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이미균의 시 세계
자연 정경과 향수의 서정미학
--이미균 시집『 』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나’와 ‘세월’의 함수관계
현대시에 투영되는 주제의 경향이나 그 양상을 살펴보면 대체로 한 시인이 살아오면서 체험하고 느낀 절실성이 하나의 진실로 승화하는 작품들을 많이 대하게 된다. 이는 그 시인이 인생의 체험을 통해서 새로운 심리적 변화를 시도하거나 정립된 인생관의 탐색을 위한 작품의 구도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영국의 비평가 리처즈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정서생활과 시의 소재 사이엔 별 차이가 없다.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는 말로써 시의 소재와 체험의 상관성을 제시한 바 있는데 이는 잡다한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구현된 정서나 사유(思惟)의 지향점이 바로 그 시인의 진실임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여기 이미균 시인이 첫 시집으로 상재하는 『 』은 이러한 체험의 소산으로 창작된 소재와 주제를 읽을 수 있는데 그가 이러한 주변의 일상들이 작품으로 승화하기 까지는 그에게 내재(內在)된 깊은 사유의 향방이 바로 시적인 진실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미균 시인은 먼저 ‘나’에 대한 성찰로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회상을 통한 시적 상황(situation)을 설정하고 삶과 세월의 함수관계를 풀어나가는 시법(詩法)을 구사하고 있어서 그의 내면에 잠재한 자아(自我)의 가치관을 탐색하는 작품들을 많이 대할 수가 있다.
귀목나무 둥근 탁자
옹이 박혀
숨어 있는 나이가 몇 살인지
나이테가 말해주고
나와 함께 흘러 온 삶
탁자 위에 올려놓고
묵묵히 생각 하니
엊그제 소녀시절
댕기머리 간 곳 없고
돌아 서니 희끗한 세월
못다 이룬 꿈을 세고 있는
탁자위위 나이테는
나를 위로하며
손 때 묻은 무늬가
웃고 살자네
이 작품 「나이테」전문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나와 함께 흘러온 삶’ 속에는 ‘엊그제 소녀시절’의 회상을 통해서 ‘못다 이룬 꿈’이 ‘희끗한 세월’과 상호 연결되면서 그가 스스로 ‘나를 위로하며’ 자아를 성찰하고 있다.
이미균 시인이 ‘귀목나무 둥근 탁자’에서 ‘나이테’라는 삶의 연륜을 헤아리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과 세월의 상관성을 통해서 자신을 반추(反芻)하는 비유로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체험이 사간성과 더불어 사유의 범주(範疇)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돌아올 줄 모르고 너는 야속하고 / 이내 마음 슬프게 만드느냐(「흐르는 세월 앞에」중에서)’거나 ‘엿가래 같은 긴 세월에도 인심은 쉬고 가지 않는다(「엿장수 할아버지」중에서)’는 어조(語調)와 같이 ‘세월’과 ‘나’와의 동행에서 절감(切感)하는 그의 시적 지향성을 이해하게 한다.
부족함이 있어도 용서와
화를 풀고
가시는 길 험하여 못가시거든
쉬엄쉬엄 가시옵고
좋은 곳에 가시거든
먼저 자리 잡아 놓고
다시 만나 회포 풀 날 기다려 주오
--「국화꽃 속의 대화」중에서
이미균 시인의 시적 원류에는 ‘용서’와 화해의 광범위한 사유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다시 만나 회포 풀 날’까지 ‘기다려’ 달라는 관용(寬容)의 심저(心底)를 읽을 수 있게 한다. 또한 그는 ‘인연이랑 먼 곳에서 찾아오고 / 황토벽은 나의 거울이었다(「벽지」중에서)’는 어조처럼 추억들이 깃들어 있는 체험들이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진실이 바로 이미균 시학의 근원이 되고 있다.
2. 자연 정경과 서정의 조화
이미균 시인이 다시 천착(穿鑿)하는 시적 배경이나 상황은 자연정경과 그의 서정성이 잘 융합(融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시적 소재를 만유(萬有)의 자연형상에서 탐색하거나 투영하는 시법으로 친자연적인 주제를 탐색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이는 우리 주변에 지천(至賤)으로 널려 있는 자연 속에서 그가 음미(吟味)하는 절대적인 주제는 바로 그러한 정경(情景)을 통한 심적인 안온(安穩)을 구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울밑 텃밭에
엄마가 심어놓은 장다리 꽃밭
예쁜 하얀 나비 한 쌍 날아와
노랑 꽃잎에 앉았다 날고
먼 산 아지랑이 가물거리며
따스한 봄볕 마당에
비아리대 둥우리 속 봄 병아리
삐약삐약 엄마 품에 안겨
눈 비비며 물 한 모금 먹고
하늘한번 쳐다보고
내 동생 세 살 둥이 맨발로 나와 아장아장 걸을 때
하늘을 날던 매 한 마리 내려와
회오리바람 일으킨다
--「봄볕」전문
자연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눔 주지만 세상인심
메말라 가는 느낌에
알밤 한 되 주워 온 미안한 생각
다시 씨를 심어 자연으로
보냈으면
--「자연이 가져다 준 나눔」중에서
그렇다. 이미균 시인이 간직한 자연 정경은 우선 시각적으로 응시(凝視)하면서 다양한 진실을 구가(謳歌)하는 그의 독특한 시법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는 외적(外的)인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그가 창출(創出)하려는 서정적인 시미학(詩美學)을 분사(噴射)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적인 이미지의 투영은 ‘자연이 가져다 준 나눔’으로 ‘나눔 주지만 세상 인심 / 메말라가는 느낌’에서 자연 사랑의 시적 원류가 형성되고 있어서 그는 자연과 인간의 상관성의 불가분의 절대성을 창조하려는 시법으로 해석하게 된다.
다시 그는 ‘팔각정 정자 밑에 걸린 / 타종 울리면 // 산천초목도 인간사 / 만물과 함께 한다 // 석가래 밑 붕어모양 / 풍경소리 산새도 울어 // 적막한 산사에 / 종소리 울러 퍼지니 // 경건한 마음속 하루가 / 시작되는 // 속세에 지은 죄 / 종소리가 떠안고 간다(「산사의 종소리」전문)’는 정적(靜寂)의 언어는 그가 자연 속으로 동화(同化)하면서 ‘인간사’와 ‘만물’과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행은 ‘속세에 지은 죄’를 ‘산사의 종소리’와 함께 떠나보내는 경건함이 주제로 숙성(熟成)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이미균 시인에게서는 그가 희구(希求)하던 진정한 시적 진실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덕유산 큰 젖줄 구천동 계곡 / 백련사 여승들에 목탁 소리(「구천동의 혼」중에서)’와 같이 산사에 관한 시적 소재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라는 예언자들의 비전을 포기하고 자연을 정복하고 그것을 우리 목적에 맞게 변형시킴으로써 해결하려고 했다는 어느 성인의 말처럼 그 결과는 자연의 정복은 자연을 점점 더 파괴하는 데 까지 이르렀다는 안타까운 식자들의 언술에서 우리가 자연과 어떻게 동행해야 하는지 교훈적인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이미균 시인은 이러한 친자연적인 요소들을 이미 절감하고 우선 그 정경을 묘사함으로써 그 정경에서 펼쳐지는 잔잔한 추억들이 생성되고 그 추억의 체험에서 현재의 삶(leal life)과의 갈등요소들을 순화하거나 정화하는 시적인 진실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리 놓아 박 넝쿨
초가 지붕 올리고
하룻밤 새 파란줄기 쭉쭉 뻗어
갑자기 소낙비 내려
큰 잎사귀
빗줄기 막아 처마 끝으로
떨어진다
--「초가지붕 박넝쿨」중에서
함박 눈 펄펄 날아든 날
한적한 카페에 앉아
모락모락 김이 서리는
커피 잔을 벗 한다
--「첫눈 오는 날」중에서
그가 응시한 정경들이 위와가 같이 현현되고 있다. 그는 천성적으로 서정적인 인생관을 송유하고 있다. 그에게 오감(五感)을 통해서 추출되는 이미지가 모두 자연 경관을 모태로 하여 방상하는 시의 구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산재(散在)한 조그마한 풍경에서도 그의 시선은 멈추지 않는다. 시인의 지적인 혜안(慧眼)으로 사물을 관조(觀照)하거나 사물과 동화함으로써 그가 구현하려는 시적인 서정성을 담담(淡淡)하게 창출하고 있다.
3. 향수를 통한 그리움의 실체
이미균 시인에게서 특이하게 발견되는 것은 고향을 회상하는 향수의식에서 그의 사유는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것은 그리움이라는 우리 인간들의 정감에서 분출된 이미지의 종합이다.
이처럼 고향에 대한 그의 정감은 그의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 지금쯤 인생(혹은 삶)에 대한 회상과 동시에 발현하는 것이다. 지나온 세월과 삶의 결집이 이루어지는 현실적인 정서에서 그는 향수에 대한 집념이 바로 작품으로 형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개울물은 피리떼 줄서 수영하고 / 소금쟁이 물 풍뎅이 장구를 치고 / 웅덩이 진 냇가에 멱 감던 옛 친구 / 지금은 그 어디서 무엇을 하뇨 // 세월은 바퀴도 없이 잘도 돌아간다(「시냇가 언덕」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그의 유년이 잘 투영하고 있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그의 심저에서 시적 발원(發源)으로 상상력이 진솔하게 분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고향은 일찍이 ‘고향의 산천은 어떠한 이름난 명승지보다도 아름다운 곳(조지훈의 「청년의 내일을 위하여」중에서)’이라거나 ‘한번 고향을 가졌던 사람에게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아 있어 피를 따라 그것이 되살아 나온다(지명관의「고향 생가」중에서)’ 그리고 ‘고향에 대한 집념이란 사람에게 숙명과 같은 것(백 철의「망향 12월가」중에서)’이라는 명언들처럼 고향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숙명적인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다.
거제도의 앞바다는 서산노을 질 때까지
하얀 풍선처럼 바다에 매달은 굴양식에
파도 없는 날 아침 햇살 은비늘 반짝
작은 퉁퉁선 굴 따다 굴찢거미 굴 비린내로
동네사람 모여 앉아 굴 채취해
서쪽 산 햇님이 굴까는 아낙에 얼굴비치면
수산물차는 한차 가득 싣고서
내일 첫새벽 수산시장 경매로 간다
갈매기 떼 지어 파도에 밀려 울 때
갯 비린내 나는 굴어장은 풍류를 노래한다
--「고향 바다」전문
정월 대보름 돌아올 때까지
집집마다 마당밟기 복 받는다
저녁이 으슥해지도록 놀 때
닭장 안에 씨암탉 잡아 가마솥에
닭죽을 끊여 매구꾼과 나누워먹던
시절 고향에 예스러운 풍경이
잊혀 가는 것이 그립다
--「매구꾼(농악놀이)」중에서
위의 두 편의 작품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거제도의 앞바다’와 ‘굴양식’ 그리고 ‘작은 통통선’등이 적시하는 풍경에서 회상된 향수는 ‘갈매기 떼 지어 파도에 밀려 울 때 / 갯 비린내 나는 굴어장은 풍류를 노래’하는 그리움으로 승화하고 있다.
어쩌면 미미균 시인에게서는 ‘고향=그리움’이라는 등식을 성립하여 시적인 원천(源泉)이나 원류로 인식하고 있어서 그의 사유에는 다양한 소재 속에서 오직 그리움에 대한 주제를 확산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영역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고향에 예스러운 풍경이 / 잊혀 가는 것이 그립다’는 착잡한 사유에서도 그에게 내재된 향수가 시적 주제인 그리움으로 더욱 승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미균 시인의 향수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물밑에 나갔던 어부들의 배 / 들어오면 // 앞 다투어 경매장에 호령이 / 울려 퍼져 // 알아 듣지도 못한 사이 팔려나간다(「녹동 바닷가」중에서)
-산까치는 오늘도 기다림에 내 마음 / 팔려 그곳으로 간다(「산신제」중에서)
-울도 없는 산중에 하얀 눈 이불삼아 / 깊은 잠 드시고 봄 오기만 기다린다(「눈덮힌 산 소」중에서)
-추수해 놓은 벼가리 홀태로 밟으며 / 나락알 덕석에 쌓여 / 짚가마니 축담에 올려놓으며 // 풍로에 바람 따라 쭉쟁이 보내고 / 내년 봄 볍씨 못자리판 보관해 두고 / 햅쌀을 찧어 서 조상 단지에 넣는다(「성주 단지」중에서)
-초당 앞 들마루에 글 읽는 / 소리 / 갓 탕건 쓴 할아버지 헛기침 긴 담뱃대에 / 천자문 앞 에 놓고 졸던 / 그 소년 잠 깨운다(「시냇가 언덕」중에서)
-눈썹달 서산에 걸터앉아서 // 외양간 황소 눈곱 입춤 흘리며 / 오일장날 고삐 잡혀 여행 하는 길 // 살던 집 그리워 뒤돌아보고(「우사」중에서)
그렇다. 그는 이렇게 다양한 추억이 그의 뇌리를 감돌고 있다. 이것이 원류가 되어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그리움에 대한 이미지의 융합이다. 이런 회상은 작품을 통해서 지나온 세월과 삶을 축약(縮約)시키면서 그 애환(哀歡)에 대한 화해와 조화를 통한 그리움의 실체를 탐색하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탐색의 저변에는 그가 구상하고 염원하던 존재의 원형을 깊이 탐구하는 어조가 보인다. 앞서 작품「국화꽃 속에 대화」에서도 ‘좋은 곳에 가시거든 / 먼저 자리 잡아 놓고 / 다시 만나 회포 풀 날 기다려 주오’라는 어조와 같이 이 세상과의 결별에 대한 심오(深奧)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향수를 통해서 현현되고 있다.
삼춤을 손톱으로 쪼개어
양쪽의 전대에 걸어두고
한 올 갈라 입춤으로
무릎 위 쭈그러진 관절위에 올려 두고
두올 이어 날실 만들어
예로 새로 옛 여인들 삼베길쌈에
베 한 필이 완성되면
바지저고리 도포 명멱 악수* 만들어
대들보에 올려 두고 새 옷 입고
저승길 언제 갈고
홍글 소리*에 눈물 글썽이면서
소죽솥에 장작불 감자 꺼내려 간다
--「삼베」전문
여기 ‘삼베’에서 감지(感知)되는 것은 바로 ‘저승길’에 관한 예감이다. 우리 풍속에 저승길에는 ‘삼베’옷을 입고 가는 예시(例示)를 제공하면서 결론적으로 고향의 따뜻한 ‘삼베’의 이미지는 그 당시의 애상(哀想)이 존재의 문제와 결부하고 있는 점이다.
이미균 시인은 이처럼 서정적 자연과 향수 등을 통해서 삶과 세월의 상관성을 추구하는 서정시인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는 ‘명멱악수’와 ‘홍글 소리’에는 주(註)를 붙여서 설명을 해놓고 있어서 우리들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다만, 항상 하는 말이지만 옛 로마의 대시인 호라티우스가 그의 「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도 모자란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거나 프랑스의 시인 볼테르의 말처럼 ‘시란 영혼의 음악이다. 보다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다’는 새로운 장조를 위한 언어의 조탁(彫琢)이 요구되기도 한다.
이미균 시인은 이러한 상황의 적응과 연마(硏磨)을 통해서 앞으로 좋은 작품(일부에서 형이상시(形而上詩)라고 말한다)을 창작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