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정체성
마12:1-8
2024년4월22일(월)
기동찬
1.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알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하나님, 바리새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대단히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6절)고 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21장).
하나님 나라에는 성전 건물이 따로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 되신 예수님께서 친히 성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신앙의 모체로 여겼던 예루살렘 성은 예수님께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건물일 뿐입니다.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성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루살렘 성전 보다 더 크신 예수님은 제사보다 자비를 더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심정을 잘 알았던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양육할 때, 저들의 믿음이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인 것을 알고, 밥으로 양육하지 않고 젖으로 양육 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장).
제사 보다 자비를 더 원하시고, 예루살렘 성전 보다 더 크시고 위대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은 성전보다 더 크시고(6절), 제사 보다 자비를 더 원 하실 뿐만 아니라 안식일에도 주인이심을 선포합니다.
8.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금요일 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안식 후 첫날 부활 하셨기 때문에, 오늘날 안식일의 주인 되신 주님이 부활하신 그 날에 모여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예배드리는 줄 믿습니다.
1.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안식일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은 모든 분들의 안식이 되시는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참된 안식, 참된 평강을 누리기 원하는 이는 누구든지 바리새인과 같은 태도를 버리고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함을 선포합니다.
인간이 조성하고 세상이 제공하는 안식은 오히려 더 많은 좌절감과 곤고함을 가져다 줄 수도 있는 안식일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안식은 영원한 안식이며 참된 안식이요 참된 평강임을 선포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안식일의 규례는 무거운 멍에와 같은 것이어서 짐스럽고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주장하시는 예수님의 멍에는 가볍고 쉬운 것이라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참된 안식과 평강을 더 해 주십니다(마11:29,30).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장).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 그 이유는 온유 겸손함으로 예수님께 배우며, 배운바 대로 온유 겸손함으로 서로 보듬어 감싸며 서로 서로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며 돌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따라 그 마음으로 돌보는 주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바리새인들이 제정한 율법의 구속이나 정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율법과 죄로부터의 해방과 참된 안식과 평안만이 있을 뿐입니다.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장).
♬ 예수 안에 있는 나에게 결코 정죄함 없네 생명의 성령의 법이 해방 하였네
예수 안에 있는 나에게 결코 정죄함 없네 생명의 성령의 법이 해방 하였네
예수 예수 오직 예수 예수 예수 오직 예수
죄와 사망에 나를 구원 했네
죄와 사망에서 나를 구원 했네
해방 되었네 해방 되었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되었네 해방 되었네 죄와 사망의 법에서.
바리새인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세례 요한을 비난하고, 예수님을 비난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한다면, 그런 삶에는 참된 안식과 참된 평강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로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온유 겸손함으로 예수님께 배운다면 영원한 안식과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성전보다 크시고,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저의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신 자비와 긍휼이 한 없이 많으신 주님을 송축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제자들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로부터 끝까지 보호해 주시는 신실하신 주님을 경배합니다.
이 하루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며
제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Declaration
제사 보다 자비를 더 원하시는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요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I proclaim that Jesus, who desires mercy more than sacrifice, is the Lord of the Sabbath and greater than the tem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