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게놈(Post genome)’ 시대의 삶 2023.08.22
인간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밝히는 ‘인간 게놈프로젝트(HGP, Human Genome Project)’가 1990년에 출범해 2003년에 마무리되며 작성된 인간 게놈지도를 시작으로 인류는 ‘포스트 게놈(Post genome)’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 상식으로 다가와 있는 포스트 게놈 시대의 삶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게놈지도는 질병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과 함께 치료 방법이나 예방법 등을 개발하는 의료 분야의 주요 기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생명공학기술(BT)과 정보기술(IT)이 접목된 BT-IT 융합 연구가 포스트 게놈 시대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그와 함께 게놈지도와 연관된 기술과 정보의 사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우려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생물 세포의 염색체에 담겨있는 모든 유전자와 유전정보를 일컫는 유전체(게놈, Genome) 연구 분야는 유전체학(Genomics), 유전자 발현으로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총체를 일컫는 단백질체(Proteome) 연구 분야는 단백질체학(Proteomics)으로 일컫습니다.
유전체학을 일컫는 ‘Genomics’는 유전체(Genome)에 학문을 의미하는 -ics를 결합해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유전체학은 유전체의 기능을 다루는 기능유전체학(Functional genomics)과 유전체의 비교 연구를 수행하는 비교유전체학(Comparative genomics)으로 구분이 됩니다.
기능유전체학은 게놈의 염기서열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이미 밝혀져 있는 유전정보로부터 어떤 단백질이 만들어지는가를 추적하고, 그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연구 분야입니다. 인간의 유전체에서 유전자로 추정되는 부분은 전체의 2% 정도로 밝혀지고 있는데, 질병 관련 기능유전체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치료법 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비교유전체학은 개인이나 인종 또는 생물 간의 유전체 정보의 비교를 통해 생체 기능의 차이를 밝히는 연구 분야입니다. 비교유전체 연구의 기반이 되는 단일 염기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은 현재 여러 제약회사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비교유전체 연구를 통해 개인의 체질, 유전적 성향, 의약품에 대한 반응 차이 등의 분석을 통한 ‘맞춤의학’과 함께 질병의 사전 예방 자료를 마련하는 ‘예방의학’ 분야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과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침팬지와 같은 모델 동물의 유전체 연구는 앞으로 인간의 유전질환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습니다.
단백질체학이라고 부르는 프로테오믹스(Proteomics)는 단백질(Protein)에 물체를 의미하는 -ome이 결합된 Proteome(단백질체)에 -ics를 합성한 용어로 한 세포나 조직 또는 기관에 간직되어 있는 전체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연구 분야입니다.
유전자와 연관된 단백질체가 연구 대상인 단백질체학은 특정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구명, 합성된 단백질의 기능 확인, 질병의 원인 구명이나 예방을 위한 사전 진단 등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질병들이 유전자와 무관하게 단백질의 잘못 접힘(Misfolding)이나 상호작용, 비정상적인 기능 발현(Malfunctioning) 등에 의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유전체학과 단백질체학 기술을 융합하는 연구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기능유전체학 연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단백질체학은 앞으로 게놈프로젝트보다 더 방대한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전체와 단백질체의 연구 결과는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암이나 유전병과 같은 각종 질병의 치료에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으며, 비만이나 대머리와 같은 외모의 조기 치료도 가능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법의학에서 이용하고 있는 DNA 지문 분석은 범죄 현장에서 한 방울의 혈흔으로도 범인을 색출할 수 있게 해주며, 친자 확인에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장기 손상을 대비한 각 개인에게 맞는 ‘인공장기’의 제조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약을 지을 때 몸에 부작용이 없는 자신만의 ‘맞춤약’ 조제와 함께 질병에 대한 사전 예방의 효율성도 많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놈프로젝트의 완성으로 만들어진 게놈지도의 무분별한 이용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들이 포스트 게놈 시대의 큰 우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실례로 게놈 분석으로 얻어지는 개인의 유전 정보의 유출 문제, 유전 정보가 정치적 또는 사회적으로 부적절하게 악용될 수 있는 문제, 정상과 비정상 구분의 모호성 문제, 유전자의 무분별한 변형, 유전자를 이용한 생물체나 인류의 통제 문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생명공학 기술 활용에 동반해 발생하고 있는 생명윤리 문제는 전문가들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류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 과제입니다. 포스트게놈 시대의 삶을 아름답게 열어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다양하게 이용될 생명공학 기술의 윤리적, 법적, 사회적 영향에 대한 바른 상식을 가다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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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