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철거의 비인간성과 그 대책
서종균(토지주택연구부)
1. 강제철거의 폭력성
2. 강제철거로 인한 고통
3. 철거지역 여성들의 문제
4. 제도적 문제점
5. 강제철거의 제도적인 대책
6. 철거민운동의 강제철거 대책
1. 강제철거의 폭력성
“1,200가구 4,500명이 살고 있던 청량리1동의 철거 과정에서는 1993년 9월부터 1994년 2월 사이에 모두 130명이 부상당했고 72명이 연행되었다. 그 후 가수용 시설을 설치하기로 조합과 합의했다.1)”
“1995년 10월 25일 오전 10시 30분, 무악동 재개발구역의 세입자들은 조합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면서 조합 사무실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평소 그 지역에 살면서 갈등이 있던 철거 깡패들이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결국 항의하는 주민들을 조합 사무실에 감금하고 외부와의 연락을 끊어 버렸고, 이어서 깡패들을 더 모아 온 철거반원들은 갇혀 있던 주민들을 구타하고 성적으로 모욕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재개발 조합장은 적극적으로 폭력을 사주했으며,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보고만 있었다. 십수명의 세입자들이 부상을 당했고, 이후에까지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1996년 2월 5일 새벽 6시, 용인군 수지면 택지개발지구에 갑자기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쳤다. 철거를 막기 이해 망루를 지어 생활하던 6가구와 철거반원들이 밀고 당기고 하던 와중에 망루에는 불이 붙었고, 결국 세 사람이 망루에서 뛰어내려 그중 한 명인 세 아이의 엄마가 목숨을 잃었다.”
“1996년 3월 27일 오전 9시, 미아동에서 철거반원들은 공가 철거를 막는 주민들에게 쓰레기를 뒤집어 씌우고 끌고 다니며 폭행을 가하였으며, 이어서 세입자대책위원회 사무실로 몰려와 대문을 부수고 지붕과 벽을 허무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있은 한 달 뒤인 4월 26일에는 오전 8시 30분부터 갑자기 들이닥친 40여명의 철거 깡패들이 폭력 철거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주민들이 항의하자 철거 깡패들은 아주머니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다녔으며, 아이를 업은 아주머니를 집안에 감금한 채 해머로 지붕을 부수면서 생명을 위협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이를 지켜보던 파출소장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철거 깡패들은 계속 폭행을 저질렀고, 진압 부대와 형사들을 동원하여 가까스로 폭력 사태를 저지했다. 이 과정에 많은 주민들이 부상당했고 5명이 입원하기까지 했다.”
최근에 있었던 몇 가지 강제철거와 관련된 사건들이다. 이런 사건은 최근에 와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계속 되어 오던 것이다. 강제철거의 문제는 건국이래 계속 문제시되어 왔지만, 아직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수도 없는 폭력이 자행되었고, 죄지을 일이 없는 선량한 사람들이 구속되었고, 여러 사람들이 죽어 갔다. 그런 의미에서 수지지구에서 일어난 한 어머니의 죽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오던 일이다.
이렇게 강제철거의 폭력성은 군사 통치 시절이나 문민정부가 들어섰다는 오늘날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에도 폭력적인 강제철거는 계속되고 있다. 삶의 질을 국제화 해야 할 시대에, 민주를 생명으로 하는 지방화 시대에 철거 폭력은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듯하다.2)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인 변화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사회적 상황이 바뀐다고 해도 그것이 바로 철거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설사 그것이 아무리 인간성을 손상시키고 추악한 상황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철거 폭력을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그것에 힘을 모으지 않고는 강제철거는 중단되지 않을 것이고, 폭력 철거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도 계속될 것이다.
강제철거는 전문용역회사에게 맡겨지는데, 이들 철거용역회사들은 ‘아무 문제없이 철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조건 철거를 조속히 하기 위해서’ 일을 한다. 철거용역회사는 깡패들과 일일고용직을 동원해서 갖가지 방법으로 주민들을 위협하여 견디지 못하고 이주하게 만들며 폭력을 동원해서 강제철거를 하는 것이 주업무이다.
폭력적인 강제철거는 정부 기관에 의해 방치되고 있다. 이런 정부의 방치는 의도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 정부는 폭력적인 강제철거를 막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인 적이 없다. 만약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깡패가 동원된 폭력적 철거 과정을 방관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철거 용역을 전문으로 하는 폭력 조직이 버젓이 회사를 차리고 있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철거가 폭력 조직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은 폭력을 방조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고, 결국 직무를 다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2. 강제철거로 인한 고통
어차피 세상살이는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지만, 사회제도나 권력이 부과하는 고통 중에서 ‘사는 집이 철거당해서 길거리에 잠을 자야 하는 고통’에 비할 것은 많지 않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전제군주나 독재 권력은 불경스런 집단을 응징하는 수단으로 철거를 활용해 왔다. 우리 나라에서 역모자의 일가 집터를 불질러 헐고 우물로 만든 것이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대항하면 그 정착촌을 철거하거나 단전·단수시킨 것 등을 보면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집을 부수는 것’은 대단한 형벌이며 불행을 강요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명분으로도 자신이 사는 집을 철거당해 길거리에서 밤을 새우는 고통은 강요당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개발, 환경 개선, 도시 정비 등의 어떤 고상한 용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철거당하는 ‘인권유린’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강제철거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규정해 왔다. 1996년 6월에 있을 ‘세계주거회의(HABITAT II)’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부당한 철거로부터 보호되어야 함을 명시한 문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강제철거가 계속되고 있다.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1987년 UN의 자매기관인 HIC(Habitat International Coalition) 총회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함께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강제철거를 자행하는 나라’로 선정되는 치욕을 겪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후 9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강제철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강제철거를 금지하거나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행정적인 집행이 따르지 않고 있다. 1987년 이후 사당동, 상계동, 양평동, 돈암동, 홍은동 등으로 이어지면서 잠자리를 지키려는 빈민들은 그 곳을 개발하여 이득을 얻으려는 집단들과 그들이 사주한 폭력 집단에 대항해 격렬하게 강제철거를 저지하기 위한 저항을 했다.3) 올해 들어서만도 서울시의 신정동, 무악동, 중계동, 부산시의 사직동과 우동, 용인시 수지면 등에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강제철거가 자행되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계속되고 있는 강제철거는 ‘사유재산과 계약’이라는 제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철거는 남의 땅이나 국공유지에 ‘불법’적으로 지어진 집을 사유재산을 개발한다는 ‘합법’적인 이유로 이루어진다. 즉 철거는 합법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합법성에도 불구하고 폭력성과 강제성은 고대의 그것과 다를 바 없고, 철거로 인한 고통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강제철거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은 말로 다하기 어렵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도 철거 폭력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철거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철거 과정이 그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재수가 없는 날이면 길을 가다 얼른 봐도 금방 구분이 되는 폭력배들을 길거리에서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대개 일반인들은 슬슬 피한다. 철거에 저항하는 주민들은 철거용역회사가 고용한 이런 폭력배들에 대항해서 싸움을 해야 한다. 철거 싸움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구속된다. 성적인 모욕을 당하는 사건까지 일어나고 있고, 끝내는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나왔다.
주민들은 강제철거가 일어날 당시도 문제지만, 철거를 막기 위해 동네를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철거반원들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주의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이 때문에 일을 나가지 못하고 동네를 지켜야 하는 경우도 많고, 때문에 생활도 어려워진다. 몇 달씩 일을 못나가다 보면 동네 주민들간에 다툼이 잦아지고, 집안에서도 불만이 생기고 불화가 늘어난다.
동네를 지키는 어려움은 철거 깡패들이 동네에 상주하기 때문에 더욱 커진다. 이들은 빈집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들어오지만, 실제로는 동네를 돌아다니면 부녀자를 희롱하거나 욕설을 해대며 살벌한 분위기를 만든다. 또한 주민들이 살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 공가를 지붕과 대문만 철거한 채 방치하기도 한다. 그러면 쓰레기를 버리는 등 환경과 위생상의 문제가 나타나고 청소년의 비행 장소로 이용되곤 한다. 이렇게 철거반원들은 주민들을 살기 어렵게 만들고 불안을 가중시키려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철거가 진행되거나 철거를 해야 할 지역에는 화재도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런 사고는 여러 철거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주민들을 위협하고 직접 쫓아내기도 하는 철거 수법의 하나인 것이다. 서초동 꽃마을의 경우 방화범을 잡기 위해 입구마다 초소를 만들고 12m 탑(골리앗)을 세웠다. 다행히 이것을 세운 뒤로 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4)
철거지역에 살면서 이웃간의 관계나 가정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리 없다. 불안한 가정생활로 인한 긴장으로 가정내 불화가 잦고 심각한 경우 가정 폭력이나 가정파괴로까지 나가기도 한다. 생활이 힘들어지면서 이웃간에는 서로 협동하여 공동으로 대응해 내기도 하지만, 생활의 고통은 서로를 의심하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또 동네 환경이나 가정 생활의 문제는 어린 아이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강제철거의 폭력성은 기본적인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 1월 서울시 연희동에서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노후 아파트의 전기와 난방을 끊었다. 그러던 중에 촛불을 켜 놓고 잠을 자던 한 사람이 화재가 나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중풍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었는데, 화재가 나자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던 것이다. 이것은 철거를 앞둔 주택에 대해서 기본적인 주거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심각한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철거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된다. 대책 없는 강제철거는 철거 이후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거나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1994년 10월에는 부산시 양정1동에 살고 있는 한 환경미화원은 자신의 집이 철거 당한 것을 비관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5)
강제철거의 고통은 무엇보다 철거를 당한 사람에게서 가장 심각한 것이지만, 철거를 직접 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철거를 당할 위협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도 작은 것은 아니다. 강제철거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준다.6)
뿐만 아니라 도시 내에서 저소득층의 소득 수준으로 부담할 수 있는 주택의 수가 줄어들면서, 주택을 철거당하고 이사를 해야 하는 가구나 일반 저소득층 가구는 점차 주거비를 많이 부담해야 하거나 주거 수준을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이런 문제도 철거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민들과 도시 저소득층이 함께 느끼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3. 철거 지역 여성들의 문제
“1994년 4월 19일, 성동구 하왕십리에서는 술에 만취한 철거 깡패들이 주민들에게 시비를 걸었고 이어서 몰려온 철거용역반원들이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 있었다. 이때 철거 깡패들은 팬티만 입은 채 부녀자들을 성희롱하기까지 했다. 주위에 있던 경찰관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1995년 4월 26일, 봉천6동에서는 한 아주머니가 강제철거를 막는 과정에서 속옷에 연탄재를 집어넣는 성희롱을 당하는 사태가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관악구의회는 이를 ‘아주 수치스러운 일’로 규정하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를 한 바 있다.”
“1995년 6월 6일, 중계1동에서 술에 취한 철거용역회사 소장이 “이사가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면서 한 아주머니의 젖가슴을 비트는 등 성추행을 했다.7)“
이런 사건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철거 깡패들과 맞서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심각한 모욕을 당하고 있다. 이처럼 강제철거로 인해 특히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여성이다. 그것은 강제철거에 대항하는 싸움에 여성들이 주로 참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주로 앞에서 철거 깡패들과 맞서고 있고, 따라서 철거 깡패들의 폭력으로 인해 부상을 당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여성들이다.
철거를 거치면서 여성들의 역할은 증대된다. 빈민 가정에서 여성은 철거를 겪지 않을 때부터 중요한 가족 수입원이었고, 대부분의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빈민 여성들은 가구의 2차적인 수입원이 아니라 주수입원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가사노동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철거가 진행되면서 철거 지역의 여성들에게는 동네를 지켜야 할 부담이 추가된다. 동네에서 여러 가지 회의에 참석하는 일은 대부분 여성의 몫으로 돌려지고, 더 어려워진 살림을 꾸리는 재주도 발휘해야 한다. 생활이 힘들고 어려워지면서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여성들의 부담은 엄청나게 커지는 것이다.
철거 지역에서 여성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늘어나지만, 그것이 바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성의 부담은 더 늘어나지만 여성의 역할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철거 싸움과 공동체적 생활을 통해, 혹은 탁아소나 공부방의 자모회를 통해서 여성의 자의식이 발전할 기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빈민 지역에서 여성들에 대한 가정이나 가족의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고 사회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평가받을 계기도 거의 없다. 그래서 빈민 지역의 여성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우는 경우가 많은 지도 모르겠다.8)
4. 제도적 문제점
강제철거에 대한 정부의 비공식적인 입장은 ‘방치’이다. 이 방치는 폭력에 대한 방치라는 점에서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강제철거를 겪은 사람들에 대한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거나 강제철거는 없다고 말하는 것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9) 하지만 분명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철거는 계속되고 있고, 강제철거를 하는 사람들과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의 싸움의 격렬함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강제철거와 관련된 정부의 정책이 있다면, 그것은 행정대집행과 철거 작업을 할 수 있는 업체에 대한 자격제한 정도이다. 강제철거는 법적으로 행정대집행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먼저 조합이 구청장에게 요청을 하면, 구청장은 대집행의 사전조치로 계고장을 송부하고, 이어서 강제철거를 실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주택은 다른 일반 건물이나 구조물과 마찬가지로 다루어진다. 주택의 철거는 다른 건물과는 달리 한 가족 혹은 그 이상의 가족을 당장 길거리에 내모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다른 건물이나 구조물의 철거와는 다르게 취급되어 마땅하다.
철거용역회사와 관련해서는 폭력이 제도화되는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철거용역업체들은 사업수행에 필요한 자격 요건을 갖추지 않은 것 때문에 불법성이 비난되었는데10), 이제는 합법적인 자격을 취득한 업체도 다소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철거 과정의 폭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허가된 철거폭력집단과 무허가 철거폭력집단이 구분된 것 정도이다.
철거가 이루어지는 여러 계기들 중에서 재개발은 다른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다. 공공 사업의 시행 과정이나 재개발 과정에서 퇴거가 필요한 경우에는 그래도 제도적 보상 규정이 정해져 있고, 주거대책비나 공공임대주택 중 선택할 수 있는 등 세입자 대책이 상대적으로 앞서 있다. 하지만 민간에 의해 수행되는 개발과정에는 토지소유권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다른 권리도 인정되고 있지 않다. 물론 철거민들에 대한 보상이나 재입주 대책도 전혀 없다.
재개발이 나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지 재개발에서 강제철거의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재개발에도 아직 문제는 많다. 철거는 주거 대책을 먼저 수립하고 이루어져야 한다. 재개발법에 있는 “재개발구역 안의 거주자 중 재개발사업의 시행으로 주택이 철거되는 자를 당해 재개발구역 또는 그 인접지에 임시 수용한 후가 아니면 재개발사업을 시행할 수 없다”는 규정은 이러한 취지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조항에서 “재개발구역 안의 거주자 중 주택이 철거되는 자”는 가옥주로 해석되고, 세입자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법규의 취지를 무시한 편파적이고 잘못된 법해석이다.
실질적으로도 임시주거시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세입자들이다. 가옥주들의 경우 전세금을 융자받아 다른 주택을 구하기 용이하지만 공공임대주택에 입주를 원하는 세입자들은 이전의 전세금만으로는 주변 지역의 올라 버린 전세가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세입자들에게 가이주단지는 매우 절실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철거 싸움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가수용시설 때문이고, 이를 제공하는 것은 세입자들에게 주거 대책을 제공하여 철거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 매우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그런데 공공 기관은 법해석을 빌미로, 조합은 이윤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극한 상황에 이를 때까지 가수용시설을 건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재개발에서 세입자 주거대책의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1989년 5월부터 세입자에 대한 영구임대주택 건설을 포함하도록 한 것이다. 영구임대주택 건설 규정의 적용이 재개발사업에 제한된 것도 문제지만, 여기서도 아직 문제는 남아 있다. 세입자용 공공임대주택 건설은 민간의 손에 맡겨진 재개발과정에서 여전히 꺼려지고 있고, 그 건설호수를 줄이려는 갖가지 방법들이 동원된다. 그 하나가 철거 싸움의 고통과 공포를 이용하는 것이다. 재개발에서 어떤 주거대책을 선택할 것인지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른 것이어야 하지만, 폭력적인 강제철거를 통해서 공공임대주택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공공임대주택 제공에 대해서도 불신하게 되고, 이 또한 심각한 대립의 원인이 된다.
철거를 만들어 내는 여러 정책에 대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사람들을 위한 사회기반시설 건설이나 토지 개발을 한다는 명분 아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거지를 강제로 철거하고 이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것은 과연 이치에 맞는 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 토지 소유자와 무허가주택의 소유자, 세입자들간의 관계를 조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각종 문제들을 발생하도록 내버려둔 채, 그래서 대립과 반목을 만들어 내고 심지어 조직화된 폭력까지 낳으면서 개발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또 과연 문제가 없는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5. 강제철거의 제도적인 대책
주거는 인간이 생활하는 데 가장 중요한 행위이고, 인간성을 실현하는 데 기본적인 수준의 주거를 제공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인 수준의 주택에 살 수 있는 주거권을 가지고 있고, 국가를 비롯한 사회에게는 그것을 실현할 의무가 있다.
현재 강제철거는 주거권을 침해하는 가장 심각한 사안으로 지적되고 있다.11) 강제철거로 인한 주거권 침해를 막기 위해서는 비자발적 철거, 퇴거, 이주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을 비롯하여 강제철거로 인한 주거권 침해를 없애기 위한 제도적 규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제한은 모든 거주자에게 안정된 점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12) 그러한 제도가 갖추어야 할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모든 사람은 주택점유형태 등의 법적인 지위와 무관하게 적법한 법원의 명령 이외에는 자신의 동의 없이 철거, 퇴거, 이주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이 때 법원이 철거, 퇴거, 이주를 명령하는 것은 엄격하게 제한된 경우에 한한다. 임대주택에서 생활하는 경우의 예를 들면, 임대된 건물 등에 대한 중대한 물질적인 손실이 가해지는 경우나 임대인 가구의 구성원이 직접 사용하기 위해 소유한 주택을 필요로 하는 것이 명확히 확인되는 경우 등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충분한 논의와 조정을 통해 합리적인 대책이 세워지고 거의 모든 가구가 동의한 주택개량사업이나 재개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경우나, 공중 보건이나 공공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등이 그 허용요건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사회 전체나 여러 사람들에게 직접적이고 심각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 강제철거가 행해져야 하고, 그 내용은 법률에서 엄격하게 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 이런 법원의 판단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강제철거도 불가능함을 뜻한다. 현재 우리 나라는 행정기관에 의해 강제철거 여부가 판단되는 문제가 있다.
철거의 집행은 행정기관에 의해 직접 집행하여야 한다. 현재는 행정기관의 판단에 따라 민간에 의해 수행되는데, 이것이 폭력행위를 방치하는 한 가지 원인이 되고 있다.13)
둘째, 강제철거가 행해질 경우에는 충분한 대책과 기간이 주어져야 한다. 물론 긴급한 재난의 위험이 있는 경우는 예외로 해야 한다. 강제철거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내용을 전달하고 상당한 기간의 대책을 마련할 여유를 주어야 한다. 또 강제철거를 당하는 사람은 손실이나 고통에 대해서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강제철거로 인해 주민들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어려움에 직면할 경우에는 강제철거에 저항할 권리를 갖는다.
이와 같이 주민이 동의하지 않는 철거에 대해 충분한 고지기간과 보상을 규정하는 것은 거주자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흔히 재개발 사업인가가 나면 조합은 철거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여기서 제도적으로 보호가 되어야 할 것은 철거에 있어 불리한 위치에 있는 부당한 철거에 저항할 수 있는 주거권이다. 이러한 규정은 적절한 대체 주택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의 성격을 갖는다.
셋째, 주민들이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적절한 대체 주택이 제공되어야 한다. 모든 해당 주민들에게 적절한 대체 주택이 제공될 때까지 강제철거는 이루어지지 않아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주민들은 철거에 저항할 권리를 갖는다.
철거를 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제공하는 것은 적어도 다음 두가지 원칙은 지켜야 한다. 첫째, 철거를 겪는 모든 사람들과 가구들에 대해 각각의 특성에 따라 기본적인 수준 이상의 주거를 제공해야 한다. 둘째, 철거 이전보다 주거수준이 더 열악해지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14) 주거 대책은 원칙적으로는 영구적인 주택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조건을 감안하여 재개발구역의 공공임대주택 입주예정자 등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가수용 시설을 설치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대체 주택을 제공한 후에 철거를 하는 것은 퇴거와 이주, 철거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강제철거는 거주민의 퇴거와 주택의 철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주택의 철거는 먼저 적절한 대체 주택에 주민들을 이주시킨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언제 철거가 될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불안하게 살고 있고, 갑자기 들이닥친 철거반원들에게 집을 못부수게 저항하는 주민들의 힘든 싸움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무허가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불법점유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철거나 이주가 보다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계층, 예를 들어 기존에 형성된 지역사회관계가 특히 중요한 고령자 등에게는 보다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철거, 퇴거, 이주의 과정에서 철거를 원하는 사람이 대체 주택 제공을 비롯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도록 감시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대체 주택을 제공하는데 협조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전에 살던 주택과 가능한 가까이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데 보다 적극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6. 철거민운동의 강제철거 대책
철거민운동은 강제철거의 비인간성에 저항해온 거의 유일한 조직이고, 또 앞으로도 강제철거를 막는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면 비인간적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 철거민운동은 어떤 대응을 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자.
그 동안 강제철거를 막기 위한 노력은 주로 철거민 자신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 철거민들은 스스로 강제철거를 반대하는 철거민운동을 조직했고, 철거가 있는 곳이면 쫓아가 서로 도움을 주었다. 철거민 자신들의 몸만이 철거 폭력에 대응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제는 이런 노력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의 힘을 모아야 할 것이고, 이를 통해 문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된 철거민운동은 그 후 아주 지속적이고 격렬한 투쟁을 거치면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운동은 빈민 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세력으로 형성하였고, 많은 빈민 운동 지도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철거민운동의 한계도 종종 지적되곤 했다. 철거민운동은 상황이 발생해야 대응적으로만 일어날 수 있는 운동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거나, 철거민운동을 통해서 일시적인 이해관계에 기반한 조직화는 가능하지만 장기적인 조직을 유지하기는 힘들다는 것 등이다.15)
이런 두가지 지적을 기초로, 필자는 철거민운동을 통한 대중 조직화·의식화에 대한 전망이나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철거민운동이 대응적인 성격을 가질 때 조직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는 현재와 같은 대응적 방식이 계속될 것이라고 가정할 때 가능한 것이다. 창조적이고 적극적이면 한시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도를 개선하고 철거의 원칙을 수립해가는 운동은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제안이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고, 대응적인 운동에서 확보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관계에 기반한 강한 조직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일반대중들과 희미하지만 새로운 조직의 선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철거민운동의 직접적인 대응을 포기하고 제도개선 투쟁만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양자를 병행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강한 조직을 유지하면서 조직 내에 더 넓은 전망을 열어주고, 또 다른 한편으로 조직기반을 보다 넓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확인해 갈 수 있다.
사회 전체가 철거폭력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다. 무엇보다 폭력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하는 가장 큰 위협이기 때문이다. 부당한 폭력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폭력을 방조하는 것이고, 또 자신도 언젠가는 그 폭력 앞에 맞닥뜨리게 될 수밖에 없다. 비인간적 강제철거는 충분히 사회 전체가 대응해야 할 이유가 있고,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 동안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이는 대중’들이 ‘주택을 탈상품화하겠다는 고상한 지도자’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얼마나 고민했던가?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와 그렇지 못한 대중들의 생각을 좁히는 것은 정녕 힘든 것이고, 그것을 좁히지 못해 가슴 아파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것은 그리 가슴 아플 일도 아니고, 그 간격이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도 올바른 생각은 아니다. 특히 간격을 좁히는 일을 포기하고 단기적인 대중들의 이해만을 추종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에만 귀를 기울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지 않는 것이다. 대중의 가능성을 제약할 때 발전이 있을 까닭이 없다. 필요한 것은 간격을 메우는 일이고, 그 사이의 통로를 찾아내는 것이다. ?한국도시연구소?