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만에 얻은 장애인들과 함께 한 직업재활 체험 기회.
여기는 꿈의 공작소 의성군장애인보호작업장!
이곳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열정과
해맑은 미소로 웃음 짓게 하는 친절과
자기 삶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으로 일하는
천사들이 있다.
낯선 이를 경계할 법도 한데
반갑게 건넨 인사 한 마디에 환한 웃음으로
마음을 열어준 장애인들.
작업장에 모여 정겨운 국민체조로 하루를 연다.
체조하는 몸짓이 제각각이지만
그마저도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체조를 마치면 자신의 정해진 자리로 이동하고
두 명씩 짝을 이루어 신명나게 일을 시작한다
일은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지만
빈 곳이 생기면 너나 할 것 없이 말없이 그 자리를 채운다.
숙련된 동작으로 손을 바삐 움직이지만
얼굴엔 여유의 미소가 입가에 번져 있다.
누군가 하나 내던진 농담으로
모두 까르르 웃음바다가 되고 덩실덩실 춤까지 춘다.
이내 작업장은 일터가 아닌 놀이터가 되고 만다.
이렇듯 세탁물을 개고 정리하는 팀은
시종일관 화기애애.
이에 반해 세탁물 분류와 넣고 빼는 일은 남자들의 몫.
힘을 많이 쓰는 일이라 다소 표정도 무겁다.
난 이 팀에 투입되어 열심히 고르고 나르고 넣고 빼는 일을 반복한다.
실버타운, 요양원, 휴양림, 미용실 등
각처에서 들어온 세탁물들이 항시 대기중이다.
잔뜩 쌓인 세탁물들은 종류대로 분류되어 거대한 세탁기 안으로 들어간다.
세탁물에는 갖가지 오물과 역한 냄새가 베어 있다.
주로 요양원에서 온 것들이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생을 다 바치신 어르신들이
어느덧 기력이 쇠하여 자신의 몸도 어찌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보내지는 인생의 종착지.
그 누가 사랑하는 가족과 희희낙락하며
인생을 마무리 하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몸도 정신도 말을 듣지 않으니
그 마음 얼마나 슬플까?
그래서일까?
대소변 묻어있는 시트와 환복, 수건의 역한 냄새가
문득 거룩한 흔적으로 느껴졌다.
가족을 위해 온 생을 다 바치신 어르신들의 체취에
눈살을 찌뿌리는 건 예의가 아니다.
오염된 세탁물을 정성껏 세탁기에 넣는다.
적량의 세제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이내 물이 차오르고
힘찬 모터가 돌아가면서
세탁물들은 서로 뒤엉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사정 없이 돌고 도는 세탁기 안에 인생이 있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
시간은 돌고 돌고,
역사도 돌고 돌고,
계절도 돌고 돌고,
희노애락도 돌고 돌고,
시작점을 힘차게 딛고 나아가도
결국 시작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인생.
인생은 순수에서 나와 순수로 돌아가는 것.
세탁은 더러움을 씻어내는 거룩한 세례.
인생은 욕망으로 더럽혀진 마음을 씻어내는 과정.
이러한 세탁의 과정 없이는 자라지 않는 게 인생.
허나 세탁이라고 모두가 똑같은 건 아니다.
세탁을 하면 할수록 시커먼 꾸정물로 더러워지는 것도 있다.
돈세탁,
신분세탁
...
눈속임으로는 결코 깨끗해질 수 없다.
하이얀 은총의 가루를 뒤집어쓰고
물에 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져야만
비로소 깨끗해질 수 있다.
깨끗해지는 것은 그런 것이다.
누구라도 코 막고,
쳐다보지도 않을
오염된 세탁물을
자신의 천직으로 삼고 일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은 이들을 소외시키지만
이들이 세상을 깨끗이 세탁하고 있다.
이들이 세상을 구원하고 있다.
이들이 머물고 있는 곳을 ‘꿈의 공작소’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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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3일간 장애인들과 함께 일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 함께 했던 이들의 얼굴들이 하나 하나 떠오릅니다. 그만큼 저의 마음에 푸근하고 좋은 기운으로 남아있다는 것이겠지요. 많이 배웠습니다. 삶이 경직되지 않고 유쾌하게 사는 게 무엇인지, 일을 적당히 때우려 하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하는 게 어떤 것인지, 사람이 얼마나 순수한지를 그들의 표정과 태도, 건네는 말을 통해 참 많이 배웠습니다. 이 짧은 기간 느낀 바가 시(詩)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참 고맙습니다.
- 202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