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기선 개인전
스스로 밝은 우아한 마음의 꽃
화면을 빈틈없이 채우는 빗줄기를 연상케 하는 무수한 수직의 선은
일상적인 시선을 차단하는 투명한 베일과 같은 역할을 한다.
글 | 신항섭(미술평론가)
[2009. 12. 2 - 12. 8 인사아트센터]
[2009. 12. 12 - 2010. 1. 17 갤러리서종]
[인사아트센터]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02-736-1020
홈페이지로 가기 http://www.insaartcenter.com
채기선은 제주도에서 경기도 양평으로 거처를 옮긴 뒤 작품세계가 일변했다. 소재 및 형식 그리고 내용까지 모두 바뀌었다. 경기도 양평이란 곳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동적인 환경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에 비하면 그야말로 고요의 땅이다. 사방이 높다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할뿐더러, 바람 없는 날은 그야말로 정적이 감도는 곳이다. 이처럼 거친 바람이 그칠 날 없는 제주도와는 완연히 다른 양평의 자연은 그에게 예상치 못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가 연꽃이라는 소재에 집중하는 것은 단순히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 또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형식적인 문제와 더불어 작품의 내용을 심화하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하다. 특정 소재를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조형적인 세련미가 생기고, 형식미가 완성되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 변주를 통해 자기복제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부단히 새로운 조형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가 연꽃이라는 소재를 반복해서 다루는 것은 형식적인 완성과 함께 의식의 심화를 기대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가 시도하는 일련의 새로운 조형적인 모색은 우선 사실적인 형태묘사에 대한 강박관념을 떨쳐버리는 데 있었다. 현실적인 색채이미지 또한 버리는 일 또한 필연적이었다. 자연미를 재현한다는 것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했기 때문이리라. 재현적인 아름다움 자체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반면에 작가의식은 미약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그는 보다 인위적인 조형미, 즉 심미적인 세계로 진입하는 길을 택한 것이 아닐까. 자연을 탐미적인 시각으로 접근함으로써 시지각 너머에 존재하는 사유의 세계와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꽃 한 송이를 화면에 가득 채우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충격 및 압박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확대된 연꽃과 마주했을 때 그로부터 자연미에서 느끼는 감동을 음미하기는 어렵다. 여기에서 심적인 부담으로 작용하는 비현실적인 크기는 자연미의 벽을 깨는 장치가 된다. 비현실적으로 확대된 연꽃의 이미지는 자연미와는 다른 심미의 문제임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해서 형태를 해체하거나 재구성하는 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형태의 확대는 형태를 더욱 구체화시키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대된 이미지에서는 사실성을 느끼기 어렵다. 형태를 변형하거나 왜곡하지 않았음에도 사실성은 되레 후퇴하는 상황이다. 왜 그럴까. 그는 사실성을 감소시키는 방법으로 마치 빗줄기와 같은 수직의 무수한 선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면을 빈틈없이 채우는 빗줄기를 연상케 하는 무수한 수직의 선은 일상적인 시선을 차단하는 투명한 베일과 같은 역할을 한다. 빗줄기 같은 이미지의 선이 사실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어쩌면 수직의 선들은 실제의 빗줄기인지 모른다.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은 채 만유인력에 의해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줄기의 은유일 수 있다.
채기선은 연꽃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상징성을 초월하여 그 자신의 행복한 감정을 형상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그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연꽃이나 모란꽃은 현실적인 이미지로부터 자유롭다. 어쩌면 다양한 조형적인 변주가 계속되고 있는 것도 마음이 피워낸 형상을 지향하는 까닭이 아닐까. 그 자신의 미의식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마음의 꽃이 다양한 형태로 형상화되고 있다. 초월적인 개념의 꽃이 의식의 침전물이라는 습지로부터 떠올라 활짝 개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