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신화(建国神话)
집필자 조현설(趙顯卨)
정의
국가의 기원을 신성하게 설명하는 신화.
역사
건국신화(建國神話)는 고대 국가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다.
<단군>, <고주몽>, <박혁거세>, <김수로> 등의 신화가 그 사례이다.
그러나 건국신화는 고대 국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중세 또는 근대 국가의 경우에도 만들어진 사례가 있다.
<왕건신화>, <이성계신화>가 중세의 건국신화라면
근대계몽기의 종교화된 시조 단군,
혹은 근대적 민족의 표상으로 작용한 단군에 관한 신화는 근대의 건국신화이다.
내용
고대 국가들은 국가적 제전에서 국가의 신성한 기원을 설명하고
이를 구성원들에게 선포하기 위해 건국의 서사시를 만든다.
서사시 형식으로 구술되던 건국 이야기는 역사를 기록하게 되면서 각국 역사의 서두에 등록된다.
이 산문 형식의 기록을 건국신화라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인용되어 있는 『단군고기(檀君古記)』,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등이 그런 사례이다.
건국신화는 시조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고대 국가는 대개 강력한 힘을 지닌 특정 부족에 의해 다수의 부족이 통합되면서 설립된다.
고구려의 5부, 신라의 6부 등의 존재가 그것을 입증한다.
이때 각 부족은 자신들의 종족적 기원을 이야기하는 시조신화를 가지고 있는데,
국가 건립의 주도 세력이 된 부족의 시조신화를 중심으로 다른 시조신화들이 통합되면서 건국신화로 재구성된다.
예를 들어 고조선 건국신화에는 환웅으로 대표되는 부족과 웅녀나 호랑이로 대표되는 부족이 등장하는데,
환웅 집단의 주도에 의해 고조선의 건국이 이뤄지면서 환웅 집단의 천신계 신화에
웅녀 집단의 토템 신화가 통합되는 형식으로 고조선의 건국신화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고조선 건국신화는 국가 통합의 강력한 원천으로 최고신, 곧 환인을 내세운다.
이렇게 고조선은 최고신 환인의 뜻에 따라 지상에 설립된 신성한 나라라는
건국신화의 이야기 형식과 이념이 만들어졌다.
문헌에 기록되어 전하는 한국의 건국신화에는 고조선의 <단군신화>, 북부여의 <해부루신화>,
동부여의 <금와신화>, 고구려의 <주몽신화>, 신라의 <박혁거세신화>, 가락국의 <수로신화>,
탐라국의 <삼을라신화>가 있다.
이런 고대 국가의 건국신화 외에도 고려의 왕건과 그 선대에 관한 신화,
조선의 이성계와 그 선대에 관한 신화와 같은 중세의 건국신화도 있다.
비록 지속성을 확보하지 못해 형태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태봉국 궁예, 후백제 견훤의 탄생 또는 성장과 관련된 전설에서도 건국신화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특징
고대 건국신화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천부지모(天父地母)의 결합이다.
고조선의 환웅과 웅녀, 고구려의 해모수와 유화, 신라의 박혁거세와 알영,
가락국의 수로와 허황옥의 결연이 그것을 잘 보여 준다.
이때 남성 쪽이 천신계(天神系), 여성 쪽이 지신계(地神系)에 속한다.
환웅은 천신 환인의 아들이고, 해모수는 천제의 아들이며, 혁거세와 수로는 하늘에서 알에 담겨 강림한다.
웅녀는 정체가 곰 혹은 곰신이고, 유화는 수신 하백의 딸이고,
알영은 계룡의 옆구리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역시 수신의 딸이라고 할 수 있으며, 허황옥은 바다를 건너온다.
여성 쪽은 대지나 대지의 물과 관계된 여성 혹은 여신이기 때문에 지신계에 포괄할 수 있다.
이런 천부지모의 결합을 통한 건국의 형성은 건국의 주도 세력이 천신을 숭배했기 때문에
이룩된 것일 가능성도 있고,
부계의 주도성을 표현하기 위해 부계 쪽에 천신의 위치를 배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천부지모의 결합 형식이라고 하더라도 한반도 북부와 남부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북부의 고조선과 고구려의 경우는 천부지모의 결합 이후 건국주가 탄생하여 나라를 세운다.
단군과 주몽이 그렇다.
그러나 남부의 신라와 가락국의 경우는 건국주가 탄생한 이후 건국주의 결혼이 이뤄진다.
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난 후 계룡이 낳은 알영과 결혼한 뒤 6부의 촌장들에 의해 추대되어 건국주가 된다.
수로 또한 알에서 태어나 9간에 의해 왕으로 추대된 후 바다를 건너온 아유타국의 허황옥과 결혼한다.
남부의 경우 추대의 형식으로 건국주가 되는 데 비해 북부의 경우 주몽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경쟁과 정복을 통해 나라를 세우고 건국주가 되는 것도 이와 관련된 차이라고 할 만하다.
중세에 제작된 건국신화는 고대 건국신화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다양한 신성 계보를 통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고려 건국신화의 서두에 등장하는 왕건의 6대조 호경은 신라 성골장군 출신인데
백두산에서 내려와 구룡산의 산신이 된다.
신라와 고구려의 신성을 흡수하려는 의도가 있다.
또, 왕가의 신성 계보를 중국에 대려는 의도도 보인다.
왕건의 3대조는 당나라 숙종이다.
중세 문명의 중심인 당나라 천자의 혈통을 통해 고려 왕가의 신성성을 확보하려는 뜻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건국주 자신보다는 선대(先代)를 신화화, 신성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려의 경우는 왕건 자신보다 호경-강충-보육-진의(숙종)-작제건-용건-왕건으로 이어지는 선대 혈통과
그 사적이 신비화되어 있다.
조선의 경우는 이성계 자신보다는 목조-익조-도조-환조-태조로 이어지는 선대의 사적이 신비화되어 있다.
이는 신과 신성 동물이 등장하는 고대의 건국신화가 더 이상 수용될 수 없는 중세적 합리성의 기틀 위에서
혈통의 지속성과 예조(豫兆), 또는 풍수지리설과 같은 세계 해석의 이론을 통해
신성성과 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고대의 건국신화는 집단의 기원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근대 민족신화로 재인식되기도 한다.
고조선의 <단군신화>의 단군은 이미 고려대에 와서 삼한과 삼국의 근원으로 인식된 바 있다.
신라․고구려․남옥저․북옥저․동부여․북부여․예․맥이 모두 단군의 후손이라고 읊은 이승휴의 한문서사시
『제왕운기(帝王韻紀)』가 그것을 잘 보여 준다.
이런 전례를 보여 준 바 있는 단군은 19∼20세기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의 외침이라는 집단적 위기의식 속에서
단일민족의 기원으로 재인식된다.
그리고 역사교과서의 편찬을 통한 역사 교육, 민족종교인 대종교 등에 의한 신격화 과정을 거치면서
단군은 민족의 아버지가 된다.
<단군신화>에 표현되어 있는 ‘홍익인간’이 해방 이후 교육이념으로 채택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대의 <단군신화>는 단일민족의 신화이자 근대적 민족국가의 건국신화로 재탄생한다.
의의
건국신화는 국가 설립을 초월적 권위에 기대어 정당화하려고 하는 신화이다.
그래서 건국신화는 단순한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라 특정 이념을 드러내고
그것을 집단 내부에 강제하는 이데올로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건국신화는 신화와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신화 형식이라는 데 구비문학적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三國史記, 三國遺事, 世宗實錄地理志, 三國史記,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조현설, 문학과지성사, 2003),
한국 건국신화의 실상과 이해(이지영, 월인, 2000).
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