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10월23일 7시30분
옥종 체육관을 출발한 버스는 단성Ic에서 고속도로 올라 산청 휴게소 들려 쉬었다가 함양을거쳐 88고속도로에 올라 지리산 휴게소에서 아침 요기하고 정읍 으로
09시 지리산 휴게소도착
옥종의 명주 맑은술과 돈육으로 해정하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함께 같이한 벗들중 건강상으로 참석못한 사람들이 자꾸 늘어난다 슬프다
玉宗觀善會 회원중 41명중 최연배는 아흔넷이고 나는 중간쯤 나이다ㅎㅎ
10시에 지리산 휴게소에서 무성서원으로 향하는데
논개의 고향 장수소재지를 거쳐 칠보면으로
임실의 섬진강 상류 옥정호반을 거쳐 잘 정리된 도로를 한참을 달러도 지나는 자동차는 보이지 않고 우리 버스만 지난다 ㅎㅎ
점심식사후 내장산도착 13시 30분
세틀버스(편도5천원)로 올라 케이블카(왕복만원)로 전망대 언젠지는 기억없으나 도보로 내장산을 올라 내려온 추억이 아마도 30대중반이지 싶다
아직 내장산 단풍은 철일어 청풍이다
내려와 파전에 쇠주한잔하고 돌아오는중 추어탕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서원문화 순례길을 마감한다
정읍 武城書院
세계문화유산 등재서원으로
칠보면 무성리 500 사적 제 166 호 무성서원
이 건물은 신라말의 유현인 고운 최치원과 조선 중종때 태인현감이었던 신 잠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원래는 태산서원이라 하던 것을 숙종 22년(1696)에 사액 됨으로써 무성서원이라 하게 되었다.
사우에는 최치원을 비롯하여 신 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 관 등의 향현을 배향하였다. 현존 건물로는 현가루를 비롯하여 강당, 동서재, 사우, 비각등이 있다.
사우는 성종15년(1484)에 세워진 것이나 헌종 10년(1844)에 중수되었고, 강당은 순조 25년(1825)에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순조 28년(1828)에 중건하였다.
이 서원에는 성종 17년(1486) 이후의 봉심안, 강안, 심원록, 원규등의 귀중한 서원 연구자료가 보존되어 있다.
신라시대 대문호이며 정치가였던 고운 최치원이 신라 정강왕(定康王) 1년에 태산군수(지금의 泰仁)로 와서 있는 동안 치적이 뛰어나서 군민의 칭송을 받다가 합천군수로 떠나게 되니 그를 흠모하는 나머지 선생의 생전에 월연대(지금의 칠보면 무성리 성황산의 서쪽 능선)에 생사당을 세우고 태산사라 부른 것이 시초였다.
이 사당은 고려 말에 훼파되었다가 성종 14년(1483. 정극인 선생 사후 2년)에 유림들의 발의로 월연대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며 지금의 그 자리에는 불우헌 정극인이 창설한 향학당이 있었다는 전설도 있다.
그 뒤 이조 중종 39년(1544)에 태인 현감이던 영천 신 잠이 부임하여 7년 동안 선정을 베풀다가 동 서 남 북 학당을 세우는 등 많은 치적을 남기고 명종 4년에 강원도 간성군수로 이임하니 역시 주민들이 그를 사모하여 생사당을 세우게 되었다.
숙종 22년에 무성이라는 사액을 받아 이 두 사당을 병합하여 무성서원이라 했으며, 삼현을 더 모시다가 뒤에 두 분을 더 모시니 칠현을 더 배향하게 되었다.
배향된 분은 고운 최치원, 영천 신 잠, 불우헌 정극인, 눌암 송세림(訥菴 宋世琳), 묵재 정언충, 성재 김약묵, 명천 김 관 등이다.
그 뒤 정조 8년(1784)에 쌍계사로부터 최치원의 영정을 모시었다. 이 서원은 고종 5년(1868)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서 위기 에 처했으나 당시의 현감, 유림 등이 청원하여 화를 모면했을 뿐 아니라 전라도의 철폐령에서 제외된 세 개 서원으로 필암, 포충, 무성서원 중 하나이고 원노 30명, 세미 3결(結: 약 9,000평)을 보조 받기에 이 르렀다.
현재 건물로는 사우 3칸, 명륜당 5칸, 현가루2층 3칸, 장수재 4칸, 흥학당 4칸, 서호순비각 1칸, 고사 3칸 등이며 1992 년에 병오창의기적비를 김성년 정읍군수가 세웠다. 문루인 현가루는 원주를 세운 2층으로 된 기와집이며 문을 들어서면 정면 5칸, 측면 2칸의 강당이 있고 3칸 대청과 그 좌우에는 단칸의 협실이 있으며 동서재인 장수재와 흥학재가 있다. 사우는 성종 15년에 지었으나 현재의 것은 1844년에 중수한 것이며 강당은 1825년에 불에 타 없어졌던 것을 1828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동서재도 숙종때 건립하였으나 현재의 건물은 그 뒤 중수한 것이다. 사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의 하나이며 이 서원에는 성종 17년 (1486) 이후의 봉심안, 강안, 심원록, 원규 등의 서원연구의 자료가 보존되어 있다.
가사문학의 효시 정극인이 지은 상춘곡을 안내자는 노래부르듯 외우며 소개하는것으로 끝을 낸다
상춘곡을 인트넷에 찾아 현대어로 옮겨 적는데 복사가 되지 않아 한참을 고생했다
속세에 묻혀 살아가는 사람들이여 나의 생활이 어떠한가?
옛 사람들의 풍류를 내가 미칠까 못 미칠까? 세상의 남자로 태어나 나만한 사람들이 많지만 자연에 무혀사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르는 것인가?
몇칸짜리 초가집을 맑은 시냇물 앞에 지어놓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속에 자연의 주인이 되었구나
엊그제 겨울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복숭이꽃 살구꽃은 저녁 햇빛속에 피어있고 푸른 버들과 향기로운 풀은 가랑비속에 푸르도다 칼로재단하여 내었는가? 붓으로 그려 내었는가? 조물주의 신비로운 솜씨가 사물마다 야단 스럽구나 수풀에서무는새는 봄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마다 아양을 떠는 모습이로다
자연과 내가 한몸이니 흥겨움이야 다르겠는가? 사립문 주변을 걷기도하고 정자에 앉아보기도 하고 천천히 거닐며 시를 읊조려 산속의 하루가 적적한데 한가로운 가운데 참된 즐거움을 아는사람 없이 혼자 로구나
여보게 이웃 사람들아 산수구경 가자구나
풀 밟기는 오늘하고 개울에서 목욕하는 일을하세 아침에는 산에서 나물을캐고 저녁엔 낚시하세 이제 막 익은 술을 칡배로 만든 두건으로 걸러놓고 나뭇가지 꺽어 수를 세어가며 먹으리라
화창한 봄바람이 문득 불어 푸른물을 건너오니 맑은 향기는 잔에 스미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술동이가 비었거든 나에게 말하여라 아이에게 술집에 술이있는지 물어 어른은 막대짚고 아이는 술동이를 메고 시를 나직히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가 시냇가에 혼자 앉아 고운 모래 맑은 물에 잔을 씻어 부어들고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떠오르는것이 복숭아꽃이로구나 무릉도원이 가까이 있구나 저 들이 바로 그곳인고?
소나무 사이로 난 좁은길에 진달래꽃을 붙잡아들고 산봉우리에 급히 올라 구름속에 앉아 보니 수많은 마을이 곳곳에 벌어져 있네 안개와 노을 빛나는 햇살은 수놓은 비단을 펼쳐 놓읏 듯 하구나
엊거적 검은 들판이 봄빛이 넘치는구나 공명도 날 꺼리고 부귀도 날 꺼리니 맑은 바람과 달 외에 어떤 벗이 있겠는고?
누추한 곳에서 청빈한 생활을 하며 헛된생각 아니하네 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지내는 일이 이만하면 어떠하리
첫댓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ㅊ
ㅜ
ㅇ
ㅇ
ㅜ
ㅊ
ㅠ
ㄹ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