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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리산(396m봉) 정상 안내판
아마도 아래 마을이 대야리야 이렇게 붙이신게 아닌지,
산귀신형님은 잘 아신다는데 반바지님 기회가 되면 함 보고도 싶네요~~ㅋ
망이산성 남문터 안내판
망이산성 내성 안내판
산성은 산 정상에서 능선과 골짜기를 걸쳐 쌓은 것으로, 안쪽의 내성과 바깥쪽의 외성으로 이루어진 2중성이다.
흙으로 쌓은 내성과 돌로 쌓은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 정상을 둘러싼 내성은 흙으로 쌓은 것으로 백제 때 축조된 것이다. 현재 밝혀진 길이는 250m쯤 되며, 북쪽에 문터로 짐작되는 자리가 있다.
내성 안에는 직사각형의 봉수대 터가 남아있는데, 이곳에서 남쪽을 보면 산세는 거의 절벽으로 되어 험준하나 뒤쪽인 북쪽은 낮은 평원이 넓게 전개된다.
따라서 이 성은 남쪽의 적을 대비하여 쌓았음을 알 수 있다.
북문터 부근에는 샘이 있으며, 그 주위로 기와와 자기조각이 흩어져 있다.
북쪽으로 낮은 평원을 이룬 외곽 봉우리들의 능선을 따라 약 3km 주위에 둘러 쌓은 외성은 돌로 쌓은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축조한 것이다.
외성에서는 3군데 걸쳐 문터가 확인되었으며, 산등성이 윗부분에는 공격에 유리하도록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돌출시켜 쌓은 치성도 5곳 발견되었다.
외성의 총 길이는 약 2,080m이며, 외성의 안쪽에는 전 구간에 걸쳐 일정한 너비의 성벽 안쪽 통행로가 마련되었다.
내성의 확인 가능한 길이는 약 250m이며, 내성의 중앙부에는 봉수대가 있다.
성벽을 돌출시킨 치성(雉城)은 서북·북·동·남·서남쪽의 5곳에서 확인되었다. 그리고 문터는 서남·서북·동남·서문·내성문터 등 5개 문터가 남아 있다.
봉화터.
봉수대는 소백산맥을 넘은 봉수로서 단양 죽령과 충주 조령을 넘은 봉수로와
추풍령을 넘은 봉수로가 최종적으로 합쳐지는 가장 중요한 봉수대였다.
조선시대에는 죽산현의 봉수대로서 영남과 중부 내륙의 봉수를 받아서 도성으로 올린 봉수대 유적으로도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마이산(馬耳山, 471.9m) 정상 안내석
망이산[望夷山] :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과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해발고도는 472m로, 마이산(馬耳山)으로도 불린다.
차령산맥의 한 줄기로, 산의 정상에는 삼국시대 때 축조된 망이산성과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에서 바라보면 남쪽으로 진천군 일대의 평야지대가 펼져지며 북쪽으로는 산세가 거의 절벽을 이룬다.
봉수대는 길이 1.2m, 너비 1.2m의 사각형 모양이며 흔히 볼 수 있는 원형이 아니라는 점이 특색이다.
망이산봉수는 내륙지방에서 올라오는 봉수가 합쳐지던 곳이다.
동쪽으로는 가섭산봉수, 남쪽으로는 진천 소을산봉수, 서쪽으로는 죽산 건지산봉수에 응하여 서울 목멱산(남산)으로 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망이산성의 주성에는 적을 감시하기 위한 진을 구축하였다. 뒤쪽의 낮은 평원에 주력부대가 주둔하여 군사와 군마가 머물렀다.
대지에서 큰 샘이 발견되었으며, 여기서 남쪽으로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
마이산[馬耳山] : 경기도 이천시의 남쪽에 위치한 산이다(고도:473m). 율면과 안성시 일죽면 · 죽산면 및 음성군 삼성면에 걸쳐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망이산(望伊山)은 동쪽으로 음성 가섭산에 그리고 서쪽으로 죽산 검단산에 응한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죽산현에 "건지산 봉수는 동쪽으로 충청도 충주 망이산(望夷山)에 응하고"라 하고,
음성현에는 "가섭산 봉수는 동쪽으로 충주 마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충주 망이산에 응한다."고 하였으며,
진천현에는 "소을산 봉수는 고을 남쪽 7리에 있으니 남쪽으로는 청주 거차대산에 호응하고 북쪽으로는 충주 망이산(望夷山)에 호응한다."고 하여
그 지리적 위치에서 짐작되듯 망이산이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이자 교량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망이산은 현재 마이산의 옛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한자 표기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심지어 본래 지명은 말(馬)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지명이다.
『해동지도』, 『여지도』, 『1872년지방지도』에는 망이산(望夷山)으로,『조선지도』,『팔도군현지도』에는『실록』의 망이산(望伊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조선지형도』에서는 마이산(馬耳山)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말의 형상과는 전혀 상관없이
'여기저기 사방을 관망하는 산' 또는 '오랑캐나 적의 동태를 살피는 산'이란 의미의 망이산(望伊山, 望夷山)에서
말의 형상과 관련된다고 짐작되는 마이산으로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마이산 정상 봉수대가 있는 곳과 주변 산록에서는 망이산성이라는 성곽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바뀐 시기는 대략 19세기 후반부터라고 추측된다.
1894~1895년에 제작된 『죽산부읍지』에 처음으로 마이산봉대(馬耳山熢臺)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있고
이후 일제강점기 지도에서도 마이산으로 표기되고 있다.
참고자료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두 지명이 모두 같은 것으로 보이지요.
망이산성 안내판
삼국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해발 472m의 망이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낮은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다.
남쪽으로는 음성군 삼성면과 멀리 진천군 일대의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군사 요충지이며,
산정상 주변에 흙으로 내성을 쌓고 능선에는 길이 약 2㎞에 걸쳐 돌을 사용하여 외성을
쌓았다.
대개 외벽을 높게 쌓고 내벽은 흙을 높게 다져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한 소위 내탁 방식을 취하고 있다.
내성안에는 장방형의 봉수대를 세웠다. 이 봉수는 죽산 건지산, 진천 소을산, 음성 가엽산 봉수와 연결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성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고 산성으로는 흔치 않게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된 삼국시대의 중요한 유적이다.
고구려의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성내에서는 청동기 대 후기부터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걸치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기와 중에는 준풍(峻豊) 4년명(963년) 기와가 출토되어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 시대 초기에 제작된 기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수레티고개(화봉육교)에 버스가 보이고,
수레티고개(차현(車峴)고개) 안내판
동네분들은 보리고개라고도 부른답니다.
차현고개 주변은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산성,사찰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궁예는 변란을 피해 차현고개 인근의 칠장사에서 유아때부터 10여세까지 보냈다.
그런 연유로 청주지방 일대는 궁예의 고향으로서 정치적 기반이 되었으며 궁예가 청주출신 사람들을 각별히 신임하여 중용하였고
왕권강화를 위해 청주사람들을 철원으로 이주시켜 왕조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왕건일파에게 억울하게 나라를 빼앗기고 통합되어버린 궁예의 추종세력들은 크나큰 분노와 반감을 가졌고
궁예의 정치적 고향이자 왕조의 기반이었던 청주지방을 중심으로 임춘길,이흔암,선장형제 등의 반란이 끊이지 않아서
왕건이 그지방 호족들에게 동물의 성씨를 내리면서까지 탄압하였고
일부 세력은 후백제에 투항했다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청주위쪽 차현고개 아래의 진천은 고구려/백제 멸망에 앞장선 김유신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마이산 등산 안내판
화봉육교(182m)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과 충북 음성군 삼성면의 경계로 583번 국도가 지나는 다리로 중부고속도로를 넘는다.
암튼 583번 국도를 오늘 많이 만나네요.
선두는 벌써 도착해 식사를 다 하시고 저도 버스에서 약 40여분을 쉬어 갑니다만...ㅠㅠㅠ
이렇게 바보가 어디있데요?
마지막을 기념할겸 삼겹살을 준비해 왔는데 불판이랑 고기랑 파채, 쐬주, 막끌리까지 가져왔건만,
버너를 안 가져왔습니당...ㅠㅠ
덕분에 현술이형님 경주빵을 식사대용으로 합니다...ㅋ
중부고속도로
다시 산행이 시작되고,
사진상 뒤로 등로가 이어집니다.
버스 뒤 등로가 이어지고,
황색골산(도고리봉, 352.9m) 정상 안내판
황색골산(도고리봉)은 안성시 죽산면과 일죽면, 음성군 삼성면 경계에 소재하고 있는 한남금북정맥 능선상에 있는 산으로
어떤지도에는 황색골산 352.9m로, 또 어떤 지도에는 도고리봉 351.8m로 표시되어 있다.
정상에는 글씨가 희미한 삼각점(425재설 76.9 건설부)과 삼각점이 있다.
이곳에서 마루금은 오른쪽 안성 일죽면에서 죽산면으로 넘어 갑니다.
안성은 '안성맞춤' 유기로도 유명하지만 일죽면, 죽산면, 삼죽면에서 보듯 대나무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저티고개 안내판
저티고개 돌탑.
저티고개 안내판
삼박골산(356m) 정상 안내판
멀리 칠장산인가요.
당목리고개(17번 국도)
당목리와 용설리를 잇는 국도.
봄이 오고 있습니다.
당목 교차로
등로에서 시멘트 임도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가다 지하통로를 지나요.
지하통로를 지나 우측으로 올라서면 계단이 나옵니다.
비로봉 안내판
보현봉 안내판
바가프미산(장수봉, 332m)
지명유래는 미상. 안성시 게시판에 누군가가 "바카프미산"에 대한 지명유래를 문의하였으나
"그 지역의 주민에 문의하고 자료를 확인하였으나 정확한 자료가 없어 명확하게 유래를 알 수는 없었고,
다만 마을주민들에 의해 구전되어 내려온 명칭이어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음을 알수
있었습니다."라는 답변만 있다는 글만...
멀리 보이는게 ~~
바가프미산을(직진) 다녀 오느라 지나쳤던 갈림길,
마루금은 띠지방향 왼쪽.
앞으론 자동차 폐차장과 건너 안성골프장
모두 네모난 모양으로 잘도 찌그러트렸네요...ㅋㅋ
걸미고개.
안성골프장 입구.
걸미고개(170m)
진천과 용인을 왕래하는 17번 국도가 지나고,
내려서는 길이 매우 미끄러워 철조망을 붙잡고 살살~~
옛날 고개 근처에는 농사가 안되어서 주민들이 거지가 되다시피 했고 이지역에서 지은 곡식으로
음식을 하면 맛도 없다하여 걸미고개라 했다는데 지명이 참...
앞 선녀와 나무꾼의 식당이 영업을 합니다만 산행은 계속,
등로는 안성골프장 정문을 통과해서 직진해서 계속 고고씽~~
본관건물 앞 주차장을 10방향으로 가로질러 갑니다.
사진상 산 좌측의 낮은 곳으로 올라~~
주차장 끝.
그래도 이곳은 좀 눈이 있네요~~ㅎㅎ
역시 골프를 치는 분들도 게시고,
좌벼울고개 안내판
이곳에는 유래를 잘 알수 없는 곳들이 많네요.
산불감시초소(376m)
제비월산(377m)
무심코 올랐는데 안내목이^^
걸미고개 입구부터 계속 같이 온 안성골프장과 너머 장계저수지
바사리열두고개 안내판도 있습니다.
드디어 3정맥 분기점에 당도했습니다.
이렇게 긴 여정의 끝이 났네요~~~ㅎㅎ
금북정맥은 칠장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로
충남을 가로질러 예산의 가야산을 지나 태안반도의 안흥진으로 이어지는 정맥이다.
한남정맥은 칠장산에서 시작하여 도덕산과 함박산으로 이어지는 13정맥의 하나이다.
그러나 신산경표를 따르는 분들은 아래와 같이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산경표>의 한남금북정맥은 이름처럼 한남정맥이며 동시에 금북정맥이다.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갈라져 나와 충북 땅을 휘돌아 경기도 안성에서 두 개의 산줄기로 갈라진다.
안성 칠장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것이 금북정맥이고, 북쪽으로 갈라진 것이 한남정맥이다.
금강 북쪽 산줄기와 한강 남쪽 산줄기로 갈라지는 것이다.
한남금북정맥은 독립된 정맥이 아닌 겹친 산줄기다.
독립된 개별 정맥이 되려면 우리나라 10대 강을 하구까지 이어가며 강의 시작과 끝을 함께해야 한다.
강의 시작부터 하구의 힘찬 강물 끝까지 함께하는 진정한 부모 역할을 해야 정맥임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한남금북정맥은 내륙의 산줄기라 강줄기의 끝까지 함께 가는 진정한 정맥은 아니다.
한남금북을 개별 정맥으로 인정하면 산경표의 기본 원칙과 상식이 무너지게 되는 셈이다.
기존 산경표 역시 한남금북을 개별 정맥이라 여기기보다는
‘한남에도 속하고 금북에도 속하는 산줄기’란 의미로 ‘한남금북’으로 분류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마지막 인증샷입니다.
평상시엔 잘 안 찍지만 오늘은...ㅋ
산사 2기 대간을 책임지고 있는 간지대장님,
정맥에선 후미에서 늘 고생해 주고 있습니다.
스카이형님.
다음 금북정맥부터 리딩을 하실 대장님입니다.
멋지고 행복하고 안전하게 마무리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칠장산(七長山, 492.4m) 정상 안내석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금광면·삼죽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기슭에 있는 칠장사와 칠장사 주변의 울창한 숲으로 유명하고 칠현산(516.2m), 덕성산(519m)과 더불어 웅장한 산세를 이룬다.
정상에서 칠현산쪽으로 내려오면 세개의 ‘정맥분기점’이라 새겨진 이정표가 있다.
옛날부터 같은 산줄기로 서로 가까이에 있는 산이기에 칠장산과 칠현산을 혼동하여 함께 칠현산으로 불렀다.
하지만 조선 시대 어느 권력자가 이 산 일대를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후 칠장사 뒤쪽의 산이라 하여 칠장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시대 지리지나 고지도에는 칠장산이란 지명이 나오지 않아 확인할 수 없지만
그 기슭에 있는 칠현산 칠장사(七長寺)라는 사찰에 대해서는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646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칠현산 칠장사는
혜소국사가 일곱 도적을 감화시켜 수도승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사찰이지만
일곱 사람의 힘센 장정이라는 ‘칠장(七長)’이란 의미가 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일곱 사람의 어진 사람이 나왔다는 의미의 칠현산(七賢山)이 되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푸르미형님,
늘 맏형처럼 듬직하게 무게있게 멋진 형님입니다.
산죽이 제법 울창하고,
칠장사가 보이네요.
칠장사는 칠현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신라 7세기 중엽에 자장율사에 의하여 개기하였다는 사찰로서,
문헌에 보면 사찰이 번창할 때는 건물이 대웅전을 비롯하여 총 56동 건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칠장사에는 국보, 보물급 등 다량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로
11세기경 혜소국사가 7악인을 제도한 고사에 따라
(고려 시대에 칠장사에 혜소 국사가 머물러 있었는데 인근에 일곱 명의 도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도적들이 칠장사 근처에서 쉬다가 한 명이 목이 말라 절 근처 샘물에서 물을 마시려고 하였다.
그런데 물바가지가 금으로 만들어져 있어 그것을 숨겼고 다른 도적들도 모두 그렇게 했다.
그런데 도적들이 집에 오자 바가지가 없어져 있었다.
도적들은 칠장사에 머무르는 혜소 국사의 신통력이라고 생각하고
혜소국사에게 찾아가 모든 것을 자백한 뒤 착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절 뒷산을 칠현산이라 불렀고, 이 절을 칠장사라 불렀다고 한다.)
산이름을 7현산(七賢山)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칠현인이 오래 머물었다 하여 칠장사로 명하였다.
특히,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역사 소설의 일곱 도적과 병해스님 얘기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신라 47대 협안왕 서자인 궁예가 13세까지 칠정사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활연습을 한 활터가 남아있고,
고려시대 혜소국사에 의해 칠악인이 칠현인으로 제도된 일곱현인을 화신인 나한전는 어사
박문수가
당시의 과거 시제인 "몽중등과시" 의 현장이며 옛날에는 과거 시험에 장원을 꿈꾸던 선비들이 많이 찾았고,
현재도 수험생 자녀를 둔 사람들의 공양이 많이 있는 곳이다.
사찰 주위로 숲이 우거져 경관이 화려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절 주변에는 울창한 숲이 둘러싸여 있어 경치를 즐기며 가벼운 등산을 하기에 알맞은 산이며, 특히, 가을단풍이 절경이다.
다알리아님의 이뿡짓...ㅋㅋ
갑장끼리 다정하게~~^^
달집
달집태우기는 정월대보름날의 행사로서 달맞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때로는 쥐불놀이·횃불싸움과도 연관성을 가지는 놀이이다.
청년들이 풍물을 치며 각 가정의 지신밟기를 해주고 나서 짚이나 솔잎을 모아가지고 오는 수도 있고,
청소년들이 각자 나무나 짚을 직접 해가지고 모여드는 수도 있다. 이것을 언덕이나 산 위에 모아서 쌓기도 하고,
조그만 오두막이나 커다란 다락같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
개중에는 달집 속에 대나무들을 넣어서 그것이 터지는 폭음으로 마을의 악귀를 쫓는다는 곳도 있다.
또, 그때까지 날리던 연을 비롯한 여러 가지 태울 것들을 달집 위에 얹어서 다같이 태우기도 한다.
이 때 소년들은 이웃 마을들과 횃불싸움을 하는 수도 있고, 또 “망울이”, “망울이불”
하고 소리지르면서
망울이란 ‘망월(望月)’의 잘못 전해진 음인 것으로 보인다.
대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을 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다.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새해, 질병도 근심도 없는 밝은 새해를 맞는다는 사람들의 꿈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달집태우기이다.
달집이 탈 때 고루 한꺼번에 잘 타오르면 풍년,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 든다고 판단하는 곳도 있다.
또, 달집이 다 타서 넘어질 때 그 방향과 모습으로 그해 풍흉을 점치는 수도 있다.
이웃 마을과의 경쟁에서 이기면 자기 마을이 더 풍년이 든다고 좋아하는 수도 있다.
그러한 점에서 달집태우기는 횃불싸움과도 통하는 것이고 줄다리기나 차전놀이 등과 같이
싸워서 이김으로써 풍년을 보다 확실하게 다짐하려는 세시풍속의 하나이다.
전엔 까망이만 있었는데
몬 본 흰색 사자개가,
검은 녀석은 줄에 묶여있고,
주차장에 버스가 보이니 산행은 모두 끝입니다.
그런데 나홀로님이 과메기를 넉넉하게 준비하는 덕에 모두들 모여 앉아 소주에 맛있게 먹었습니다만
나중에 산이여형님이 안계신걸 알았네요...ㅠ
전화해보니 형님도 저처럼 알바를 해 무슨 주유소에 계시다는데,
알고보니 칠현산까지 산행을 했고 내려서니 주유소가 있었다는...ㅋㅋㅋ
물론 형님이 저보단 산행실력이 더 하시지만 전 잘 마무리하고 다시 등로로 들어 왔다는거......ㅋㅋㅋ
음...ㅋㅋ
암튼...ㅎㅎ
그렇게 무사히 픽업을 하고 부천으로 돌아 옵니다.
송내에서 한남,금북정맥이 끝난 기념으로 자축파티겸 뒷풀이를 했습니다.
전 1대간 9정맥이 끝난 기념으로...ㅋ
생각도 몬 했는데 완주기념패를 사랑나무님께서 만들어 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ㅋ
다른 형님들(미리 9정맥을 마무리하신)이 조그만 플랭카드나 소모임을 하시는 걸 보았는데,
전 그냥 조용히 자축을 하려 했었으나 이런 감사한 선물을 받게 되 너무 고맙네요.
이렇게 1대간 9정맥이 모두 끝이 났습니다.
의미를 두고 시작하지도 않았고,
또 지금도 그러하지만
끝나고 나니 그 느낌은 좀 다르네요.
하지만
산행은 또 이어질 것이고,
늘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한 산행...
그것이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
쐬주, 막끌리 한병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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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시한번 1대간9정맥종주 완주 축하드립니다~~^^ 몸풀기로 금북 딱이겠네요 ㅎㅎ 스카이자문께서 좋아하실겁니다😁😁😁
두분 나란히 손잡고 꼭 오시길 바랍니다.
@다알리아 헐~~~~
진짜 선수들은 다 조용히 산행을 이어가는데 초보나 다름없는 저나 시끄럽지요.....ㅎ
자주 뵙기를~~
구정맥의 마지막을
요란뻑적하게 끝내셨네요
안성cc안으로 누가 들어가랬어요
우리는 삼촌따라가느라
개고생했는데 에그~
길고긴여정 마침표를
찍으니 얼마나 홀가분할까요 ~
가신길 즈려밟고 올 안으로 지두 끝낼랍니다
애쓰셨습니다~~~^&*
두분의 찰떡궁합에 모두 부러워하는데 즐거운 산행뒤에 끝이 있겠죠,,,...ㅎ
완주패가 정말 멋집니다!
이젠 고생끝~ 행복시작 인가요~~ ㅎ
앞으로 편안한 등로에서 자주 뵙길 바랍니다요^^!
이래 말씀을 해 주셔야 하는데,
부뜰형님은 벌쓰 기백을 안하느냐공............ㅋㅋㅋ
완주패 왼쪽 금박이가 겁나 탐나능구만요ㅋ
사랑나무님이 멋진 선물 해주셧네요~~
다시한번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
그건 부수적임다만 저도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 일인이라서....ㅋㅋㅋ
변대장님 1대간 9정맥 졸업 축하해요.
정맥은 암것두 아닙니다.
기맥.지맥길은 그야 말로 환상의 길입니다.
너무너무 머싯습니다.
신 산경표에서 주장하는 정맥의 끝이 맞다.아니다로 논란이 있는 금북기맥과 금강기맥은 하셔야지. 신 낙남정맥은 같이 한걸로 아는데.
한북정맥도 그렇고.
에고, 형님 끝이 없습니당...ㅋㅋ
일단 자유인에서 진양을 시작할까 합니다....,
함 해보고 힘들면 안해유~~~^^
무식하게 달리기만 했던 길을 역사까지 기록해주는
변대장님이 있어 정맥길이 좋았는데...
앞으로는 무슨 낙으로 정맥을 달려야 하나 ...
늘 건강하시고 ...
몸이 근질거리면 정맥길 탐방 나오시길 바랍니다.
네, 형님 늘 즐겁고 안전한 산행 이어가시고요,
저도 기회가 되는데로 자주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