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lhaus Walzerlinksgestrickt 주소가
Am Tempelhofer Berg 7d |
입니다.
왈츠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곳 같은데..
이름에서는
왈츠 스텦이 바늘 꿰는 것처럼 촘촘히 왔다갔다 하는 모양이죠?
안배워봐서.... ;;;;
하도 베를린에 밀롱가가 많아
중간지역에 처음에 멋모르고 잡은 숙소가 의외로 주변에 괜찮은 밀롱가가 많이 모여있는 알맞은 지역이네요
숙소에서
지하철 Mehringdamm 역근처인 한정거장 반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벌써 안의 장식과 사람들의 옷차람이 예사롭지 않은게.. 괜찮아보입니다.
독일의 탱고 밀롱가는 거의다가 카페 빠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국보다 더 전문적인 종업원들이 각종 칵테일과 와인, 커피 등을 서비스 하고 있는데..
독일의 밀롱가 입장료가 6000원에서 8000 원 정도로 싸지만,
많은 수익이 사실 음료수 구입에서 얻어지고 있는 듯 합니다.
독일에서는 빠가 운영되고 있는 곳에는 개인 음료수를 들고 가면 안됩니다.
개인 음료수 들고 오라는 곳은 광고에서 따로 얘기를 해줍니다.
이곳도 종업원 3명이 깔끔하게 차려입고 빠 인테리어도 상당히 고급스럽게 잘 해두었네요.
옷을 갈아입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담배를 피우며 쁘락하듯이 춤을 출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 따로 있습니다.
2커플이 추고 있던데...
남자분들이 50대가 넘었는데...
어머나..독일에서 엔로스케를 넣으며 중심을 잃지 않고 히로할 수 있는 분을 여기서 처음 뵙니다.
입장해 있는 분들을 살펴보니
젊은 여자분들도 굉장히 많이 와서 20,30대가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사람들이 모두 드레스업을 해와서 전체적으로 우아한 분위기가 나네요.
토요일은 여기가 진리였군요 ㅋㅋ
춤도 그렇게 막 누에보인지 살사인지 분간안되게 막 흔드는 게 아니라
밀롱게로 전통을 바탕으로 해서 누에보 스런 동작을 간간히 넣는 식이 많습니다.
독일에 와서 사람들과 거의 밀롱게로 식의 홀딩을 했습니다.
놀랜 건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도
LOD 1열의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한국의 3배 정도 ... 여차하면 1열에서 튕겨져 나간다는 ;;;;
하지만 한국처럼 1열에서만 잘추는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2열과 중앙에서도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고수들이 꽤나 많이 추네요.
밀롱가가 흥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예쁜 땅게라들이 가는 밀롱가는 고수 땅게로들이 많은 곳입니다.
문제는 한명의 고수 땅게로가 만들어지기 위해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도
숱한 시련과 고난, 인내, 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80년대 탱고 소개서에도 나와있는 이 곳 장소는
토요일을 제외한 다른 날은 각종 무도회가 열립니다.
결혼식 피로연이나 왈츠 강습도 있네요.
이런 곳에서 피로연 하면 상당히 고풍스럽게 우아할 듯 합니다.
탱고의 역사에서도 특이한 것은
범죄가 많기로 유명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Arrabal 지역에서만 추던 술집 하층 문화였던 탱고가
중세나 근대 까지 유럽의 가장 문화 경제 정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먼저 상류사회의 최신 유행이 되고 나서,
그게 다시 아르헨티나 상류층이 파리에서 자기나라 문화라는 탱고를 접하며 알게 되고,
그들이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아르헨티나로 전체로 다른 중산층 계층에까지 퍼져나간 것입니다.
왜 당시 1910년 정도 아르헨티나에서도 탱고가 정착되기 전에
파리의 거의 모든 무도회장에서 탱고가 가장 중심에 놓인 문화가 되어
탱고카페, 탱고차, 탱고옷, 탱고 향수 등 각종 제품이 개발되고 유행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Gobbi 가 이미 1907년도에 탱고 음반 녹음을 위해 갔지만,
그 이전에도 유럽에서 탱고 열풍은 대단했다 합니다.
독일에서도 당시 황제였던 빌헬름 2세가 직접 공식석상에서 1913년에 탱고를 추었고
(아마도 당시 교황이 탱고 하지 말라는 걸 괜히 세력 과시할려고 한 거 같음ㅋ
하지말라할 때 더 하고 싶은 맘은 누구나 ㅎㅎ )
20년대와 30년대는 독일 베를린이 탱고 중심지가 되어
큰 무도회 같은 경우 2000 명의 사람들이 모여 400개의 테이블과 4개의 장소에서
동시에 탱고를 추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독일이 당시 학문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유럽 아니 세계에서 1위였던 시절이니 가능했겠지요.
아르헨티나도 1900년도 초에는 세계의 곡물 창고로 불릴 정도로 많은 식량과 특산품이 소고기를 유럽에 수출하여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의 경제 호황을 누렸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몇몇 파리 귀족들이나 상인들이
Arrabal 지역에서 퍼져나가는 탱고를 보고 배워 갔겠지만,
파리의 탱고 전파는 한 사람의 전설적인 인물을 기억해야 합니다.
Ricardo Gueraldes 라는 파리와 무역거래를 하던 집안에서 태어난
아르헨티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파리를 자주 드나들며
18세에 프랑스어로 편지를 고모한테 쓸 정도로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
밀롱가를 위한 기타를 연습하며 아라발 지역의 탱고 카페를 드나들며
탱고를 익혔습니다.
현재 우리말로 '한량' 정도로 생각되는 Nino Bien 의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작가로도 일하던 Gueraldes 는 파리에서
프랑스 손님들과 아르헨티나 지인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때,
탱고를 가르치며, 악단을 만들어
유럽 처음으로 탱고 파티를 열었고
탱고의 음악과 춤에 사람들이 열띤 호응을 보여
정기적인 탱고파티가 이루어졌는데
이게 1895년!!! 에 파리 였다는 점입니다.
그 후에 탱고 문화가 파리로 퍼져나가
탱고이름을 딴 음료수, 탱고 속옷?, 탱고 쵸코렛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품에 탱고 가 붙을 정도로 유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보기로 한 한국분과 그전 밀롱가에서 보았던 미국계 중국여자애와
처음 탱고를 추고 나서 주변 분들과 까베세오나 인사를 날려 탱고를 추기 시작합니다.
여기 그리 자주 오지 않아 조금 낯선분들이나 할머니 처럼 보이는 나이 많으신 분들은
춤을 못추고 자주 앉아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저도 여분의 옷이 3벌이라..6딴따로 한정되어 있어 최대한 주변을 둘러보다가
하도 옆의 아주머니가 계속 앉아 계시길레.. 추었더니..
제 생애 최대로 큰 여성분과 춤을 추어 봅니다;;;;
키도 원래 한 178 이라시는데, 신발도 굽이 6센티 이상은 되는 굽을 신으셔서...;;;
거의 아슬아슬 하게 추었다는 ;;;;
탱고 추기 좋은 체형이 다리 짧고, 팔 길고, 상체 두껍고 인데..
내가 딱 그래서... ㅎㅎ 앉은키는 상당히 큰데.. 하체가 짧아 ;;;
서로 옆에 앉아 있다 일어서니.. 그분은 특히나 하체가 길으시네요.
암튼 이분이랑 추고나서 저보다 키큰 여자랑 추는 것에 대한 모든 공포나 부담감이 다 날라갑니다. ㅋㅋ 흠흠..
다른 춤잘 추던 동양인 애가 보여 춤을 신청해 얘기해보니..
한국에도 와본적이 있는 홍콩분입니다.
한국 또 갈거니..서로 이름 기억해두고..
근데..이분도 보기완 다르게 나보다 크던데.. 워낙 베를린 사람들이 키가 커서
키가 큰 줄 모르다가 춤 청해보니.. 큰 줄 알겠더라구요 ;;;;;
암튼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간 시간에
이 홍콩분이랑 발스를 꽤나 좋게 추었는지...
그 이후에는 할머니 아줌마들이 먼저 다가와 춤신청을 해서
즐겁게 추다 갑니다. 정말 즐거웠어요..믿어주셔요;;; 흑..
거기서 최고로 탱고 자세가 좋았던 아줌마 2분이 저에게 먼저 다가와 신청해 주었어요 ;;;
기뻤어요 ;;;
사장인지 멋지게 차려입은 분이 끊임없이 음악과 음향을
디제이랑 상의 하며 체크하고
멋지게 차려입은 중수들이 많고
한국에서 공연하는 그 이상으로 멋있게 춤을 출줄 아는 고수가 적어도 3명이상 보이는 곳
그 고수들이 쉬지 않고 예쁘게 차려입고 춤 잘추는 땅게라와 같이 있습니다.
궁정 무도회장처럼 우아한 분위기에 빠져들 수 있는 좋은 밀롱가 입니다.
재미있는 것이 다른 밀롱가에서도 만나는 참 밀롱게로 스타일을 잘 추던 고수 젊은이는
이날 만큼은 곱게 차려입은 파트너랑만 춤을 춥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추는 품격(?)이 있어야 하는 밀롱가 랄까요 ㅎㅎ
다른 곳과는 다른 변화를 이끌어 내고,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집단의 노력이 아니라, 특정 인물의 큰 노력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합니다.
30년대 후반에 이미 4개의 반도네온과 4개의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하나, 피아노 하나살롱 탱고가 정착되어 갔을 때,
뿌글리에세 역시 정치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혁명적이었다고 하죠.
정치적으로 감옥에 많이 들어 갔었고,
음악적으로 강한 대위법과 박자들이 헝클어진 변주들로 이루어진 강한 리듬들을 구현해낸
뿌글리에세 음악을 들으며 밀롱가 장소를 나옵니다.
24시간 지하철 다니는게 정말 좋네요.
20대 시절
제 우상이었던 로자 룩셈부르크와 게오르크 루카치 가 떠오릅니다.
사회적 실천만을 강조했던 당시 트로츠키와 레닌 과는 달리
사회적 의식이 개인안에 의식화되어 정립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총체화 되어 일상에서 사물을 포착하는 의식이 개인들에게 들어 있지 않다면
그런 집단은 파멸할 것이라는 것...
러시아와 소련의 파멸.. 사회적으로 보다 나은 세상을 예견한 것이죠.
천재로 주목받았지만, 정치적으로 모함으로 생을 마감한 두 위인들도
이곳 베를린에서 살며 이 역을 지나쳤을 까....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지하철에서 본 옷광고 모델입니다.
저런 스탈이 독일에서 멋있는 모양인가 봐요.
오늘은 맥주나 먹는 거 대신에 저걸로
안구 정화하셔요~ ^^
첫댓글 애독자입니다^^ 처음으로 댓글을 달아보아요 정말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게시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