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뉴스에서 말했던 것과는 달리 눈 대신에 겨울비가 도로 여기저기에 조그만 비명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10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집에 가기 위해 통학 버스 앞에 주욱 늘어섰다.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직접 차를 몰고 오거나, 우산을 가지고 와서 아이를 데리고 가지만 이 곳에 줄 서 있는 아이들처럼 부모님들이 맞벌이를 하는 경우엔 평상시처럼 노란색 유치원 통학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 안녕히 계세요. "
" 응, 그래. 차조심하구, 내일 보자. "
아이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우중충한 기운이 감도는 거리를 조금이라도 밝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오늘은 미나가 아이들을 집까지 데려다 주는 역할을 맡았다. 미나는 이 유치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5살의 젊은 여교사였다.
" 자, 자. 버스 출발하게 빨리 자리에 앉아야지. "
미운 7 살이라고 했던가. 버스에 타자마자 또래의 아이들과 시끄럽게 장난을 쳐대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미나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가 와서 집까지 태워 주어야 할 아이들이 몇 명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버스 안에 가득 찬 습기가 미나의 신체리듬을 저하시키고 있었다. 서둘러서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 현아야, 빨리 자리에 앉아. "
그 때까지 버스 안을 휘젓고 다니고 있던 현아라는 아이를 향해 미나는 최대한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상냥하게 이야기했다.
" 아저씨, 이제 출발해요. "
대충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미나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재촉했다. 이 7살짜리 악동들은 언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다. 빨리 목적지에 아이들을 내려놓고 교사로써의 책임감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최선책인 것이다.
" 선생님, 안녕~~ "
차가 출발하자 아이들은 제자리에 있지 않고 금새 창가로 달려가 그 때까지 유치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던 여교사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필시 그들도 버스가 그들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나면 한 숨을 쉬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났음을 신께 감사드리며 기도할 것이다.
물론, 미나의 경우는 그 시간이 조금은 늦어질 것이지만 말이다.
-2-
비가 와서 그런지,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차가 엄청 막히고 있었다. 도로에 가득 울려퍼지는 경적소리가 행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거기에 간간히 섞여 들려오는 남성 운전자들의 욕설은 비 오는 날의 도로를 한 층 더 짜증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미나는 하품이 나오려는 것을 재빨리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아무도 미나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하품 같은 것이라면 아이들에게는 몇 달은 지속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놀림거리인 것이다. ' 선생님이 하품을 했다' 라는 단순한 사실이 왜 저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 되는 것인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이리저리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어른도 지겨워서 하품이 나올 지경인데, 아이들이야 오죽하랴.
" 선생님, 언제 집에 가요? "
참다 못한 아이 하나가 미나에게 물었다.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지만, 자동차로만 이루어진 긴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다.
" 조금만 참아, 지우야. 거의 다 왔어. "
아이의 이름을 간신히 기억해 낸 미나가 역시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로 아이에게 말했다. 지우라는 아이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미나에게 반박했다.
" 다 오긴요, 아직 우리 아파트 단지 그림자도 안 보이는데요. "
대체 요새 아이들은 저런 표현을 어디서 배워오는 거야? 내가 7살일 때, 저런 표현을 쓸만큼 어휘력이 풍부했던가? '그림자도 안 보인다' 라니.
미나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 아이들은 도대체가 애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단 말씀이야.
" 집에 가고 싶어요...... "
미나의 생각을 들었는지, 아이 하나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큰 일이다. 이런 곳에서 아이 하나가 울었다간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울기 시작할 것이다.
' 제길, 애 같지도 않다고 했더니 바로 울기 시작하네. '
속으로 투덜거리며 미나는 재빨리 아이에게 다가갔다.
" 선생님, 집에 언제 가요? "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얼굴을 들어 아이가 미나에게 물었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니 나머지 아이들도 조용한 것이 이미 어느정도는 이 울음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
" 지루해도 조금만 참아, 우리 수연이, 알았지? "
평소에도 잘 울기로 소문난 아이다. 수연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울음 바이러스의 급속한 전염성은 자신을 비롯해서 모든 유치원 교사들이 인정할 정도였다.
어찌나 서럽게 울어대는지, 멀쩡하게 잘 놀던 아이마저도 금새 울음보가 터지고 마는 것이다.
" 울지마, 우리 수연이. 착하지? 음..선생님이랑 게임하고 놀까? "
미나가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수연을 달래려고 노력했지만 수연에게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이윽고, 수연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미나가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려는 순간, 미나의 귓가에 조그맣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애들한테 무서운 얘기라도 해주지 그래요. "
만약 이것이 만화속이었다면 미나의 머리 위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뜻의, 조그만 꼬마전구 하나가 환한 빛을 밝히며 나타났을 것이다.
" 그, 그래. 얘들아, 선생님이 무서운 얘기 해줄까? "
갑자기 아이들의 시선이 미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수연이조차도 마법처럼 울음을 그치고 수연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 심, 심심한데 선생님이 무서운 얘기라도 해줄게. "
" 와, 신난다. "
" 선생님, 빨리요. "
지금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젊은 여교사의 말을 뒤늦게 알아들은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떠들어댔다.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미나는 주변을 쓰윽 한 번 둘러봤다. 운전석에 앉은 기사 아저씨는 꽉꽉 막혀 있는 도로를 보며 뭐라고 투덜거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눈을 빛내며 새로운 유흥거리를 제공할 사람을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대체 누가 나한테 이야기 한거지? '
미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때는 아무 생각없이 다급한 마음에 얘기를 꺼낸 것이지만, 정작 그녀에게 그 이야기를 하도록 만든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 그리 나이를 많이 먹은 목소리는 아니었는데...... '
다시 한 번 아이들을 주욱 훑어봤지만, 빨리 이야기를 해달라고 재촉해대는 아이들 외에 다른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 뭐 어때. 내가 헛것이라도 들었나 보지, 뭐. '
아무렇게나 결론을 내린 미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얼떨결에 했던 말이라도 약속은 약속. 아마 대충 얼버무리려 했다간 한 두명 우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미나는 숨을 고르며 머리를 굴렸다. 아이들에게 해 줄 만한 무서운 이야기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 아, 그래. 이 이야기가 좋겠다. 이 놈들, 밤에 잠도 못 자게 해주지. 호호호. '
도저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믿어지지 않는 생각을 웃음 띈 얼굴 안에 감춘 채, 미나는 방금 자신의 머리 속에 스치듯이 떠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너희들, 도둑질이 나쁜 짓이라는 건 알고 있지? 이건 그런 나쁜 도둑들에 대한 이야기야. "
이미 평온을 되찾은 조용한 버스 안에 미나의 한껏 내리깔은 낮은 목소리가 음산하게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