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맛있는 휴가 ‘맛있는 피서지 10곳’
피서철이다.
식도락은 여행길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전국 주요 피서지 주변에는 지역 전통음식을 접할 수 있는 맛집들이 즐비하다. 무더위로 식욕을 잃기 쉬운 여름철,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있는 음식을 먹으면 여행의 기쁨이 두배로 늘어난다. 송수권 시인이 펴낸 ‘풍류 맛기행’(고요아침 출판사)은 전국의 이름난 토속음식과 그 음식의 유래를 상세히 소개한 책. 책에 소개된 음식 가운데 여행길에 찾아가 맛볼 만한 별미를 소개한다.
▲안동 헛제삿밥과 건진국수=안동의 헛제삿밥은 제사가 많은 양반고을답게 제사 때 남은 음식을 먹은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집집마다 4대 봉사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시제까지 합하면 보통 제사만 한해 20차례가 넘으니 이해가 간다. 헛제삿밥은 제상에 올렸던 나물과 탕채를 간장에 비벼먹는다. 건진국수는 탈춤 마당에서 먹던 음식. 하층민들이 탈을 쓰고 양반의 허세를 풍자했던 놀이마당에서 먹기 시작했다. 홍두깨로 민 밀가루 반죽을 삶아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 먹는다. ‘안동국시’의 원조. 안동의 까치구멍집(054-821-10560)에서 헛제삿밥과 건진국수를 먹을 수 있다.
▲진주 한정식=진주는 경상도에서는 특별히 음식맛이 좋은 곳. 특히 진주 한정식은 임진왜란 때부터 내려오는 진주 비빔밥과 함께 대표적인 음식으로 꼽힌다. 안동과 마찬가지로 헛제삿밥도 내력이 있다. 진주는 옛날부터 권번(기생집)이 발달했던 곳. 승이교, 계향, 매화 등 명기를 많이 배출했다. 진주 한정식은 권번음식에서 품새를 찾는다고 한다. 수라(055-748-7272)는 진주 권번음식의 전통을 잇고 있는 집. 음식학자 정계임 교수가 운영하고 있다. 1996년엔 조리기능장 최고상을 받았다.
▲전주 비빔밥=전주의 대표 음식.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식이 됐다. 각종 나물을 고추장에 버무려 얼얼하고 달착지근한 ‘5미’(五味)를 자랑한다. 비빔밥은 들밥에서 유래했다. 호남의 평야지대가 워낙 넓다보니 반찬을 일일이 가져갈 수 없어 밥에 섞어 내간 것이 비빔밥으로 발전했다. 제사 때 올리는 ‘오신채’나 ‘신인공식’(神人供食)이 비빔밥의 유래란 설도 있다. 전주 비빔밥이 명성을 얻은 것은 전주 팔미(八味)로 꼽히는 쥐눈콩과 황포묵, 질좋은 고추장, 사철나물 등이 들어갔기 때문. 여기에 익빔(익힌 쇠고기)을 취향대로 넣어 먹는다. 한국집(063-284-0086)이 잘한다.
▲하동 은어구이=지리산의 화개동천은 초여름이면 섬진강을 따라 은어가 올라오는 곳이다. 버들잎이 한창일 때 오른다는 은어에서는 수박 향내가 난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은어의 생태가 상세하게 적혀 있다. 은어는 은조어, 연어라고도 불리는데 여울의 바닥에서 산다. 여울과 자갈이 많은 물맑은 섬진강이 은어에겐 최고의 서식지. 산란철이면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와 알을 난 뒤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해를 넘기며 월동하는 친어(어미)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화개장터횟집(055-883-2237)이 은어구이를 잘한다.
▲광주 무등산 보리밥=광주 증심사에서 무등산 오르는 길. 등줄기에 땀이 맺힐 즈음이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나타난다. 수령 700년의 노거수 아래는 평상이 놓여있다. 등산객이 쉬어가는 ‘휴게소’나 다름 없는 곳. 바로 옆에 무등산의 명물인 보리밥집이 있다. 산행길에 시장기를 달래던 밥집이었는데 몇년 전부터 무등산의 별미로 자리잡았다. 무등산을 한 번이라도 오른 사람은 모두 알 정도로 유명하다. 요즘은 증심사 주변뿐 아니라 증심사 반대편 산수동 쪽에도 보리밥집이 있다. 가운데 까만 줄이 박힌 꽁보리에 열무와 산채를 듬뿍 넣어 비벼먹는 맛이 일품. 큰 보리밥집(062-227-1859), 작은 보리밥집(062-227-7833)이 알려져 있다.
▲서산 박속밀국낙지탕=낙지 요리도 지방마다 가지각색. 전남 목포와 영암은 산낙지와 연포탕이 맛깔스럽지만 충남 서산과 태안은 밀국낙지탕이 유명하다. 박속을 넣고 끓인다. 국물이 시원해서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끓는 국물에 싱싱한 산낙지를 넣어 데친 뒤 간장양념에 찍어먹는다. 서산시 읍내동의 삼해횟집(041-665-7878), 팔봉면 구도리 구도회관(041-662-6117), 중앙낙지한마당(041-662-9016) 등이 잘한다.
▲평창 꼴뜨국수와 메밀국수=꼴뜨란 말은 ‘꼬들꼬들하다’는 뜻의 강원도 토속어. 메밀의 고장인 평창 지역에서 메밀로 만든 국수다. ‘메밀꽃 필무렵’의 무대가 된 봉평은 해마다 초가을에 메밀꽃 축제가 열린다. 반죽을 하고 홍두깨로 밀어 손찰국수를 만드는 과정이 힘든 대신 면발이 쫄깃하다. 평창시장터의 은하수식당(033-332-9928)이 잘한다. 영월 주천읍에도 꼴뚜국수집이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꼴도 보기 싫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가난하던 시절 밥 대신 국수를 질리게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추억의 먹거리가 됐다. 주천읍 제천식당(033-372-7147)이 소문난 맛집.
▲부안 붕어찜=송수권 시인이 사는 부안 인근의 계화도 간척지에서 나는 별미. 계화도 백합이나 바지락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맛이 일품이다. 계화방조제는 1968년 국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10만평의 너른 청호지에서 잡히는 떡붕어로 찜을 한다. 붕어를 통째로 양념을 하고 쪄낸다. 청호지 붕어는 뻘흙 때문에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고 한다. 노곡가든(063-582-4575)이 송시인의 단골집이다.
▲울산 고래고기=장생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래고기. 산해 진미 중에서도 늘 첫손에 꼽혔던 고기다. 화가 변종하 선생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고래고기를 먹기 위해 울산에 내려왔다고 한다. 시인 박목월은 버스편으로 고래고기를 부치게 해 먹었다. 동해안의 고래는 1910년 이전에는 미국과 러시아가 모두 잡아갔고, 50년까지는 일본인들이 싹쓸이해갔다. 요즘은 포경이 금지돼 그물에 잡힌 고래만 경매를 통해 식당으로 공급된다. 울산 암각화에도 원시수렵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고래잡는 장면이 가장 많다. 할매집(052-265-9558) 고래고기가 유명하다.
▲제주 자리물회=제주에서는 자리돔 잡는 것을 ‘자리 뜬다’고 말한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5~6㎝급 자리돔의 머리를 떼어내고 비늘만 쳐서 뼈째 잘게 썰어 물회로 만든다. 시원한 통물에 날된장을 풀고 자리를 숭숭 썰어 띄운 다음 미나리, 부추 등 채소를 듬뿍 넣어 후루룩 들이마신다. 여름 무더위를 이기는 강장 식품이며 흉년을 넘기는 구황 식품이었다고 한다. 비린내가 나지 않고 구수한 것이 특징. 모슬포의 항구식당(064-794-2254)이 맛집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