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통일교인인가?
교회를 떠난지 벌써 한 20년이 넘어가는 군요. 통일교에서 교회를 맡아 목회랄것도 없지만 그래도 서당깨 3년이면 풍월을 ..어떻고 하지요. 20년의 공직생활 했답니다. 91년 환고향 후 농사일을 하면서 내 주변의 여러가지 일들, 부딛치는 어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러나 이제는 빛도 정리되었고 통장에 많은 돈은 얼마 안되지만 차곡차곡 쌓여지고 있군요. 이제는 꿈을 꾸어도 교회와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조금전만해도 꿈의 세계는 교회현직목사로서의 내 모습으로 있는 꿈이었습니다. 술이 만땅되어 있는 밤에도, 일에 지처 사위도 귀찬아 흑 투성이가 된채로 잠자리에서도 나의 꿈은 맨날 인사이동다니는 꿈들 무슨 행사한다고 준비하는 꿈들이었지요. 나는 분명 낮에는 농부요. 밤에는 통일교인이라... 얼마전부터인가! 컴퓨터 교육을 시청으로부터 배우면서부터 통일교를 비판적인 글도 쓰고 댓글도 달 줄 알고 이것 저것 검색도 할 수 있게 되다보니 이와같은 글도 쓰게 되었답니다. 물론 받침이며 띠어쓰기는 엉터리지만요.
솔찌기 나는 통일교를 싫어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나)의 도그마는 무엇이요. 이에대한 질문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어떤이론이 원리강론책보다 더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도 아주 편협적이고 당파적이며 나의 삶속에 농축된 아주 미미한 이론에 불과하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을 우주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자연적인 존재물로 본다면 이도 인간을 하나의 물거품같은 무가치한 존재로 너무나 허무하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통일교를 떠난 사람들은 나도 교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나 같이 고민에 빠진 사람도 많을 것이라 보구요. 이렇게 종교란 그 쇠뇌의 흡입력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편과같은 중독성이 있지요.
통일교의 원리강론이 잘못되었는가?
원리의 핵심은 사악한(사탄)존재로부터 빼앗긴 6000년의 역사를 하나님이 육체를 쓰고 이땽에 강림하여 ((메시아>예수>문선명>)), 사악한 존재를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세운다는 것이고 그 당위성이나 그 합리성을 세우기 위해 내 놓은 신학(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이 원리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원리의 배경에는 기독교와 유교, 한국의 동학과 증산도, 그리고 무속이 거기에함축되어 있다고 봄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에는 배치되며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측면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종교를 중심한 후진국들을 보면 행복지수는 높은것으로 나와 있지요. 따라서 통일교의 독실한 신자를 보면 잘 살고 있고 행복감속에 살고 있으며 자녀들도 잘 나가는 이들 많지요,
통일교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원리의 강론에 있어서 좋은것(긍정) 버릴것(부정)를 구분하면서 이 글을 써 내려가야 하겠는데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저기 댓글이나 글쓰기에 부분적으로 기술해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리가 받아들일 것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현실생활속에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원리를 자기식으로 해석하여 생활속에 적용하자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만 간단 하게 들어 보지요. 믿음의 기대는 종적인기대다. 하나님께서 인정 해 주는 기대요 약속으로 해석하고 하나님은 신념으로 생각하고 믿음의 기대를 내 관, 즉 내가 꼭 스스로 지켜야할 신조같은 것입니다. 자아주관이지요. 계획과 그것을 지킨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믿음의 기대로 해석하자는 것이구요...실체기대란 형제간의 기대를 말하니 이웃 주변의 인간관계를 말하고... 여기에는 비지니스, 소통등 인간관계의 모든 분야를 통털어 말하는 것이니 여기에 대한 스스로의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식으로 원리를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배울것이 많이 있습니다. 원리는 문선명의 이론이라기보다 유효원선생의 이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통일교를 통하여 왜 모든것을 잃어버려만 하는가? 모름지기 배울것은 배우고 아닌것은 아니지.... 좀 약게(지혜롭게) 살자는 것입니다. 나는 통일교에서 손해를 보지 않앗습니다. 목회현장에 있어서도 나는 아닌것은 식구들에게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내가(목사)가서 일이라도 돕고 십고 돈이라도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데 그들에게 무리한 헌금을 요구하기란... 나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애들도 큰애는 일본여성이고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아들도 늦게나마 대학원에 앞일을 준비하고 있구요. 딸도 푸랑스인과 축복받고 지금 잘 살고 잇습니다. 이제 집도 구입하여 얼마전에 이사를 했다는 군요. 막내 아들은 공부하기 싫다고하여 노가다하면서 스스로 살 준비를 하는것 같고...자식중 하나는 농사를짖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됨니다.
통일교를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분들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 분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너무나 믿으면서 몸과 돈(거액), 모든것을 사기당한 그 기분이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남이 그것때문에 합류하여 헌금반환소송같은것을 같이 해 준다는 기대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절실한 분들의 단합으로 어떻게 하셔야 될 줄 알구요.
오늘 제가 하고 싶은 결론의 말은 나의 인생관을 세우는데 있어서 참고자료로서 원리의 내용중에 많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요즘 도올 김용옥선생의 글들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겨울철에 한가해서요.
시골 회관(경로당)에 가보면 7080세대들 멍청하게 앉아 죽음의 시간들을 기다리면서 그냥 앉아 있는 모양으로 보여 지더군요. 나도 그분들보다는 좀 어리지만.....그래서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시청에 파워 포인트니, 영어니 공부하러 다니느라고 바쁩니다. 이것 끝나면 탁구니 에어로빅이니 배우러 다닐까 하네요. 등산도 즐기고요. 안그러면 늙어가는 짐승과 무엇이 다르리오....
첫댓글 님의 글을 읽고 안타까운 마음밖에 없습니다. 부탁의 말은 님이 알고 있는 원리를 잘 응용하여 나머지 생활에 적용하여 보세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원리는 어디까지나 원리입니다. 다만 원리를 바르게 적용하지 못하여서 그렇습니다. 아직은 과정이니까요? 참으로 애 많이 썼습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고 많이 하였습니다. 원리와 사람은 별개입니다. 원리는 불변이나 사람은 때를 따라 변하게 됩니다. 사람은 버릴망정 원리는 버리지 말라는 부탁입니다. 님의 글을 읽고 많은 공감대를 가져서 하는 말입니다. .
위에 쓴 글의 핵심이 원리에서 삶에 적용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구요. 버릴것은 받아드리지 말자는 취지인데 말의 전개에 잘못이 있었군요. 그리고 처음에 글을 읽고 안탑깝다는 말과 끝에 제 글을 읽고 많은 공감대를 이룬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요. 그리고 원리와 사람은 별개라고 하셨는데 무슨말인가요. 어떻게 별개가 됩니까? 원리는 통일교인들에게는 기독교인들의 바이불과 같다고 보는데요. 별개란 말은 통일교의 원리강론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고 통일교 교주나 간부들 그리고 식구들이 따로 따로 산다는 이야기인가요. 원리는 명분일뿐 사는것은 세상사람들과 같다는 식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신현교님은 재림 문선명 기다리신다고 하셨으니 더 기다려 보시지요 ㅋ
하나님이란 말도
하느님이란 말도
god란 말도
종교라는 말도 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지요
원리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리는 불변이란 말은 님께서 그만큼 세뇌 당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질은 누구에게나
어떤 환경에 있거나 같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뭔가 큰 잘못 속에 빠지신 것 같습니다.
오늘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맹지덕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왕권시대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좋은 말이지요. 그러나 나라의 개념은 임금(대통령)을 말하는 것이니 민주주의의 이념에 배치되므로 이것은 버려야 허구요. 부모에게 효하라는 말도 옛날에는 부모가 어떤양반이 되었든 무조건적인 순종을 효라고 생각했지요. 오늘의 세상에서 불가하니 잘못이요. 형제간에 우애도 우애 위에 돈이있으니 명분은 되어도 실제는 불가하다는 거이지요. 나는 세상에 나와 오늘까지 살다보니 원리자체도 인생과 우주를 보는 관점에서부터 잘못 본것 이라는 것이고 그 이론 자체를 놓고 문교주의 생활과 그 모습을보아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알수 있게 되지요. 결론적인 말은 오늘 사람들은 공맹지덕을 숭배하지는 않지만 그 고전에서의 가르침속에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있다는 이애기고요. 문선명과 통일교가 싫타고 하더라도 거기에 우리의 삶속에 시사하는바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위의 글도 그런 취지에서 쓴 글인데 좀 잘못 이해하신것 같군요.(신현교씨)
원리와 사람을 별개로 본다면 통일교의 원리중 창조목적, 즉 뜻성사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목적은 육적구원과 지상천국이 아니었나요. 그런데 재림예수님은 그 목적을 달성했습니까? 부활론에 재림부활로 본 자동으로 종교통일은 이루어 졌나요. 영인의 재림부활은 지상인을 통해서 지상인의 영인체성장을 통해서 함께 고급영계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데 조상구원이란게 무엇을 말하는것인가요.할 말 많은 사람이외다. 너무나 엉터리입니다. 원리와 사람을 따로 보셨는데 축복이라는게 무슨의미로 받아드려야 하나요. 아직과정으로 본다면 오늘의 세상은 영원할것이구요. 통일교한테 속는 수많은 희생만 따르게 될 것입니다.
jinsan462 님!! 문제를 늘어놓지 말고 하나하나 따져봅시다. 사람과 원리는 별개란 말은 원리는 완전무결하다 하드래도 그 원리를 이루는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원리는 절대자인 하나님이 세웠으나 그 원리를 이루는 사람은 절대완전한 사람이 않임으로 원리의 본성 그대로 이루지를 못한다는 뜻입니다. 소생아담이 그랬고 장성아담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나 그 말씀을 이루는 사람은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상에서 섭리가 연장 되는 것이 바로 뜻을 성사하여야 할 사람이 문제이지 뜻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리가 아무리 완전무결하드래도 그것을 이루어야 할 사람이 뜻대로 실천하지못하면 뜻을 이룰 수 없
다는 것입니다. 즉 원리는 원칙대로 실행하여야 이루어 지게 되어있습니다. 다시말하여 각본대로 연출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리는 하나님의 창조원칙이고 원칙대로 원리적으로 실행하게 되면 이루진다는 것입니다. 안그래요? 통일교가 바로 여기에 걸려있습니다. 원리는 맞는데 그 원리를 이루어야 할 사람이 문제란 말입니다. 다음에 또 다른 문제를 나누어 봅시다. 뜻은 하나님께 있으나 뜻성사는 인간에게 있습니다. 인간과 뜻은 별개인 것 같이 원리와 사람은 별개입니다.
각본대로? 님은 아직도 참 무지 하다는 증거 입니다. 사람은 다 가는길이 다 다릅니다. 정상은 한곳이더래도 가는길은 같을수 없는것입니다.
로버트 인가요? 인간이? 모두 동일 하게...
천주교,불교. 힌두 무엇으르 믿듯 인간이 어떤 경로를 통해 삶을 깨달아 가면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원리)/(원리는 완전, 사람은 불안전)...그 예기이지요. 그렇다면 (원리=문선명)/ (문선명 완전, 신도들은 불안전)... 고로 결국 신도들이 책임분담x문선명도 불안전할수 있다는 등식이 되겠네요. 원리는 완벽하고 문선명도 완벽한데 축복가정이나 식구들은 불안전하니 결국 하나님도 문선명도 뜻성사가 불가능 하다는 공식이 나오게 되네요. 원리란 그 자체가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재림메시아를 증거하기위한 교과서라는 것인데 나는 원리의 방향성이 잘못설정되어 있다고 보는 사람입니다..이에대한 내용은 신은 인간들에의해 제 멋대로 재단되어진 애매한 분으로 오늘까지 인간들에의해 희생된 불쌍한 분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통일교 원리가 말하는 이상세계는 말은 무지개 같으나 실제현실세계에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공상소설같은 이야기이고 불행하게도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인류역사이래 가장 혹독한 무서운 독재체제가 이루어져서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치는 세계가 될것임니다.
jinsan462님 !!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합니다. 메시아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린다면 하나님은 전체의식을 가진 왐전무결한 분이시나 그의 피조물은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태고에 불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은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불완전하게 되었습니다. 내 말은 원리원칙은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원리원 칙입니다. 이만하면 알아듣습니까? 완전하다는 말은 개체존재가 갖출것은 다 갖추었단 말입니다. 나무 한 구루가 있기까지는 씨앗이 완전하였기 때문에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싸앗은 완전하나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어야 완전이 성립됩니다. 아무리 완전한 것리라도 완성
되지 못하면 불완전하게 됩니다. 인간을 비롯한 만물이 태초에는 완전하게 만들어 졌습니다. 완전무결한 하나님이 불완전한 것을 만들수는 없습니다. 즉 모순된 것은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순된 것은 창조가 생성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중점적인 문제는 오늘날 종교인들이 생각하기로 메시아는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주천하만물은 완전하나 인간만은 누구를 막론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에 또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완전과 완성에 대한 개념을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1) 내가 배운것은 예수는 신성(성육신)하신분으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자신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통일교에서는 그러한 예수님의 재림으로 문선명이라고 하지 않나요. 그러므로 문선명은 완전무결한분으로 믿고 그로인한 축복의식은 기독교의 세례의식과 가톨릭의 성만찬으로 받아드려지는데요. 예수나 문선명을 완성한 제 3아담으로 믿지 않는다면 통일교의 원리를 부정하는 이단자로 규정해도 되겠습니까? 2) 만물은 창조 당시부터 불안전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씨앗에서부터 자라고 열매맺고 수를 다하여 고사하고 하는 것은 완전하다 불안전하다는 개념으로 보시면 안ㄹ될것 같구요. 3) 인간을 기독교신학의 기본인 창조와 타락과 구원의
의 잣대로 본다면 타락이전에는 완전하게 보셨는데 미성숙한 아담과 해와는 죄는 없지만 아직 불안전한 즉 타락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따먹지말라는 경고를 주신것이 아닙니까?그러므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타락이전에도 불안전한 존재였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완전하시니 불안전한 존재가 나올수없다는 말씀은 매우 이상한 말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나요. 악마가창조했나요. 이 세상은 너무나 빈곤과 전쟁과 질병에서 왜 신음하게 되었나요.이 세상은 너무나 불합리한 세상이니까요. 원리강론의 기본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신것 같군요.
나는 요즘 통일교를 떠난 상태에서 신(하나님)에 대한 깊은 명상에 잠겨 있답니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되기때문입니다. 신관에의해 삶의 패턴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신은 자연신인가? 인격신인가? 인간의 타락은 있었든가 없었던가? 선과 악은 애시당초부터 있었던가 없었던가? 인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한국사람들의 언어로부터 이루어지게된 시원은? 히브리사람들의 시원은 성서의 천지창조로부터 시작되는것 처럼 말입니다...나 요즘 생각이 참으로 복잡한 사람이외다. 신현교님! 님과의 대화는 여기까지인것 같습니다 건승을 빕니다.
jinsan462님!! 고맙습니다. 좋은 만남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건강하세요? 그리고 행복하게 기쁨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효자별네로...한번 놀로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