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사도행전 1:12-14
제목 : 행전강해(2) 기다림의 시간에 해야 할 일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
아버지 하나님, 귀한 날 복된 날 또 저희들에게 허락하시고 아버지를 경배하며
이제 또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성령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친히 말씀하시고
그 음성 가운데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난 주에 사도행전의 전체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실과
예수님께서 바로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려고 이 땅에 임하셨음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였고,
사명이었고, 우리를 위해서 천국 복음(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그 사명을 제자들에게 위탁하셨고, 초대교회와 사도들은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어요.
그래서 사도행전의 내용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초대교회와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갔는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어떻게 그 복음이 확장되어 갔는가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말은 사도들의 행전(Acts of the Apostles)이라고, 사실은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셔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한 내용이기 때문이지요.
1. 들어가는 말 :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
그런데, 이 때 초대교회와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천국 복음을 전하기 전에 해야 할 너무나 중요한 일이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것이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눅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여기서 이 말씀을 보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인가?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오늘 본문에서도 똑같은 사실, 반복해서 그 사실을 강조하는데,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리고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어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심을 기다리는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시고, 열흘 뒤에 성령께서 오셨는데 그리고 우리는 제자들이 이 기다림의 시간에 무엇을 했나?
하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는데 제자들은 이 기다림의 시간에 두 가지를 했어요.
첫번째가, 한 마음으로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었고, 이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12절부터 14절까지
그 다음에, 15절부터 뒷부분을 보면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는 것이었습니다. 맛디아를 뽑았지요.
그 중에서, 오늘 우리는 이 제자들이 기도한 모습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 때까지 열흘 동안 예루살렘에서 무엇을 하며 지냈나 하는 것을 기록했는데,
먼저 누가복음 24:53절 말씀에 보면, "그들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 그랬어요.
여기 그들이 늘 찬송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렸다는 거지요.
그리고 오늘 본문 14절에서는 "그들이 모여 있던 다락방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계속해서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고 그리고 집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들은 그 기다림의 시간에 성령충만함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성전에서나 집에서나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고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통한 권능을 힘입으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되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2. 한 마음 한 뜻으로 드리는 기도
먼저,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 마음으로 모여서 기도했다 그랬어요.
(14절)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마음을 같이 하여" - "with one's accord" 한 마음이 되어서, 하나가 되어서 일치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는 거예요.
그들은 오로지 한 마음으로 한 뜻이 되어 기도했다는 건데, 종교개혁가 칼빈은 오늘 본문을 주석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참된 기도에는 두 가지 본질이 있는데 그것은 곧 저들이 끈기있게 기도했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말했어요.
여기서 제자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단 한 가지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기도했다"는 것은,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서 오직 기도하는 일에만 집중했다는 거예요.
"오직 기도하는 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누가는 그들이 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뜻이 돼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하는 그 모습을
독특하게 오늘 본문을 통해 설명하는데, 그것은 바로 제자들의 명단을 새롭게 배열함을 통해서
그들이 어떻게 진짜 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있었나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누가는 오늘 본문에서 다락방에 모여있는 제자를 포함한 120 문도,
15절에 보면 그 당시에 120명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 내용이 과거와는 조금 다르게 변동이 돼 있어요. 특별히 제자들을 보면..
먼저 누가가 배열하고 있는 이 열한 제자를 보면 이전과는 다르게 제자들의 명단이 짝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ㅇㅇ와, 또 ㅇㅇ와 이렇게 되어 있어요. and가 뭉쳐진 거지요, 배열이 거기서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저들이 어떻게 한 마음이 되었었나 하는 걸 알게 되는데,
(13절) 누가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그리고 안드레와" 그랬어요.
거기까지가 한 그룹이죠. "베드로, 요한, 야고보 그리고 안드레와"
성경을 보면, 원래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항상 같이 등장했어요.
예수님께서 특별히 이 세 명의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가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요.
마가복음 17장에 보면 변화산에서도,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그래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께서 이 세 제자를 따로 데리고 가셨어요.
왜 이들만 따로 데리고 가셨는가는 예수님이 말씀하지 않기 때문에 이유는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셋은 항상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따로 구분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이 그룹 가운데 안드레를 포함시켰어요. 안드레가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안드레는 다른 세 제자들처럼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은 사람도 아니었고,
그가 그의 형제 베드로를 주님께 인도했다는 사실 외에는 별 특징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누가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안드레라고 하는
특기 사항이 별로 없는 제자의 이름을 넣어서 한 그룹으로 만들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우연히 그랬을까요?
이에 대해서 어떤 성경학자가 이런 해석을 했어요.
누가는 안드레라는 가장 평범한 제자의 이름을 탁월한 제자들로 알려져 있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함께 묶음으로써
이제는 제자들 사이에 더 이상 누구는 평범하고, 누구는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으며,
누구는 특별하다는 식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 이전에 제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던 누가 더 크냐를 가지고 다투던
그런 차별은 다 사라지고 이제 저들은 오직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누가는 바로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전에는 결코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함께 그룹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평범한 안드레를 그 가운데 넣었다는 거예요.
저도 이 해석에 동의합니다. 이 해석이 의미있는 것은 다른 내용을 보면 더 확실해져요.
우연이 아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데, 그 다음에 누가는 빌립과 도마를 함께 묶습니다.
"빌립과 도마와" - 그런데 우리가 아는 빌립은 믿음의 사람이었어요.
그는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는데, 예수를 만나자 마자 그가 곧 구약에서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구나 라고 하는 것을
알고 믿고 곧바로 예수를 따랐던 믿음의 사람이었지요. 요한복음 1:45절에 그 기록이 있어요.
그리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며 믿지 못하던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확신에 찬 말을 했던 주역이 바로 빌립입니다.
그런데, 이런 빌립과 함께 지금 그룹이 되어 언급되고 있는 도마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는 매사에 증거를 요구하는 의심 많은 사람이었지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에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가 뭐라고 얘기합니까?
(요 20:25)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도마는 의심의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믿음의 사람 빌립과 의심의 사람 도마, 정반대의 사람을 지금 한 그룹으로 모았어요.
그 다음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소개된 제자들의 명단을 보면 빌립은 바돌로매와 함께 묶여서 소개됩니다.
그런데 누가는 믿음의 사람 빌립과 의심의 사람인 도마를 한 그룹으로 묶은 거예요.
원래 빌립과 바돌로매가 한 그룹이었는데, 지금 바꿔버린 거예요.
왜 그랬을까? 의도가 보이지요.. 믿음의 사람과 의심의 사람이 함께 동료가 되어 있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지금 하나 되어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요.
또, "바돌로매와 마태와" - 바돌로매와 마태가 한 그룹으로 언급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보면, 도마와 마태가 한 그룹으로 등장해요. 그런데 누가는 그 그룹도 바꿔버린 거예요.
나다나엘이라고도 불리우는 바돌로매는 예수님 말씀 중에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이요", 즉 거짓 없는 신앙인이었어요.
그런데 반면에 마태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마태는 그 당시에 가장 부정직하고 거짓을 일삼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세리 출신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 속에 거짓된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어서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장 47절에 보면,
(요 1:47)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까지 인정하셨던 사람 나다나엘(바돌로매)과
그 당시 부정직과 거짓의 대명사였던 세리 출신의 제자 마태를 함께 그룹으로 만들었어요.
여러분, 이 모든 사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누가는 제자들이 지금 온전히 하나 된 마음으로 모여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상식적으로 보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전혀 함께 할 수 없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그래서 항상 모이면 누가 더 크냐를 가지고 다투고 시기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즉 하나 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오직 하나 된 마음으로 모여서 주의 성령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지금 그것을 누가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14절에 보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함께 있었다" 그랬어요.
이 여인들은 예수를 위해서 기도하고 봉사하고 눈물과 사랑으로 헌신적으로 섬기던 여인들이었지요.
우리가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며 헌신적으로 섬기던 여인들의 이름이 많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이 중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막달라 마리아, 살로메, 요안나, 수산나,
그리고 또 다른 마리아 등이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그들 가운데 어떤 여인들은 그 출신 성분이 조금 수치스러운 분도 있었어요. 몸을 파는 여인도 있었거든요.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개념에 의하면 그 여인은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는 여인이 아니예요.
지금 여자들도 같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여인들도 120명의 성도들 가운데 한꺼번에 같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아우들도 있었다." 그랬어요.
"예수님의 아우들", 예수님의 아우들은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계실 때
결코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이제는 그 자리에 함께 있어요.
부활 이후에 저들은 예수님이 혈육의 형제, 형이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고 이제는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과 함께 120 문도와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던 거예요.
결국,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을 다 합쳐서 보면, 이 모든 사람들, 제자들, 여인들, 예수님의 어머니, 동생,
그리고 120명 한 그룹이 전부다 함께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같이 해서 오로지 기도에 힘쓰고 있었다는 거예요.
전혀 함께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여러분, 그렇다면 이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이렇게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혼자서 기도하는 것, 아름다운 일입니다. 혼자서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 진실로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주의 형제 자매들이 매일같이 새벽기도회나 혹은 금요성령기도회 등
그런 기도 모임에 함께 모여서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더 귀하다 하는 거예요.
한 사람의 기도보다는 두 사람이 합심하는 기도가 더 힘이 있고, 주님 보시기에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마 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마음을 같이 하여, 한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아멘!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혼자서 기도를 곧잘 해요. 그런데 모여서 기도하는 걸 잘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무릎을 맞대어 모여서 합심해서 기도할 때,
그곳에서 사탄의 세력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그렇게 한 마음으로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그들 가운데 임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우리가 매일 새벽기도회, 혹은 금요일 저녁에 성령집회로 함께 모여서
말씀 듣고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한 마음으로 모여서 합심해서 기도하고,
아프고 병든 이들을 위해서 중보할 때에 보혜사 성령님의 권능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2024년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는 한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합시다.
성령님의 능력과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그럴 때, 우리의 심령 속에, 우리 가정 속에, 우리 일터에, 우리 교회 가운데,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임할 줄 믿습니다. 아멘!
3.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는 끈기 있는 기도
또 한 가지,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는 또 한 가지 교훈은
이 제자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끈기있게 하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붙잡고 끈기있게 기도했다"
오늘 본문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했는데, 여기 "오로지"는 기도에만 힘썼다는 거지요.
그런데, '힘썼다'는 단어가 무슨 뜻인가 하면, '부지런하다', '끈질기다' 그런 뜻입니다.
'부지런하다', '끈질기다' 그리고 시제가 현재분사형으로 되어 있어요. 이제 아직 안 끝났어요.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가 한 두번 하고 끝난게 아니고,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계속해서 끈기있게 기도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칼빈도, "끈기있게 기도했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들은 끈질기게 기도하되, 그냥 무작정 막연히 기도한 것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기도했다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매우 중요한 걸 하나 보게 되는데,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끈기있게 기도하는 것, 이게 너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부모가, 우리가 애들한테 뭐 약속하면 "아빠가 약속했잖아!" 그러면서 애가 이야기하면 어떻게 하지요?
들어줘야지요.. 약속 했으면 들어줘야 되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아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하되,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것을 주장하면서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모두가 합심해서 약속의 말씀을 주장하면서 기도한다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시겠습니까?
온 자식들이 함께~~ 애들이 둘 셋이서 매달려 가지고 하나는 다리 붙잡고 하나는 팔 붙잡고
"아빠가 준다 그랬잖아!" 하면서 매달리면 어떻게 해요? - 줘야지요..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약속의 말씀이지요.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구하면 행한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이 약속의 말씀 이루어 주세요!" 하고 말씀을 주장하면서 기도하라 그 말입니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주님, 주님께서 나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지요?
그런데 주님, 저 지금 너무 힘들어요. 저 지금 너무 외로워요. 주님, 약속의 말씀대로 함께 해 주세요."
약속의 말씀 붙잡고 주장하면서 기도하시라구요..
(빌 4:19) "그 풍성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약속하셨지요?
우리 가정에 쓸 것을 채워 주세요.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 주세요!"라고 기도하셔야지요..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지요? 우리 아들에게 하늘의 지혜를 주시옵소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우리 아이에게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셔야지요...
(약 5:15) "주님,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고 약속하셨지요?
사랑하는 아버님, 사랑하는 어머님, 사랑하는 부모, 사랑하는 아무개... 주님, 병을 고쳐 주시고 일으켜 주세요!
약속하셨잖아요?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 주세요!"라고 기도하셔야지요...
(요한3서 2절) "주님,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주님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약속하셨지요?
우리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할 수 있도록 이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약속의 말씀 붙잡고 기도하세요...
그냥 막연하게 뭐 달라고만 기도하지 말고, 주님이 주시겠다 약속하신 그 약속의 말씀 붙잡고 기도하시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 붙잡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가~ 아빠 아버지가 안 들어주실 수가 없어요. 약속하셨는데...
이렇게 우리가 매일 새벽에, 그리고 수요일에, 그리고 금요일 저녁마다 함께 모여서
한 마음으로 합심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면
거기에 마침내 하나님의 합력하여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의 역사가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아멘!
4. 50년간 끊임없이 기도하며 마침내 기도 응답을 받은 할머니
지난 신년부흥회 때, 임현수 목사님을 통해서 들었던 한 할머니의 기도 응답에 대한 이야기가,
그 간증이 여전히 제 마음 속에 깊이 들어와 있어요. 이번 신년부흥회 참석하신 모든 분들 기억하실 거예요.
둘째날 저녁에 목사님이 이 간증을 하셨어요.
50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끈질기게 새벽기도회를 하고 마침내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은 한 할머니의 이야기였지요.
이분이 6.25 때 큰 아들만 데리고 나오고,
다섯 살짜리 딸과 세살짜리 아들을 원산에 놓고 내려왔는데, 그만 38선이 갈라지는 바람에 이산가족이 되었어요.
세살짜리 다섯살짜리 어린 것들만 놓고 왔으니, 그 엄마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이 할머니는 큰 아들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가셨는데,
이 할머니가 임현수 목사님이 북한을 늘 방문한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오신 거예요.
북한에 있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족사진, 그리고 미국 달라를 넣어서 이걸 꼭 좀 전해달라고 부탁을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그 딸을 어떻게 찾아가요. 이것 참 너무 막연했지요.
그 할머니가 수십 년 동안 딸아이를 수소문한 끝에 그 딸이 원산에 살고 있다는 것과 주소를 알게 되었고,
그 딸의 친한 친구가 원산의 동명여관(호텔)이라는 곳에서 근무한다는 정보까지 알게 되었대요.
그래서 이 할머니가 이제 임현수 목사님을 찾아온 거예요.
목사님은 원산 위에 황주라는 곳에 그때 국수공장을 세워서 교회 장로님들과 방문하게 됐는데,
그 편지를 원산까지 전해주려면 어딘 줄 알고 그걸 전해 주나요? 그리고 함부로 갈 수도 없고...
너무 막막했지만, 그 할머니가 하도 간절히 부탁을 하니까 그냥 가지고 갔다가
나중에 "못 찾았습니다." 그러고 돌려줄 생각으로 받았다는 거예요. 받아서 갔어요.
이제 황주에서 모든 일을 마치게 됐는데,
마침 북한의 담당했던 담당자 최국장이라고 하는 분이 일이 잘 됐으니까(이분이 기분이 좋아가지고)
원래 계획에 없는 금강산을 들렀다 가시는게 어떻냐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런데 금강산을 가려면 원산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야 된대요.
그 국장이라는 사람이 자기가 여기 저기 전화하고 모든 걸 다 해 놓고서는 마침내 10시에 출발을 했답니다.
그리고 새벽 세시에 원산에 도착을 했는데, 마침 희안하게도 숙소를 보니까 "동명여관"인 거예요.(호텔이죠)
거기에 숙소가 정해져 있다는 거예요.
그 당시 원산에 있는 동명여관은 일본에서 배편으로 조총련들을 매주 600명씩 운송을 해서 묵던 그런 큰 호텔이었던 거예요.
새벽에 도착을 해서 목사님 숙소가 동명여관 7층에 있어서,
7층으로 올라가니까 어떤 여자가 자고 있다가 목사님 일행을 맞이했는데,
목사님이 그녀에게 할머니의 딸 이름을 대면서 혹시 이런 사람 아느냐고 그냥 한번 던져봤는데,
그녀가 깜짝 놀라면서 "어! 걔 내 친군데요.." 그랬다는 거예요.
이게 목사님의 숙소가 7층에 잡혔던 것도 그런데, 그 7층을 담당하고 있던 여자가 그 할머니의 딸의 친구였다는 거예요.
이게 지금 우연일까요?
그렇게 해서 목사님이 방에 들어가서 자려고 하는데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타고 온 차 운전기사를 불렀대요.
그런데 내려오면서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목사님이 기사한테 복음을 전했어요. 그래서 그 기사가 예수님을 영접한 거예요.
그 기사를 불러다가 사실은 여챠여차 해서 이렇다고 그 할머니 얘기를 쫙 해 줬더니,
그 기사가 자기가 그럼 한 번 찾아보겠다고 하면서 그 새벽에 주소를 들고 나갔어요.
그가 원산 시내를 다 뒤져서 새벽 다섯시에 그 딸이 사는 집을 찾아서 약속까지 하고 돌아온 거예요.
그리고 새벽 6시에 일행들은 '명사십리'라는 아름다운 모래사장에 나가서 바닷가 사진 찍고 구경을 간 사이에
목사님은 몰래 빠져나와서 약속 장소인 원산시청 앞으로 나갔대요.
목사님이 시청 앞으로 가니까 한 여자가 나와 서 있는데, 할머니의 딸이었습니다.
나이가 53살이었고, 남편이 일찍 죽었고, 열일곱 살 짜리 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그랬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그녀에게 어머니가 준 편지와 사진, 그리고 돈을 전해주면서
사영리 전도지를 안에 넣어주면서 이것 꼭 읽으라고 그리고는 전해주고,
3분 딱 만나고 급히 돌아왔대요. 뭐 오래 만나다가 또 들키면 안되니까..
그렇게 기적적으로 그 딸을 만난 것을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고, 다음날 아침에 금강산 구경을 하고 캐나다로 돌아오셨대요.
한참 뒤에 어느 날, 그 할머니가 목사님을 찾아왔어요.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 할머니가 마침내 딸과 연락이 됐고, 북한의 그때 운전을 했던 그 기사가 계속 원산을 드나드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딸을 평양으로 데리고 와서 도청이 안되는 국제전화로 엄마하고 연결시켜서 통화도 하게 해 주었답니다.
마침내 캐나다 시민이었던 할머니가 북한을 방문하고 가족들이 다 만났다는 거예요.
임현수 목사님이 이 간증을 소개하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어요.
"기도는 저 동토(저 얼어붙은 땅)의 땅인 북한에서도 응답된다!" 아멘! 아멘이지요!!
그리고 참 놀라운 것은,
일정에 전혀 계획에 없던 금강산 관광을 북한의 그 최국장이라는 사람이 먼저 제안한 것,
또, 원산을 갑자기 방문하게 된 것, 또 원산에 그 많은 숙소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하필이면 동명여관에 묵게 된 것,
그 중에서도 7층에 묵게 되고, 그 7층 담당 여인이 할머니의 딸의 친구였다는 것....
그 북한 운전수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고, 그가 중간에서 그 연락책이 되어준 것.....
목사님은 이 모든 게 다 하나의 드라마처럼 진행되었다는 거예요. 이게 드라마처럼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사람이 계획한다고 이렇게 될 수 있어요? 사람이 계획한다고 이런 일이 될 수 있느냐는 말이지요..
결국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임목사님은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다 듣고 계신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씀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신음과 우리의 탄식을 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당신의 때에 당신의 놀라운 드라마를 이루어 가십니다. 섭리의 역사를 이루어가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말씀을 정리하는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오로지 기도에 힘쓰다가
마침내 성령의 놀라운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사명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설교의 핵심 내용입니다.
5. 나가는 말 : 한 마음으로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끈질기게 기도하자
오늘 우리들도 주님께서 주신 이 천국 복음 전파의 사명과 'Kingdom Dream' 하나님 나라의 꿈,
예수님이 가실 때 제자들에게 주신, 우리들에게 주신 이 'Kingdom Dream'을 우리가 계속해서 이어가려면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 우리의 경험으로 감당할 수 없어요.
오직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권능에 힘입어 그 능력으로 천국 복음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정말 순교적인 각오로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도 2024년 이 새해에 더 이상 게으름과 그리고 믿음의 잠에서 이제는 깨어나서 날마다 새벽을 깨웁시다.
함께 모여서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능력과 기름 부으심을 힘입어서
우리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헌신합시다. 분립개척교회 사역에도 우리 함께 헌신합시다.
올해는 우리 모두 주님께서 주신 이 약속의 말씀, 이 약속의 말씀 꼭 붙잡고 주장하면서 더 끈질기게 기도함으로서
저 얼어붙은 북한 땅에서도 오십 년 만에 기도응답을 받은 그 할머니처럼
저와 여러분의.. 여러분이 분명 가지고 있는 오랜 기도의 제목들이 있을 거예요.
여러분의 그 오랜 기도제목들도 마침내 다 응답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안의 모든 성도들이 2024년을 맞이해서 정말 한 마음으로
함께 뜨겁게 모여 기도하면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주님의 약속의 말씀 붙잡고 끈질기게 기도해서
마침내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그 드라마 같은 역사를 경험하는
우리 주안의 모든 성도님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