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발해 답④
제시된 문화유산은 발해 유적에서 발굴된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치미(지붕 용마루 끝에 얹는 장식용 기와)와 석등입니다.
설명에 나타난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가진 국가’하면 발해와 고려가 떠오르죠? 이 문제는 답지에 고려에 대한 것은 없으니 비교적 답 찾기가 수월하네요.
발해는 고구려 유민 대조영(고왕)이 고구려인과 말갈인을 이끌고 지린 성의 동모산에서 건국하였습니다(698). 2대 무왕 때까지는 적대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3대 문왕은 당, 신라와 친선 관계를 유지하며 당의 선진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습니다. 9세기 초 선왕 때 옛 고구려 땅을 대부분 차지하면서 역사상 가장 넓은 영역을 지배하는 등 전성기를 보여, 이 무렵 중국인들은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불렀어요.
발해는 당의 3성 6부를 수용해 중앙 정치 조직을 갖추었으나, 그 명칭과 운영 방식은 독자적이었습니다. 전국을 5경15부 62주로 정비하였으며, 중앙군으로 10위를 두었어요. 발해의 지배층은 대부분 고구려인이었으며, 외교 문서 등에도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황제국을 자칭하였고, '인안', '대흥' 등 독자적으로 연호를 사용하였어요.
① 발해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에서 마지막 왕인 인선왕까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② 대조영은 고구려인과 말갈인을 이끌고 지린 성의 동모산 근처에서 건국하였습니다(698).
③ 발해는 당의 3성 6부를 수용해 중앙 정치 조직을 갖추었으나, 그 명칭과 운영 방식은 독자성을 띠었습니다.
④ 5군영은 조선 후기에 설치된 군대입니다.
⑤ 발해는 지방 행정 조직을 5경 15부 62주로 정비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유사 기출문제
발해의 역사
9. 발해 답②
제시된 지도는 발해와 신라가 함께 발전한 남북국 시대를 나타낸 것입니다.
발해는 전국을 5경 15부 62주로 정비하였어요.
대조영이 건국한 발해는 당과 대립하면서 국가의 기초를 다지고, 문왕 때부터는 친선 관계로 전환하여 당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고 정치적 안정을 꾀하였습니다. 9세기 초 선왕 때에는 옛 고구려 땅을 대부분 차지하면서 가장 넓은 영역을 지배하였으며, 지방 제도를 5경 15부 62주로 조직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어요. 이 무렵 중국인들은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불렀습니다.
① 골품제는 신라의 폐쇄적인 신분제였습니다.
② 발해는 9세기 초 선왕 때 전성기를 맞았는데, 이 무렵 중국인들은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불렀습니다.
③ 9서당 10정은 통일 신라의 군사 조직이며, 발해의 군사 조직으로는 10위가 있었습니다.
④ 주몽은 부여에서 남하하여 졸본 지역에서 압록강 유역의 토착민이 힘을 합하여 고구려를 세웠습니다.
⑤ 장수왕 시기의 고구려에 대한 설명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7. 발해 답①
장문휴의 등주 공격은 발해 무왕 시기의 사실입니다.
제시된 자료에 당이 나타나 있으니, 당이 존속하던 시기(618~907)에 있었던 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후고구려, 후백제인데, 답지에는 이들 나라에 대한 내용이 없으니 어렵지 않네요. 이들 나라에 대한 내용이 있으면 그나마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는 문제인데...
발해는 당의 3성 6부를 받아들여 중앙 정치 조직을 갖추었으나, 그 명칭과 운영 방식은 독자적이었습니다. 지방 행정 조직은 5경15부 62주로 정비하였으며, 군사 조직은 중앙군으로 10위를 두었어요. 발해의 지배층은 대부분 고구려인이었으며, 외교 문서 등에도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황제국을 자칭하였고, '인안', '대흥' 등 독자적으로 연호를 사용하였어요.
① 전국을 8도로 나누었던 것은 조선 시대의 지방 행정 제도입니다.
발해는 지방 행정 조직을 5경 15부 62주로 정비하였어요.
② 발해는 9세기 초 선왕 때 옛 고구려 땅을 대부분 차지하면서 가장 넓은 영역을 지배하였으며, 지방 제도를 5경
15부 62주로 조직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이 무렵 중국인들은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불렀습니다.
③ 발해는 10세기 초 국력이 크게 쇠퇴하여 거란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습니다(926).
④ 대조영은 고구려인과 말갈인을 이끌고 지린 성의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였습니다(698).
⑤ 발해는 중국과 대등한 지위에 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스스로 황제국임을 밝히기도 하고, 인안(무왕),
대흥(문왕)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②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한 것은 백제(660)와 고구려(668)입니다.
③ 발해는 중국과 대등한 지위에 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스스로 황제국임을 밝히기도 하고, 인안, 대흥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어요.
10. 발해 답①
제시된 자료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이 저술한 ‘발해고(渤海考)’입니다. 한자만 알면 책을 바로 읽어낼 수 있으니
(가)에 들어갈 나라는 발해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유즉공은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입니다.
제시된 자료를 보면, "부여씨가 망하고(백제 멸망), 고씨가 망한 다음(고구려 멸망), 김씨가 남방을 차지하였고(신라), 대씨가 북방을 차지하여(대조영이 세운 발해)"라고 나와 있으니 (가)에는 발해가 들어가야 함을 알 수 있어요.
유득공(1749~1807)은 "발해고"에서 반도 사관 탈피와 남북국 시대를 설정, 신라의 삼국 통일을 불완전한 것으로 규정하고 백제와 신라를 대등한 국가로 인사하여, 남의 신라와 북의 발해를 남북국 시대라 부를 것을 처음으로 제안하였습니다. 또한 고려가 발해사를 찬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구려·발해의 영토를 점령하고 있던 여진·거란에 대해 영토적 권리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어요.
① 발해는 지방을 5경 15부 62주로 조직하였습니다.
전략적 요충지에는 5경(상경, 중경, 동경, 서경, 남경)을 두었고, 지방 행정의 중심에는 15부를 두었으며,
그 아래에 주와 현을 두고 지방관을 파견하였습니다.
② 고려에 대한 설명입니다.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 주는 관청으로는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이 있었어요.
여기에서는 재신(중서문하성)과 추밀(중추원)이 함께 모여 회의로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였습니다.
③ 진대법은 고구려 고국천왕 때 실시(194)한 빈민 구제 제도입니다.
이는 먹을거리가 모자란 봄에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가을에 추수한 것으로 갚게 하는 제도였어요(194).
④ 화랑도는 신라의 청소년 집단이었습니다.
신라 청소년은 화랑도 활동을 통하여 사회 규범을 배웠어요. 이들은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제천 의식을 행하고,
사냥과 전쟁에 관하여 교육을 받음으로써 협동과 단결 정신을 기르고 심신을 연마하며 국가의 인재가 되었어요.
⑤ 정사암 회의는 백제의 귀족회의체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13. 발해 답①
제시된 설명에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고, 대씨(대조영)가 부쪽 땅을 차지하고 세운 나라'라고 나와 있으니, 발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선왕(818~830) 때 발해가 전성기를 맞이하자, 이 시기 중국인들이 발해를 해동성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시기 발해는 대부분의 말갈족을 복속하고 요동 지역으로 진출하여 발해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어요.
② 신라가 당군을 한반에서 축출한 나·당 전쟁에 대한 설명입니다.
신라는 당의 20만 대군을 매소성에서 격파하였고, 이어 금강 하구의 기벌포에서 당의 수군을 섬멸하여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습니다(676).
③ 9주 5소경은 통일 후 신라의 지방 행정 체제입니다.
④ 건원은 신라 법흥왕, 개국은 진흥왕 때 사용된 독자적인 연호입니다.
⑤ 고려가 쌓은 천리장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이 끝난 후에 개경에 나성을 쌓아 도성 수비를 강화하고, 북쪽 국경 일대에는 천리장성을 쌓아
거란과 여진의 침략에 대비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2. 발해 무왕(719~737)의 업적 답③
문제에 제시된 사료에 나타난 '대조영의 아들로 이름은 대무예, 인안이라는 독자적 연호 사용, 흑수 말갈 정벌'이라는 내용을 통해 발해의 2대 왕인 무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조영(고왕)에 이어 즉위한 무왕은 연호를 인안으로 정한 후 당과 대립 관계를 유지하면서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여 북만주 일대를 장악하였습니다. 그리고 돌궐, 일본 등과 연결하면서 당과 신라를 견제하여 동북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였어요.
이때 당은 흑수 말갈을 이용하여 발해를 견제하였습니다. 무왕은 흑수 말갈을 토벌하는 한편 흑수 말갈의 토벌 과정에서 벌어진 당의 조치(무왕의 동생 대문예가 당으로 망명하자 대문예를 우대하면서 발해를 분열시키려는데 이용)에 불만을 품고 수군을 보내 산둥 지방을 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① 대조영에 대한 설명입니다.
고구려 멸망 후 요서 지역에 이주되었던 대조영은 거란의 반란을 계기로 이 지역에 대한 당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고구려인과 말갈인을 이끌고 지린 성의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우고(698), 국호를 진, 연호를 천통이라 하였습니다.
②, ⑤ 문왕(737793)에 대한 설명입니다.
문왕은 동모산에서 중경(742)→상경(756)→동경(785)으로 천도를 단행하였어요.
③ 무왕은 흑수 말갈의 토벌 과정에서 벌어진 당의 조치에 불만을 품고 장문휴로 하여금 수군을 이끌고 산둥 지방의
등주를 공격하도록 했어요. 이에 장문휴는 등주 자사를 죽이고 귀환하였습니다.
④ 문왕은 당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신라와도 상설 교통로(신라도)를 개설하여 대립 관계를 개선하였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발해의 문화유산
25회 중급 6번 문제
6. 발해의 문화유산 답②
문제에 제시된 자료에 나타난 '대조영이 세우 나라로, 해동성국이라 불렸던 나라', '상경성' 등을 통해 발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발해의 문화유산을 답지에서 찾으면 됩니다.
발해는 고구려 문화의 토대 위에 당의 문화를 수용하였습니다.
발해의 상경은 당의 수도인 장안을 본떠 외성을 쌓고 그 안에 궁궐과 사원을 세웠으며, 궁궐 앞으로는 성문 앞까지 이어지는 넓은 주작 대로를 내었습니다. 궁궐 중에는 고구려의 특징인 온돌 장치를 한 것도 발견되었어요. 그리고 궁궐과 사원터에서 발굴되는 벽돌과 기와 무늬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소박하고 힘찬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발해의 불교는 고구려 불교를 계승하여 왕실과 귀족 중심으로 널리 융성하였어요. 불교 문화유산으로는 상경에 남아 있는 석등과 동경에서 나온 이불 병좌상, 영광탑 등이 남아 있습니다. 이 석등은 팔각 지붕 모양의 덮개돌과 뚜렷한 연꽃무늬, 힘찬 기운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불 병좌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영광탑(발해전탑이라고도 함)은 높이 13미터의 5층 전탑(벽돌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발해의 고분으로는 정혜 공주 묘와 정효 공주 묘가 대표적입니다. 정효공주 묘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벽돌 무덤으로, 묘지(죽은 자의 생애와 가족 관계 등을 기록하여 관과 함께 묻은 유물)와 12인물상이 그려진 벽화가 발굴되었습니다. 정혜 공주 묘는 고구려와 같은 굴식 돌방무덤 양식으로 만들어졌고, 이곳에서 묘지와 함께 힘차고 생동감 있는 돌사자상이 출토되었어요. 이들 두 무덤은 공통적으로 모줄임 천장 구조라는 특징이 나타납니다.
① 칠지도는 4세기 후반 근초고왕 대에 백제에서 만들어 일본에 보낸 것입니다.
강철로 만들고 금으로 글씨를 상감해 새겨 넣은 것으로, 백제의 뛰어난 금속 기술을 보여 줍니다.
② 이불병좌상은 발해의 불상으로, 흙을 구워 만든 두 분의 부처(석가불, 다보불)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③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의 금관입니다.
④ 가야의 바퀴장식 뿔잔입니다.
⑤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로, 말의 배가리개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21회 중급 8번 문제
8. 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발해의 문화유산 답⑤
발해 문화가 고구려 문화를 계승하였다는 근거 자료를 찾는 문제네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 크게 두 가지죠. 하나는 정치적으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내세웠고, 이는 발해가 일본 등에 보낸 외교 문서 등을 통해 알 수 있어요. 다른 하나는 문화적으로 고구려 문화를 계승하였다는 것이로, 이는 무덤 양식이나 온돌, 불상 건축 양식으로 알 수 있죠.
발해에도 도읍지를 중심으로 많은 무덤이 남아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정혜 공주묘는 굴식 돌방무덤에 모줄임 천장 구조를 하고 있어 고구려 고분과 닮았습니다(정효 공주 묘는 벽돌 무덤에 모줄임 구조가 특징).
또 궁궐 터나 절터를 통하여 당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발해의 지상 건물은 궁궐터에서는 고구려의 문화적 특징 중의 하나인 온돌 장치를 한 것이 발견됩니다.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과 동경의 절터에서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여겨지는 불상이 발굴되었어요. 이 불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이불병좌상). 그리고 발해의 조각은 궁궐 터에서 발견되는 유물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발해의 벽돌과 기와 무늬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소박하고 힘찬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ㄱ - 발해의 영광탑은 벽돌로 만들어 쌓은 전탑으로 당나라 건축 기법과 유사한 탑면으로 조성되었어요.
현재 중국 동북 지역에서 현존하는 고탑(古塔) 가운데 연대가 가장 오래 되었습니다.
ㄴ - 발해의 수도 상경은 당시 당의 수도인 장안을 본떠 건설하였습니다.
즉, 외성을 쌓고, 남북으로 넓은 주작 대로를 내고, 그 안에 궁궐과 사원을 세웠습니다.
ㄷ - 발해의 연꽃무늬 기와는 고구려 무늬를 계승하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ㄹ - 이불병좌상의 수인, 두상 등의 표현 양식은 당과는 다른 고구려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양식을 하고 있어,
고구려 불상 양식을 계승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ㄷ, ㄹ로 묶인 ⑤번입니다.
19회 중급 11번 문제
2. 발해의 문화유산 답④
밑줄 그은 '우리나라'가 어디인지 알려주는 결정적인 내용은 '상경용천부로 돌아가면'이네요.
상경용천부는 5경(상경, 동경 서경, 남경, 중경)의 하나로, 발해의 수도였다는 아시죠?
그럼 발해의 문화유산을 찾으면 됩니다.
발해의 상경은 당시 당의 수도인 장안을 본떠 외성을 쌓고, 남북으로 넓은 주작 대로를 내고, 그 안에 궁궐과 사원을 세웠습니다. 궁궐 중에는 고구려의 특징인 온돌 장치를 한 것도 발견되었습니다.
이 상경의 절터에는 힘찬 기운을 느끼게 해 주는 발해의 석등이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편 발해의 탑으로는 영광탑(발해전탑이라고도 함)이 남아 있는데, 이 탑은 높이 13미터의 5층 전탑(벽돌탑)입니다.
불상으로는 이불 병좌상이 대표적으로, 이 불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발해의 고분으로는 정혜 공주 묘와 정효 공주 묘가 대표적입니다(정혜 공주는 문왕의 둘째 딸, 정효 공주는 넷째 딸).
정효공주 묘는 중국과 비슷한 벽돌 무덤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묘지(죽은 자의 생애와 가족 관계 등을 기록하여 관과 함께 묻은 유물)와 벽화가 발굴되었습니다. 벽화에는 12인물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정혜 공주 묘는 고구려와 같은 굴식 돌방무덤 양식으로 만들어졌고, 이곳에서 묘지와 함께 힘차고 생동감 있는 돌사자상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무덤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두 무덤 모두 모줄임 천장 구조라는 특징이 나타납니다.
①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은 백제 또는 신라의 문화유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② 수레모양 토기는 경남 의령에서 출토된 가야의 토기입니다.
③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은 고구려의 연호(연가)가 기명된 고구려의 대표적인 불상입니다.
④ 영광탑은 전탑(벽돌탑)으로 발해의 대표적인 불탑입니다.
⑤ 첨성대는 신라의 천체 관측을 위한 건축물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6회 중급 7번 문제
7. 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발해의 문화유산 답③
이 문제는 발해 문화유산 중 고구려적 요소가 있는 것을 찾는 것이지만, 답지에는 발해 문화유산이 하나만 제시되어 있으니 그냥 발해 문화재만 찾으면 맞을 수 있네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 중 하나가 무덤 양식이나 온돌, 기와, 불상 건축 양식 등 발해 문화에서 나타나는 고구려 문화적 요소임을 알아두세요.
발해의 궁궐터에서는 고구려의 문화적 특징 중의 하나인 온돌 장치를 한 것이 발견됩니다. 궁궐 터에서 발견되는 발해의 벽돌과 기와 무늬도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소박하고 힘찬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무덤에서도 고구려의 영향이 나타나는데, 정혜 공주묘는 굴식 돌방무덤에 모줄임 천장 구조를 하고 있어 고구려 고분과 닮았습니다(정효 공주 묘는 벽돌 무덤에 모줄임 구조가 특징).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과 동경의 절터에서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여겨지는 불상이 발굴되었어요. 특히,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이불병좌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고구려 후기 법화 사상과 관련이 있으며, 수인(손 모양), 두상 등이 당과는 다른 고구려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양식을 하고 있어, 고구려 불상 양식을 계승하였음을 보여줍니다.
① 호우명 그릇(경주 호우총 출토)으로 고구려의 신라에 대한 영향력과 관련된 유물입니다.
② 가야의 수레모양 토기입니다.
③ 발해의 이불 병좌상입니다.
④ 백제 금동 대향로로 부여 능산리 고분군 능사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⑤ 칠지도로, 4세기 후반 백제의 근초고왕 대에 일본에 보낸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효율적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법
카페에서 추천하는 부담 없는 [한권으로 끝내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교재로 중요내용을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카페에 올려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해설을 꼼꼼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29회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국사사랑방/한국사능력검정시험합격률/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출문제/한국사기출문제해설/
한국사능력검정시험난이도/한국사능력검정시험합격률/한권으로끝내는한국사능력검정시험
첫댓글 댓글은
감사합니다....라는 글은 달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문제에 대한 난이도, 자료 등에 대한 느낌이나
개인적인 문제풀이 접근법 등을 달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유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댓글 단 분은 등업 안됩니다.
공부 전이라 전혀 모르겠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저에게도 해설이 쉽게 풀이되어있는거 같습니다
28회 시험을 대충 준비하고 치는바람에 개념이 전혀 정리되어있지않은 상태에서 쳤습니다.
그 당시 한국사사랑방을 알았더라면 합격했을거 같아요..ㅠㅠ발해에 대한 관련 문제를 해설에 추가해주시니 따로 찾아보는 수고스러움도 덜고 개념도 더 탄탄히 다질수 있을거같아요.
한국사시험은 설렁설렁 하면 안되는 것같아요. 용어도 낯설고 보기들 중 하나라도 모르는 게 있으면 헷갈리기 십상인데 한국사사랑방에서 좋은 정보도 얻으면서 이번 30회 시험은 꼭 합격하고싶습니다
난이도는 아직 공부하는 중이라 잘 모르겠는데 풀이가 진짜 쉽게 잘 되있는거 같아요~!!
중급난이도 문제가 이정도인데 고급은 얼마나 어려울지.. 갑갑하네여.
공부전임에도 사료 분석한 것들은 읽어보면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보기도 반복해서 보니까 공부 안한 부분인데도 알 것 같습니다 !
아직 공부전이지만 문제풀이해주신것을 보니 공부하는데 많이 도움될것같아요. 카페를 알게되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문제에 나오는 유물들의 사진이 모두 컬러여서 구분이 쉽고 문제 풀이에 도움이 됩니다..^^
아직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해서 그런지 저에게는 매우 어렵네요 ... ㅠㅠ
발해는 신라시대와 연관지어서 하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네요.
발해를 압축해서 놓은 문제라 그런지 발해는 이것만 공부해도 되겠네요.
문화재 문제는 봐도봐도 사진이 넘나 헷갈림 ㅠ 나라 특징 같은 문제는 쉬운데 .. 그림나오면 어렵게 느껴져요. 설명이 굉장히 자세하네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제가 어디가 부족한지 알게 되었어요!!ㅎㅎ
저는삼국시대너무헷갈려요ㅠㅠ그래도해설이정말자세해서좋네요!!
아직 한국사 공부한지 얼마 안되서 막막함이 느껴지지만 많이 참고해서 열심히 공부할께요~!
이제 막 한국사 공부를 시작해서 아직 잘 모르지만 문제를 보니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야할지 감이 오네요~ 해설도 자세하고 좋아요!!
29회뿐만 아니라 발해 연관된 문제까지 제공해주시고 짱이네요^^ 앞으로도 연관성을 가지고 공부하겠습니다.
그냥 텍스트로 된 시험지만 보다가 사진으로 나와있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보니 생소하네요
문화재 사진을 보고 공부할 수 있어서 더 심도있는 한국사 공부가 가능할거같습니다
와.. 한국사 열심히 공부해야할거같아요! 아자아자
해설이 자세해서 좋지만 다소 장황한 느낌이 있습니다.
개념을 잘 정리한 후에 문제를 많이 풀어봐야겠습니다ㅠㅠ 막막하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눈에 익을것같습니다
어떤 식으로 문제가 출제되며 공부해야하는 지 알게됬어요!
아직 제대로 공부를 못해서 헷갈려요ㅠ.ㅠ 문제 많이 풀어봐야겠어요ㅜ
발해에 관한 문제가 의외로 어렵네요..
이제 발해까지 공부했는데 아직 많이 헷갈리고 모르는게 많네요ㅠㅠ 근데 설명도 자세해서 좋고 시험문제가 어떤 식인지 알 것 같아요
확실히 문화재에 관한 문제들은 사진을 헛갈리지 않게 정확히 알고 있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유물을 보고 어느시대 유물인지 파악할수 있어야지 풀수 있는 문제네요
이해쉽게 감사합니다~
중급은 저번에 합격했으니 이제 고급으로
어렵네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어려운것 같아요
저는 그나마 최근인 조선이나 근현대사는 자료도 많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발해는 해동성국이라는 명칭말고는 해당 지식이 전무했습니다. 역사 신문이라는 예시를 들어 문제 접근을 쉽게 하여 다가갈 수 있게 편하게 한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 좀더 분발해서 공부해야겠어요!ㅠㅠ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게 많네요ㅠㅠ 중급 수준도 어려운데 고급을 잘 해낼지 모르겠지만...ㅠㅠ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봐야겠어요!
발해의 정치 사회 문화는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 많습니다
중급 문제들의 경우에도 어렵네요... 발해란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으며 삼국의 영향도 일부 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더 정확히 개념정리 후 문제를 풀어야겠네요
반복해서 봐야 잘 풀 수 있겠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