있지만 규모는 커지고 있다. 생산 농가가 규모의 경제 차원에서 통합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14만 생산 농가에서 지난해 1000개로 감소했다. 1개 농가당 연간 매출액은 75만 유로이며, 1농가당 평균 경작면적이 약 30ha이다. 개별 농가가 기업형태로 바뀌면서 직접 수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기자는 네덜란드 북서 해안가에 인접한 웨스트랜드를 다시 찾았다. 이곳에는 네덜란드 최대 농산물집하장인 ‘ABC 웨스트랜드’가 있다. 대지 면적 75㏊의 ABC 웨스트랜드에는 야채와 과일을 판매하는 100여 개의 유통회사가 입주해 있다. 웨스트랜드 주변에는 파프리카, 오이, 딸기, 토마토 등 주요 농산물을 재배하는 유리온실이 밀집해 있다. 생산자와 유통업체가 모여 판매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ABC 웨스트랜드 본부건물에서 만난 헤리 리흐딕(Herwi Rijsdijk) 이사는 “10년 전까지는 야채ㆍ과일 경매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유통 기능만 전문적으로 한다. 개별 판매보다는 주로 대형마트에 농산물 공급을 하거나 해외 수출 창구역할을 한다”고 했다. 기자는 헤리 이사의 소개로 본부 인근에 있는 야채 생산 농가를 방문했다. 생산자와 유통회사가 직접 연결돼 있어 농가 소개는 쉽게 이뤄졌다.
‘farmer’라면 ‘돈 많이 벌겠구나’ 인식
파프리카 전문 생산 농가 ‘Growing Ambition(농장 면적 2㏊)’의 농장 주인 에릭 덴 드라이버(Erik Den Drijver) 씨가 기자를 맞았다. 196㎝의 장신(長身)인 에릭 씨는 “5년 전에 50억원으로 농장을 설립했다. 35억원은 라보뱅크(한국의 농협과 유사)에서 대출을 받았고, 나머지 15억원은 세 명이 공동 투자했다. 연간 파프리카 50만㎏을 생산하는데 95%를 해외로 수출한다”고 했다.
농장 시설은 대부분이 자동화돼 있었다. 에릭 씨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가 온실내 온도와 습도, 수분 등을 제어하고 있었다. 발전실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광합성 작용에 사용됐다. 재배는 컴퓨터가 하고, 사람은 수확만 하는 시스템이었다. 유리온실 한쪽에는 정전(停電)을 대비해 소형 발전기가 설치돼 있었다.
에릭 씨는 회사 CEO처럼 재배 품종을 결정하고, 판매와 유통을 관리했다. 파프리카 수확은 5~6명의 근로자가 맡았다. 에릭 씨에게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더니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아직은 괜찮다. 다만 가격 변동이 심한 게 문제”라고 했다.
웨스트랜드에 있는 대부분의 유리온실 농가는 한 품목만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에릭 씨는 “품목이나 품종을 선정할 때는 채소 유통업체와 협의한 후에 결정한다. 농가에 지분을 갖고 있는 유통업체가 많기 때문이다”고 했다.
에릭 씨는 헤이그 농대(農大)를 졸업한 후 20년 넘게 야채를 생산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일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활짝 웃으며 “물론”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물었다.
“일반 직장인처럼 시간에 얽매이지 않아서 좋고,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 또한 너무 행복합니다. 이 농장에 투자한 나머지 두 사람도 농대를 나온 후 또 다른 유리온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다들 만족도가 높아요. 우리는 농부이면서도 야채 전문경영인입니다. 네덜란드 농업은 단순한 농업이 아닌 과학기술이 융합된 ‘하이테크’입니다. 우리는 재배기술과 유리온실 운영기법까지 판매합니다. 야채농(農) 경쟁력은 우수한 종자(種子)에도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농부가 잘사는 나라다. 이욱현(李旭鉉) 재(在)화란 한인경제인협회장의 말이다.
“농부들은 일반 직장인들보다 더 좋은 집에 살아요. 타고 다니는 차량이나 생활 수준도 사업하는 사람보다 낫지요. 구체적인 통계를 댈 수 없지만 이곳에서 수십 년간 살면서 느낀 점은 농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상당히 높다는 것입니다. ‘farmer(농부)’라고 하면 ‘아 돈 많이 벌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네덜란드 간 농산물 교역량을 보면 무역역조가 심하다. 우리의 대(對)네덜란드 수출액은 연평균 6500만 달러이고, 네덜란드의 대한(對韓) 수출액은 2억5000만 달러다. 우유, 치즈, 돼지고기 등 축산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도대체 네덜란드 농업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기자는 암스테르담에서 동남쪽으로 100㎞ 가량 떨어진 와게닝겐시(市)를 향했다. 네덜란드인들은 이 일대를 동(東)네덜란드라고 부른다. 겔더란트주(州)와 오버리젤주로 이뤄져 있는 동네덜란드는 독일과 접해 있다. 독일로 가는 주요 고속도로가 이곳을 지난다. 동네덜란드의 주요도시로는 와게닝겐을 비롯해 아펠도른, 아르넴, 에데 등이 있다. 이들 도시의 전체 인구는 300만명이다.
와게닝겐UR은 네덜란드 농업의 브레인
네덜란드 농업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와게닝겐UR. |
와게닝겐UR은 유럽 최대 농업식품 연구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18개 학사과정과 29개 석사과정, 4년 과정의 박사과정이 있다. 와게닝겐UR은 와게닝겐대학, 얀홀라렌슈타인대학, DLO(우리의 농촌진흥청)가 두 번(1997년과 2004년)에 걸쳐 기능이 통합됐다.
와게닝겐UR의 강점은 현장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연구를 한다는 것이다. 연구비용은 농기업과 관련 협회가 공동 분담한다. 특정기술을 필요로 하는 농기업이 연구자금의 35%, 정부출연재단이 50%, 와게닝겐UR 연구소가 15%를 댄다.
농학, 축산학, 수의학 등 5개의 연구기관 내에 90개의 소그룹 연구조직이 실용적인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와게닝겐UR에 파견 나와 있는 신학기 농촌진흥청 박사는 “네덜란드 농업 하면 와게닝겐UR을 거론할 정도로 네덜란드 농업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대단하다”고 했다. 순수 연구인력이 6000여 명에 이르고, 세계적인 논문이 매년 다수(多數) 발표된다고 한다. 연구인력 간 네크워크도 잘돼 있다.
와게닝겐UR은 중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중국 베이징(北京)에 지역 사무실도 뒀다. 중국 유학생을 많이 받아들여 현재 와게닝겐UR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300명에 달한다. 한국 유학생은 박사과정 1명이 전부다.
▣ 100년 역사의 화훼경매장 네덜란드 화훼 경매장의 역사는 100년을 자랑한다. 1912년 28명의 화훼 생산 농민이 암스테르담 시청 인근에 최초로 경매장을 만들었다. 이들은 꽃 도매업자들이 밭떼기를 하거나 가격 담합을 통해 폭리를 취하자 이에 대항해 경매장을 만든 것이다.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꽃을 직접 판매하는 경매시스템이 이때부터 만들어졌다. 좋은 품질의 꽃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화훼 농민들의 철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세계 화훼시장에 절화류, 분화류, 화훼구근(알뿌리 화초) 등을 수출한다. 연간 수출액은 2008년의 경우 61억7300만 유로(한화 약 11조원)다. 네덜란드는 화훼생산량의 90%를 수출하고 10%만 국내에 소비한다. 이와 별도로 생산량의 10%를 해외에서 수입해 가공수출한다. |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게 중요”
얀 폰거 와게닝겐UR 아시아담당 데스크. |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밀접히 연계돼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집중과 통합이 네덜란드 농업의 핵심이지요. 연구기관도 단순한 연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생산적인 연구에 몰두합니다.”
그는 네덜란드 농업이 강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들려줬다.
“19세기 말 미국산 농산물이 유럽으로 대거 유입됐을 때 네덜란드는 현명하게 대응했습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현실을 받아들이자는 입장이었지요. 정부는 농부를 대상으로 철저히 교육했습니다. 농가가 살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줬지요. 2차 대전 이후 농민들은 돈을 많이 벌었어요. 유럽에 갖가지 농산물을 내다팔았지요. 네덜란드 정부는 망해야 할 농가는 망해야 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없어져야 할 농가에는 절대 지원하지 않습니다.”
베르놀드 켐페링크 푸드밸리 사무국 외자유치 이사(오른쪽)와 얀 프렌스 매니저. |
“먼저 농부의 나이가 너무 많아요. 한국에는 젊은 사람이 농업에 종사한다고 하면 인식이 별로 안 좋더군요. 그 탓인지 한국의 농부들은 자식에게 농사를 물려주지 않으려고 해요. 네덜란드는 달라요. 농부의 자부심이 대단해요. 기업가 정신이 있기 때문이죠. 농업을 철저히 사업으로 봅니다.
한국의 농업은 쌀농사에 집중돼 있어요. 농업구조를 바꿔야 해요. 소득작물이나 축산업을 많이 키워야 해요. 정부가 농업에 지원하는 것도 너무 많아요. 직접적 지원금은 없애야 해요. 농가의 적자를 정부가 해결해 주는 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입니다. 네덜란드 농민은 100년 전에 농업 시장을 개방해 외국과 경쟁했습니다. 한국 농업은 아직도 ‘문’을 걸어 잠그고 있어요. 한ㆍEU FTA가 체결되면 한국의 농축산 농가는 단기간에 타격을 입을 겁니다. 장기적으로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사는 길이죠.”
얀 폰거 씨는 “네덜란드의 선진농업을 배우기 위해 수많은 한국의 정부ㆍ농업 단체 관계자, 농민들이 이곳을 다녀갔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며 “어떻게 하면 농업강국이 될 수 있는지를 한국 사람들은 안다. 이제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민간 주도로 만든 푸드밸리
와게닝겐UR을 중심으로 반경 35㎞ 이내에 1500여 개 농식품 회사가 들어서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 일대를 ‘푸드밸리’라 부른다. 푸드밸리는 한국의 농식품 관계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 농업의 최첨단을 달리는 곳이다. 이곳에는 나노, 유전공학 등 70여 개의 과학 관련기업도 있다. 20여 개의 연구기관과 3개의 의과대학도 있다. 연구인력만 1만5000여 명에 달한다. 총 투자액은 2억300만 유로다.
푸드밸리는 네덜란드 정부가 주도해 만든 것이 아니다. 2000년 이전에 이미 1000여 개의 농식품 기업이 입주해 있었다. 최적의 토양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와게닝겐UR에서 배출되는 연구인력과 기술, 동네덜란드 소비시장, 유럽 내 진출이 용이한 지리적 여건 등이 기업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들 기업은 제품개발, 시장개척 등에서 상호 협력이 필요함을 느꼈고 ‘푸드밸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를 받아들인 네덜란드 정부는 2004년부터 세금 감면을 통해 유명한 외국 농식품 기업을 유치하는 등 푸드밸리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푸드밸리에 입주한 회사로는 네슬레(네덜란드의 세계적인 식품회사), 캄피나(네덜란드 농민조합이 만든 유제품 가공업체), 유니레버(종합 화장품업체), 몬산토(가축종자회사), 카길(세계적인 곡물 농식품 전문업체), 다농(세계적인 식음료 기업) 등이 있다.
베르놀드 켐페링크(Bernold Kemperink) 푸드밸리 사무국 외자유치담당 이사는 “이곳에 입주한 기업은 제품 관련 지식이나 최근 트렌드를 곧바로 알 수 있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아주 유리하다”고 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푸드밸리에 이어 헬스밸리, 테크노밸리를 추진ㆍ운영하고 있다. 얀 프렌스(Jan Frens) 푸드밸리 사무국 매니저는 “세 밸리를 유럽의 과학, 건강, 기술의 황금 삼각지대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고 했다. 현재 헬스밸리에는 150여 개의 건강ㆍ의료관련 기업들이 입주해 있고, 테크노밸리에는 250여 개의 첨단과학 기업이 입주해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 농산물 수출액은 전체 수출액의 17%를 차지한다(2008년 기준). 화훼의 경우 77억 유로, 육류는 63억 유로, 낙농제품 47억 유로, 야채 40억 유로 등이다. 농산물의 절반 이상이 축산물이다. 네덜란드 축산업은 덴마크와 더불어 세계적인 수준이다. 농업의 기저에는 축산업이 떠받치고 있다.
▣ 네덜란드 시설원예의 역사 1500년대 중반 네덜란드 농민들은 반구형 유리를 채소에 덮어두면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599년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식물원에 유리온실이 최초로 만들어졌다. 유리온실은 도시에 채소를 정기적으로 공급할 목적으로 세워졌는데 점차 화훼 생산에도 이용됐다. 1890년대 웨스트랜드 지역의 포도농가는 환기창을 설치한 반(半)온실을 만들었다. 이후 농민들은 이를 사선 형태로 재(再)개량했다. 이것이 네덜란드 최초의 현대적 온실이다. 1900년대 초반 유리온실에 난방이 시작됐다. 농민들은 온실의 온도를 높였을 때 수확량이 많아진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1950년대에는 웨스트랜드 지역의 유리온실 20%가 난방을 실시했다. 형태공학적 측면에서 유리온실은 대부분 밀폐형 온실이다. 현재 네덜란드 정부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화석원료 ‘제로’ 온실을 개발하고 있다. 지열(地熱)과 같은 자연에너지를 사용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
현장 중심 교육기관이 農家에 경영 컨설팅까지 해 줘
푸드밸리에는 1500여 개의 농축산 식품회사가 입주해 있다. 사진은 푸드밸리 사무국. |
‘운케르크’라는 작은 도시에 네덜란드 축산업의 비밀 현장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PTC+’였다. PTC+는 실무교육 중심의 농축산업 교육기관이다. 1963년 농가와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설립했다.
설립 초기에는 강의 위주의 교육이 이뤄졌다. 효과가 크지 않자 PTC+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농업 현장에서 일하는 농부를 대상으로 실무 중심의 교육을 실시했다. 교육효과는 컸다. 그러자 세계 각국에서 네덜란드 농축산업의 기술과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현재 교육생의 20%가 일반 학생이고, 80%가 농부ㆍ농축산 관련기관 직원ㆍ마케팅 담당직원ㆍ해외 교육생들이다. 연간 3만명의 교육생을 배출하며 이 중 해외 교육생은 4000여 명이다. 농촌진흥청, 농수산물유통공사, 농협, 양돈협회 등 국내 농업 관계자들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PTC+는 전국에 다섯 군데가 있다. 두 곳은 농업, 세 곳은 축산 중심이다. 주요 프로그램은 원예(화훼 및 채소)ㆍ온실관리ㆍ농기계ㆍ낙농 및 유가공ㆍ양계ㆍ양돈ㆍ동물사료 제조ㆍ애완동물 관리 등이다. 교육내용은 매뉴얼화돼 있지만 고객이 원하는 내용에 맞게 프로그램을 재편성하기도 한다. PTC+는 150여 명의 전문 강사진을 보유하고 있다. 석ㆍ박사급 연구진은 물론 수의사, 영양사와 경험 많은 농부까지 강사로 활동한다. PCT+의 연간 매출액은 2500만 유로라고 한다.
PTC+는 단순한 실무교육기관이 아니다. 농가, 농축산 기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풀어주는 컨설팅 역할도 한다. 농기업의 경영 솔루션을 제공하는 셈이다. 농가의 소득을 높여주는 것이 PTC+의 최종 목적이다.
피트 테세라(Piet Tesselaar) PTC+ 선임강사가 기자를 실습 현장으로 안내했다. 10여 명으로 구성된 교육생들은 교내에 설치돼 있는 축사, 사료 생산시설, 치즈 제조공장 등에서 실전교육을 받고 있었다.
PTC+는 실제 농장처럼 운영됐다. 이곳에는 180여 마리의 젖소가 사육되고 있는데 1마리가 연간 1만㎏의 우유를 생산한다고 한다(한국 젖소는 최대 8500㎏ 생산). 우유 생산량에서 두 나라가 비슷하지만, 송아지를 낳는 비율에서 차이가 난다. 한국의 젖소는 2~3마리를 낳고 도태되는 데 비해 네덜란드 젖소는 6~7마리를 낳는다고 한다. 피트 테세라 선임강사는 “젖소를 키우고 관리하는 데서 나타나는 차이”라고 했다.
▣ 이욱현 재화란 한인(韓人)경제인협회장이 말하는 나막신정신과 풍차정신
이욱현 회장은 한국과 네덜란드의 교류협력에 관심이 많다. 그는 평소 “한국이 네덜란드의 장점을 배우고 익히면 빠른 시일 내에 G7에 들어갈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가 주장하는 나막신정신을 들어보자. “네덜란드 나막신은 아주 유명합니다. 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원 하멜이 조선에 표류했을 때 나막신을 전했다는 설(說)이 있어요. ‘하멜표류기’를 보면 그가 조선을 탈출할 때 거액(巨額)을 주고 배를 샀다는 대목이 있는데, 나막신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벌었다고 해요. 아무튼 조선과 네덜란드의 나막신은 아주 흡사해요. 네덜란드 사람들은 습지를 개간할 때 나막신을 신고 땅을 일궜습니다. 가죽신이 습지에는 맞지 않았던 거죠.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나막신을 신고 국토를 넓힌 네덜란드 사람들. 하멜이 나막신을 만들어 탈출자금을 만든 것처럼 나막신에는 불리한 환경을 지혜롭게 이겨낸 네덜란드인의 도전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이욱현 회장은 “풍차를 만들어 일년 내내 북해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에너지로 활용한 네덜란드 사람들의 풍차정신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젖소는 안 보고 왜 기계만 봅니까”
PTC+는 말 그대로 프랙티스 트레이닝 센터다. 기자는 현장을 둘러보며 ‘실무중심’이라는 말을 수차례 들어야 했다. 교육 면에서 한국과 다른 점은 또 있다. 한국은 한 가지 중심으로 교육하지만 이곳은 농업 전체를 보는 시각을 갖게 한다. 예를 들어 낙농 과정의 경우, 사료 생산부터 영양ㆍ급여체계를 가르친다. 젖소의 육종과 건강, 번식관리를 강의한 후 농장경제, 농장 기록 보존 및 분석 시스템까지 가르친다. 이 과정을 마친 학생은 낙농 현장에 곧바로 투입돼 실무를 맡을 수 있다.
베르투스 브론코스트(Bertus Bronkhorst) PTC+ 국제비즈니스 이사는 한국의 양돈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국은 소프트웨어가 잘돼 있다. 그런데 이들을 하나로 묶는 주체가 없다. 전체를 조직화해 세계를 대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베르투스 이사는 한국 농업의 문제점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글로벌 체제에서는 개별 농가가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해요. 한국의 농가는 정부 지원금이 많아 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없어요. 둘째, 한국 농민은 신기술에만 집착해요. 얼마 전 한국 축산농가 관계자 20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어요. 이들은 축사 안에 설치된 로봇 착유기에만 관심을 갖더군요. 제가 그랬죠. ‘젖소는 안 보고 왜 기계만 봅니까. 젖소를 보세요.’ 셋째, 젊은 인력이 한국의 농업 현장에 없다는 점입니다.”
베르투스 이사의 설명은 명쾌하고 단호했다. 한국의 축산농가나 정부, 지방자치단체는 ‘토종 한우’, ‘국산 돼지고기’를 강조하며 애국심에 호소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네덜란드 농축산 현장은 보여줬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 것’을 외치는 한국의 농업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PTC+와 함께 네덜란드의 철저한 실용주의를 보여주는 축산연구소 ‘쇼호스트연구센터(Schothorst Feed Research)’를 찾았다. 이 연구소는 네덜란드 동북쪽 릴리슈타트의 한 농촌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축산연구소답게 가축 배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피터 반 데어 아르(Pieter Van Der Aar) 박사가 브리핑을 했다. 그는 “우리 연구소는 축산 사료분야를 비롯해 동물복지 등 축산업 전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피터 박사에 따르면, 90ha에 달하는 연구소에 소 220마리, 돼지 400마리, 닭 5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연구소에는 50여 명의 박사급 연구원과 10여 명의 품질관리원이 근무한다.
쇼호스트연구센터는 1934년 몇몇 축산농가들이 사료의 품질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설립했다. 연구소의 지분은 축산 농가가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민간기업과 사료 유관 회사들이 갖고 있다. 정부 지분은 없다. 이 연구소처럼 세계적 수준의 민간 연구소가 수십 개 된다고 한다.
축산업에서 사료는 생산성과 직결된다. 피터 박사의 말이다.
“우리 연구소는 사료 원료와 첨가물의 배합비율이 육질과 생산물(예를 들어 우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과학적으로 연구해요. 사료 배합률을 정형화해 국내 축산농가는 물론 해외 사료 생산회사에 수출도 합니다. 사료의 과학화로 네덜란드 가축의 생산성은 세계에서 최상위입니다. 네덜란드 어미 돼지는 연간 30여 마리를 낳아요(한국 돼지는 연간 15마리).”
쇼호스트연구센터는 자체 수익을 통해 운영된다. 네덜란드 축산농가(회사)와 해외 유명 축산기업들이 주요 고객이다. 피터 박사는 “우리 연구소의 최종 목적은 축산농가의 이윤창출 극대화”라고 했다. 단순 명쾌한 피터 박사의 말에 더 이상 물어볼 게 없었다.
세계 농축산업계의 현장, VIV 유럽
VIV 유럽은 2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 농축산업계 박람회다. 네덜란드의 농축산 관련 장비업체의 품질은 세계 정상급이다. |
‘야버스 유트레히트’ 전시장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2000여 개의 참여업체가 개별 부스를 설치해 참관인들에게 자사(自社) 제품과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일부 업체는 현장에서 방문자와 계약을 맺기도 했다. 행사기간 동안 동물 영양과 건강, 가축 질병과 고기의 안전성 등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 발제자나 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 전문가들이라고 한다.
이번 행사의 주요 콘셉트는 육류의 안전성 확보, 양계산업의 증진 및 축산사료기술 증대였다. 병아리 부화기업체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터자임’, 육계(肉鷄) 자동화장비로 유명한 ‘모바’와 ‘마렐’, 사료 생산장비업체로 유명한 CPMㆍ뷜러ㆍ얀 얄센 등이 최신 기술과 장비를 소개했다.
행사장을 둘러보며 네덜란드 농업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농축산업과 관련된 네덜란드의 기술ㆍ장비업체는 세계 톱 수준이었다. 기자가 놀란 또 하나는 중국 업체들의 성장이었다. 기술 수준은 낮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유럽 농축산업계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었다. VIV 유럽에 참가한 한국 업체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기자는 짧은 취재 기간 동안 네덜란드의 여러 곳을 둘러봤다. 경매장, 화훼농가, 유통단지, 실무교육기관, 농업연구기관, 축산연구소 등 개별 농업 주체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네덜란드 농업은 1차 산업도, 2차 산업도, 3차 산업도 아닌 고차(高次) 산업이었다.
‘농업강국’ 네덜란드를 보고 배우기 위해 한국의 농정(農政) 관계자, 단체, 농민들은 30년 전부터 이곳을 방문해 왔다. 그런데 우리의 농업 경쟁력은 왜 개선되지 않는 걸까.
기자가 만난 다수(多數)의 네덜란드 농업 관계자들은 “농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지원이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쌀농사 부문에서만 연간 2조원을 지원한다. 한우(韓牛) 농가에는 축사(畜舍)에 까는 톱밥 구입비용도 지원해 준다. 2조원이면 와게닝겐UR 같은 연구기관을 세울 수 있고, PTC+나 쇼호스트 같은 연구소도 여러 개 세울 수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최근 경기불황으로 농가가 어려움을 겪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혹할 정도로 농가에 대한 지원은 없었다. 한국이라면 농민단체들이 청와대나 정부청사에 몰려가 온갖 시위를 벌였을 것이다.⊙
첫댓글 우리나라농민들 정부지원금끊어면
난리날겄같읍니다.
농민이이니라 잘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높으신양반들도 많이
견학갔다왔을건데
FTA하면서 농촌에
천문학적인 돈을퍼부었는데도
아직농촌이 못사는
이유가 있네요!
정부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