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꿈" (1947) 김용대
"청춘의 꿈" (1947)
https://www.youtube.com/watch?v=AaIsGYEGD9k
이 노래는 원래 작곡자인 김용대가 1947년에 무대에서 처음 불렀는데 김용대가 일본으로 가는 바람에 음반 녹음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곡이 좋아서 다른 가수들이 많이 불렀습니다.
1960년경에 LP음반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그동안 SP음반으로 제작되었던 인기곡들이 다시 녹음되면서 이 곡도 새로 김용만이 불러 녹음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원곡의 제목이었던 ‘청춘은 꿈’이 ‘청춘의 꿈’으로 바뀌었고 가사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또한 원곡의 작사자 역시 작곡과 노래를 한 김용대였는데 재발매된 음반에서는 인기 작사가인 반야월의 다른 필명인 추미림으로 바뀌었습니다.
"靑春의 꿈" (1947)
작사 김용대 / 작곡 김용대/ 노래 김용대
https://www.youtube.com/watch?v=0mYVrFgJBTo&t=46s
< 1 >
靑春은 꿈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진달래가 생긋 웃는 봄봄
靑春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
가슴이 울렁울렁
춤을 추는 봄이요~
진달래꽃 개나리꽃 생긋 웃는 봄봄
시냇가에 버들피리 삐리리리 리리 리~
라라 랄라 라라 랄라 라라 랄라 라라라라 라~
라라 랄 라라 랄 라라랄라 랄랄 봄봄
靑春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 2 >
靑春은 꿈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진달래가 생긋 웃는 봄봄
靑春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
가슴이 울렁울렁
춤을 추는 봄이요~
진달래꽃 개나리꽃 생긋 웃는 봄
시냇가에 버들피리 삐리리리 리리 리~
라라 랄라 라라 랄라 라라 랄라 라라라라 라~
라라 랄 라라 랄 라라랄라 랄랄 봄봄
靑春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 3 >
靑春은 꿈이요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진달래가 생긋 웃는 봄봄
靑春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
가슴이 울렁울렁
춤을 추는 봄이요~
진달래꽃 개나리꽃 생긋 웃는 봄
시냇가에 버들피리 삐리리리 리리 리~
라라 랄라 라라 랄라 라라 랄라 라라라라 라~
라라 랄 라라 랄 라라랄라 랄랄 봄봄
靑春은 꿈이요
봄은 꿈나라
청춘의 꿈 - 김용만 / (1960)
추미림(반야월) 개사 김용대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koIHsZ356ZY
청춘의 꿈은 가수 김용만이 1960년경에 녹음한 노래입니다. 김용만은 경기민요를 하는 국악인 김대근의 9남매중 셋째로 출생하여 트로트, 민요 등의 가수로 활동하였다
[1절]
청춘은 봄이오 봄은 꿈나라
언제나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진달래가 쌩긋 웃는 봄봄
청춘은 싱글벙글 윙크하는 봄봄봄보 봄봄봄봄
가슴은 두근두근 청춘의 꿈
산들산들 봄바람이 춤을 추는 봄봄
시냇가의 버들피리는 빕비리 비리비리빕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랄랄 라라라라랄
라라랄 라라랄 라라랄라 릴리리 봄봄
청춘은 봄이오 봄은 꿈나라
[2절]
청춘은 향기요 봄은 새나라
언제나 명랑한 노래를 부릅시다
개나리가 방긋 웃는 봄봄
청춘은 소근소근 속삭이는 봄봄봄보 봄봄봄봄
가슴이 두근두근 희망의 봄
산들산들 봄바람이 춤을 추는 봄봄
시냇가의 버들피리는 빕비리 비리비리빕
라라랄라 라라랄라 라라랄랄 라라라라랄
라라랄 라라랄 라라랄라 릴리리 봄봄
청춘은 봄이오 봄은 새나라
강혜연 - 청춘의 꿈
https://www.youtube.com/watch?v=SswO46APW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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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 '청춘의 꿈'을 김용만(金用萬) 선생님의 노래로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는데요. 김용대(金龍大) 선생님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려졌으나 음반으로 처음 취입된 것은 1960년, 김용만 선생님의 노래로 녹음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라 할 수 있는 김용대 선생님이 1947년 무대에서 처음 불렀다고 알려지고 있는 '청춘의 꿈'은 이후 입소문을 타고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사실 1947년이라고 하는 것도 음반으로 기록되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1942년 경 발표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본인의 노래가 이렇게 큰 인기를 얻게 될 줄 모르셨던 걸까요. 김용대 선생님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가정을 꾸리셨다고 하네요. 이후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활동을 하셨다고 하는데 선생님과 관련된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더 큰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1926년 12월 경남 울산 출생으로 알려진 김용대 선생님은 울산농업학교를 중퇴하고 10대의 나이에 극단 황금좌에 입단했습니다. 황금좌는 1933년 결성되어 광복 때까지 수도권과 지방을 순회하면서 신파극, 악극 등을 공연한 극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0년대 후반 이 극단에서 '처녀 뱃사공', '오동동 타령'의 주인공 황정자 선생님과 호흡을 맞추며 막간가수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두 분 모두 10대의 어린 나이에 소년소녀 가수로서 활동을 시작한 셈이네요. 두 분의 인연은 40년대에 이르러 신태양악극단으로 함께 거처를 옮기며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1948년 김용대 선생님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첫사랑(?)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지만 두 분 모두 60년대에 타계하시면서 정확한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1960년이 되어서야 김용만 선생님의 목소리로 '청춘의 꿈'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고 있던 노래가 한참 후에 음반으로 제작되다니, 뭔가 순서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50년대 이전까지는 흔히 '돌판'이라고 부르는 SP 음반이 대세였는데 60년대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LP판이 대중화되기 시작합니다. 분당 33회전을 하는 LP에 반해 78회전을 하는 SP판은 실제로 생산과정에서 돌가루가 들어가기 때문에 '돌판'이라는 속칭이 붙여졌다고 하네요.
음반의 형태가 바뀌는 과도기에서 이 '청춘의 꿈' 음반은 SP와 LP의 두 가지 형태로 모두 생산되는데요. SP음반에서는 그 제목이 '청춘은 꿈'이라고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기록에는 '청춘은 봄이요'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있는데, LP의 제목과 다른 기록들을 살펴보면 '청춘의 꿈'으로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