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니? 그새 간 거야? 이 녀석아! 아프다
ㅡ지성현시인! 영별이라니
어쩐지 엊그제 밤에 불현 떠오른 지성현
그리고 생생하게 그려지는 얼굴
백수 시대에서 이제 겨우 반을 살짝 넘긴 54세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 영별 그 앞에서 나를 생각 했나보다
성현아! 시인 한 번 돼보려고 달려오던 날들
반듯하게 옷 입고 다니라는 말에 언제나 양복을 입었지
성현아! 성현아!
어쩜 치매 엄마를 모시던 네가 먼저 가니? 어쩌다가? 어쩌다가?
지시인! 지시인!
그깐 시가 뭔디?
그거 하나 쓰려고 30여 리 읍내로 나와 컴퓨터를 배우고
그거 하나 쓰려고 쬐끄만 차를 하나 사서 끌고 다니고
치매 앓는 엄마 땜시, 엄마 때문에 어떡해? 어떡허지?
속은 끓고 끓어
동인지 하나 나오면 남들보다 몇 권이라도 더 가지고 가서
약방이며 동네 경로당 어르신한테 다 돌리고
우쭐대다가
정말 당신이 쓴 거야? 그 말 한마디에
뒤에 배경은 오직 하나 '샘' 이라고 전화를 바꿔주고 우쭐하던,
한밤중 전화를 걸어 속을 풀다가 혼나고
오지 마! 그만둬! 오직 믿는 기둥은 시 하나뿐이었는데
오기만 하면 혼나고 혼나고
보고파 보고파서 돈도 없이 택시 타고 달려와
택시비 달라던 그날
또 혼나고 또 야단 맞고 그냥 가라고 돌아서서 가는
그렇게 본 그날 초라한 뒷모습이 마지막이라니~,
얼마나 보고싶고 오고싶었으면 택시비도 없이 차를 타고 달려왔을까?
답답하다 미안하다
간다 갔다
어쩌누? 먼저 갔다는 소식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욕을 퍼붓고 눈을 돌렸지만
내내 눈가를 어슬렁대는 성현아!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지시인! 지시인! 성현이를 부른다
정말 간 거야?
언제 간 거야?
그 말을 전하는 시인한테 더 묻지도 않고 그 녀석 술 처먹고 욕설을 퍼댔지
그렇게 얄밉도록 소리 질러
남아있는 영상 지우려는데
지워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니? 어떡해?
고속도며 응천변 시화비는 영영 영생을 그릴 그게 아프다-- 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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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3. 31 음성신문에 개재된 마지막 시
아버지의 허풍 / 지성현
음성신문(주) 2024.03.31 07:50
여기서부터 저어기까지 다 내 논이다
삼 사백 마지기가 다 내 꺼다
허풍이었다
18세에 시집온 순진한 어머니는
밤하늘 별을 딴 듯 살다가
훗날 허풍을 알고
어머니는 고생길이 열렸다
남의 밭에서 일만 하시고
눈물을 목욕하듯 흘리셨다
자식 낳고
자식 때문에 사셨다
먹구름이 낄 때면 친정으로 가고 싶었지만
자식때문에 참고 산 세월
이제 살만하니 풍을 맞으셨다
출처 : 음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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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겨 놓은 얼굴, 옷은 반듯하게 입어라 그래서 한여름에도 양복이었지.
웃어야 예뻐 웃으라고 그렇게 웃고 -- 그 얼의 굴을 남겨놓고 갔구나
그가 마지막으로 써놓고 간 시- 이제 주인이 없어 영혼에 올린다
내 고형 오미 / 지성현
기린 머리처럼 높은 지대
뒤에는 망재산
밤나무에 밤이 주렁주렁
눈 내리면 비료 포대로 썰매 타던 곳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마나들 논이 보인다
백로가 올갱이 잡아먹으며 노는 곳
해마다 풍년 들고
두 줄기 미호천은 금강으로 흐르고
농로 마나들 직선으로 가면 이즈막정
제방에 이팝나무꽃이 목화솜같이 피는 곳
석양이면 미호천 억새 숲은 새들의 둥지
제방에 가로등이 켜지면
불꽃놀이 야경이 펼쳐지는
내 고향 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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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시 지성현시인 시단 오름
2017 여름호 한작
* 신인 당선작
흔들의자 / 지성현
시골 노총각,
땀 흘려 지은 농사 남는 것 없고
허리 굽히면 앞뒤로 흔들려
농사꾼에게 시집올 처녀도 없다
장가는 포기한 지 여러 해
이백 마지기 농사꾼 총각도
막걸리에 취해 흔들흔들
기대지도 눕지도 못하는 흔들의자
축 처진 어깨로 집에 가도
잔소리할 마누라도 없고 책임질 자식도 없어
흔들의자처럼 나이만 끄떡끄떡 고개를 넘는다
공장에 취직이나 할까 교차로를 넘겨봐도
나이 많아 안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몹쓸 세상 어지럽다
술에 취한 흔들의자에 앉은 시골 노총각!
전생에 지은 죄 고백하란다
비애 / 지성현
어제는 입동 배추밭에 서리가 내렸다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졌고
연인들 첫눈 내리는 날 기다린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의 청춘이 이가 시리도록 후회된다
사랑 한 번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첫눈은 아픔 되어 시골 노총각 백발 되었다
눈이 새처럼 높았다는 게 후회다
1년은 논농사 배추 콩이 친구 되어줬는데
초겨울 오면서 친구도 가고 사랑도 못 하고
혼자라는 상처가 깊다
찬장 / 지성현
어머니는 시집올 때 친정 부모가 장만해 준
찬장을 닦고 또 닦았다
놋그릇 사기그릇 마련하는 재미로 사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새집을 지으시고도
오십 년 된 찬장을 사랑채 대문에 놓으시고
매일같이 추억에 잠기셨다
어느 날, 어머니 인생길이 가득 묻은 찬장을
쇠죽 끓일 때 때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내일을 내다보고 계셨다
지금은 허리가 굽어
유모차 없이는 걷지 못하시는 어머니
인생을 정리하신다고 집을 사주셨던 어머니
불효자로 살았던 나의 인생길에
어머니를 모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