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열웅]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허열웅]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허 열 웅

  우리가 흔히 약속을 지키지 않은 상대에게 바람 맞았다고 말한다. 또 결혼한 사람이 외도를 할 때 바람을 피운다고 표현한다. 그 뿐만 아니라 무나 당근 등 뿌리에 구멍이 있거나 부실할 때 바람이 들었다고 한다. 답답하여 밖으로 나가거나 국, 내외 여행을 떠날 때 바람을 쐬러나간다고 한다. 이렇게 바람에 대해 다양하게 적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람으로 인한 다양한 작용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바람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나일까, 아니면 당신일까? 모두일까, 아니면 아무도 못 보았을까? 궁금하다. 바람을 본 사람은 없어도 바람소리를 들은 사람은 많을 것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사저성어는 백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게 확실하다는 뜻이다. 바람소리를 백번도 더 들었지만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바람에 대한 많은 속설이 있지만 그 누구도 바람을 볼 수는 없다. 세상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진리다. 소슬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강풍에 둥치가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바람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시청각이란 시각과 청각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인식에 앞서 시각과 청각일까.

  바람의 사전적 해석은 “기후와 날씨를 결정하고 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기압의 수평·수직 경도(傾倒)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바람의 분포는 기압의 분포와 밀접하다. 지표 부근에서 바람은 일반적으로 저기압과 고기압의 주변부에서 분다. 저기압의 경우 북반구에서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불고 남반구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분다. 고기압 중심에서의 풍계는 위와 반대 방향이다.”라고 쓰여 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바람의 종류가 99개나 된다니 참으로 상상력은 물론 낭만적인 우리글의 표현력이 우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주 듣던 몇 개를 소개해본다.

1. 간들바람-부드럽게 살랑살랑 상쾌하게 부는 바람

2. 갯바람-바다에서 뭍으로 부는 바람

3, 고추바람-살을 에는 듯한 몹시 찬바람

4, 높새바람-북동쪽에서 부는 바람.

5, 돌개바람-열대지방에서 발생하는 강한 바람.

6, 마파람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6, 소슬바람-(가을에) 으스스하고 쓸쓸하게 부는 바람

7, 소 바람-좁은 구멍으로 세게 불어오는 바람. 황소처럼 매우 거센 바람

8. 회오리바람 : 나사모양으로 공중으로 불어 올라가는 바람 등이 있다.

  바람을 주제로 편곡한 노래도 많고 글도 많다. 어떤 가수는 <내 님은 바람이련가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오늘도 잠 못 이루고/ 어둠속에 잠기네 /그대 이름은 바람바람 바람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그대 이름은 바람바람 바람/ 날 울려놓고 가는 바람>이라고 불렀다. 어느 작가는 책 제목을 “바람의 무게‘를 붙였고 나 역시 책 제목을 “바람의 선시禪詩”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기도 했다. 바람이 없으면 돌지 않는 바람개비에 대해 이어령 교수는 장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미국 작가 마가렛트 미첼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써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바람 참으로 신비스럽고 위대하다고 본다. 그러나 만져보거나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바람은 온몸을 스치며 머리칼을 흔들고 지나가지만 귓속으로 들릴 뿐 보이지 않는다. 그 바람이 인간을 비롯한 생물에게 자각과 꿈을 안겨주고 생성케 한다. 바람은 구름을 몰고 와 비를 뿌려 모든 생명체들의 생명력이 되고 이웃이 된다. 바람은 사계절을 알리며 육지와 바다와 하늘을 지배한다. 돛단배를 운행하며 은하수를 서쪽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바람의 말을 들으며 세월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겨울의 바람 속으로 봄이 다가오고 여름의 태풍을 견뎌내면 오곡이 무르익는다.

  바람 중에 가장 반가운 바람은 생명이 솟아오르고 마음이 설레는 봄바람이고, 무서운 바람은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가는 태풍인 것 같다.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것이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 아니겠는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세상이기에 보이지 않는 데서 선을 많이 베풀고 사랑을 해야겠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것이 인생이기에 참고 비우고 소리 없이 떠나야 할 것 같다. 바람이 곧 사람인지도 모른다. 한 줄기 바람인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

[흐르는 물/정호순]

바람, 신기한 요술입니다.

[서찬교]

저도 보지 못하였으나 자주 타고 나가기도 한답니다. 한때는 바람이 들기도 하고,
바람처럼 떠돌다가 잠잠해지기도 하죠.
저 자신이 바람이지도 모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