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배구 GS칼텍스 이성희(41) 감독은 지난 5년 동안 코치 생활을 하면서 두 차례 감독대행을 한 경력이 있다.
KT&G 박삼용(40) 감독이 2003년 GS칼텍스 사령탑을 맡을 때 코치로 합류한 이 감독은 박 전 감독이 2005-06시즌 성적 부진을 이유로 지휘봉을 놓자 감독대행으로 팀을 맡아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 감독은 2006년 수석코치 자리로 돌아갔다. 구단은 올 시즌을 앞두고 독일 여자대표팀을 이끌던 이희완(52) 감독을 영입했는데 시즌 도중 위암이 발견돼 이 코치가 또 다시 대행이 됐다.
이 감독이 두 번째 감독대행을 맡았을 때 팀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GS칼텍스는 오프시즌 동안 현대건설에서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세터 이숙자(28,175cm)와 센터 정대영(27,183cm)을 데려왔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특급 유망주로 평가받은 배유나(19,181cm)를 전체 1순위로 뽑았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흥국생명의 독주를 막을 팀으로 GS 칼텍스가 꼽혔다. 그러나 시즌 뚜껑이 열리자 예상은 빗나갔다.
GS칼텍스는 5라운드부터 힘을 냈다. 도로공사와 3위 경쟁에서 앞서 나가면서 14승14패로 정규시즌을 끝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2위 KT&G를 2연승으로 누르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3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흥국생명이었다. 배구 전문가들은 1-9 또는 2-8 정도로 GS칼텍스의 열세를 점쳤다.
GS칼텍스는 3월 22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1-3(20-25 25-22 19-25 16-25)으로 졌다. 다음날 같은 곳에서 열린 2차전에서 GS칼텍스는 세트스코어 1-1에서 3세트를 흥국생명에게 19-25로 내줬다.
그러나 GS칼텍스는 무서운 뒷심을 보였다. 4, 5세트를 내리 따 3-2(21-25 25-17 18-25 25-9 15-6)로 역전승해 시리즈 전적 1승1패를 만들었다.
홈구장인 인천 도원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긴 GS칼텍스는 3월 26일과 29일 열린 3, 4차전에서 연달아 3-1로 이겨 프로 출범 이후 처음으로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4월 21일 열린 V리그 시상식에서 특별지도자상을 받은 이 감독은 5월 1일 감독 대행 꼬리표를 뗐다.
이 감독은 우승의 기쁨을 뒤로 한 채 2008-09시즌 준비에 한창이다. 시즌 오픈을 알리는 KOVO(한국배구연맹)컵대회가 예년보다 이른 8월 29일 시작된다. 이 감독을 선수단 숙소가 있는 용인에서 만났다.
올 시즌을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오프시즌이 더 바쁘다.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남지연(25,172cm), 이정옥(25,179cm)과 재계약문제도 있고 이것저것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그렇다. 차라리 시즌일 때가 시간적으로 더 여유가 있다.
정옥이와는 재계약에 합의했는데 지연이와는 이야기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원 소속팀과 협상 기한이 5월 10일까지인데 그날까지는 합의를 봤으면 한다. 그리고 세터 이숙자(28,175cm)는 오늘(5월 8일) 발목 수술을 받았다.
인터뷰가 끝난 뒤 지연이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병원에 들러 숙자를 살펴보고 저녁때는 태릉선수촌에 들를 예정이다.
이희완 감독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선수들과 팀 관계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감독으로서 시험대에 오르는 건 2008-09시즌부터다. 올 시즌 팀을 만든 것은 내가 아닌 이희완 감독이시다. 나는 이 감독의 빈자리를 메웠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우승을 예상했었나.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초점을 챔피언결정전 일정에 맞췄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2주 정도 체력훈련을 집중적으로 지시했다.
처음에는 구단 프런트에서 반대가 많았다. 모르긴 몰라도 선수들도 너무 한다고 불만이 많았을 거다. 하지만 흥국생명을 이기기 위해서는 체력과 수비에서 우리가 앞서야 했다. 한번만 믿고 맡겨 달라고 했다.
선수들이 잘 따라왔다. 프런트나 구단 고위층도 이해를 했다. 챔피언결정전 2차전 4세트를 우리가 이기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솔직히 그때 세트스코어 1-2로 밀렸을 때는 여기가 우리의 한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4세트를 정말 쉽게 이기는 바람에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었고 3, 4차전에서 연승할 수 있었다. 흥국생명 선수들이 방심한 면이 있었지만 우리 선수들이 위기관리 능력과 체력적인 면에서 앞섰다. 베테랑들의 힘이 컸다.
올 시즌 많은 일이 있었다.
GS칼텍스에서 코치 생활을 하는 동안 감독 대행만 두 번 했다. 처음에는 박삼용 감독이 있을 때인데 그때는 편하게 팀을 맡았다.
시즌을 잘 마무리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희완 감독이 아프셔서 자리를 이어 받았는데 부담이 컸다. 감독대행을 맡은 뒤 5경기를 내리 졌을 때는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감독과 선수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1월 16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도로공사전에서 2-3(25-22 25-27 14-25 25-17 11-15)으로 패한 데 이어 1월 20일 수원체육관에서 현대건설에게 또 2-3(21-25 20-25 25-18 25-22 14-16)으로 졌다.
5패 가운데 3차례나 풀세트 경기 끝에 졌다. 그래서 1월 25일 올림픽 제2체육관에서 열린 도로공사와의 중립경기 결과를 보고 (진퇴 여부를) 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이겼다.
그 경기도 5세트까지 갔는데 우리가 3-2(27-25 25-21 14-25 24-26 15-10)로 이겼다. 그 경기에서 지면 미련 없이 그만두려고 했다. 다음 상대는 현대건설이었는데 또 5세트까지 해 3-2(25-21 26-24 30-32 21-25 15-7)로 승리했다.
그때부터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공사와 현대건설에게 졌다면 지금 나는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웃음).
올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챔피언결정전 우승보다 더 기억나는 일이 있다. 1월 초 팀을 맡으면서 모든 선수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팀 미팅을 했다.
이틀 동안 연습을 안 했지만 그때 선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올 시즌을 앞두고 팀 조직력이 모래알 같았다.
이숙자, 정대영, 김소정(26,180cm) 등 3명의 FA와 외국인선수 하께우(30,191cm) 그리고 배유나까지 5명의 새 얼굴이 팀에 들어왔다. 그래서 기존 선수들과 호흡 문제도 있었다.
선참급 선수가 들어오니 어려워서 그런지 선수들끼리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 형식적으로 격려할 뿐 코트에서 대회가 없었다.
그런데 팀 미팅을 하고 나서부터 선수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대영이가 세터인 (이)숙자에게 “내가 먼저 점프를 해서 상대 블로킹을 유도할 테니 빈 곳으로 토스를 해.”라고 말을 했고 (남)지연이는 “걱정 말고 블로킹을 해라. 뒤에서 내가 다 받겠다”고 했다.
선수들의 달라진 자세를 보면서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 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이후 팀이 계속 졌다. 그래도 선수들이 힘을 잃지 않았다.
감독으로 첫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내용은.
하나로 뭉쳐야 한다. 응집력이랄까. 수비와 조직력이 우선이다. 우리 팀을 삼성화재와 비슷한 색깔로 만들고 싶다.
다소 이른 예상이지만 다음 시즌에는 흥국생명, 도로공사, KT&G, 현대건설 어느 한 팀도 독주하거나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FA의 이동도 있겠지만 어떤 외국인선수를 데려오느냐에 따라 각 팀의 전력이 정해질 것 같다.
선배들과 다른 지도자들에게 배우고 느낀 것은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선수보다 먼저 흥분하면 안 된다. 연습 때는 몰라도 경기할 때는 선수들을 편하게 해야 한다.
하께우와 재계약은 할 계획인가.
일단 다른 외국인선수를 알아보고 있다.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뒤 브라질에 열흘 동안 다녀왔고 뒤이어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 선수들을 보고 왔다. 우리 팀에 맞는 선수가 눈에 띄지 않아 걱정이다.
마음에 드는 선수는 금액차이가 크기도 하고 한국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선수들은 한국리그를 마이너리그 취급한다. 외국인선수 영입 문제는 시간을 조금 더 두고 신중하게 결정할 계획이다.
LIG 손해보험 박기원(57), 현대캐피탈 김호철(53) 감독에 이어 유럽무대에서 뛰었다.
운 좋게 기회가 왔다. 고려증권이 해체될 무렵 명지대 김남성 감독이 “외국에서 선수생활을 해 보라”고 권유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이냐며 거절했다. 외국에 나가 선수생활을 하기에는 나이가 들었고 솔직히 겁도 조금 났다.
그런데 당시 독일 바이에르 클럽을 맡고 있던 이희완 감독이 “우리 팀에 세터가 필요하니 와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고려증권 진준택(60) 감독과 상의했다. 진 감독은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독일에 가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시 고려증권에는 나 말고 세터를 보는 선수가 있었는데 그 후배에게 길을 열어 주자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독일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독일에서 2년 동안 뛴 뒤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었다.
바이에르와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이 감독과 구단이 재계약을 원했다. 다른 독일 팀에서 영입 제의도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독일에서 선수생활을 끝낸 뒤 지도자 수업을 받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때 대한항공에서 연락이 왔다. 한장석 감독이 “세터 김경석이 입대한다. 네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고려증권 출신들이 지도자로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별로 의식을 하고 있지 않았는데 얼마 전 보도를 보고 그렇다는 걸 알았다. 고려증권 선수들은 1년에 적어도 두 차례씩 꼭 만난다. 고려증권에서 뛸 때 배구에 대해 많이 배웠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선배들이 많았으니까.
선배들과 연습하고 경기하면서 실력이 늘었다. 그런 면에서 운이 참 좋은 편이다. 고려증권 배구는 내실이 있었다. 그런 면이 지도자로 팀을 이끄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1996년 슈퍼리그에서는 세터였지만 서브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선수가 됐는데 1990년대 중반이 배구 인생의 황금기였다. 그해 상무에서 전역해 고려증권에 복귀했는데 당시 나는 스파이크 서브를 자주 넣었다. 선배들이 하는 것을 따라해 보니까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팀 연습이 끝난 뒤 따로 서브 연습을 했다. 솔직히 그때 나도 한번 주목을 받고 싶었다. 코트 양쪽 구석을 노려 서브를 넣었는데 운 좋게 많이 성공했다.
그때는 리베로가 없었다. 그래서 서브성공률이 높았던 것 같다. 지금 선수로 뛴다면 서브왕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웃음).
이성희
생년월일 : 1967년 9월 26일
학력 : 충주 삼원초 - 충주 미덕중 - 제천 광산고(현 의림공고) - 서울 시립대
경력 :
1987~1988년 , 1993~1998년 : 국가대표
1990~1998년 : 고려증권
1998~2000년 : 독일 바이에르
2002~2003년 : 현대건설 코치
2003~2008년 3월 : GS칼텍스 수석코치
2008년 4월~ : GS칼텍스 감독
[용인] 류한준 기자 [SPORTS2.0 제 103호(발행일 5월 19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