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 저 마음, 한 사람이지만 여러 마음이 시시때때로 드나들고 가라앉았다가 일어나곤 하는데 이런 모든 마음이 정상일까 아닐까.
여러 마음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는 하는 것일까.
각기 다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한 몸, 한 사람의 마음에 여러 마음이 있다는 거.
살아온 전생이 어떤 생에서는 여자였다가 어떤 생은 남자였다가 천태만상의 직업과 학력과 가정 환경과 벗들과의 관계가 다른 이유만 보자면 당연히 한 사람의 마음에 여러 마음이 있다는 것인데.
알잖은가. 어떤 때는 장부였다가 또 어떤 때는 졸장부가 되었다가 요조숙녀였다가 신경질적인 히스테리가 발동하면 주변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일목요연 하기가 쉬운 게 아닌 것이다.
그것도 도둑의 마음이라거나 장사치의 마음이라거나 하는 부정적인 마음 말고 단정하다거나 거룩하다거나 품성 나무랄 데 없는 선한 마음으로 일목요연 하기가 더욱 어려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 아닌가.
변함 없다, 흔들리지 않는다 하는 그런 마음은 대체 어느 스승이 점검해야 옳다는 말인가.
세상에 스승이 많다지만 스스로 스승노릇하는 건 더군다나 참 어려운 일이다. 이른바 누구나 독각존자들일 수는 없는 일. 독각을 오해하여 스스로 깨달았다고 공치사 하고 다니는 세속의 얼치기 스승이라는 이들을 보면 대체 저들을 스승이라 여기는 대중의 눈높이는 누가 규정짓고 누가 상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인도 유학 간다 그러니까 누가 연락해오기를 잡신들린 무당 모모를 스승 삼으면 어떠겠느냐 하길래 이런!, 하고 웃고 말았던 일이 있다. 중생들은 저렇게나 눈 밝지 못한 세상을 사는구나, 하고 자괴감이 들었는데 그것도 다 자기 공부만큼 보이는 게 아니겠냐고.
그러니 전생에 했던 마음공부가 이생에도 발현되는 것이고 세세생생 갈마해온 지혜근기라는 게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스스로 가늠하지 못하는 중생심으로 함부로 주변을 재단하려드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더더욱 모른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혼자 못나기도 어렵지만 혼자 잘나기도 어렵다. 잘난 척 해봐야 개구리 뒷다리 오른 쪽 세 번째 발가락 만도 못한 것이다.
중생심으로 흐트러진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조립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닦고 조이고 다그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마리 원숭이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건너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재빠르고 거침 없으며 눈치보지 않는 혁명적 사고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