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형광등을 공짜로? 영리해진 온실가스 감축 사업
글로벌 기업들의 새 환경경영 전략
에너지 절약형 콤팩트 형광등 200만개 獨 오스람社,
印 빈곤가정에 무료 배포 최대 2500만달러 탄소배출권 확보 상품시장 개척하고 회사 홍보 효과도
나무 심기·재생 에너지 시설 건설…
전통적인 CDM 사업에서 탈피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 UN에 등록된 CDM 1년새 50% 늘어
독일계 조명기구업체 오스람(Osram)은 요즘 인도 3개 주(안드라프라데시, 하리아나, 마하라슈트라)에서 콤팩트 형광등(CFLi) 200만개를 빈곤층 가정에 공짜로 나눠주고 있다. 이 형광등은 백열전구에 비해 에너지를 80%나 절감해주는 고효율 신제품. 언뜻 보면 오스람의 단순한 사회 공헌사업 같지만 실은 '1석3조'를 노리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오스람을 비롯한 선진국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는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따른 것이다. 선진국 기업들은 대개 나무를 심거나 공장 설비의 효율을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왔다.
그런데 오스람은 지난 해부터 전혀 다른 방법을 선보였다. 인도 빈곤층 가정이 오스람의 콤팩트 형광등을 사용하면 오스람은 형광등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인 만큼 온실가스 감축을 인정받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출시장 현지에서 기업 이미지를 홍보하면서 신제품 시장을 새로 개척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1석3조의 성과를 거두는 셈이다.
이번에 오스람이 인도에서 감축할 수 있는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 100만t 이상이다. 최근 온실가스(이산화탄소) 감축량(배출권) 가격은 t당 5~25달러. 오스람은 고효율 형광등을 나눠줌으로써 최대 2500만달러를 확보하게 됐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에너지 고효율 제품을 공짜로 나눠주거나 할인 판매를 하는 방식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하는 것이 새로운 '환경 경영'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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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의 한 가족이 독일 조명기구 업체 오스람에서 무료로 제공받은 콤팩트 형광등 드 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스람은 에너지 고효율 콤팩트 형광등을 인도 저소득층에 무료로 배포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사업을 진행중이다./ 오스람 제공
■신제품 시장 개척하고 온실가스도 줄이고
오스람의 콤팩트 형광등 무료 배포 사업은 이론상으로는 간단하지만, 복잡한 준비 끝에 탄생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인정받으려면 국제연합(UN)의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스람의 온실가스 감축방식은 발전 설비 효율 개선 같은 방식과는 달리 가정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UN의 검증이 더욱 까다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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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람은 2003년 처음 사업계획서(PDD)를 UN에 냈지만 두 번 거절당했다. 2007년에야 철저한 검증 끝에 고효율 제품 보급에 대한 온실가스 감축 사업 모델(CDM 방법론)을 UN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우선 UN은 가정에서 온실가스 감축량이 정밀하게 측정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또 콤팩트 형광등이 과연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인정받을 만큼 장기간 사용이 가능한지도 입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객관적 심사를 위해 CDM 집행위원회 심사관과 오스람측의 직접 대화는 차단됐으며, 대부분의 절차가 CDM 집행위원회와 CDM인증기관 사이에서 서류를 통해 이뤄졌다. 결국 사업모델 등록까지 3년 이상 걸렸다.
볼프강 그레거 오스람 지속경영 최고책임자(CSO)는 "초기 단계에서 투자 위험이 높았다"며 "특히 사후 검증 모델을 만드는 과정이 복잡했다"고 밝혔다.
오스람 방식을 본받아 인도 가전업체인 가드리지와 비디오콘 역시 오스람 방식에 수익성을 더 보강한 새로운 사업모델을 진행 중이다.
가드리지와 비디오콘은 온실가스 감축 대상으로 냉장고를 활용하고 있다. 냉장고에서 발행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냉장고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거나, 지구온난화 지수가 낮은 냉매를 사용하는 냉장고를 생산해 판매하는 것이다. 이 역시 오스람처럼 제품을 활용하는 방식이지만 무료 배포는 아니다. 소비자에게 친(親)기후 냉장고를 판매하고, 온실가스 배출권을 이들 제조업체가 가져간다. 이들 기업은 친기후 제품의 출시에 따른 원가 상승을 온실가스 배출권으로 보전하고 있다.
보쉬-지멘스는 두 모델을 절충한 방식을 브라질에서 추진하고 있다. 먼저 브라질 상파울루 전력회사와 협력관계를 맺고, 고효율 신형 냉장고를 전력회사에 싼 값에 판매한다. 이후 전력회사가 공짜로 브라질 저소득층에 신형 냉장고를 보급하는 방식이다. 보쉬-지멘스는 전력회사가 저소득층에서 수거한 구형 냉장고를 인수받아 안전하게 폐기처분한다. 이 사업모델은 가전제품을 대규모로 거래하는 기업간 거래(B2B) 방식에 사회공헌 모델을 접목한 것이다.
■다양해지는 온실가스 감축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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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에너지 효율을 높인 제품을 무료로 나눠주거나 할인 판매한다고 해서 무조건 온실가스 감축을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교토의정서가 규정한 청정개발체제(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에 맞는 사업모델만이 인정받을 수 있다.
CDM이란 특정 기업이 교토의정서에 근거해 개발도상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주고, 그 온실가스 배출 감소량(배출권)을 등록받는 사업을 말한다. 전통적인 CDM 방식은 개발도상국의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주거나, 탄광이나 농업 폐기물 처리과정에서 나오는 메탄을 회수해주는 것이다. 이밖에 개발도상국 송전시설의 효율을 높이거나, 풍력·조력·태양에너지를 비롯한 재생에너지 시설을 지어 화석연료 소모량을 줄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국적 제약업체 노바티스는 아르헨티나와 말리에서 조림사업을 벌이고 있다. 각각 30㎢, 120㎢ 넓이로 식물을 심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도록 하고 있는 것. 노바티스는 이 조림사업으로 최대 11만여t의 온실가스 배출권 획득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스람을 비롯한 전자 업체들처럼 에너지 고효율 제품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방식은 다른 CDM 사업에 비해 수익성은 낮은 편이지만 기업 홍보 및 상품 마케팅 전략에서 장점이 많다. 우선 신제품을 개발도상국 시장에 선보임으로써 브랜드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을 동시에 높이는 기회로 이용할 수 있다. 고효율 제품 개발을 통해 기술 경쟁력도 키울 수 있으며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차단하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확산되는 '환경 경영'
글로벌 기업들에게 이제 '친환경 경영을 할 것인가'는 화두가 아니다. '어떤 친환경 경영을 할 것인가'가 고민거리다. 최근 기업들 사이에선 CDM 지역·사업모델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CDM 사업의 대상은 이론상 아주 많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보다는 아산화질소 (N₂O)나 육불화황(SF�) 같은 비탄소계열 온실가스가 투자 대비 감축 효과가 높다. 이중에서도 아산화질소가 대량 배출되는 생산시설은 세계에 300여곳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런 생산시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주는 사업(설비교체 등)을 둘러싸고 기업들 사이에 선점 경쟁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가령 A라는 기업이 중국에 있는 아산화질소 배출 시설을 개선해주면 온실가스 배출권을 확보하게 된다.
실제로 UN에 등록된 CDM은 2007년 말 885개였지만, 9일 현재 1321건으로 1년여 만에 50%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인도(382건), 중국(367건) 지역 CDM이 전체 등록 건수의 절반을 넘는다. 두 나라에 온실가스 감축 대상이 되는 대규모 생산시설이 많고, 기업들의 전략적인 시장 개척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교토의정서에서 개발도상국으로 규정된 한국(20건)의 경우는 중국·인도에 비해 CDM이 활발하지 못하다.
또 다른 추세는 참여 주체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 기업뿐 아니라 금융기관·컨설팅업체들도 적극적으로 CDM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가진 기업과 손을 잡고,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CDM을 대형화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은 물론 이와 관련된 각종 파생상품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도 유럽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유럽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소(EU ETS)는 2005년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이 참여해 세계 처음으로 만들었다. 거래 규모는 2007년 500억달러로 2006년에 비해 약 87% 늘었다. 이어 일본, 미국에서도 온실가스 배출 시장이 생겼다. 우리나라도 증권선물거래소와 대구광역시 등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시장 개설을 추진 중이다.
→ CDM·청정개발체제 (Clean Development Mechanism)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근거해 온실가스 비감축 의무국(개발도상국)에서 기업 등이 전개하는 각종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활동(사업)을 말한다.
세계 184개국이 비준한 교토의정서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원(기업 포함)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선진국은 38개국(EU 포함)이며, 90년 배출량 대비 평균 5.2%를 감축해야 한다. 한국은 현재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감축 의무가 없으나 앞으로 선진국 의무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선진국 배출원은 자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 벌인 온실가스 감축활동도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출처 : 조선일보 / 위클리비즈, 박용진 LG전자 환경전략팀 책임연구원, 백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