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 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 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다산(茶山)이라는 호는 강진 귤동 뒷산 이름으로 이 기슭에 머물고 계시면서자신의 호로 써 왔다.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선생이 1801년 강진에 유배되어 18년여 동안 적거 생활하시는 동안『목민심서』『경세유표』등
600여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면서 조선시대 성리학의 공리 공론적이며 관념론적인
학풍을 실용적인 과학사상으로 이끌고자 하는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 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 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산초당은 노후로 붕괴되었던 것을 다산 유적보존회에서 1957년 복원하였고 그후 다산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을 복원하였다.
다산초당에는 이 밖에도 다산선생이 병풍바위에「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직접 수맥을 찾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茶山四景과 흑산도로 귀양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며
고향이 그리울 때 심회를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백련사
백련사는 천년 고찰로서보다는 동백나무 숲과 야생 차나무 숲,
그리고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과 백련사 주지 혜장(惠藏; 1772~1811) 스님의
차(茶)에 얽힌 끈끈한 우정으로 더욱 유명하다.
먼저, 백련사 동백 숲은 전북 고창의 선운사, 여수 오동도 동백과 함께 국내 3대 동백 군락지로 손꼽히며,
약 7000그루의 동백은 울창한 숲을 이룬다(천연기념물 제151호).
28세 때부터 해남 대흥사에서 노스님들을 제치고 강백을 할 정도로 실력가여서
30대 중반에 백련사 주지가 된 혜장 스님은 승려이면서도 유학,
특히 주역에 능통해서 그의 강론을 들으려고 인근 강진, 장흥, 해남의 선비들이 줄을 지어 찾아왔다고 한다.
그의 명성이 하도 자자해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도 백련사를 찾아오게 되었는데,
혜장은 천하의 다산을 몰라보고 거침없이 주역을 떠들다가 다산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고서야
그 앞에 정중히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며 가르침을 청했다고 한다.
강진으로 유배 온 처음 8년 동안은 강진만 포구 주막집에서 주민들의 눈총을 받으며 지내다가
호남의 명문가이자 외가인 ‘해남윤씨’의 도움으로 만덕리 귤동마을로 옮긴 다산은
음력 1805년 4월 17일 혜장과 운명적인 만난 이후 매일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800m의 산길을 오가면서 선문답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혜장은 10살 위인 다산을 스승 겸 글벗으로 깍듯이 모셨지만,
어디까지나 서로가 가르침을 주고받는 학문적 관계로서 다산은 혜장에게 경학(經學)을 가르치고,
혜장은 다산에게 선(禪)과 다도를 가르쳐주었으며, 다산이 본격적으로 차를 즐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정약용에게 다산이란 아호 이외에 거처하는 집에 다산초당(茶山草堂)이라는 별칭을 붙이게 된 것도 이 무렵인데,
다산은 혜장에게 아암(兒庵)이란 별호를 지어준 것은 자존심과 고집이 강한 혜장이 아이처럼 순하고 부드러워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혜장은 제자들이 ‘스님’이라 부르지 않고 ‘선생’이라고 불렀을 만큼 스님답지 않은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불가의 큰 학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음주로 40살에 죽었다.
다산은 혜장이 죽자 만시(輓詩)와 제문(祭文) 그리고 탑명(塔銘)을 지어 그와의 우정을 그렸다.
혜장의 다비식에 다녀온 후 쓴 다산의 만시는 아래와 같다.
이름은 중(僧), 행동은 선비라 세상이 모두 놀랐거니/슬프다. 화엄의 옛 맹주여/
《논어》책 자주 읽었고/구가(九家)의 《주역》 상세히 연구했네/찢긴 가사 처량히 바람에 날려가고/
남은 재 비에 씻겨 흩어져버리네/장막 아래 몇몇 사미승/선생이라 부르며 통곡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