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안에 머물러라 부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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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뜻을 알기 위한 간단한 방법 (8권 14장)
성 바실리오는 하느님 뜻이 그분의 법규나 계명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다면 더 이상 숙고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지시된 것을 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선, 비록 허용되는 것을 모두 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것만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우리에게 좋게 보이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결국 적절한 것이 무엇인지 잘 식별하려면
현명한 지도신부의 의견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테오티무스여, 나는 모든 일에서 하느님 뜻에 가장
합당한 것을 따르고자 하는 큰 열망이 있는 영혼들에게
무수히 찾아오는 성가신 유혹을 그대가 조심했으면 한다.
원수는 온갖 경우에 이 영혼들에게 이것보다 저것을 하는 것이
하느님 뜻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이들은 친구랑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하느님 뜻인가,
하지 않는 것이 하느님 뜻인가,
하느님 뜻은 회색옷을 입는 것인가 검은색 옷을 입는 것인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어느 날에 단식해야 하는가, 레크레이션 시간에 참석해야 하나,
가지 말아야 하나를 식별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이들이 가장 좋은 것을 식별하려고 애쓰며 고생하는 동안
다른 많은 선을 행할 시간은 사라져 버린다.
이런 선행은 그들이 즐겨 하는 선악의 식별보다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이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우리는 푼돈이 아니라 큰돈을 셀 때 신중을 기한다.
푼돈까지 일일이 세자면 매매는 너무나 성가시고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될 것이다.
이처럼 이 행동이 저 행동보다나을까 알기 위해 우리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일일이따져서야 되겠는가,
심지어 이렇게 검토하려는 마음속에
미신이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성당보다 저 성당에서 미사하는 것이 더 낫고,
바느질하기보다 실 잣는 것이 나으며,
여자한테보다 남자한테 적선하는 것이 더 나은가?
요구된 일을 하는 만큼의 시간을, 해야 할 일이 무언지 생각하는 데
보낸다면 주인을 잘 섬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의 중요성에 따라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도 달라야 한다.
하루 걸리는 여행에 대해 천오백 킬로미터 거리의 여행을
준비하는 만큼 생각한다면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소명의 선택이나 긴 여파가 예상되는 일에 대한 계획,
장기간 벌일 사업 또는 매우 중대한 지출, 체류지 변경,
대화를 잘 해내는 일 등과 관련해서는 하느님 뜻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없어도 있어도 큰 영향이 없을 뿐 아니라
되돌이킬 수 없는 일도 아닌 일상의 작은 행동들에 대해
귀찮은 검토를 하느라 서두르고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어디 있는가?
내가 묵주기도를 하는 것과 소성무일도를 바치는 것 중
어느 것을 하느님이 더 좋아하실까를 알기 위해 애쓸 이유가 어디 있는가,
대대적 조사를 벌일 만큼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저녁기도를 하러 가기보다 병원에 환자를 방문하러 가는 것이 나은가?
전대사가 있는 성당에 가기보다 설교를 들으러 가는 것이 나은가?
이런 경우 보통은 어느 한족이 다른 쪽보다 눈에 띄게 중대하여
심사숙고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런 일들 앞에서는 솔직하고 대범하게 행해야 한다.
성 바실리오가 말하듯 우리 보기에 좋게 생각되는 것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정신을 피곤케 하지 않고 시간 낭비도 막으며
불안이나 세심증 또는 미신에 빠지지 않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뜻하는 상황은 양자 간 큰 차이가 없고
중대하게 결정할 사안도 없는 경우다.
중대한 일에 있어서도 매우 겸손해야 하며 어거지로라도 검토하거나
교묘한 화법을 사용해서 하느님 뜻을 찾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성령의 빛을 청하고 그분이 바라시는 것을 찾으며
영적 지도자와 가능하다면 두세 명의 또 다른 영성가의
조언을 듣고 난 뒤 하느님의 이름으로 결심하고 결정해야 하며
그런 후엔 우리가 한 선택을 다시 의심하지 말고 깊은 신앙을 지니고
평화롭고 항구하게 우리의 선택을 유지하고 가꿔 나가야 한다.
우리가 세운 계획을 실현해 나가면서 만나는 어려움, 유혹,
여러 가지 사건들이 우리 선택의 적절함을 의심하게 할지라도
흔들리거나 그런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만일 다르게 선택했다면
이보다 몇 배 더 어려움을 겪었을지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단련시킬 때 위로 속에서 하실지
어려움 속에서 하실지, 평화 가운데서 하실지 투쟁 가운데서 하실지 모른다.
결심을 고결하게 했으면 그 실행의 거룩함을 결코 의심해선 안 된다.
그 결심이 우리한테서 기인하지 않는다면 실패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심한 대로 하지 않는 것은 깊은 자기애 또는
유치함이나 정신적 나약함이나 어리석음의 표시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