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30세 무렵의 화경은 인도 대륙을 방랑하였다. 대륙이 좋은 점은 가볼 곳이 많다는 점이다. 다양한 장소를 다녀 보아야 시야가 넓어지고, 우주를 보는 눈이 넓어진다. 돈 없이 방랑을 다녀 보아야만 밑바닥 인심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확인한다. 밑바닥 여행이 주유천하의 진수이다.
화경의 밑천은 요가와 침통(針筒)이었다. 요가 자세를 보여주면 인도의 중산층들은 자기들에게 요가 동작을 배우고 싶어 하였다. 인도에서 요가는 고급스런 수행법이었다. 흔한 싸구려가 아니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요가가 대중화되었지만 그전까지는 신분과 돈이 있는 브라만 계층에서나 배울수 있는게 요가였다. 아시아에서 온 수염기른 요가 고단자는 인도 브라만들이 보기에도 신기한 존재였다.
먹을 것과 여비를 조달할수 있게 도와준 또 하나의 내공은 바로 침이었다. 침을 놔 주면 고마워 하였다. 몸이 아픈데가 호전되면 고마움을 표시하기 마련이다. 인도를 돌아다니는 유럽인들에게도 침은 효과가 컸다.
유럽 백인들은 평소 먹고 산다고 신경을 많이 써서 목 뒤와 어깨 근육쪽의 경락이 많이 뭉쳐 있었다. 고황혈(膏肓穴), 혼문혈(魂門穴), 극천혈(極天穴) 같은 데를 5-10cm 길이의 중침으로 찔러주면 효과가 즉발하였다. 10불도 받고 50불도 받았다. 주는데로 받았다.
침과 요가라는 2가지 내공을 장착한 화경은 유럽 백인들이 보기에 아시아에서 온 신비로운 도사로 보였다. 이렇게 현지 조달 경비로 화경은 인도대륙을 느긋한 마음으로 돌아다녔다.
어느날 쿠시나가르역에 갔다. 바라나시까지 기차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인도는 일찍부터 철도 여행이 발달하였다. 영국이 식민 지배를 위해서 일찍부터 전역에 철도를 깔아 놓은 탓이다. 쿠시나가르는 붓다가 마지막으로 열반한 지역이다. 그래서 불교 순례객들이 붐비는 곳이다. 쿠시나가르 역은 인파로 붐볐다.
허름한 티셔츠 쪼가리만 걸쳤어도 30세의 화경 몸매는 단단하였다. 요가의 고난도 동작으로 단련된 데다가 태권도의 고수였던 화경의 신체는 보통 사람과 척 보기에도 달랐다. 아주 단단하면서도 보기 좋게 근육으로 뒤덮인 바디였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금강신(金剛身)이었다. 다이아몬드 바디. 요가를 해서 전후좌우의 몸 경락이 열리면 몸이 바뀐다. 환골탈태(換骨奪胎) 하는 것이다.
환골탈태는 무협지에만 나오는게 아니다. 실제로 있다. 몸의 경락이 열리면 자동적으로 도달되는 경지이다. 그 당시의 화경 몸은 환골탈태의 단계에 진입해 있었다. 그것도 아시아인이 수염을 길게 기른 상태에서 이런 몸매를 하고 있었으니 길을 걸어 가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화경의 몸매를 관심 갖고 바라보기도 하였다.
기차 역에서 기차를 타기 위하여 인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였다. 등짐도 메고 바구리에는 닭도 있고 거위, 개도 데리고서 기차칸에 올라타는 상황이었다. 기차 역 안에 있는 간이 매점의 남자 직원이 화경을 보고 손짓을 하였다.
“헤이 이리 와봐. 너 힘좀 쓰게 생겼다. 나하고 팔씨름 좀 한번 해보자. 네가 나를 이기면 여기 과일쥬스 2병을 줄게”
마침 목이 말랐던 화경은 병에다 담은 과일 쥬스 2병을 준다는 말에 솔깃하였다.
그 매점 남자 직원과 팔씨름을 하게 되었다. 그 직원도 체격이 좋았다. 팔뚝이 성인남자 종아리만큼 두꺼웠다. 화경은 팔씨름을 할 때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湧泉穴), 그리고 발 뒤꿈치에 있는 수천혈(水泉穴)의 기운을 살짝 위로 끌어 올렸다. 발 바닥에 있는 기운을 끌어 올려 단전 부위의 석문혈(石門穴)로 모아 놓고, 이걸 다시 팔목에다가 기운을 집중하면 쇠말뚝 같이 강해진다. 에너지 테스트도 할겸 살짝 기운을 끌어 올려 팔씨름을 하니까 힘깨나 쓰게 생긴 매점 직원은 화경을 이길수가 없었다. 직원이 두판을 내리 해도 졌다.
“내가 졌다. 여기 주스 2병 네가 먹어라”.
화경은 그 자리에서 쥬스 2병을 마시고는 기차를 올라탔다.
인도 기차는 한 칸에 90명이 정원이지만 많이 타면 200명도 탄다. 그날도 160명은 탄 것 같았다. 가축까지 뒤섞인 상태였으니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게 인도의 기차이다. 인도 기차를 타 보아야 인생을 안다.
주스를 먹고 나서 20분 쯤 되니까 배가 뒤틀리기 시작하였다. 뒤틀리는 통증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해졌다. 어지간하면 참겠는데 이건 참기 힘든 수준의 통증이 몰려왔다. 아랫배를 찢는 통증이었다. 진땀이 비질비질 나오고 하늘이 노래졌다. 육체를 단련하면서 육체적 고행에 익숙하였던 화경은 고통을 참는데에는 선수급이다. 그렇지만 이 고통은 참기 어려웠다. 그 쥬스는 상한 주스였던 것이다. 식중독이 왔던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화경은 열차 칸과 칸을 이어주는 연결 부위로 이동했다. 그 부위에 약간의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완행 열차 이므로 대개 15-20분마다 기차가 시골 역에 정차한다. 정차 하는 시간에 열차 연결 부분의 조그만 공간에서 화경은 요가 자세를 취했다. 바로 공작자세였다. 마유라아사나(Mayurasana)이다. 엎드려서 두 손의 팔꿈치를 배꼽 부위에다가 대고 손 바닥은 바닥에 짚은 다음에 몸을 바닥에서 20센티 정도 띄우는 자세이다. 두 손을 공작의 다리처럼 사용하는 자세이다.
이렇게 하면 배꼽 부위의 챠크라를 자극하게 된다. 자극을 한다는 것은 이 쪽의 에너지 통로를 열어 제친다는 뜻이다. 소화력을 강하게 자극한다. 또한 이 배꼽 부위에 인체의 3번째 차크라인 마니푸라 차크라가 자리잡고 있다. 마니푸라는 불(火)을 상징한다. 지수화풍공견식(地水火風空見識)의 7개 차크라 가운데 3번째 차크라이다. 공작자세를 하면 우리의 몸에 불을 지르는 셈이다.
불을 지르면 어떻게 되는가? 요가 경전에 의하면 ‘백물(百物)의 독(毒)을 제거한다’로 되어 있다. 불이 독을 태워 버리는 셈이다. 요가의 수백가지 아사나 중에서 이 공작자세는 중상급의 난이도에 해당한다. 초보자는 하기 어려운 자세이다. 팔 힘이 약한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이 자세를 어려워 한다.
화경은 완행 기차가 시골역에서 잠시 쉴때마다 기차칸의 연결 부위에서 이 자세를 취했다. 아무리 요가 고단자라 하더라도 배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속에서 이 공작자세를 취하기는 쉽지 않았다.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데 두 팔꿈치를 배꼽 부위에다 대고 엎드려 몸을 띄운다는게 쉽겠는가. 이를 악물고 한 번에 6-7분씩 이 자세를 취했다. 두 번쯤 하고 나니까 통증이 조금 줄어 든다는게 느껴졌다. 이에 확신을 가졌다. 여러번 하면 낫겠구나! 기차가 역에 멈춰 쉴때마다 했다.
다섯 번쯤 마유라 아사나를 하고 나니까 대변이 마려웠다.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니까 시커멓게 나왔다. 시커먼 똥이 염소똥처럼 동그런 형태로 배출되는게 아닌가. 시커멓다는 것은 차크라의 불로 태웠다는 의미이다. 불로 태우니까 더위에 상한 주스의 독이 태워져 버린 셈이다.
결국 기차 안에서 갑자기 발생한 식중독의 고난을 공작자세로 치유한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나뒹굴다가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병원 시설이 열악한 인도에서 외국인이 식중독 걸렸다고 치료 받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열차 안에서 말이다.
인도대륙을 주유천하 하면서 맞딱트린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상한 과일주스 먹고 기차칸 안에서 마유라 아사나 한 일이다. 방랑에 어찌 고생이 따르지 않겠는가!
조용헌 강호동양학자·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