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파이터2] 캡콤의 대표작이자 90년대 대전격투게임 시대를 연 스트리트파이터2.
“아도~겐!”, “오~유겐!” 1)
1991년, 이 정체불명의 고함소리가 골목마다 울릴 때, 세계 게임사는 또 한 번 요동쳤다. 수많은 소년 파이터들이 오락실 안에서 격투 삼매경에 빠졌고, 밖에선 게임의 여운을 잊지 못해 괴성을 질러대며 캐릭터 흉내를 내곤했다. 게임의 인기가 워낙 높다보니 사회적 이슈도 대단했다. 엄마들은 자녀의 공부를 방해하는 원흉으로 이 게임을 지목했고, 뉴스에서는 아이들의 폭력성을 유발한다고 연일 때렸다. 급기야 TV 토론프로에서도 게임이 가져온 신드롬을 집중분석했다. 아마 우리나라에선 폭력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최초의 게임일 것이다.
‘류’, ‘캔’, ‘춘리’, ‘장기에프’ 등 캐릭터 하나하나가 웬만한 대중스타 못잖은 인기를 누렸다. 요즘 흔히 쓰이는 ‘국민게임’이란 수식어는 이 게임부터 시작됐다. 90년대 대전격투게임의 전성기를 연 [스트리트파이터2]는 이렇게 게임역사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스트리트파이터2]는 캡콤의 대표작이자 90년대 격투게임 르네상스 시대를 연 게임이다. 단순히 게임의 차원을 넘어 현대 경쟁사회 ‘힘에 대한 욕망’을 형상화 시킨 시대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가라테챔프]. 1984년 ‘데이터이스트’가 개발한 게임으로 대전격투게임의 시작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대전격투게임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대전격투게임의 원류는 1984년 ‘데이터이스트’가 내놓은 [가라테 챔프]에서 시작한다. 최초로 두 명의 플레이어가 서로 대결하는 방식의 2인 토너먼트 대전게임이다. 간단한 발차기와 주먹치기, 막기 동작을 사용해 상대방의 허점을 찔러 쓰러뜨리는 방식이다. 이 게임이 나오면서 대전격투게임은 시장에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게 됐다. 그러나 격투게임의 원조격인 [가라테 챔프]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당시 주류였던 슈팅게임에 비해 조작이 너무 까다롭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1985년, 코나미의 패미콤용 게임 [이얼쿵푸]가 격투게임의 맥을 이었다. 이소룡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얼쿵푸]는 8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쿵푸영화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취권’, ‘쾌찬차’ 같은 중국 쿵푸영화가 소년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얼쿵푸]는 게임자체도 인기였지만, 게임 속 BGM이 더 유명하다. 지금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이 음악은 이후 수많은 영화와 음악 등에서 리메이크 되어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이얼쿵푸]는 국내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다. 한때 오락실 게임기의 반수 이상을 [이얼쿵푸]가 차지한 적도 있었다.
[가라테 챔프]와 [이얼쿵푸]는 각자 고유한 특징을 내세워 격투게임의 계보를 이었다. [가라테 챔프]는 일본무술 가라테의 느낌을 살려 절도 있고, 사실적인 일격필살의 격투방식을 보여준다. 반대로 [이얼쿵푸]는 쿵푸영화처럼 화려하면서도 과장된 움직임으로 플레이어의 눈을 즐겁게 했다.
초창기 격투게임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게임사에 던진 파장은 의외로 컸다. 남자라면 누구나 소뿔을 잡고 사정없이 내리치는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괴성을 지르며 상대를 때려눕히는 ‘사망유희’의 이소룡을 한번씩은 꿈꾸곤 한다. 격투게임은 남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강함에 대한 로망’을 디지털 기술로 대리만족 시켜주는 분출구 역할을 했다. 5년 후, ‘스트리트파이터2’가 나오면서 지금까지 꾹꾹 참아왔던 남자의 로망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얼쿵푸]. 1985년 패미콤 용으로 제작된 코나미의 액션격투게임.
1987년 발매된 [스트리트파이터] 1편은 현대 대전액션게임의 기초를 다진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결과적으로 흥행은 실패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의욕이 너무 앞섰다. [스트리트파이터]가 처음 나올 당시 가장 놀란 사람들은 게임센터 업주들이었다. ‘버튼이 무려 6개라니!’ 당시 이렇게 많은 버튼이 지원되는 게임은 없었다. 손기술과 발기술을 강-중-약으로 나눠 도합 6개의 버튼을 조작해야 하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격투기술의 미세한 힘의 차이까지도 표현하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문제는 당시 기술력이 따라가지 못했다.
우선 게임의 조작감이 형편없었다. 아무리 레버를 조작해도 ‘승룡권’ 같은 고급기술들을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다. 개발자가 의도한 정교한 조작 시스템과 부드러운 애니메이션을 만족시키기에 당시 기술력의 한계가 너무나 분명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무조건 레버를 돌리면서 버튼을 연타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즐겼다. 아무 생각 없이 레버만 돌리다보면 어쩌다 기술이 걸려 이기는 방식이다. 레버를 워낙 세게 돌려 조작기가 고장 나는 일도 빈번했다. 아마 [스트리트파이터]는 오락실 업주들이 가장 기피하는 게임 중 하나였을 것이다.
[스트리트파이터1] 대전액션게임의 기본 골격을 정립한 1편. 그러나 난해한 조작으로 흥행에는 실패했다.
[스트리트파이터]는 난해한 조작법과 엉성한 기술 밸런스로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스트리트파이터] 1편이 남긴 유산은 분명히 있었다. 처음으로 3전 2선승제의 VS 모드를 도입해 대전격투게임의 룰을 정착시켰다. 무엇보다 게임계 영원한 라이벌 ‘류’와 ‘캔’의 데뷔무대란 점에서 [스트리트파이터]의 존재가치는 충분했다.
“재미있는 게임은 보기에도 즐겁고, 하면서도 즐겁고, 흉내 내면서도 즐거워야 한다!” [스트리트파이터2]를 만든 캡콤의 전 전무이사 ‘오카모토 요시키’의 말이다. 일본이 낳은 또 한명의 불세출의 게임크리에이터 ‘오카모도 요시키’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동키콩]을 보고 게임개발자의 길을 선택했다. 1980년 중반, 일본 게임시장은 ‘남코’, ‘코나미’, ‘타이토’의 3강을 중심으로 한 슈팅게임 전성기였다. 1981년 코나미에 입사한 오카모토는 슈팅게임 [타임파일롯]을 만들었지만 남코의 [제비우스]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오카모토는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개방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의 스스럼없는 성격은 종종 경영진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거의 해고당하다시피 회사를 나온 ‘오카모토’는 또 다른 게임사 캡콤에 입사했다. 1984년 오사카의 신생기업인 캡콤은 게임개발자라고는 2명밖에 없는 작은 회사였다.
[파이널파이트]. 전설의 횡스크롤 액션게임 파이널파이트, 캡콤은 이 게임의 성공으로 [스트리트파이터2] 개발에 자신감을 얻었다.
캡콤에 입사한 오카모토는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한 슈팅게임 [1942]를 만들어 성공시켰다. 오카모토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앞으로 슈팅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장르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직감했다. [1942]의 성공 후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그는 우연히 테크노스재팬사의 [더블드래곤]을 접하고 어떠한 영감을 받았다. 주인공이 거리의 악당들을 해치우고 애인을 구한다는 설정 자체가 그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격렬하면서도 원초적인 격투신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충격이었다. 오카모토는 ‘격투게임’의 시대가 다갈 올 것이란 걸 직감했다. 그래서 만든 게임이 횡스크롤 액션게임의 전설로 불리는 [파이널파이트]다.
[파이널파이트]는 스테이지 구성, 캐릭터의 개성, 액션의 완성도 등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최고의 액션게임으로 추앙받고 있다. 여담이지만 [파이널파이트]는 [스트리트파이터2]란 이름으로 미국시장에 소개 됐다. 하지만 [스트리트파이터]를 기억하는 유저들의 반발에 부딪혀 게임 이름을 다시 바꿨다고 한다. [파이널파이트]로 격투액션의 자신감을 얻은 오카모토는 그 다음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미완의 전설로 남아있던 [스트리트파이터]를 무덤 속에서 다시 깨우는 일이었다. 캡콤은 알고 있었다. [스트리트파이터]가 그저 그런 실패작으로 버려지기에는 게임이 가진 잠재력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두 번의 실패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필사의 각오로 [스트리트파이터2]의 개발이 시작됐다.
[스트리트파이터2] 표지. ‘장풍’, ‘류’, ‘캔’만 남기고 다 바꿨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게임이 나올 수 있을까?” 과거 게임 좀 했다고 하는 오락실 키드들은 [스트리트파이터2]가 처음 나왔을 때의 충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 하나 버릴 것 없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과 다양한 기술, 완벽에 가까운 밸런싱은 그야말로 화면 속 무술가들이 살아 나오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캡콤은 [스트리트파이터2] 프로젝트에 회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 캐릭터 하나 만드는 데 여러 명의 디자이너가 매달려 한땀 한땀 정성을 쏟았다.
첫 번째 고민은 ‘전작에서 무엇을 남길까’이다. 오카모토는 1편에서 ‘장풍’, ‘류’, ‘캔’ 딱 3가지 콘텐츠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바꾸었다. 그는 “원래 캐릭터 전부를 교체하고 싶었지만, 류와 캔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이 워낙 많아서 그들은 남기기로 했지요”라고 개발 뒷이야기를 말했다. 이때부터 류와 캔은 영원히 늙지 않는 불노불사의 생명을 얻게 된다.
[스트리트파이터2]가 완성되기까지는 10개월이 걸렸다. [스트리트파이터2]는 깔끔하고 세밀한 그래픽은 물론이고, 8명의 다양한 격투사들이 등장해 플레이하는 재미를 살렸다. 전작에선 ‘류’와 ‘캔’만 선택할 수 있었지만, 2편에선 4인의 보스 캐릭터를 뺀 등장인물 전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게임은 가히 캐릭터의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각 나라별로 다양한 종류의 캐릭터가 마치 살아 숨쉬는 듯 생동감 있게 묘사됐다. 입에서 불을 내뿜는 인도 수도승(달심), 육중한 몸체의 스모선수(혼다), 애꾸눈 킥복서(사가트), 근육의 다리를 가진 여자고수(춘리) 등 나라별 특징을 살린 캐릭터들은 각자 고유의 기술과 장단점을 명확히 가지고 있었다.
전작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조작감도 개선했다. 더 이상 레버를 무식하게 돌리지 않아도 됐다. 간단한 커맨드로 캐릭터들의 필살기를 쉽게 구사 할 수 있게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조작감 하나로 캐릭터의 느낌까지 살렸다. 예를 들어 군인으로 설정되어 있는 가일의 기술은 딱딱 끊기면서 절도 있는 반면, 레슬러 출신인 장기에프는 큰 덩치만큼 레버를 크게 움직여 쓰는 기술들이 많다. 캐릭터의 움직임과 조작감을 자연스럽게 일치시킨 것이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조작한다는 느낌보다, 화면 속 캐릭터가 되어 실제 싸우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게임평론가 이상우 씨는 그의 저서에서 “(스트리트파이터2)는 최대한 레버의 움직임과 화면 속 대상의 움직임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한 것 같다”며 “파동권은 두 손을 오른쪽으로 모아서 날리는 동작을 표현하는데, 실제 현실에서 이 동작을 따라 하면 자연스럽게 곡선이 그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밸런싱도 완벽에 가까웠다. 소외 되는 캐릭터 없이 하나하나가 모두 인기였다(물론 류와 캔은 주인공 프리미엄을 살려 조금 더 셌다).
[스트리트파이터2] 화면. 가일의 썸머솔트킥. 아래로 레버를 당겨 반사적으로 위로 튕기면 나가는 기술. 군인 출신 가일의 절도있는 기술.
[스트리트파이터2] 캐릭터 선택화면. 유일의 여성캐릭터 춘리, 주인공 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다.
1991년 발매된 [스트리트파이터2]는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만고만한 슈팅게임에 질린 유저들은 [스트리트파이터2]의 강력한 액션에 열광했다. 게임센터에 설치된 게임기 중 절반 이상은 [스트리트파이터2]가 차지했다. 아니, 게임센터 전체를 [스트리트파이터2]로 채우는 업소도 많았다.
게임은 80년대 중반 이후 침체되어 있는 아케이드 시장에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업주들은 게임기를 여러 대 구입해 일렬로 세웠는데, 이런 광경은 80년대 초 전 [팩맨]이 몰고 왔던 오락실 전성기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 당시 캠콤 관계자에 따르면 [스트리트파이터2]가 게임센터에서 벌어들인 동전 수입은 스필버그의 영화 [쥬라기 공원]이 극장에서 벌어들인 수입보다 많았다고 한다.
[스트리트파이터2]는 슈퍼패미콤 용으로 컨버전 되어 700만장 이상 팔렸다. 게임은 영화, 애니메이션, 완구 등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나와 세계적인 스트리트파이터 신드롬을 일으켰다. [스트리트파이터2]의 성공은 90년대 격투게임의 전성기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이후 [아랑전설], [용호의 권], [킹오브더파이터], [사무라이스피리트] 등 수많은 대전격투게임이 90년대 오락실의 안방자리를 차지했다. [스트리트파이터2]는 이후 수많은 시리즈를 남기며 최신작 2008년 [스트리트파이터4]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
[스트리트파이터EX]
[스트리트파이터2]는 단순한 성공으로 그치지 않았다. 90년대 게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7, 80년대 유행했던 액션 슈팅 게임은 점수를 많이 따거나, 끝까지 살아남아 공주를 구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스트리트파이터2]부터 시작된 격투게임의 룰은 달랐다. 점수도 필요 없고, 공주를 구하는 것도 관심이 없다. 오직 상대방을 멋있게 때려눕히고 승리를 세레모니를 취하는 게 게임을 하는 유일한 목표다. 비겁하게 이기려고 ‘얍삽이 기술’을 쓰는 플레이어는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실제로 상대가 얍삽이 기술을 쓴다며, 실제 주먹다짐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승부는 오직 일대일로 맞장(?). 이기면 게임기 앞에 남고, 지면 주저 없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
이런 ‘정글의 법칙’이 90년대 게임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했다. 오락실의 풍경도 변했다. 게임시간이 단축되고 동전회전율이 높아지면서 오락실 업주들은 그야말로 가뭄 뒤 단비를 만난 듯 했다. 전국 오락실은 동네에서 한다하는 무림고수(?)들이 서로 자웅을 겨루는 아레나가 됐다. 이런 풍경은 90년대 말 [스타크래프트]가 몰고 온 PC방 문화가 정착되기까지 한동안 계속된다.
[스트리트파이터3].
“이소룡이 셀까? 성룡이 셀까?”, “헐크호건이냐? 자이언트냐?”, “효도르와 크로캅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이런 생산적이지 못한 논쟁은 세대를 초월해 늘 남자들의 피를 뜨겁게 했다. [스트리트파이터2]에선 실제 파이터들을 흔적들을 게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게임에 나오는 대부분 캐릭터들은 실제 모델이 있다. 주인공 ‘류’는 ‘바람의 파이터’로 유명한 최영의의 제자로 ‘극진의 호랑이’라 불렸던 가라데 고수 ‘소에노 요시지’가 모델이다.
또, 그의 숙적으로 나오는 ‘사가트’는 태국의 전설적인 무에 타이 고수 ‘레이바’를 모티브로 했다. 실제로 소에노는 레이바와 일전을 치루기 위해 태국에 갔지만, 경기 직전 레이바가 괴한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세기의 대결은 무산됐다. 게임도 주인공 ‘류’가 전 세계 고수들을 차례로 제압한 후 태국에서 최강의 보스와 대결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또, 권투를 사용하는 ‘바이슨’은 미국의 권투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을, 절권도를 쓰는 ‘페이룽’은 쿵푸의 전설 이소룡을, 최신작 4편에 등장한 아벨은 지상 최강의 사나이 ‘효도르’를 연상시킨다.
비록 세월의 흐름 앞에 파이터의 전성기는 시들어 가지만, 그들의 열정을 담은 게임 속 캐릭터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성기의 강함을 유지하며 젊은 캐릭터의 도전을 꿋꿋이 받아내고 있다. 어쩌면 [스트리트파이터]는 승부의 세계를 치열하게 살다간 우리시대 파이터들에 대한 한편의 헌사가 아닐까. 류와 캔이 절대 늙어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슈퍼 스트리트파이터4, 2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캐릭터를 탄생시킨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는 지금도 게이머들의 가슴을 설래게 하고 있다.
참고자료 이상우,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 자음과모음, 2012. 스티븐 켄트, [게임의 시대], 파스칼북스, 2002. 크라이프, 박대은, [짬짬이 즐기는 게임의 역사], 화약고, 2008. 위키백과, '스트리트파이터' 항목 네이버블로그, '재미있는 스파이야기' KGC2008 세미나, '실패로부터 배우는 게임개발' 오카모토 요시키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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