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3대 미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년 5월 4일(벨기에) ~ 1993년 1월 20일
170cm, 49kg
아들 : 션 페러, 루카 도티
정식 풀네임은 오드리 캐슬린 러스턴(Audrey Kathleen Ruston)
세간에선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란 이름이 더 유명하다.
영국의 영화배우. 전성기 때 당대 최고의 미녀였으며 연기력도 뛰어났다.
또한 노년기에 아름다운 선행을 펼쳐 더욱 더 유명해진다.
벨기에 태생이며 영국의 은행가인 아버지 조지프 앤서니 러스턴(Joseph Anthony Ruston)과
네덜란드의 귀족인 엘라 판 헤임스트라 남작 부인(Baroness Ella van Heemstra) 사이에서 태어나
벨기에와 영국, 네덜란드를 옮겨가며 지냈다. 아버지는 오드리를 낳은 후 가정을 버리고 방랑,
헵번이 영화배우로 성공한 이후에 잠깐 다시 만난 게 전부라고 한다.
오디션을 거친 후 발탁되어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더불어 첫 할리우드 주연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 여우상까지 받을 정도로 연기력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그의 예상대로 헵번은 오스카 주연 여우상을 수상했고,
거기다 <로마의 휴일> 직후 영화사 쪽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화가 아니라 브로드웨이 연극인 <운디네>에 출연,
아직까지도 헵번 파이프라고 하면 통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
1932년 2월 27일(영국) ~ 2011년 3월 23일
영국의 영화배우. 런던 햄스터드 출신으로 유대계 미국인인 프랜시스 렌 테일러와 세라 비올라 웜브롯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2001년까지 50편의 영화 - 드라마나 미니시리즈, 성우로 출연한 것까지 합치면 80여 편를 찍으며 세계 최고의 미녀로 뽑히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클레오파트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자이언트> 등이 있다.
단순히 외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 주연 여우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으며, 골든 글로브 4회, 영국 아카데미 2회 수상자이기도 하다.
8번의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도 유명하며, 2011년 3월 23일 울혈성 심부전증 투병 중 향년 7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실상 그녀의 사망으로 20세기 할리우드의 여신이라 불리었던 여인들
(비비안 리,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캐서린 헵번) 대부분이 이제는 모두 역사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보라색 눈으로도 유명하다. 세계 제일의 미인으로 알려진 그녀지만 사실은 20세 전후에 코를 성형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테일러의 코가 너무 퍼지고 넓다는 영화사 중역의 권유로 코를 좁히는 성형 수술을 했고 결과는 세기의 미인 탄생된 것이다.
이는 할리우드 비화나 테일러의 몇몇 전기에도 나오는 사실이다. <젊은이의 양지> 이후로 확실히 코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이가 든 후에도 수 십번의 성형 수술로 성형 중독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너무 성형을 많이 해서 오히려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 많은 팬들을 실망시키기도...
테일러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결혼과 이혼인데,
힐튼 호텔의 후계자 니키 힐튼과 결혼한 것을 시작으로 무려 8번의 결혼과 이혼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상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그녀의 이미지는 세기의 미인 여배우라기보다는
결혼과 이혼을 밥 먹듯 하는 돈 많은 성형 중독 아줌마(...)
결혼까지는 안 갔다 하더라도 그 외에도 수많은 남자 배우들과의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그녀와 결혼한 남자들의 목록을 살펴보자면······
*콘래드 니키 힐튼 주니어(Conrad Hilton Jr.; 1950~1951) - 힐튼 호텔 경영자의 아들. 그때 테일러의 나이는 겨우 17살
*마이클 와일딩(Michael Wilding; 1952~1957) - 영국 출신의 영화배우. 이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들 두 명을 출산
*마이크 토드(Mike Todd; 1957~1958) - 영화 제작자. 매우 재능있는 사람이었지만 '테일러 남편'으로 더 알려졌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딸 한 명을 출산했다.
*에디 피셔(Eddie Fisher; 1959~1964) - 프랭크 시나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팝 가수. 이 시기부터 테일러의 막장 행보가 시작되는데 에디 피셔는 마이크 토드의 친구였고 유부남이었던 것도 모자라 그의 부인은 테일러의 친구였던 영화배우 데비 레이놀즈 즉 남편의 친구이자 친구의 남편과 바람을 피운 것이다. 교황청에서도 이 불륜에 대해 비난했다. 에디 피셔는 테일러와 이혼한 뒤 슬럼프에 빠져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이 사람의 딸이 유명한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 역을 맡은 캐리 피셔. 캐리 피셔는 테일러의 딸은 아니다.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 1964~1975, 1975~1976) - 당대 최고의 유명한 배우.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함께 찍으며 사랑에 빠진다.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과는 이혼 후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했다. 둘의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식' 이라고 불리웠으며, 이때 버튼이 테일러에게 선물한 3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로 유명하다. 버튼은 웨일즈 출신의 울컥 하는 성격에다가 알코올 중독까지 있어서 엄청나게 싸웠지만 테일러가 가장 사랑한 남자였고, 테일러는 죽은 후에 이 사람과 함께 묻히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딸 머리아 버튼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다.
*존 윌리엄 워너(John William Warner; 1976~1982) - 정치인. 테일러와 결혼한 이후 그 후광으로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이후 5선까지 당선된다. 해군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래리 포텐스키(Larry Fortensky; 1991~1996) - 20살 연하의 건설 노동자이자 트럭 운전기사로 마이클 잭슨의 농장인 네버랜드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버튼과 워너 사이에 주미 이란 대사인 아르데시 자헤디와 염문을 뿌렸지만 당시 이란 국왕 레자 팔레비의 압력으로 헤어졌다.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바람둥이이던 워런 비티와도 사귀었다. 사랑하면 결혼해야한다는 주의의 여자와 사랑해도 결혼은 최대한 미루자 주의의 남자의 결합은 곧 깨어졌다. 마이클 잭슨과 절친한 친구 사이여서 잭슨이 성 추행 논란에 휩싸였을 때 그의 편을 들었으며 잭슨 또한 그녀를 위해 곡을 만들었을 정도로 절친이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어서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80년대 아직 에이즈가 더러운 게이병, 창녀나 마약 중독자나 걸릴 병이라 매도되던 시절, 오랜 친구인 록 허드슨이 에이즈 투병을 고백했을 때, 편견없이 이전과 똑같이 대해준 몇 안 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올리비아 허시(Olivia Hussey)
1951년 4월 17일(아르헨티나) ~
164cm
배우자 : 데이비드 아이슬리
아들 : 알렉산더 마틴 맥스
딸 : 인디아 아이슬리
아르헨티나 출생의 영국 배우.
1964년, TV 영화 <더 크런치>의 배우로 데뷔했고, 1968년에는 그녀에게 불멸의 영예를 안겨준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17세. 청순한 그녀의 모습이 한 마디로 전 세계가 빠져들었으며
잊혀지지 않는 청춘의 연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히트로 그녀는 이듬해인 1969년에 골든 글로브 신인 여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후 여러 작품들에 출연했지만 줄리엣의 이미지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으며
그나마 나자렛 예수에서 성모 마리아 역을 한것이 줄리엣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편이지만
그 마리아마저도 줄리엣의 느낌이 물씬 났으니...
3번의 결혼을 통해 각각 3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2번째 남편은 일본 가수 후세 아키라인데 이 사람이 한국계라는 말이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현재의 남편은 가수 겸 배우인 데이비드 아이슬리.
그와의 사이에서 딸 인디아 아이슬리를 낳았는데 그녀는 <언더월드4>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인디아 아이슬리(1993년생)↓
71년 결혼한 첫 번째 남편 딘 폴 마틴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 사연도 인상적이다.
글 출처 : 엔하위키 미러
첫댓글 올리비아 허시가 세계 3대 미녀에 속한다고 하니 뭔가 부족함이 있지 않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하지만 지명도가 낮아서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