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36권
대반열반경_12. 가섭보살품④
4. 나와서는 사방을 두루 살피는 것/ 수다원/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
5. 살펴보고는 가는 것/ 수다원/
6. 가서는 다시 머무는 것/ 아나함/ 반열반/ 중반열반/ 상류반열반/ 중열반/
7.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니는 것/ 저 언덕에 이른다고 하는 것/ 여래가 자기의 뜻을 따르는 말/ 세간의 과보/ 사문나와 사문과/ 아라한/ 벽지불/ 일곱 중생의 행/
4. 나와서는 사방을 두루 살피는 것
이 사람이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선한 동무를 만나는 것이며,
둘째는 나쁜 동무를 만나는 것이다.
나쁜 동무를 만난 이는 잠깐 나왔다가 도로 빠지고,
선한 동무를 만난 이는 사방을 두루 살핀다.
사방을 살피는 것은 곧 정법(頂法)이다.
이 법이 비록 성품은 5음이나 4제를 반연하므로. 사방을 두루 살핀다고 이른다.
정법을 얻고 난 다음에 인법(忍法)을 얻는데,
인법도 그와 같아서, 성품이 5음이며 4제를 반연한다.
이 사람이 다음에는 세제일법(世第一法)을 얻나니, 이 법도 비록 성품이 5음이나. 4제를 반연한다.
이 사람은 다음에는 고법인(苦法忍)을 얻는다.
인(忍)의 성품은 지혜이며 1제를 반연한다.
이 인법이 1제를 반연하고 나서. 나아가 견도위(見道位)에서 번뇌를 끊고 수다원과를 얻는다.
이것을 이름하여 넷째의 사방을 두루 살핀다고 하며,
사방은 곧 4제이다.”
[수다원]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수다원이 끊은 번뇌는 너비와 길이가 40리 되는 물과 같고,
남아 있는 것은 털 한 개로 찍어 낸 물방울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어찌하여 세 가지 결박[三結]을 끊은 것을 수다원이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첫째는 나라는 소견[我見]이며,
둘째는 인이 아닌 것을 인으로 보는 것이며,
셋째는 의심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이 사방을 살핀다고 하며,
또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이라고 하며,
또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을 상어[䱜魚]에 비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수다원이 비록 한량없는 번뇌를 끊지만, 이 세 가지가 중대하기 때문이며,
또 모든 수다원들이 끊을 결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마치 대왕이 순행할 때에 네 가지 군병이 따르지만,
세상 사람들은 다만,
‘왕이 오셨다, 왕이 가셨다’라고 말할 뿐이다.
왜냐하면 세간에서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번뇌도 그와 같다.
무슨 인연으로 중대하다고 하는가?
온갖 중생들이 항상 일으키기 때문이며,
미세하여 알기 어렵기 때문에, 중대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 세 결박을 끊기 어렵기 때문이며,
모든 번뇌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며,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세 가지로 다스릴 대적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어떤 중생들은 수다원이 한량없는 번뇌를 끊는다는 말을 듣고는,
물러나는 마음을 내어 말하기를,
‘중생이 어떻게 이러한 한량없는 번뇌를 끊으리오.’ 하기에,
여래가 방편으로 세 가지를 말하였다.
그대가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을 사방을 살피는 데 비유하였습니까?’ 하였는데,
선남자야, 수다원은 4제를 관찰하여 네 가지를 얻는다.
첫째는 견고한 도에 머무는 것,
둘째는 두루 살피는 것,
셋째는 실상과 같이 보는 것,
넷째는 원수를 깨뜨리는 것이다.
견고한 도라고 하는 것은, 수다원이 가지는 5근(根)을 흔드는 이가 없으므로, 이것을 견고한 도에 머문다고 한다.
두루 살핀다고 하는 것은, 안팎 번뇌를 능히 꾸짖는 것이며,
실상과 같이 본다고 하는 것은, 곧 인(忍)과 지(智)이며,
원수를 깨뜨린다고 하는 것은, 4전도(顚倒)를 말하는 것이다.
또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이라고 이름하였습니까?’라고 하는 것은,
선남자야, 수(須)는 무루이며 다원(陀洹)은 닦음이니, 무루를 닦으므로 수다원이라고 이름한다.
선남자야, 또 수는 흐른다는 뜻이다.
흐르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흐름을 따르는 것이며,
둘째는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흐름을 거스르므로 수다원이라고 이름한다.”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 뜻을 따른다면, 무슨 인연으로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은 수다원이라고 이름하지 않습니까?”
“선남자야, 수다원으로부터 부처님까지도 수다원이라 이름할 수 있다.
만일 사다함으로부터 부처님까지 수다원이 없다면,
어떻게 사다함으로부터 부처님까지라고 하겠는가?
모든 중생의 이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옛 것[舊]이며,
둘째는 객(客)이다.
범부인 때에는 세간의 이름이 있고,
도를 얻은 뒤에는 다시 일러 수다원이라고 한다.
먼저 얻었으므로 수다원이라 하고,
뒤에 얻었으므로 사다함이라 하는데,
이 사람은 수다원이라고도 하고,
사다함이라고도 하며,
나아가 부처님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흐르는 것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해탈이며,
둘째는 열반이다.
모든 성인들이 모두 이 두 가지가 있으므로,
수다원이라고도 하고,
사다함이라고도 하며,
나아가 부처님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수다원을 보살이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보살은 곧 번뇌를 모두 다한 지혜[盡智]와 나지 않는 지혜[無生智]이다.
수다원도 이 두 가지 지혜를 구하는 것이므로, 수다원을 보살이라 이를 수 있다.
수다원을 각(覺)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도를 보고 번뇌를 끊음을 바르게 깨달았기 때문이며,
인과 과를 바르게 깨달았기 때문이며,
한께 하는 도[共道]와 함께 하지 않는 도를 바르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다함으로부터 아라한까지도 이와 같다.
5. 살펴보고는 가는 것
[수다원]
선남자야, 수다원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영리한 근성이며,
둘째는 둔한 근성이다.
둔한 근성의 사람은 인간과 천상에 일곱 번 오고 간다.
둔한 근성의 사람은 또 다섯 가지가 있다.
혹은 여섯 번, 다섯 번, 네 번, 세 번, 두 번 오고 가며,
영리한 근성의 사람은 현재에 수다원과부터 아라한과를 얻는다.
선남자야, 그대가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을 상어에 비유하였습니까?’라고 하였는데,
선남자야, 상어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뼈가 가늘어서 가벼운 것이고,
둘째는 지느러미가 있어서 가벼운 것이고,
셋째는 광명을 보기 좋아하는 것이고,
넷째는 물건을 물고 놓지 않는 것이다.
수다원도 네 가지가 있다.
뼈가 가는 것은, 번뇌가 경미한 데 비유한 것이고,
지느러미는, 사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에 비유한 것이고,
광명을 보기 좋아함은, 도를 보는 데 비유한 것이고,
물건을 물고 놓지 않음은, 여래가 말하는 무상과 괴로움과 내가 없음과 부정함을 듣고 꼭 가지고 놓지 않는 데 비유한 것이다.
마치 마왕(魔王)이 부처님 모양으로 변화한 것을 수라(首羅) 장자가 보고 놀라는데,
마왕은 장자의 마음이 동요함을 보고 장자에게 말하기를,
‘내가 먼저 말한 4제는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다시 너에게 5제ㆍ6음(陰)ㆍ13입(入)ㆍ19계(界)를 말하리라’ 하였으나,
장자가 듣고 나서 법상(法相)을 자세히 생각하니,
그럴 리가 없으므로 마음을 굳게 가지고 동하지 않는 것과 같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수다원은 먼저 도를 얻었으므로 수다원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초과(初果)이기 때문에 수다원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만일 먼저 도를 얻었으므로 수다원이라고 한다면,
고법인(苦法忍)을 얻었을 때에는 어찌하여 수다원이라 하지 못하고,
수다원향(須陀洹向)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만일 초과이므로 수다원이라 한다면,
외도들이 먼저 번뇌를 끊고 무소유처에 이르러서 무루도를 닦아 아나함과를 얻은 것은,
어찌하여 수다원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초과이기 때문에 수다원이라고 한다.
그대가 묻기를,
‘외도들이 먼저 번뇌를 끊고 무소유처에 이르러서 무루도를 닦아 아나함과를 얻는 것은,
어찌하여 수다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였지만,
선남자야, 초과이기 때문에 수다원이라고 하는 것은,
이 사람이 그때 8지(智)와 16행(行)을 구족하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아나함을 얻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8지와 16행을 구족하는데,
어찌하여 수다원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유루(有漏) 16행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함께하는 것[共]이며,
둘째는 함께하지 않는 것[不共]이다.
무루 16행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향하는 과[向果]이며,
둘째는 얻는 과이다.
8지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향하는 과이며,
둘째는 얻는 과이다.
수다원은 함께하는 16행을 버리고, 함께 하지 않는 16행을 얻으며,
향하는 과의 8지를 버리고, 얻는 과의 8지를 얻지만,
아나함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초과를 수다원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수다원은 4제를 반연하고, 아나함은 1제만 반연한다.
그러므로 초과를 수다원이라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상어에 비유한다.
두루 살피고 가는 것은, 곧 사다함이 마음을 두어 도를 닦음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교만을 끊기 위함이다.
저 상어가 사방을 두루 살피고 나서 먹이를 위하여 가는 것과 같다.
6. 가서는 다시 머무는 것
가서는 다시 머무는 것은 아나함에 비유한 것이니,
먹을 것을 얻고 나서 머무는 것이다.
[아나함]
이 아나함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현재에 아나함을 얻고 닦아 나아가서 아라한과를 얻는 것이며,
둘째는 색계와 무색계의 적정(寂靜)삼매에 탐착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욕계의 몸을 받지 않으므로 아나함이라 고 한다.
이 아나함에 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중반열반(中般涅槃)이며,
둘째는 수신(受身)반열반이며,
셋째는 행(行)반열반이며,
넷째는 무행(無行)반열반이며,
다섯째는 상류(上流)반열반이다.
또 여섯 가지가 있으니 다섯 가지는 위와 같고,
여섯째는 현재(現在)반열반이다.
또 일곱 가지가 있으니, 여섯째는 위와 같고,
일곱째는 무색계(無色界)반열반이다.
[행반열반]
행반열반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혹은 두 몸을 받고 혹은 네 몸을 받는다.
만일 두 몸을 받았다면 영리한 근성이라 하고,
네 몸을 받았다면 둔한 근성이라고 한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정진하고 자재한 선정이 없는 것이며,
둘째는 게으르고 자재한 선정이 있는 것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정진과 선정을 갖춘 것이며,
둘째는 두 가지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중반열반]
선남자야, 욕계와 색계 중생에게 두 가지 업이 있으니,
첫째는 짓는 업[作業]이며,
둘째는 태어나는 업[生業]이다.
중열반(中涅槃)은 짓는 업만 있고 태어나는 업은 없다.
그러므로 중간에서 반열반한다.
욕계의 몸을 버리고 색계까지 이르기 전에 영리한 근성이므로, 중간에서 열반한다.
이것을 중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중열반하는 아나함에게 네 가지 마음이 있으니,
첫째는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이며,
둘째는 학(學)이며,
셋째는 무학이며,
넷째는 비학비무학으로 열반에 드는 것이다.
어찌하여 중반열반이라고 하는가?
선남자야, 이 아나함의 네 가지 마음 중에서,
두 가지는 열반이며, 두 가지는 열반이 아니다.
그러므로 중반열반이라고 한다.
수신열반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짓는 업이며,
둘째는 나는 업이다.
이 사람이 욕계의 몸을 버리고 색계의 몸을 받아서 부지런히 도를 닦다가 수명이 다한 뒤에 열반에 든다.”
[수신열반과 행반열반과 무행반열반]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수명이 다하여 열반에 든다면, 어찌하여 수신열반이라고 합니까?”
“선남자야, 이 사람은 몸을 받은 뒤에야 삼계의 번뇌를 끊는다.
그러므로 수신열반[생반열반]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행반열반은 항상 도를 수행하여,
함이 있는 삼매의 힘으로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드는데,
이것을 행반열반이라고 한다.
무행반열반은 이 사람이 열반을 얻을 줄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게으르지만 역시 함이 있는 삼매의 힘으로 수명이 다하면 열반에 든다.
이것을 무행반열반이라고 한다.
[상류반열반]
상류반열반은 어떤 사람이 제4선을 얻었는데도 초선천에 사랑하는 마음을 내면,
그 인연으로 물러나 초선천에 태어난다.
여기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번뇌류(煩惱流)이며,
둘째는 도류(道流)이다.
도류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수명이 다하면 2선천에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사랑하는 인연으로 2선천에 태어나며,
나아가 제4선도 그와 같다.
이 4선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무색계에 들어가고,
둘째는 5정거천(淨居天)에 들어간다.
이 두 사람은,
하나는 삼매를 좋아하고,
다른 하나는 지혜를 좋아하는데,
지혜를 좋아하는 이는 5정거천에 들어가고,
삼매를 좋아하는 이는 무색계에 들어간다.
이 두 사람이, 하나는 4선정을 닦는 데 다섯 가지 단계가 있고,
또 하나는 닦지 않는다.
무엇이 다섯인가?
하(下)ㆍ중(中)ㆍ상(上)ㆍ상중(上中)ㆍ상상(上上)이다.
상상을 닦는 이는 무소천(無小天)에 있고,
상중을 닦는 이는 선견천(善見天)에 있고,
상품(上品)을 닦는 이는 선가견천(善可見天)에 있고,
중품을 닦는 이는 무열천(無熱天)에 있고,
하품을 닦는 이는 소광천(少廣天)에 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는 논의를 좋아하고,
또 하나는 고요함을 좋아한다.
고요함을 좋아하는 이는 무색계에 들어가고,
논의를 좋아하는 이는 5정거천에 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훈습하는 선정[熏禪]을 닦고,
또 하나는 훈습하는 선정을 닦지 않으며,
훈습하는 선정 닦는 이는 5정거천에 들어가고,
훈습하는 선정을 닦지 않는 이는 무색계에 났다가 그 수명이 다하면, 반열반한다.
이것을 상류반열반이라고 한다.
만일 무색계에 들고자 하는 이라면,
4선의 다섯 계급을 닦지 못하지만,
만일 다섯 계급을 닦으면, 무색계정을 꾸짖는다.”
[중열반]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열반하는 이는 영리한 근성이라고 하는데,
만일 영리한 근성이라면,
어찌하여 현재에 열반에 들지 않으며,
무슨 까닭으로 욕계에는 중열반이 있고 색계에는 없습니까?”
“선남자야, 이 사람이 현재에는 4대(大)가 쇠약하여서 도를 닦지 못한다.
어떤 비구가 4대가 건강하더라도,
집과 음식과 의복과 와구와 의약이 없으면, 모든 연(緣)을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현재에 열반하지 못한다.
선남자야, 내가 예전 어느 때에 사위국 아나빈저(阿那邠低:給孤獨) 정사에 있을 때,
어떤 비구가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항상 도를 닦지만, 수다원과 나아가 아라한과까지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아난에게 말하여 이 비구를 위하여 모든 필요한 용품을 준비하여 주라고 하였더니,
아난이 그 비구를 데리고 기타숲에 가서 좋은 방을 마련하여 주었다.
그때 비구가 아난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바라건대 나의 방을 훌륭하게 장엄하고 정결하게 치우며,
7보로 꾸미고 비단 번[繪幡]과 일산을 달아 주시오.’
아난이 대답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가 사문인데, 내가 이런 것을 어떻게 마련하겠는가?’
비구가 말하였다.
‘대덕이 나를 위하여 이런 것을 마련하면 아주 좋겠으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세존께서 계신 데로 돌아가겠소.’
그때 아난은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지난번에 그 비구가 저에게 요구하기를,
여러 가지 장엄과 7보로 된 번과 일산을 달라고 하였는데,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나는 아난에게 다시 말하였다.
‘너는 다시 돌아가서 그 비구가 달라는 대로 이바지하라.’
아난은 곧 다시 그 방에 가서, 그 비구를 위하여 온갖 것을 마련하여 주었다.
그 비구는 그런 것을 얻은 뒤에는,
마음을 모아 도를 닦다가 오래지 않아서, 수다원과부터 아라한과까지를 얻었다.
선남자야, 한량없는 중생들이 마땅히 열반에 들 것이지만,
궁핍한 것이 많아 마음을 산란하게 하므로 얻지 못한다.
선남자야, 또 어떤 중생들은 교화하기를 좋아하면서도,
마음이 분주하여서 선정을 얻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열반하지 못한다.
선남자야, 그대가 묻기를,
‘무슨 까닭에 욕계의 몸을 버리고 나서 중열반하는 이가 있고, 색계에는 없습니까?’ 하였는데,
선남자야, 이 사람이 욕계의 번뇌 인연을 관찰하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안이며,
둘째는 밖이나 색계에는 바깥 인연이 없다.
욕계에 또 두 가지 애착하는 마음이 있으니,
첫째는 욕망에 대한 애착이며,
둘째는 색(色)에 대한 애착이다.
이 두 가지 애착을 관찰하고 지성으로 꾸짖으며 꾸짖고 나서, 열반에 든다.
이 욕계 중에서 모든 거친 번뇌를 꾸짖게 되는데,
아끼고 탐하고 성내고 질투하고 부끄럼 없고 수줍은 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열반을 얻는다.
욕계의 도(道)는 성품이 용맹하다.
왜냐하면 4과를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욕계에는 중열반이 있고 색계에는 없다.
선남자야, 중열반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상과 중과 하이다.
상은 몸을 버리고서 욕계를 떠나지 않고 열반을 얻고,
중은 처음 욕계를 떠나서 색계에 이르기 전에 열반을 얻고,
하는 욕계를 떠나고 색계의 끝에 이르러서야 열반을 얻는다.
이를 상어가 먹이를 얻고 나서 머무는 데 비유하였으니, 이 사람도 그러하다.
7.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니는 것
어떤 것을 머문다고 하는가?
색계와 무색계에 처해 있으면서 몸을 받는 것이므로 머문다 하며,
욕계의 인간ㆍ천상ㆍ지옥ㆍ축생ㆍ아귀의 몸을 받지 않으므로 머문다고 하며,
이미 한량없는 번뇌의 결박을 끊고 조금만 남았으므로 머문다고 한다.
다시 무슨 인연으로 머문다고 하는가?
마침내 범부와 함께하는 일을 짓지 않으므로 머문다고 하며,
스스로 두려움이 없고 다른 이도 두려움이 없게 하므로 머문다 하며,
두 가지 애욕인 간탐과 성내는 일을 멀리 떠났으므로 머문다고 한다.
[저 언덕에 이른다고 하는 것]
선남자야, 저 언덕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아라한ㆍ벽지불ㆍ보살ㆍ부처님을 비유한 것이니,
마치 거북이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니는 것과 같다.
무슨 인연으로 거북에 비유하는가?
다섯 가지를 잘 감추기 때문이다.
아라한으로부터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아서,
5근을 잘 가리므로 거북에 비유하였다.
물과 육지라고 하는 것에서 물은 세간에 비유하였고,
육지는 출세간에 비유하였으며,
여러 성인들 또한 이와 같이 모든 나쁜 번뇌를 능히 관찰하므로 저 언덕에 이른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닌다고 비유하였다.
선남자야, 항하 속의 일곱 가지 중생이,
비록 고기나 거북이라고 하는,
이름은 다르나 물을 떠나지 않음과 같이,
이 미묘한 대열반 가운데도 일천제로부터 위로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이름은 비록 다르나, 불성이란 물을 떠나지 않는다.
[여래가 자기의 뜻을 따르는 말]
선남자야, 이 일곱 중생이, 선한 법이거나 선하지 않은 법이거나, 방편도(方便道)거나, 해탈도(解脫道)거나, 차제도(次第道)거나, 인이거나 과거나 모두 불성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여래가 자기의 뜻을 따르는 말이라고 한다.”
[세간의 과보]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인(因)이 있으면 과(果)가 있고,
인이 없으면 과가 없을 것입니다.
열반을 과라고 한다면, 항상하기 때문에 인이 없을 것이니,
만일 인이 없다면, 어떻게 과라고 하겠습니까?
이 열반을 또한 사문이라 이름하며, 사문과(沙門果)라 이름하니,
어찌하여 사문이며 어찌하여 사문과입니까?”
“선남자야, 모든 세간에 일곱 가지 과보가 있다.
첫째는 방편의 과보[方便果]이며,
둘째는 은혜 갚는 과보[報恩果]이며,
셋째는 친근한 과보[親近果]이며,
넷째는 남은 과보[餘殘果]이며,
다섯째는 평등한 과보[平等果]이며,
여섯째는 과보의 과보[果報果]이며,
일곱째는 멀리 여읜 과보[遠離果]이다.
방편의 과보라고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가을에 곡식을 많이 거두면, 방편의 과보를 얻었다고 하는데,
방편의 과보는 업행(業行)의 과보라고 하며,
이런 과보에는 두 가지 인이 있다.
첫째는 가까운 인[近因]이며, 둘째는 먼 인[遠因]이다.
가까운 인은 종자를 말하며,
먼 인은 물과 거름과 사람의 공력이니,
이것을 방편의 과보라고 한다.
은혜 갚는 과보라고 함은,
세상 사람이 부모에게 공양하면, 부모가 말하기를,
‘우리는 지금 낳아 길러 준 과보를 받는다’고 하며,
자식이 능히 은혜를 갚으므로 과보라고 한다.
이런 과보에도 두 가지 인이 있다.
첫째는 가까운 인이며, 둘째는 먼 인이다.
가까운 인은 부모의 과거의 선한 업이며,
먼 인은 곧 낳은 효자이니,
이것을 은혜 갚는 열매라고 한다.
친근한 과보라고 함은,
마치 어떤 이가 선지식을 친근하면, 수다원과부터 아라한과까지를 얻는데,
이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지금 친근한 과보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과보에도 두 가지 인이 있으니,
첫째는 가까운 인이며, 둘째는 먼 인이다.
가까운 인은 믿는 마음이며,
먼 인은 선지식이니,
이것을 친근한 과보라고 한다.
남은 과보라고 하는 것은,
살생하지 않는 것을 인하여 셋째 번 몸에 오래 살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남은 과보라고 한다.
이런 과보에 두 가지 인이 있으니,
첫째는 가까운 인이며, 둘째는 먼 인이다.
가까운 인은 몸과 입과 뜻이 깨끗함이며,
먼 인은 장수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남은 과보라고 한다.
평등한 과보라고 하는 것은 기세계[世界器]을 말한다.
이런 과보에도 두 가지 인이 있으니,
첫째는 가까운 인이며, 둘째는 먼 인이다.
가까운 인은 중생들이 열 가지 선한 업을 닦는 것이며,
먼 인은 3재(災)를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평등한 과보라고 한다.
과보의 과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청정한 몸을 얻고 나서,
몸과 입과 마음의 청정한 3업을 닦는 것과 같은데,
이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과보의 과보를 얻었다’라고 한다.
이런 과보에도 두 가지 인이 있으니,
첫째는 가까운 인이며, 둘째는 먼 인이다.
가까운 인은 현재의 몸과 입과 뜻이 깨끗한 것이며,
먼 인은 과거의 몸과 입과 뜻이 깨끗한 것이다.
이것을 과보의 과보라고 한다.
멀리 여읜 과보라고 하는 것은 곧 열반이다.
모든 번뇌를 여읜 온갖 선한 업은 열반의 인이다.
이 인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까운 인이며, 둘째는 먼 인이다.
가까운 인은 곧 3해탈문이며,
먼 인은 한량없는 세월에서 닦은 선한 법이다.
선남자야, 세간의 법에서, 혹은 내는 인[生因]을 말하고, 혹은 나타내는 인[了因]을 말하는 것처럼,
출세간의 법도 그와 같아서,
내는 인도 말하고, 나타내는 인도 말한다.
선남자야, 3해탈문과 37품(品)은 모든 번뇌를 위하여 나지 않는 내는 인[不生生因]이 되고,
또한 열반을 위하여 나타내는 인[了因]이 된다.
선남자야, 번뇌를 멀리 여의면 분명하게 열반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열반에는 나타내는 인만 있고, 내는 인은 없다.
[사문나와 사문과]
선남자야, 그대가 묻기를,
‘어찌하여 사문나(沙門那)이며, 어찌하여 사문과입니까?’ 하였는데,
선남자야, 사문나는 곧 8정도(正道)이며,
사문과는 도로부터 필경에 모든 탐욕ㆍ성내는 일ㆍ어리석음을 영원히 끊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문나, 사문과라고 한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8정도를 사문나라고 합니까?”
“선남자야, 세상에서 말하기를,
사문(沙門)은 궁핍이라 하고, 나(那)는 도라고 한다.
도라는 것은 온갖 궁핍을 끊고 온갖 도를 끊는다.
이런 뜻으로 8정도를 사문나라고 하며,
이 도로부터 과를 얻으므로, 사문과라고 한다.
선남자야, 또 사문나라고 함은 세상 사람으로서, 고요한 데를 좋아하는 이도 사문나라고 한다.
도라는 것도 그러하여, 행자(行者)로 하여금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나쁜 일과 삿된 목숨[邪命]을 여의고, 고요함을 즐기게 하므로, 사문나라고 이름한다.
선남자야, 마치 세상에서 하등 사람으로서 상등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을, 사문나라고 하는데,
도라는 것도 그와 같아서, 하등 사람으로 하여금 상등 사람이 되게 하므로, 사문나라고 한다.
[아라한]
선남자야, 아라한으로서 이 도를 닦는 이는 사문과를 얻으므로, 저 언덕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라한과는 곧 무학(無學)의 오분법신(五分法身)이니,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이다.
이 다섯 가지로 인하여 저 언덕에 이를 수 있으므로, 저 언덕에 이른다고 하며,
저 언덕에 이르렀으므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태어나는 일이 끝났고 범행이 이미 섰고, 할 일을 이미 마쳤고 다시 생사[有]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선남자야, 이 아라한은 3세(世)에 태어나는 인연을 영원히 끊었으므로,
스스로 말하기를,
‘태어나는 일이 끝났다’ 하고,
3계의 5음으로 이루는 몸을 끊었으므로,
‘나는 태어나는 일이 끝났다’라고 하며,
닦는 범행을 마쳤으므로,
‘범행이 이미 섰다’고 말하고,
또 도를 배우는 것을 버렸으므로,
‘이미 섰다’고 하며,
본래 구하던 일을 오늘 얻었으므로,
‘할 일을 이미 마쳤다’라고 말하며,
도를 닦아서 과를 얻었으므로,
‘이미 마쳤다’라고 말하며,
다하는 지혜[盡智]와 나지 않는 지혜를 얻었으므로,
말하기를,
‘나는 태어나는 일이 이미 끝났고, 모든 유[有]의 결박을 다하였다’라고 한다.
이런 뜻으로, 아라한을 저 언덕에 이르렀다[到彼岸]고 한다.
[벽지불]
아라한과 같이 벽지불도 그러하며,
보살과 부처님께서는 6바라밀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므로, 저 언덕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부처님과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므로, 6바라밀을 구족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6바라밀의 결과를 얻은 까닭이며, 결과를 얻었으므로, 구족하였다고 한다.
[일곱 중생의 행]
선남자야, 이 일곱 중생은 몸을 닦지 않고, 계행을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는다.
이 네 가지 일을 닦지 않으면, 5역죄를 지으며, 선근을 끊으며, 4중죄를 범하며, 3보를 비방한다.
그러므로 항상 빠진다고 한다.
선남자야, 일곱 사람 중에, 능히 선지식을 친근히 하는 이는,
지성으로 여래의 바른 법을 듣고, 속으로 잘 생각하여 법답게 머물며,
몸과 계행과 마음과 지혜를 부지런히 닦는다.
그러므로 생사의 강을 건너서 저 언덕에 이른다고 한다.
만일 말하기를,
‘일천제들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라고 하는 이는, 잘못 집착한다고 하고,
‘얻지 못한다’고 말하면, 허망하다고 한다.
선남자야, 이 일곱 가지 사람은 혹 한 사람이 일곱을 갖추기도 하고, 혹 일곱 사람이 각각 한 가지를 가지기도 한다.
선남자야, 만일 마음과 입으로 달리 생각하고 달리 말하되,
‘일천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라고 하면,
이 사람은 부처님ㆍ교법ㆍ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며,
어떤 사람이 마음과 입으로 달리 생각하고 달리 말하되,
‘일천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다’라고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ㆍ교법ㆍ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이가 말하기를,
‘8성도(聖道)는 범부가 얻을 것이다’라고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ㆍ교법ㆍ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며,
만일 말하기를,
‘8성도는 범부가 얻을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ㆍ교법ㆍ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만일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반드시 불성이 있다거나 반드시 불성이 없다’라고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ㆍ교법ㆍ승가를 비방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내가 경에서 말하기를,
‘두 가지 사람이 부처님ㆍ교법ㆍ승가를 비방한다.
첫째는 믿지 않고 성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믿으면서도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선남자야, 만일 사람이 신심은 있으나 지혜가 없으면, 이 사람은 무명을 증장하고,
지혜는 있으나 신심이 없으면, 이 사람은 삿된 소견을 증장한다.
선남자야, 믿지 않는 사람은 성내는 마음 때문에, 불보(佛寶)ㆍ법보(法寶)ㆍ승보(僧寶)가 없다고 말하고,
믿는 이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뒤바뀌게 뜻을 해석하여, 법을 듣는 이로 하여금 부처님ㆍ교법ㆍ승가를 비방하게 한다.
선남자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믿지 않는 사람은 성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며,
믿는 사람은 지혜가 없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불보ㆍ법보ㆍ승보를 비방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일천제들이 선한 법을 내지 못하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라고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ㆍ교법ㆍ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며,
또 말하기를,
‘일천제가 이 일천제를 버리고 다른 몸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ㆍ교법ㆍ승가를 비방한다고 하지만,
만일 말하기를,
‘일천제가 능히 선근을 내며, 선근을 내고 나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그러므로 일천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하고 말하면,
이 사람은 3보를 비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어떤 이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반드시 불성이 있어,
항상하고[常] 즐겁고[樂] 나이고[我] 깨끗하고[淨], 짓지도 않고[不作] 나지도 않지만[不生],
번뇌의 인연 때문에 보지 못한다’라고 하면,
이 사람은 부처님ㆍ교법ㆍ승가를 비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일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없는 것이,
마치 토끼의 뿔과 같지만 방편으로 나는 것이어서,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으며,
있고 나서 다시 없어진다’라고 하면,
이 사람은 부처님ㆍ교법ㆍ승가를 비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만일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은 있어도 허공과 같은 것이 아니며,
없어도 토끼의 뿔과 같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허공은 항상하기 때문이며,
토끼의 뿔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할 것이니,
있으므로 토끼의 뿔을 깨뜨리고, 없으므로 허공을 깨뜨린다’라고 하면,
이런 말은 3보를 비방하는 것이 아니다.
선남자야, 불성은 1법이라 말하지 않고,
10법이라 말하지 않고,
백 법(百法)이라 말하지 않고,
천 법(千法)이라 말하지 않고,
만 법(萬法)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모든 선과 불선과 무기(無記)를 모두 불성이라고 말한다.
여래는 어느 때에는 인 가운데 과를 말하고 과 가운데 인을 말하는데,
이것을 여래가 자기의 뜻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의 뜻을 따라 말하므로 여래라 이름하고,
자기의 뜻을 따라 말하므로 아라하라 이름하고,
자기의 뜻을 따라 말하므로 삼먁삼불타라 이름한다.”
++++++++++++
이 경은 다음의 경에 대하여 살세히 해설한 경이라 할 수도 있겠다.
중아함경_004. 수유경(水喩經), 일곱 가지 물과 관련된 사람
https://cafe.daum.net/sutta-nipata/ROx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