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의 맛

[영축산]

                                                              고향 친구의 맛

                                                                                                 김 창 현

  전어는 남해 선소방파제에서 콩대불로 구우면, 고소한 냄새가 삼천포까지 날라간다고 한다. 10월3일 출향 문인 '남강문학' 2호 출판기념회 차 진주 갔다가, 지리산 골짝 홍시보다 더 달콤한 고향 친구의 맛을 보고왔다. 먼저 고속버스 터미날 옆 고려병원 원장실에서다. 그는 내 전화 받고 생각을 해봤다고 한다. 그러면서 캐비넷 열더니 담배를 한 갑을 꺼냈다. 단종된지 1년 된 도라지 담배다. 도라지 맛들인 사람에게 그건 귀물이다. 내가 도라지 피운다고 그 아까운 걸 내놓는 그 맘이 짜릿했다. 복도에 대기하는 환자들이 많다. 하얀 까운 입은 병원장 오래 붙들고 노닥거리면 안되겠다 싶었다. 그래 잠시 얼굴만 보려던 것이 3시간 지체되었다. 부인이 함양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좋은 스님 있으니, 가서 하루 밤 보내자는 걸 그리 못해 섭섭했다. 나 역시 불교신문 기자였다. 절 하나 인연 맺아 노년에 목탁소리 들으며 살고싶다. 그가 준 서울공대 박희선 교수가 쓴 '생활 참선'이란 책을 얻어왔다.

   그날 밤 '남강문학' 2호 출판기념회가 끝나자 가을비 내리고 있다. 숙소로 이동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때 합천 이영성 시인이 나선다. 전화를 걸자 한 친구가 차 가지고 나타나 우릴 숙소에 태워준다. 마산 MBC에서 전무로 있다 퇴직한 병화 친구다. 그는 문우회 선배님들 대접하라면서 맥주 한보따리 사주었고, 이튿날 아침엔 옛 진주시청 뒤 해장국집에 데려다 주었다.

   개천예술제 백일장 현장 둘러 심사위원으로 온 유안진 교수와 점심 마치자. 밖에 초등학교 동기 셋이 기다리고 있다. 60년 전 친구 왔다니 온 것이다. 그냥 반갑다는 말 하나로는 표현할 수 없다. 덜덜거리는 고물차 몰고온 오교장이 좌중의 눈치 보며 이랬다.

   '가을 아이가? 북천 코스모스 꽃 구경하러 가자.'

   함께 온 원호란 친구는 키가 일미터 팔십 삼. 그는 육거리 우리집 근처에 살았다. 키 크고 얼굴 하얗던 여동생은 시집가서 남해 산다고 했다. 처음에 삼영이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옥경이처럼 '언젠가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다. 한참 뒤 그가 문학을 좋아했던 게 생각났다.

   북천역은 공기 맑아 그런가. 코스모스 꽃도 고향꽃이 더 곱고, 사람도 고향 친구가 더 좋다. 나선김에 이병주문학관과 다솔사 둘러 보았다.

   다솔사 최범술(崔凡述) 스님은 내가 존경한 분이다. 우리집은 해인대학 근처에 있었다. 철없던 그 시절 나는 해인대학에 평행봉 하러 자주 갔는데 효당(曉堂)스님을 약간 깔본 편이다. 몇십년 입은 고리삭은 양복과, 땅달보 대머리 행색 우섭게 보았다. 그러나 후에 알고보니, 효당은 진주를 대표할 큰인물 이다. 불교계 대선지식 성철스님은 효당스님 만난 계기로 출가했다. 다도 분야에서 전라도 무등산에 의제 허백련이 있다면 경상도 봉명산 다솔사에 효당 최범술이 있다. 효당스님 저술인 '한국의 차도'는 초의스님의 '동다송' 이래로 근세 한국 최고의 차 이론서다.

   다솔사는 만해 한용운 선사와 소설가 김동리의 형 김범부 선생이 효당과 어울린 절이다. 김동리는 여기서 그분들 나누는 대화 중 중국의 소신공양(燒身供養) 이야기를 듣고 유명한 소설 '등신불'(等身佛)을 썼다.

   다솔사 풍수는 장군대좌형이다. 소나무가 장관이고, 법당 올라가는 계단 옆 파초가 볼만하다. 적멸보궁 뒤편 차밭은 내가 꼭 한번 보고싶던 차밭이다. 여기서 효당이 반야로(般若露) 차를 만들었다. 스님은 동경 유학파다. 일본 불교 영향을 받아 대처승이다. 나는 인사동에서 스님의 젊은 부인을 뵌 적 있다. 진주여고와 연세대 사학과 나온 분으로 나보다 두 살 아래다. 그분이 반야로(般若露) 차회(茶會)를 운영했는데, 다도 배우러 온 여대생에게 원문으로 노자를 가르키고 있었다. 나도 고대서 동양철학 전공한 사람이다. 효당스님도 잘 안다. 일본 황태자를 척살하기 위해서 상해에서 폭탄을 날라 박열의사에게 전한 에피소드 한번 신명나게 소개했더니, 효당본가 반야로 차도문화원 채원화 원장이 날더러 같이 차회를 운영하자고 한 적 있다. 반야로 차회는 지금 주한 외교사절 부인들 년중행사에서 발전해 프랑스까지 진출했다.

   만해 효당 두 고승이 마셨을 약수 한사발 마시고, 그 다음에 백자 가마터 찾아갔다. 진교 백련리(白蓮里)다. 이곳은 일본 국보 찻잔 '이또다완'(井戶茶碗)의 고향이라는 설이 유력한 곳이다. 동네 이름이 새미골인데, 샘은 한문으로 정(井)자다. 여기서 16세기 전통 막사발 굽던 가마터가 발견되었는데, 분청 상감 철화백자까지 만들던 터다. 백련리 특징은 동네가 벼논 대신 모두 연밭이다. 마침 연밭에 젊은 새댁이 한 분 서 있었다.이태백의 채련곡(採蓮曲)이란 시 생각났다. '약야계 물가에서 연꽃 따는 아가씨, 작은 조각배를 타고 웃으며 연꽃 너머 사람과 이야기하네. 햇빛이 새로 화장한 얼굴 비치니 물밑까지 환하고, 바람은 향내 나는 소매를 날려 공중에 올리누나'.

   이 백련리에 서울서 미모로 이름 떨친 진주여고 출신 장금정 씨와 대아고 이사장 박종한 씨가 가마터를 열고 있다. 그 옆에 골프장 조성하던 내 동기 춘식이는 장금정씨 만나 연꽃차 대접받은 모양이다. 그래 전사장에게 전화로 위치 물어가며 찾아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다. 마침 일요일이라 가마터는 모두 문을 닫았고, 취화선 촬영지란 팻말만 보인다. 미인 만나고 연꽃차 막사발로 마실 기대 무산되자 성질 급한 진주 친구들 퍽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오교장이 화제를 돌린다.

   '지리산 흑돼지가 좋나, 삼천포 사시미가 좋나?'

   그러고 데려간 곳이 역전 근방 어느 횟집이다. 나는 거기서 놀랬다. 거기 나온 우렁쉥이, 개불, 전어, 도미, 우럭을 서울 횟집에서 나오는 그런 것들과 비교하랴. 너무 싱싱하고 감미롭다. 간밤에 술로 완전히 녹은 이영성 시인은 졸기만 했지만, 차 타면 즉시 참선한 덕택에 거사는 원기왕성했다. 예술 가까운 고향의 미각 완벽히 음미했다.

   잠을 장대동 오교장 집에서 자고 아침에 또하나 황공스런 진주 밥상 만났다. 여뀌꽃 붉은 선학산(仙鶴山) 남덕정(覽德亭) 사대(射臺)에 올라가 풍세(風勢) 가름하며 고요히 숨을 멈추고 집중하여 국궁(國弓) 몇 발 지도받고 내려왔더니, 밥상 위에 팔뚝만한 생선이 노릇노릇 잘 구워진채 놓여있다. 원래 삼천포 생선 좋아하는 거사다. 한 점 떼어 맛 보니 황홀 그것이다. 머리 속에 뭔가 모를 전율이 확 지나간다. 깜짝 놀라 부인에게 물어보니 민어조기란다. 민어조기 맛은 진주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좋은 건 고향에 다 두고 쓸데없이 타향만 헤매다 온 기분이다. 그럼 간장게장과 버섯구이는 어떻던가. 물도 고향물이 더 달다는데 물어 무엇하랴. 내가 음식에 하나하나 감복하자 곁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 보던 부인이 식사 도중에 또한마리 민어조기 구워내고 김도 또 구워준다. 이런 미풍양속은 50년 전에 내가 보던 진주 풍속이다. 품위가 있다. 서울에선 이미 없어진 풍속이다. 사람 사는 곳에 돌아온 기분 들었다.

   오교장은 4일 9일 덕산장, 2일 7일 함양장. 5일 10일 곤양과 안의장 인근 5일장 날짜를 외고있다. 5일장 다니면서 철 따라 신선한 약초와 과일 사온단다. 간혹 좋은 물가를 만나면 차 세우고 고동 잡는 것도 취미라 한다. 혼탁한 속세를 벗어난 취미다. 그날 아파트 나설 때 던진 부인의 마지막 말이 감동이었다. '선생님이 간밤에 주무신 방은 선생님 방입니더, 이제부터는 언제던지 오시면 그 방 쓰시이소.'

[백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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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혜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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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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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삼킬듯 기세 등등한 폭염도 시간 앞에서 고개를 숙이나 봅니다.
누구나 품고있는 고향의 찐한맛 찡하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향심,청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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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운]

_()_ 고맙습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