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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87
4. 신학 연구와 교육 그리고 봉사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며, 교회 현장에서 나와 교회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신학을 지원하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근대학문이 발흥한 이후, 대학교가 연구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신학도 대학에서 자기의 자리를 잡고 현장인 교회와는 동떨어져 활동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바람직한지는 고려할 사안이다. 교회 역시 현장성만을 강조하면서 신학과의 협력을 주도하지 않고 신학과 거리를 두면서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는 것도 유익하지 않다.
고신교회는 초기부터 고려신학교를 설립한 계기가 된 신학강좌에서 그 근원을 두고 있다. 한상동 목사와 박윤선 목사로 대표되는 초기 10년의 개혁신학은 회개와 개혁을 주도하였다. 한 목사는 회개를 주도하였고, 박 목사는 성경을 가르치기 위하여 주석을 집필하였다. 박 목사는 미국 정통장로교회와 독립신학교이긴 하지만 그 교회와 긴밀한 관계에 있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두 차례 유학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소재 자유대학교에서 개혁신학을 연구하여 영어권 장로교회와 화란 개혁교회 신학을 한국교회에 소개하였다. 이는 1940-50년대 한국에서는 상당히 참신한 시도였다.
당시의 장로교회는 교권주의를 휘두르면서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던 출옥성도와 고려신학교를 축출하였지만, 고려신학교와 이 학교를 지지한 부산과 경남 지방의 교회들은 건강한 신학을 배워 목회와 삶에 적용하였다. 따라서 교회들은 고려신학교를 재정적으로 돕고 공기도와 사적 기도에서 신학교를 기억하였다. 초기 고려신학교와 고신교회의 관계는 아주 바람직하였다.
그러나 박 목사가 어떤 주일 아침에 미국 선교사의 출국을 전송하기 위하여 택시를 타고 부두에 갔다가 주일 오전예배를 선상에서 드린 일로 인하여 신학교 교장직에서 파면당하고 교수직까지 정직 당하는 일로 인하여 그는 고려신학교를 영구히 떠나고 만다. 이후 박 목사의 제자들로서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공부한 홍반식(1918-1992), 이근삼, 오병세 박사(1926-2016)가 그를 계승한다.
이들은 196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고신교회의 신학의 얼굴이었다. 이들이 귀국한1960년대 초기에 한국교회에는 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들이 많지 않았다. 이들은 각각 구약, 신약과 조직신학을 교수하였으며, 지역교회의 집회나 연합집회 등을 인도하였고, 여러 저작들을 남겼다. 현재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50-60대 목회자들은 이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세 박사들을 이은 신학교수들도 다 은퇴하였다. 허순길(교회사와 봉사신학), 박성복(신약), 전호진(선교학), 안영복(히브리어), 박종칠(구약), 이승미(신약), 황창기(신약), 이보민(윤리학) 교수들은 아직 생존해 있다.
그 다음 세대도 은퇴를 시작하였거나 목회 등으로 학교를 떠났으며, 80주년이 되기 전에 다 은퇴할 것이다. 한정건(구약), 이복수(선교학), 최덕성(교회사), 이환봉(교의학), 현유광(기독교교육), 이상규(교회사), 이성구(구약), 임영효(선교학), 한진환(설교학), 이신철(선교학), 김순성(실천신학), 박영돈(교의학), 유해무(교의학), 양낙흥(교회사), 변종길(신약), 이병수(선교학), 길성남(신약), 신득일(구약), 조성국(기독교교육), 신원하(윤리학), 최승낙(신약) 등이다.
현재 신학교수로 신학과와 신대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나머지 교수들은 80주년을 맞을 것이며, 이들에게 앞으로 고신교회의 신학의 짐이 맡겨져 있다고 하겠다.
고려신학교의 설립자들은 초기부터 정통신학인 칼빈주의와 개혁신학을 표방하고서 진리운동을 펼쳤다. 교회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신학은 어리고 경건이 야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의 독자적 신임성을 믿는 개혁교신학의 원칙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박윤선 목사를 필두로 모든 고신교수들을 통하여 고신교회는 성경관에서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아 가톨릭이 말하는 전통을 거부하고, 계몽 이후 현대신학이 채택하는 성경 비평을 거부하였다. 이 성경관은 앞으로도 굳게 고수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신학운동은 항상 회개와 개혁을 목표로 삼았다. 박형룡 박사와의 결별에서 보았듯이, 고신신학과 교회는 개혁신학을 백과사전식 종교적 지식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교회와 교인의 실제적인 회개와 개혁을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박윤선 목사와의 결별이 보여주듯이 신학과 교회가 회개와 개혁을 향한 경건을 잃어버릴 때 교권의 희생자였던 고신교회 안에도 교권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고려신학교/고신대학교의 이사회를 중심으로 교회정치의 온갖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알려진 바이다. 박 목사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주석」에서 회중을 최고 권위로 보는 교회법적 입장은 고신교회 안에 정착된 적은 없으며, 현재의 총회 운영 방식도 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앞으로 고신신학은 교회를 위하여 이런 교회법을 소개하고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박 목사가 고신교회와 고려신학교를 떠남과 동시에 신학이 교회를 개혁하고 선도하려는 설립 취지를 고수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특히 칼빈주의적 개혁신학의 원칙이 목회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실제로 고신신학이 말하는 개혁신학은 상당히 구호에 가깝다고 하겠다. 외국의 개혁신학을 번역하고 강의하지만, 과연 개혁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강의하고 교회에 전달하는 일관적인 작업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개혁주의가 단순히 보수주의나 복음주의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정도를 넘어 개혁주의와 보수주의,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박윤선 목사의 경고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장로교의 교역자들로서도 무의식적으로 알미니안 신학 사상을 가진 실례가 많으니 통탄할만하다.” 특이한 것은 복음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소위 복음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정통신학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명확하게 개혁파 신학을 깨닫지 못한 관계로 계약신학(=언약신햑)을 강력히 주장하지 않는 자들이 많다. 이들을 복음주의자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알미니안주의를 주장하지 않으나 계약신학도 그리 고조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타협주의의 성격을 가지고 실상 진정한 열매있는 개혁주의 신앙은 안 가진다.” 고신신학은 설립취지서가 분명하게 밝히는 정통신학인 개혁신학을 제대로 연구하고 가르치고 전파해야 할 것이다. 지난 70년 동안 고신신학은 이 일에 천착하지 못하였는데, 앞으로 고신신학의 사명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이다.
1960년대부터 일어난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 운동은 교회의 신조나 신학교의 공식적인 신학적 입장과는 관계없이 전개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려신학교도 이런 운동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입장만을 개진하였을 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았다. 이때부터 ‘신학 따로 목회 따로’라는 괴리와 대치 형국은 공개적인 비밀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학이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제한되고 말았다. 신학은 성장 운동에 대해서 기여한 바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신학은 점차 교회의 현장에서 멀어지면서 또 다시 학문이라는 이름의 신학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길에 들어섰다. “심령부흥이나 교회부흥을 지향하는 교회는 감리교회와 성결교회는 물론 칼빈주의 교회까지도 신학적으로는 보수파 칼빈주의의 수정파인 18세기의 아르메니안주의 신학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부흥신학은 구원의 주체적 체험 획득과 그것을 위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동원과 그 효과를 신학적으로 인정하는 소위 신인협동설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흥주의적, 경건주의적 신앙 체질을 가진 한국 개신교회들은 교파는 달라도 결국은 한 가지 신학, 즉 아르메니안주의의 신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혁신학을 표방하던 신학자들은 이 점을 보다 더 분명하게 지적하였어야 했다. 우리가 교회 성장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다만 교회 성장의 근저에 깔려 있는 목회자의 성취욕이나 교인들의 기복 사상 또는 예언에 대한 사모 등을 이제는 올바르게 폭로하고 말씀으로 세례를 주는 신학적 작업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고려신학교의 개혁신학은 책과 전통의 신학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그리하여 현장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현금 목회자들이 신학교를 제치고 많은 목회 관련 세미나를 주최하고 실제로 강사로 활동하며 목회 현장인 교회의 여론을 장악하고 있다. 지금 신학과 신학교는 제한된 영향력만을 겨우 간직하고 있다. 고려신학교 설립취지서가 첫 항에서 밝힌 취지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통신학운동, 진리운동을 위하여 계속 개혁하는 개혁신학, 곧 칼빈주의 신학을 수립하여 교회를 개혁하고 회개하게 하려는 목표로 시작한 고려신학교가 오히려 교권의 중심에 서고, 교회의 염려와 근심거리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신학교수들이 교회의 교사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한 연고로 교회로부터 불신을 당하거나 교사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교회의 교사인 신학교수들이 먼저 회개하여야 개혁의 선봉이 될 것이다.
또한 신학교에서 배출한 목사들이 지역교회에서 장로교회의 신조에서 벗어나는 설교와 목회를 하며 장로교의 교회정치와는 달리 감독인양 교권을 행사하고 각종 계명을 어기는 일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목사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부름을 받아 지역교회에 파송받았으니 교인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개혁하는 정통신학을 강력하게 펼쳐야 한다. 안타깝게도 목회에서 은사운동이나 불건전한 집단의 영향이 고신교회 안에도 많이 들어왔다.
개혁교회가 주장하는 대로 은혜의 주요 방편인 말씀과 성례로 예배 집례를 수종되는 종으로서 목사는 매주일 공예배에서 교인들을 은혜의 방편의 주인이신 삼위 하나님의 치유를 받고 무장하여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으로 파송해야 한다. 나아가 지역교회의 당회 위주의 교회정치를 정착시키면서 광의회의인 노회와 총회에서 교권이 형성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여 한국교회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보통은혜원리를 따라 국가와 사회에서도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치려는 두 번째 항목에 대해서도 신학은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두 번째 항목은 썩 분명하지 않지만 적어도 SFC(학생신앙운동)가 하나의 좋은 예일 수 있다. SFC는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기초로 삼아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을 확립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됨을 목적으로 삼는다. 나아가 개혁주의 신앙의 대한교회 건설과 국가와 학원의 복음화, 세계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를 사명으로 제시한다.
이 강령은 정말로 개혁신학의 요체를 멋지게 담아 목적과 사명까지 적시한다. 문제는 최근의 SFC 사태에서 보듯이, 고신신학이 SFC 강령의 실현을 위하여 어떤 역할을 지금까지 감당하였는지 반성할 때가 되었다. 취지서의 두 번째 항은 개혁주의적인 기독교 정당이나 기독교 노동운동, 기독교 언론 등도 포함하고 있다고 보겠다. 결국 신학이 이 일에서 계속 맡아야 하는 역할도 있겠지만, 개혁신학에 뿌리를 내린 목회와 설교 사역으로 무장한 교인들이 각계각층에서 이런 일을 모범적으로 하여, 진정한 기독교 국가를 이 땅에 건설하도록 인도해야 할 것이다.
고신대학교와 복음병원은 신학운동을 참된 문화운동에서도 구현하려는 취지서의 세 번째 항목에서 접근하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대학교와 신학교(신학대학원)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신학교수들이 시작한 신학교가 대학의 인가를 위하여 법적인 과오를 범하였고, 그렇게 확장되기 시작한 대학은 병원을 포함하는 대학교로 성장하면서 고신교회의 관심은 신학대학원에서 대학교로 옮겨졌다. 2014년 관선이사의 파송으로 병원을 분리하여 매각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득세하였지만, 이것은 교육법상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라 할 정도로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에 결국은 다시 수면 아래로 잠적한 상태이다.
설립취지서에 등장하는 영국의 최고 대학교와 고신대학교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고신대학교가 지난 세월 동안 어려운 가운데서도 선전하고 인재를 양성하여 사회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지만, 개혁신학에 입각한 방향성과 대학 사회가 지향하는 수월성(excellency)에 대한 논의와 평가는 많지 않았다. 한국 대학의 위기 속에서 수월성이라는 주제를 논하는 것이 어쩌면 지나친 사치일지 모르지만, 방향성에 대해서는 반드시 토론해야 할 사안이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대학병원인 복음병원이 의술의 연구나 시술에서 이웃을 사랑하며, 어떤 대학병원이나 다른 병원과는 달리 복음 전파를 위하여 더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초기의 고신은 회개운동을 원동력으로 삼았다. 박 목사는 고려신학교 설립의 유일한 목적이 회개운동이라고까지 말하였다.
그런데 이런 회개운동은 고신교회가 정착하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신대원, 대학과 복음병원을 중심으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은 신사참배에 해당하지 않을지 모르나 여전히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사안들이다. 2016년도 현재까지 병원 의사(임상 교수 겸임)가 의약품 리베이트에 관련되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되는 일은 누구의 책임인가? 교권에 대한 집착이나 이사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교회정치의 부정적 현장은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가? 고신교회의 면모가 지난 70년 동안 마모되고 상실되고 있다.
개교 70주년을 맞이하면서 고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은 마치 별개의 학교인 양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대원이 1998년 2학기에 천안으로 이전한 뒤, 두 기관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신학교로 시작한 대학교 안에 신대원 소속 신학교수들이 그 방향성이나 수월성 논의에 기여한 바가 많지 않고, 대학교와 병원이 개혁신학에 입각하여 바른 길을 가지 않을 때 교정하는 역할도 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현재 신대원은 목사 후보생을 양성하기 때문에 교단이나 목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대학교가 주는 학문적 유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목사는 다방면의 학문적 자극과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 학문 분야들이 개혁전통에서 더 발전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다른 분야와의 관계는 그렇다 하더라도 신대원과 대학교의 신학과와는 지금과는 다른 진정한 협력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대학의 위기는 동시에 신대원의 위기이다. 앞으로 대학에 등록하는 학생만 감소할 뿐만 아니라 신대원에 와서 공부하는 목사 후보생도 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신대학교 신학과와의 신학 연계 교육도 중요한 사안이다. 무엇보다도 신학과 교수들과 신대원 교수들이 함께 고신교회를 위하여 부름 받은 사명을 협력하여 수행해야 한다. 특히 신학서론을 위시하여 신학과 목회에 연관된 많은 주제들을 공동으로 연구하여 신학의 통일성을 교회를 위하여 제시할 때에, 설립취지서가 밝힌 취지를 살려 이 땅에 개혁신학에 입각한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5. 고신신학의 전망
지난 70년 동안 고신교회와 신학은 분명 고유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현재는 그 고유성이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고신신학은 고신교회를 개혁신학으로 바로 세우는 사명을 지닌다. 이때의 신학은 종교개혁의 전통 특히 칼빈주의 신학을 말한다. 이 신학은 칼빈 신학을 이은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기초한 신학이며, 이후에는 네덜란드 개혁신학까지 포함한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고신신학은 종교개혁 전통과 개혁교회 전통을 잘 배워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고신교회라는 신학의 현장도 폭 넓게 이해해야 한다.
신학은 현장에서 나와 현장을 향한다. 고신신학은 고신교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필요하고 유익한 신학을 정립하고 가르쳐야 하며, 현장에 들어가 신학을 전하고 현장의 질문과 문제를 안고 돌아와 새롭게 연구하고 신학을 정립하는 자립적이고 토착적인 신학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나아가 취지서도 밝히고 있는 대로 고신신학의 사명은 한국교회 전체를 향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와 신학의 공교회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간 이런 고유성을 발휘하거나 발휘하지 못한 지난70년을 거울로 삼아 개혁주의 한국교회 건설과 세계교회 건설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고신신학은 이처럼 현장에서 나와 현장을 향하면서 반성적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하여 기독교고전을 연구해야 한다. 칼빈주의와 개혁신학을 부르짖지만, 총노회발회식 선언문에서 언급한“우리의 선배 칼빈”도 제대로 연구하지 못하였다. 고신신학이 자립하려면 종교개혁자는 물론 고대교회의 교부까지 연구하는 공교회성을 확보해야 한다. 부흥한 교회가 기독교고전을 생산하였다.그런데 이런 교회도 쇠퇴하고 교회당은 비어갔던 역사적 교훈을 직시하면서 현재의 한국교회가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신학적인 경고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역성장하는 시점에서 이전의 성장과 부흥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담은 신학적 분석과 대안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고신신학은 이 점에서도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개혁신학의 면모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고신신학은 이 땅에서 교회가 서구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고 건강하게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개혁신학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런 신학만이 아르미니안주의적인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흐름을 비판하고 개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고전연구는 웨스트민스터 신조들에 대한 깊은 신뢰와 연구 및 교육도 포함한다.
이제는 이런 신학을 확립하여 우리에게 신학적, 재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서구교회에게 진 빚을 갚을 때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고신교회에 개혁신학을 전해준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및 정통장로교회와의 관계는 일찍 요원해지고 말았다. 송도의 신학교 첫 교사 건축에 재정적 도움을 준 미국 기독개혁교회, 두 번째 교사 건축에 재정적 도움을 주었고 신학교수 요원들을 훈련시켜준 네덜란드 개혁교회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가고 있다.
이제는 이 교회들과 신학교에게 빚을 갚을 보은의 때이다. 이미 세속화된 서구 세계에서 외로운 믿음의 투쟁을 하고 있는 이들이 이렇게 성숙한 고신신학과 고신교회의 보은과 도움을 받으면 크게 힘을 얻을 것이다. 자유자만이 종이 될 수 있듯(고전 9:19), 신학적 자립을 한 교회만이 이웃 교회들을 섬길 수 있다. 이것은 개혁주의 세계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의 중요한 방편이기도 하다.
건강한 개혁신학은 진정한 회개 위에 가능하다. 총노회 발회식 선언문에서 고신교회가 개혁하려고 했던 점들이 이제는 고신교회 안에서도 다반사가 되어버렸고, 우리가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사이비한 복음주의, 허울 좋은 보수주의,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것까지 사랑하여 달라는 화평론과 타협정신이 교권을 타고서 (고신)교회 속에 들어왔고, 교회를 현세생활처세의 도구로 삼고 말았다.”
이처럼 괄호 속에 ‘고신’을 넣을 정도가 되었다면, 과연 고신교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고신교회를 축출하였던 당시의 한국교회와 다를 바가 없다면 고신교회가 굳이 따로 존재할 필요가 있겠는가? 고신교회의 존속이 진정한 의미를 지니려면, 목회에서부터 개혁하고 인간의 욕심과 죄로 물든 현실을 수용하는 타협을 거부해야 하며, 교권을 애초부터 형성하지 말아야 하고, 목사든 교인이든 교회를 처세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
고신교회는 한국교회를 개혁하도록 주께서 이땅에 베푸신 선물이다. 이 원래 사명과 목적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때로는 바리새주의나 분리주의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고신교회는 교회와 세상을 개혁해야 할 것이다. 비록 이런 비난이 사실무근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키우고 인재를 중시하여 편협함을 극복해야 한다. 이것이 고신교회의 전망이다.
우리에게 텍스트는 성경뿐이다. 우리의 콘텍스트는 지금 이 한국땅이다. 지난 세월 2천년의 교회사는 우리에게 참고일 따름이다. 오직 성경에서 고신교회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이것이 고신신학과 교회의 첫 고백이다. 주께서 우리를 파송하여 세우신 이 땅에서 지금 우리는 교회사를 참고하면서 새로운 기독교고전을 창출하자. “한국인들은 철학할 때는 불교인이 되고, 예를 갖출 때는 유교인이 되며, 생의 위기가 올 때는 샤머니스트가 된다.” 이렇게 오염되고 타락한 한국인의 심성을 고치는 고신교회의 개혁신앙과 개혁신학이야말로 이 땅의 참 소망이요 진정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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