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계만다라의 의례
(1)챠이티야(Caitya)의 구조
Caitya(챠이티야) 혹은 Stupa(스투파)는 stup에서 유래된 말이며, 모으다(save, gather, collect) 즉 축적하다(accumulate)라는 뜻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caitya는 ci에서 유래된 말이며 쌓이다(get accumulated, be piled up, lie on)라는 뜻이 된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스투파는 무엇인가를 쌓아서 만든 건축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석가모니불의 유해는 화장된 후에 그 asti(사리)를 8등분으로 나눠 각각 여러 왕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하며, 그들은 사리를 모시기 위해 8개의 Caitya를 만들었고, 후에 아쇼카 대왕이 다시 각각의 Caitya에 있는 aṣti를 꺼내서 여러 나라에 나눠 많은 Caitya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8개 탑 중에 네팔 카필라성에 있는 Caitya에서 aṣti를 꺼내려고 할 때, 많은 동물들이 와서 꺼내지 못하게 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탑은 아직도 네팔 카필라성에 존재한다.
Sānchi Bṛhut 등에서는 초기에 설립된 Caitya가 존재하는데 그들은 석가모니불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불상이 만들어져 숭배의 대상이 될 때까지는 Caitya가 신앙의 대상이었다. 한국의 경주에 삼층, 오층, 구층탑이 많은 것처럼 네팔 카트만두 분지에는 스와얌부 탑을 중심으로 작은 Caitya들이 아주 많으며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Caitya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카트만두 분지에서는 시내 불교 사원의 경내, 마을 네거리 또는 일반 가정의 안뜰 등에 갖가지의 Caitya를 볼 수 있는데 그 수는 적어도 3,200부터 3,400개 정도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네팔 카트만두분지의 모든 Caitya는 스와얌부 차이티야를 모델로 해서 건축되었으며 스와얌부는 자생물(自生物)을 뜻한다. 스와얌부 차이티야에는 사방에 4불과 아촉불 옆에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으며 4불 사이사이에 불명비(佛名碑)가 모셔져 있다. 마찬가지로 네팔 카트만두분지에 발견된 모든 Caitya에는 사방에 불타의 상이나 보살의 상이 조각되어 있다. 5불과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는 것은, 분명히 이 탑을 만다라를 구성하고 있는 3차원 형태로 볼 수 있다.
Kazumi Yoshizaki학자는 자기 책인 Kathmandu Valley as a water pot에서, "네팔에서 유행한 Dharmadhātu vāgiśvara maṇḍala(법계어자재만다라), Vajradhātu maṇḍala(금강계만다라)와 Durgatipariśodhana maṇḍala(사후구제용 만다라)가 결합하여 Caitya가 건립될 토지에 배치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네팔의 밀교승려 및 학자 NRB는 논자와 개인 인터뷰에서, 네팔의 대부분 Caitya는 금강계만다라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다며 바로 금강계만다라의 3차원 형태인 것을 주장한다. 이 주장은 본인이 직접적으로 연구하여 발견한 주장이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스와얌부 대탑은 Dharmadhātu caitya로 잘 알려진 탑이다. 몇 년 전에 스와얌부 탑의 수리를 해야할 필요가 생겼다.
네팔에서는 본존을 새로 창건하거나 수리할 때는 반드시 모든 의식에서 본존의 종류에 따라 삼마지를 거행해야한다. 그래서 수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 탑은 법계탑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법계삼마지를 찾기 시작했다. 현재 스와얌부대탑 의식을 하실 스님들에게 이에 대해 여쭤보니 아무도 법계삼마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1918년에 스와얌부를 마지막으로 수리하신 사업가 Dharma Man Tuladhar의 가족들과 탑을 재건할 때 의례를 해 준 Bajracharya 승려들의 가족들에게 알아보니 수리할 당시의 의례를 해 준 Bajracharya 스님들은 그 수리한 날을 기념하여 매년마다 대보름날에 스와얌부 대탑 앞에서 모여 Saptavidhyānuttara(칠지무상공양)의식을 올린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의식 올릴 때 가서 알아보니까 그들은 의례 중에 법계삼마지가 아닌 Vajradhātu Samādhi를 행하고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것으로 그는 비록 탑이 법계탑(Dharmadhātu Caitya)이라고 하더라도 법계만다라가 바로 금강계만다라의 다른 형태인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더불어 Dharmadhātu Vāgiśvara Maṇḍala 자체가 금강계만다라의 다른 형태(form)인 것으로 본다. 이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 중 하나로 일본학자 Tachikawa가 법계어자재만다라를 금강계만다라가 발전한 계열로 설명한 것이 있다.
만약에 탑이 금강계만다라를 기초하여 창건되었을 경우 네팔인들이 분명히 금강계사 찰이나 금강계탑으로 표시를 한다. Dina Bangdel은 카트만두 분지 현장연구를 통해서, 금강계탑이 Malla시대(12시기~17시기) 마지막 시점에 유행하였음을 밝혔다. 현장 검사 중에 Thanhiti, Thimi, Pyukha의 명비(銘碑)는 Vajradhātu Caitya(금강계탑)으로 확인하고 있으며 Malla시대(16세기 중간이나 그 이후)에 재건되었다. 또한 그는 현장 검사 중에 카트만두분지의 파탄 지역에 금강계탑이 많이 존재한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정리하면, 법계만다라는 금강계만다라의 발전한 계열이며, 금강계만다라보다 훨씬 뒤에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의식 속에는 금강계만다라를 기초로 하므로 분명히 법계만다라가 금강계만다라인 것을 알려 주고 있다.
건축가 및 예술가들은 탑을 그냥 짓는 것이 아니라 불교경전에서 설하는 원칙에 따라 법식을 정하여 만든다. 네팔 밀교에서는, 새로운 Caitya나 탑이 비록 아름답게 건립되었다하더라도, 탑 건립식을 거치지 않고 창건된 탑은 결코 신앙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탑 건립의식을 진행하고 나서도 모든 탑은 Dasa Karma Pratiśthā vidhi(십통과의례)를 거쳐야 탑은 인간처럼 생명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간주된다. 네팔 밀교에서 탑 건립의식과 십통과의례는 새로운 탑, 불화, 사찰과 불상을 건립할 때와 모실 때나 오래된 탑, 불화, 사찰과 불상을 재건립할 때 필수적으로 행해야할 할 의례이다. 이 전통이 네팔 밀교에서 언제부터 진행되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네팔불자들은 신심을 가지고 엄격하게 이 의례를 행해왔다.
논자는 네팔 밀교에서 탑의 건립 의례 속에 금강계만다라의 활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그 의식을 알아본다.
네팔현지의 의례와, 네팔 밀교의 개혁자 BRB가 쓰고 마헨드라 국립대학교가 1992년에 출판한 "Nepālko Bauddha Karmakāṇḍa"(네팔불교의 후기과정)를 중심으로 Naresh man Bajracharya의 Sūtrapātana vidhi과 Pādasthapana vidhi등의 문헌을 참고하여 탑 건립 의식 순서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네팔 밀교 금강계만다라에 관한 연구/ Nabin Bajracharya 위덕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