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예산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오늘은 집에서 죽때릴까 하다가 역마살 끼가 발동해서 길을 나서는데
어디로 갈까 하다가 안성의 칠장사와 석남사를 찾아갑니다.(07:40i)
1시간30여분을 달려 칠장사 입구에 도착합니다.
칠장사(七長寺)
칠장사는 안성시 칠현산 중턱에 자리한 절로,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
칠장사의 내력은 고려 시대부터 잘 보존되어 있다.
고려 우왕 9년(1383)에는 왜구의 침입을 받아 충주 개천사에 있던 실록을 이곳으로 옮겨 와 보관했다가 다시 가져갔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가
아들 영창대군과 아버지 김제남의 명복을 비는 원당으로 삼고
사찰을 크게 고쳐 짓고 직접 글씨를 쓴 불경과 족자를 절에 내려 주었다.
이후 여러 차례 화재가 일어났으나 절을 지키려는 스님들의 노력으로 터를 옮겨 가며 다시 짓고 절을 보존했다.
특히 조선 숙종 30년(1704)에는 옛터를 회복하여 56동에 이르는 전각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증축 등의 불사(佛事)가 있었지만
고종 24년(1887)에 큰불이 나서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 나한전, 사천왕분과 불상, 불화(佛畫)등만 남았다.
부속 암자로 백련암, 극락암, 명적암, 상운암 등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명적암을 제외한 다른 암자들은 폐사되거나 칠장사로 통합되었다.
칠장사에는 다양한 설화가 전해진다.
고려 초 혜소 스님이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선량하지 못한 7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고,
혜소국사가 되었으며, 입적 후에는 왕명을 받아 행적비가 조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궁예가 19살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활터 이야기와
임꺽정이 스승 병해대사가 입적하자 꺽정불(꺽정佛)을 만들어 극락전에 모셨다는 이야기,
어사 박문수가 나한전에서 자다가 꿈에서 시험 문제를 보고는 장원 급제를 했다는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라고 써 있네여.
입구에서 본 칠장사 전경
조금은 쌩뚱맞긴한데 '어사 박문수길 종합안내도'가 있어서 담아봅니다.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는 천왕문
범종루
제중루
극락전
대웅전
『안성 칠장사 대웅전』의 최초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790년(정조14년) 중창되고 1828년(순조28년) 이건된 건물로서,
경기도권의 조선후기 사찰 중심 불전의 건축 상황을 잘 보여준다.
정면3칸, 측면 3칸,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공포형식은 기둥 상부 이외에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열한 다포형식이며 각 칸마다 2개의 간포(間包)가 있다.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불화와 연꽃무늬로 채색되어 있고, 중앙에는 석가삼존불을 모셨다.
라고 써 있네여.
대웅전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실천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모셔져있습니다.
죽림리 삼층석탑
죽산에 흩어져 있던 탑부재를
죽림리 강성원 목장에서 관리하여오다가 강성원 선생의 기증으로 2005.11.28 현재의 위치로 이전 설치하였다.
이 탑의 전체 높이가 375m이고 상대갑석은 하나의 판석에 옥신괴임을 2단으로 둥글게 처리하였다.
1층 탑신은 2매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고
한 면에는 둥근 문고리를 조각하였으며 탑신마다 모서리기둥(우주:隅柱)이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모두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고 상륜부에는 방형 노반만이 남아 있다.
탑신부의 체감비율이나 옥개받침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라고 써 있네여.
명부전
명부전 외벽에 그려진 벽화들
응향각
안성봉업사 석불입상
이 석불입상은 원래 죽산의 봉업사지에 있던 것을 죽산중학교로 옮겼다가 1980년경 칠장사로 옮겨온 것이다.
불상과 광배(光背)가 같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불상 높이는 166.5cm이고 총 높이는 206cm이다.
옷주름은 여러 겹의 둥근 모양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불상의 뒷면에는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가 있는데 주위에 불꽃무늬의 화불을 새기고 있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에 유행했던 이 지방 불상양식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높이 평가된다.
라고 써 있네여.
거북바위
원통전
국사전
공덕전
나한전
칠장사 나옹송
나한전 뒤편에 있는 이 소나무는 나옹스님이 심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나옹스님(1320~1376)은 고려말 황사(王師)로서 휘는 혜근(慧勤), 호는 나옹(懶翁)이며 본 이름은 원혜(元慧)이다.
나옹송의 높이는 약 8m, 둘레 2.1m이고, 1997년 8월 30일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라고 써 있네여.
혜소국사 비전(碑殿)
칠장사 혜소국사 비
혜소국사는 고려 광종(光宗) 23년(972)에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에 출가 하였으며 17세에 융천사(融天寺)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국사는 말년을 칠장사(七長寺)에서 보내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83세가 되던 고려 문종 8년(1504)에 입적하였다.
고려 문종(文宗) 14년(1060) 혜소국사의 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이 비는
김현(金顯)이 글을 짓고 민상제(閔賞濟)가 글씨를 썼는데,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신(碑身)의 높이는 241cm, 폭은128cm이며,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라고 써 놨네여.
산신각
산신각을 끝으로 돌아나갑니다.
칠장사를 둘러보고 나와
차를 타고 35km거리에 있는 석남사를 찾아 이동합니다.(10:45i)
(칠장사에서 석남사까지는약35km)
한참 달리는데 '광혜원'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기에
조선시대 그 광혜원??을 생각하며 핸들을 광혜원으로 돌려 열라 달렸건만
진천의 아파트 단지로 들어...한마디로 낚였다는 야그지여,ㅠㅠ
밥 때가 됐는지 뱃속에서 밥달라기에
진천읍내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석남사로 달립니다.
열띠미 달려 석남사 입구에 도착합니다.(12:35i)
석남사
석남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로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서운산 자락에 있다.
통일신라 문무왕 20년(680) 고승 석선(奭善)이 세웠고
고려 초기에 혜거국사가 중수하였으나 임진왜란때 불에 타 나중에 화덕(華德)이 중건한 절로 알려져 있다.
현재 석남사에는 대웅전과 영산전 두 불전을 중심으로 요사채, 누각, 탑, 부도, 마애불 등이 있다.
이들 유적과 유물은 거의 조선시대에 조성되었으나
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사역 근방에 남아 있고,
조선 초기에 조성되었다고 추정되는 석탑등으로 미루어 법등은 꾸준히 계승되어 왔음을 짐작학 수있다.
라고 써 있네여.
석남사라는 표지석부터 담고
지금부터 석남사를 구경해보겠습니다.
서운산 석남사라 써 있는데
아랫쪽에 사천왕상이 자리하고 있네여.
사천왕상
사천왕상을 카메라에 담고 통과해서 돌아보니 원공유물박물관이라는 현판이...뭐야이거!~
이위치가 도깨비 촬영했던 장소라고..
카메라빨(?)이 제일 잘 받기에 함 더 담아보고
석남사 석탑
대웅전 앞, 영산전 좌측에 세워져 있는 이 석탑은 절 아래쪽에 있던 것을 1970년대에 현 위치로 옮긴것이다.
쌍탑(雙塔)중 우측의 탑은 1매의 판석으로 지대(地臺)를 마련하였는데, 1단의 괴임이 돌출되어 있고 기단부를 받들고 있다.
상면의 갑석은 탑신부 괴임대가 없는 평평한 판석으로 이루어졌다.
1층 옥신에는 양우주가 정연하게 새겨져 있다.
이 쌍탑은 옥신, 옥개석의 조성 수법과 그 형식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우측탑이 232cm, 좌측탑은 225cm이다.
라고 써 있네여.
석남사 영산전
영산전은 석가모니불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를 함께 모신 불전의 명칭인데
이 곳은 500나한을 함께 봉안한 것이 특징이다.
영산전은 정면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팔작집인데 칸수에 비해 규모가 작은 건물이다.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우고 지붕가구는 오량으로 구성하였다.
내부를 보면, 불단은 건물 뒷벽에 붙여 중앙에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삼존불을 모셨고,
그 위에 부처를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해 닫집을 매달아 장엄하게 꾸몄다.
중앙의 불단 좌우에는 ㄱ자형으로 불단을 구성하여 500나한상을 모셨다.
이 영산전은 1562년 처음 건립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을 면하였다.
조선 초기에서 중기 사이의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민흘림 기둥: 기둥 뿌리가 굵고 위로 올라가면서 굵기가 줄어두는 기둥
*닫집: 궁전 안의 옥좌 위, 또는 법당의 불좌 위에ㅐ 만들어 다는 집의 모양
이라고 써 있네여.
석가모니불과 500나한상
비문을 보니 '부모은중경'이라 써있기에 담아봅니다.
석남사 대웅전
석남사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되었고,
고려초기 혜거국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조선 태종7년(1407)에는 국가에 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절인 자복사(資福寺)로 지정 될 정도로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영조 1년(1725)에는 혜원선사가 대웅전과 영산전의 기와를 갈았다는 기록으로 18세기경에 대웅전이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제의 대웅전은 영산전 앞에 있던 것을 1978년에 옮긴 것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의 건축물이다.
전면 귀공포의 형태로 보아 원래 지붕은 팔작 형식이었으나 후에 맞배지붕으로 고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 중앙에는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있고 그 위에 보기 드문 2층 구조의 닫집이 있다.
이 불전은 내부에 휘어진 보 등을 사용하였으며, 건립된 후에도 여러 번 수리된 것으로 보인다.
라고 써 있네여.
대웅전을 끝으로
석남사 구경을 마치고 돌아 나갑니다.
나오는데 야생화 꽃길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기에 홀린듯 따라 갑니다.
기대했던 야생화는 아직 때가 이른듯 보이질 않고 마애석불상 이정표가...
마애석불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 갑니다.
감사합니다. 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