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사정으로 인해 엄마와 헤어져살면서 계모님께 수없이 매를 맞고 살던 내가 가여워
엄마가 다시 데리고 간곳이 경기도 파주.. 봉일천 4리하고도 일명 윗동기 였다.
68년 10월 16일 .........
홍은동 시외治뵀攷犬?【?엄마를 만나 저녁을 먹고 한없는 밤길을 완행 버스에
털털거리며 실려들어가 석유냄새나는 호롱불 켜며 들어선 엄마의 포근한 집 ..에서
웃다 울다 , 밤새 엄마의 가슴을 더듬으며 얘기하고 잠들었다 깨어난 파주의 아침은
내겐 그야말로 환희 그, 자체였다
잠자리가 날던 파란 가을 하늘 , 뭉게 뭉게 널려진 구름 ,마당 넓직한 멍석위에 햇살받아
말려지고 있던 빠알간 고추. 코끝을 스치는 싱그러운 가을 내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
가을만 되면 그곳에서 돌아가신 엄마 생각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제2의 내 고향 모습이
죽을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파주, 바로 봉일천이다
내 엄마가 계셨던 윗동기 ..꿈인지 생시인지 , 엄마를 다시 만나 시작한 우리의 생활 .....
그곳은 내게 있어 가장 행복했고,꿈이 있었고 , 지금의 소중한 친구들이 있던곳이었다
죄지은것 없이 먼저 다니던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던날 아버지의 손에 이끌리어 무작정
따라나섰던 길이 전학신고도 못한바람에 나중에 아버지를 통해 전해받은 책가방 하나 달랑 ..
그 안에 계모님이 적어 놓았던 메모가 잊혀지질 않는다 .
내가 널 때린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너 잘 되라고 ........미안했다고 .......ㅎ
두번만 잘 되라고 때렸다간 매맞아 죽을뻔했던 뼈 아픈 기억들이었다 .
이직도 그 상처가 다리에 남아 있는데 ......
엄마는 그런 날 마냥 가슴아파 하셨었고 , 학교는 보내야 했기에 바로 봉일천 국민학교
생면부지인 이기택 선생님께 찾아가 우리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했었다 ..
내가 5학년 2학기에 입학해 공부하기 시작한건 11월 초순이었다 .
이기택 선생님께선 내가 1학년때부터 봉일천 국민학교를 다닌걸로 생활기록부서부터
성적표 등을 만들어 주셔서 나는 엄마 품안에서 학교 생활이 다시 시작될수 있었다 .
지금은 그런일이 말도 안되는 , 아니 그때도 그럴순 없었겠지만 선생님께선 딱한 나의
처지를 생각하시고 엄마의 청을 들어주시고 내가 공부할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이다
어린 내게도 커다란 마음의 빛으로 늘 감사하며 살아야겠단 생각을 심어주신분 ..
사친회비등, 학교에 낼수 없었던 학비 문제로 인해 친구들 앞에 불러 내 놓구
어렸지만 인격적으로 창피와 무시를 당하게 했던 먼저 학교 선생님과는 달리
별명이 호랑이 선생님이셨던 이기택선생님은 전학한지 얼마 안되어 8등을 차지한 내게
아낌 없는 칭찬도 해 주셨고, 추운 겨울 따뜻한 조개탄 난로 옆 책상에 앉게 해 주시는
배려도 잊지 않으셨던 분이셨다 . 그 칭찬과 진실한 사랑들은 짧은 기간동안이었지만
나를 바로 세우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던 마음이셨다 .
공부하다가 지루해지면 낮에 나온 반달을 불러주시고 우리에게 따라 부르시게 했던 선생님 ...
짙은 눈썹과 늘 검게 느껴졌던 작은 체구의 얼굴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정말 감사했던
선생님 .. 그런 선생님께서 갑자기 파주여중으로 전근을 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섭섭해서
방과후 집에 돌아오는 봉일천학교앞 거리서부터 아랫동기를 접어들고,윗동기 우리집까지
펑펑 눈물을 쏟아내게하셨던 선생님 .. 아마도 어린 마음에 날 붙들어 주실 기둥이 사라져버리는
느낌때문이었으리라 ..
그때 친구 누군가가 옆에 있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쩌면 너무 황당할 정도로
울어버리는 나를 달래주던 친구가 있었는데 ...... 울면서 들어오는 내게 엄마는 놀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고 , 역시 서운해하셨었다 .
국민학교를 졸업하구 파주여중으로 진급하고 학교를 다니면서 금촌 사거리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던 신발가게를 지나치면서도 인사도 드리지 못했던 쑥맥.....멀리서 모습이 보이면
반가우면서도 , 오히려 선생님께 향한 감사한 마음이 큰것이 어린 내겐 부담이 되었던가보다
결혼을 하고 , 미국에 온지 15년만에 고국을 찾았을때 이기택 선생님을 찾아가 뵈었었다 ..
놀라시며 반기시는 선생님 , 연세드신것이 역력하게 나타나셨던 정말 오랫만에 뵈었던
선생님이셨다 ..과일과 차를 내 주시며 찾아온 제자가 반갑고 고마워서 어쩔줄 모르시던 사모님 ..
내가 다시 가게 되면 꼭 여행을 시켜주신다고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드랬는데 ....
그후로 난 선생님과 연락을 나누고 매 년말이면 카드로 인사를 드렸건만 ..
사실 올들어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선생님 생각에 안부를 드려야지 드려야지 하면서도
결국 이렇게 때를 놓치고 말았다 ..
막상 부고 소식을 접하고 보니 마음이 아프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내내 편칠 않고
선생님 사진을 들여다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할뿐이다 . 가까우면 발인이라도
가서 마지막 가시는 길 뵈었을텐데 ... 끝끝내 못난 제자가 되어있는것을 어찌 할까 ..
작년까지 보내주셨던 카드 ..올핸 받아보질 못하게 된다는 생각에 눈물도 핑 ~ 돈다
사랑하는 제자 윤은용
흘러가는 세월 누가 막을소냐
70고회를 넘겨 80고개를 바라보는구나
지난날을 회고해보니 모든것이 아쉽구나..
이것이 인생인가? 인생무상이 이것이구나
이억만리 타국에서 생활하기 너무나 힘들겠지?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듯이 열심히 살아라
내조 잘하고 자식들 잘 키워라
한국에 오거든 꼭 들려라 친정아버지를 만나듯이
꼭 만나자
한번 교사는 평생 교사다 .
형설의 공 ...반딧불 밑에서 달 밝은 눈위에서
책을 읽었다는 옛 고사다 .
2006년 1월 12일 금촌에서 이기택 ..............
마지막으로 주신 카드 ..
연세들어가시면서 뭔가를 느끼셨는지 ... 인생무상을 논하셨다 ..
선생님 ..
이제 무겁고 고통스러운 육신은 벗어버리시고 영원한 안식을 찾으신 선생님 ..
평안히 , 고이 고이 ~~잠드소서
은용아 나도 너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추억이 많은 분이시다 ...........5학년때 지각을 일삼던 내게 금숙아 엎어지면 코닿을데인데 왜 지각을하니.하시며 야단을 안치시는 선생님께 반장 박선호가 손을 번쩍들고는 선생님 다른 애들은 지각하면 때리시면서 왜 금숙이만 항상 봐주시냐고 (지금 말로 막 들이대는게아니겠니)
중학교때 성적이 떨어졌다고 아버지께서 등록금을 안주셔서 교무실에 불려가 있는데 ...........깜짝 놀라시며 얼른 가져다 내라고 자전거로 집앞까지 태워다 주셨는데..........우리아버지왈 일제시대때도 월사금을 다 배우고냈는데 미리받는데가 어디있냐고 왜려 ㅎㅎㅎㅎㅎ선생님께서 아버지한테 돈 타내기어려우니 공부열심히하라고 나를 위로 하셨단다 .....
첫댓글 네게 이선생님은 또다른 분이셨구나..난 그저 무섭고 혼내주는 분으로만 기억하고...중학교때 안본다는 그런기억만 있는데...아뭍튼 선생님은 영원한선생님이다 오늘, 으닝이의 저~어릴적의 네모습을 기억해본다..오늘 선생님을 기억하는 날이 되기를 .......
그래 ....다른애들에겐 어땠는지 난 잘 모른다만 내겐 정말 은사님이셨지 ..엄마와 살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신분 ......ㅎ 다시 고국을 가면 찾아뵈려고 했는데 , 평안히 잠드시기를 기도할뿐이다 ..재형아 ~~ 고맙다 친구야 ^,~
이기택 선생님 생각이 난다야 성희도 곤봉으로 맞은 생각이 나네 ㅎㅎㅎ 이기택 선생님 편한안곳으로 가세요
맞다 ! 곤봉 돌리셨어 ㅎㅎㅎㅎㅎ
은용아 나도 너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추억이 많은 분이시다 ...........5학년때 지각을 일삼던 내게 금숙아 엎어지면 코닿을데인데 왜 지각을하니.하시며 야단을 안치시는 선생님께 반장 박선호가 손을 번쩍들고는 선생님 다른 애들은 지각하면 때리시면서 왜 금숙이만 항상 봐주시냐고 (지금 말로 막 들이대는게아니겠니)
ㅋㅋㅋ 넌 왜 늦었던거야 가까운데서 살면서리 ......ㅎ 선호말이 맞넹 ㅋㅋㅋㅋㅋ
중학교때 성적이 떨어졌다고 아버지께서 등록금을 안주셔서 교무실에 불려가 있는데 ...........깜짝 놀라시며 얼른 가져다 내라고 자전거로 집앞까지 태워다 주셨는데..........우리아버지왈 일제시대때도 월사금을 다 배우고냈는데 미리받는데가 어디있냐고 왜려 ㅎㅎㅎㅎㅎ선생님께서 아버지한테 돈 타내기어려우니 공부열심히하라고 나를 위로 하셨단다 .....
언제 내도 내야하는 돈을 아버지께선 시간을 탓하셨구나? ㅎㅎㅎㅎㅎ 금촌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던 기억이 난다 ㅎㅎㅎㅎ
종종 교무실로 불러 교사용 참고서도 챙겨주시고 교무실서 선생님들께 이야기를 좋게해주셔서 특혜를 많이 누렸는데 .........은용아 우리모두 기도하자 좋은곳에서 편안하시도록..........
그래 .... 소식을 듣는 그 시간부터 맘은 아프지만 ..기도했지 ..여행보내준다는 말씀이 참으로 고마웠었는데 ....
선생님에 까만 눈썹과 동그라신 얼굴이 보고싶어진다.......... 그렇지 은용아
어젠 그동안 보내주신 카드 들여다보려니 ....아팠다 ... 울 엄마 생각도 나고 ..두 분 모두 보고싶다 ..
은용이 아픈 추억과 더불어 선생님의사랑과 배려가 있었구나..얼굴만알지 이기택선생님에 대한것은 잘모르겠다.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맙다 성문아 ~~ 내겐 그런 분이셨단다 ㅎㅎㅎㅎ 이젠 가고 안 계시니 , 내 추억은 가슴에만 묻어야겠다 ..
그랬구나 애틋한 사연이 있었구나 다정다감하신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안타깝다 ... 지영인 여전히 잘 지내지? 자주 봐서 참 좋다 친구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